《고발》프랑스어판 서평/ 작은 반딧불에 담긴 커다란 희망의 빛
‘슬퍼도 기뻐도 항상 웃음꽃이 피게 하는 늙은 마귀의 악한 마법에 걸린 지옥’ 이야기

피에르 리굴로(옮긴이/ 최정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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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출간된《고발》프랑스어판 표지

7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된 단편집 《고발》은 북한에 자유의 바람이 일어나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여명(黎明)과도 같다. 북한체제에 대항하는 ‘반디’라는 필명의 북한 작가가, 북한정권이 지난 세월 동안 2500만 북한주민들에게 숨기려 애쓰던 ‘외부 세계’로 그의 작품을 전달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고발》은 북한사람들이 외부 세계에 대한 증오에 찬 독설이나 지도자에 대한 황당한 예찬, 북한정권이 꾸준히 이어오는 전쟁의 위협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반디는 북한에도 제대로 된 사고(思考)를 하며 북한체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김일성 일가가 자행하는 반인류적 행위들에 대해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외부 세계’에 은밀하게 전달된 반디의 《고발》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조심스러우면서도 확실한 징조이다. 주민들에게 알량한 권력을 남용해대는 간부들은 북한정권의 어리석은 선전 공세에도 그들의 비상식적인 생각에 순응하는 꼭두각시들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북한의 간부들은 주민들을 처벌하고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곤 한다. 단편 <지척만리>에는 이러한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조선 모든 까마귀 다 까욱거려두, 동문 가만 있으라. 동문 영창감이야, 영창감!” <지척만리>

지난 60~70년간 대대적으로 자행된 북한정권의 세뇌교육 앞에서도 인간의 자유로운 비판 정신은 살아남아 저항해왔다. 그러나 단편 <탈북기>에 나온 것처럼 북한에서 탈출하는 것만이 체제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 물론 위험천만한 탈출 방법이네, 해안 경비대나 순찰정의 총알에 맞을 수도 있고 풍랑에 나뭇잎처럼 삼켜질 수도 있으니까. 허나 이렇게 살아 최악의 고뇌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죽어 잊어버리는 것이 낫겠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탈출 방법도 서슴없이 선택한 우리들이네.” <탈북기>

그들은 북한정권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그 실상을 폭로함으로써 체제에 맞서고 있다. 우리에게 도달한 이 소설들이 바로 저항의 신호이다. 전 세계를 향해 ‘우리는 잘 견디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르짖음인 것이다. 우리도 당신들처럼 인격과 개성을 지닌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리는 부르짖음인 것이다. 단편 <유령의 도시>에서 묘사하듯 북한정권의 허풍에 호응하고 기계적인 행진이나 지도층을 열렬히 찬양하는 화려한 집단 공연에 참여하는 등의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복종이 이뤄진다 해도 말이다.

“시민들에게 알린다. 우리는 금방 세인(世人)을 전율케 하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다. 9시 55분 현재 100만 군중이 대기 장소에 모두 집결하였다. 폭우가 금방 멎은 최악의 45분 간에 우리의 100만 군중은…” <유령의 도시>

반디는 북한주민들에게 우리의 관심이 몹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고통 받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명백히 일깨워주고 있다. 북한주민 개개인의 저항과, 지도층의 체제 선전과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에 대한 저항은 우선적으로 주민들이 겪는 고통 가운데서 드러난다.

《고발》은 고립되고 힘없는 북한주민들이 일상에서 자행되는 압제의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압제에 눈에 띄게는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저항해나갈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전체주의를 피해 달아났던 에리트레아(注: 아프리카 북동부의 작은 나라)나 쿠바인들처럼 작은 배에 그들의 운명을 걸고 북한을 탈출함으로써, 또 어떤 이들은 아이를 낳기를 포기함으로써 그러한 저항을 이어간다. <지척만리>나 <탈북기>의 등장인물처럼 말이다.

“낳아준 어머니가 죽는대두 못 가보는 이 땅에서 아들이 필요하우? 아들이!” <지척만리>

“한평생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만약 그런 어머니가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이기 전에 죄인 중에서도 가장 잔악한 죄인이 될 것이다.”<탈북기>

《고발》의 힘은 북한주민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 절망과 실패 등을 통해 다른 세계를 향한 그들의 열망과 북한체제에 대한 반발, 여기에 대항하는 작은 저항의 움직임 등을 독자들이 좀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데 있다. 북한정권은 삶을 파괴하고 희망을 짓밟으며 현재와 미래를 무너뜨리지만 인간의 감정까지 조종하는 데는 실패했다. 인간의 지성과 감정은 살아서 저항하기 때문이다. ‘반디’라는 필명의 북한작가가 이를 입증하는 산증인이다.

의심 많은 이들은 그를 만나보고 싶어 할 것이다. 과연 자칭 ‘반딧불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이 작가는 생존하는 인물일까? 그렇다면 소설 속에 세세하게 드러난 정보만으로도 평양경찰들이 그를 체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에 대한 정보는 오직 여기에 나온 정보가 전부일 뿐이니 그 점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될 것이다. 한국에서, 프랑스에서, 그리고 일본과 대만에서 이 단편집이 출간된다 해도 ‘반디’의 신변이 위협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머지않은 시일 내에 이 단편집이 미국과 영국에도 출간되기를 희망해보자.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잔혹한 세계

어떤 이들은 이 소설이 써진 지 적어도 이십여 년이 넘었다는 사실 때문에 미심쩍은 눈초리로 이 소설이 지닌 중요성을 부인한다. 《고발》 속 단편 소설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얼마나 잔혹한가! 북한정권의 선전용으로 사용되는 수도 평양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핸드폰과 자동차, 제대로 된 식당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세상이자 시대에 뒤떨어진 세상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그들의 지도자가 원하지 않는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겠지만, 간부들이 행패를 부리고 공훈과 지위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김씨 일가에 열렬한 찬양을 쏟아내고, 소수의 권력층만이 특혜를 누리며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주민들은 평양 밖으로 추방당한다. 주민들은 여행증(통행허가증)이 없이는 자유롭게 이동도 할 수 없고, 농촌과 소도시에는 빈곤이 만연하며 주민들은 기근으로 인해 알코올 중독으로 내몰린다. 군인들은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지만 그들의 순진한 믿음은 기만당하고 만다. 이 모든 것들이 《고발》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북한의 실상이다. 극도로 부패한, 핵(核)으로 무장한 정권이 국민 전체를 배우로 삼아 인권유린적 연극에 강제로 동원하는 곳, 바로 그 곳이 오늘날의 북한이다.

이 단편들은 약 20년 전에 써졌지만 세월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속에는 문학성과 비판정신이 살아있다. 오랜 세월 살아남은 우정과, 신분을 초월한 연인들의 사랑, 자녀에 대한 애정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북한주민들이 속속들이 암기하고 있는 지도자의 영광을 간드러지게 찬양하는 가사나 지도자에 대한 부풀려진 업적들과는 멀리 동떨어진 이야기다. 작가가 북한정권이 연출하는 화려한 모습에 대치되는 주민들의 단순한 삶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이 연상되는 문학성과 비판정신

《고발》에서 반디는 주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고통과 그들 각자가 품은 염원을 심혈을 기울여 그려냈다. 개인의 이름으로 폭압적인 체제에 대해 고발하는 반디의 모습에서 구소련 공산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을 쓰고 해외에서 발표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했던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솔제니친이 연상된다. 전체주의 체제와 정치선전 공세에 대항하며, 모든 행동이 감시 받는 지옥과 같은 세상에 대해 거침없이 폭로하는 작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꽤 그럴듯한 비교이다. 실제로 반디는 여러 모로 솔제니친과 매우 닮았다.

반디는 주민들을 짓밟고 특혜를 누리며 직권을 남용하는 북한정권의 간부와 경찰들을 고발하는 한편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단지 살아남기만을 소망하는 이들, 조악하고 거짓된 감정에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우스꽝스러운 연극놀음에 참여할 것을 강요받는 일 없이, 스스로 느끼는 진실한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희망하는 이들에 대해 감탄 섞인 존경심을 표명한다.

<무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단편 소설에서 작가는 북한주민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강제로 동원되는 슬픈 연극놀음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무대>에는 주민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체제선전 활동과 주민들에 대한 감시 등의 묘사를 통해 북한주민에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실상이 드러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구소련 시절 스탈린의 득의양양한 거짓말을 폭로했던 솔제니친을 발견한다.

<무대>에서 반디는 다른 이들을 감시하고 염탐하는 이들, ‘별 의미 없는 비닐병(술병)’과 같은 쓰레기마저 부인할 여지가 없는 ‘증거물’로 둔갑시켜버리는 지도층의 거짓말을 작품 속에서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짓밟히며 굶주리고 기만당해도 거짓 연기를 이어가야 하는 이들, 심지어는 자녀의 죽음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그들의 수령 김일성이라 할지라도 그가 사망했을 때 그를 열렬히 찬양해야만 하는 이들, 아버지가 불순한 동기로 수용소로 이송되더라도 끊임없이 지도자를 찬양해야만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러나 솔제니친과 ‘반디’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솔제니친은 1962년 구소련 정부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기를 원했던 고르바초프가 1990년 그의 시민권을 복원시키고 1991년에는 반역 혐의를 기각하자, 자국으로 돌아와 스탈린 시대의 강제노동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폭로한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출간할 수 있었다. 그는 국내에서는 출간이 금지된 관계로 잇따라 해외에서 소설들을 출간하고, 《수용소군도》를 통해서 60년 간 지속된 유형지에서의 잔학상에 대한 폭로를 하며 저항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반면 반디는 단편 소설들을 모아 비밀리에 외부 세계로 보내왔다. 북한주민 수백만 명이 겪은 불행에 대한 구체적이고 집중적인 묘사가 담긴 이야기들이다. 반디는 솔제니친이 그랬던 것처럼 공개적으로 정권을 비판하거나 검열을 중단할 것을 호소할 수 없으며 솔제니친처럼 단순히 ‘암흑천지의 자본주의 사회’로 추방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 수도 없다. 솔제니친의 소설 속에는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며 배경이 되는 시대나 장소도 수많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반면, 반디의 단편에서는 줄거리가 단순하고 등장인물들도 보다 간단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고발》에서는 갈등을 야기하는 상황과 그 갈등의 해결책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룬다. 여행증(통행허가증) 없이는 이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노모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아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깨져버린 환상과 지도층에게서 위협받고 있는 우정의 상징인 ‘느티나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디에나 우뚝 서있는 위대한 김일성지도자 상을 보며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을 맺는가?

《고발》은 설화(說話)처럼 많은 은유와 상징이 사용됐다. 독자들은 반디의 단편집에서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들을 찾아내야 한다. ‘빨간 버섯’은 공산당이 뿌려놓은 독버섯이다. 조롱(鳥籠)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종달새들을 떠나보내기 위해 새장을 부숴야만 하는 상황은 북한주민들의 복잡한 실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준마의 일생>에서는 북한정권이 매우 심혈을 기울인 ‘천리마 운동 신화’가 떠오른다. <유령의 도시>에서는 연약한 아이를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김일성의 초상화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면을 보여준다.

소설 전반에 걸쳐 독자들은 조롱, 조소 속에서 구소련 작가 알렌산드르 지노비예프 작품의 한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냉소적인 유머가 섞여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칠이 벗겨진 ‘인류의 찬란한 미래’라는 공산주의의 선전 간판과 때마침 발생한 정전 때문에 ‘체제의 적(敵)’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없는 상황이 겹쳐진다. 자신의 밥은 남편의 밥으로 남겨놓고 자신은 남편이 개밥으로 착각한 음식을 끓여먹는 아내의 이야기(<탈북기>)나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두려움에 휩싸인 아이를 위해 커튼을 쳤다고 간첩으로 몰리거나(<유령의 도시>) 김일성 사망 후 조의장 제단을 더 이상 밝히지 못해 두려움에 싸인 고위관리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반디를 그저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신중하기만 한 작가로 간주할 수는 없다. 이야기 속 실마리들은 사전에 명백하게 제시된 묘사를 통해 바로 풀리게 된다. <복마전>의 등장인물 오 씨가 김일성 일가의 이동을 위해 모든 주민들의 이동을 금지하는 ‘제1호 행사’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 후 읊조리는 대사에서 이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까지 바로 그 마귀의 마술 속에서 진실과는 판이한, 완전히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복마전>

오 씨는 이러한 현실을 토대로 손녀에게 들려주기 위해 ‘슬퍼도 기뻐도 항상 웃음꽃이 피게 하는 늙은 마귀의 악한 마법에 걸린 지옥’ 이야기를 꾸며낸다. 반디는 체제의 앞잡이들과 김일성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더 나아가 불행의 씨앗을 안겨준 장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산주의 창시자에게로까지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저 유럽의
옛 털보는 주장하기를
자본주의는 암흑천지요
공산주의는 광명천지라 하였거늘

… 나 반디는
만 천하에 고발하노라
그 암흑이 그믐밤이라면
천만길 먹물 속인
털보의 그 광명천지를”


체제에 기만당하는 순진한 공산주의자들

반디도 공산주의 체제가 내세워온 유혹과 매수의 구호가 어떤 것인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함께 누리는 삶’에서부터 오는 행복이다. 이 구호들을 명목 삼아 전제주의 독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고발》 속 두 개의 단편에서 순수하게 인민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삶을 헌신했다가 체제에 기만당하고 배신당하는 순진한 공산주의자들이 등장한다.

<준마의 일생>에서 설용수와 그의 오랜 친구는 공산주의 체제가 약속했던 꿈을 이룩하고 실현하기 위해 북한정권에 평생을 헌신한다. 그러나 설용수의 친구는 일평생 땀 흘려 고된 노동만 하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이제 모범적인 프롤레타리아 설용수에게 그간 받아온 온갖 훈장들은 아무 의미도 없다. 집에 놓인 텔레비전 화면에 서리가 낄 만큼 혹독한 추위와 기근에 시달리면서 설용수는 그의 일생이 한 순간에 뿌리째 흔들리는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 죽은 친구와 함께 공산당원으로 입당하던 날 기념으로 심은 느티나무가 사실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며 그가 훈장으로 느티나무를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치장해왔듯, 북한정권의 인민 낙원을 이룰 것이라는 거창한 약속도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워서 느티나무에 손대지 못했던 그는 결국 참담한 현실을 인정하며 나무를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한다.

체제에 기만당한 순수한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의 마지막 단편인 <빨간 버섯>에서도 반복된다. <빨간 버섯>은 조선노동당사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빨간색은 당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벽돌 색을 나타낸다. ‘민주주의’, ‘평등’, ‘역사의 주인은 인민’, ‘지상의 낙원을 건설하자’ 등의 멋들어진 구호들. 이처럼 그럴싸한 구호가 적혀있는, 그러나 그 뒤에 독재라는 가장 두려운 무기를 감추고 있는 간판에 속아 넘어가 배신당한 순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단편에 등장한다.

<빨간 버섯>에서는 지도층이 자신들의 잘못을 소수의 노동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초래된 것이라고 뒤집어씌워 희생양으로 만드는 공개재판의 모습이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다. 공설운동장에서 마을 재판소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는 이 잔혹한 인민재판에서 불행한 피고인은 구라파의 붉은 유령이 심어놓은 불행의 씨앗을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저 빨간 버섯의 씨앗!”이라고 다시 한 번 비난한다. 재판에 참여한 피고의 친구의 가슴 속에서는 미처 외치지 못한 피고의 절규가 가슴 속으로부터 울려오고 있었다.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 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빨간 버섯>

반디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내세우는 거짓 약속과 환상에 기만당한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 없이도 독자들이 그 체제가 자아내는 끔찍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다른 단편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북한의 모습도 이런 상황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위에서 우리는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임종 전에 보러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지척만리>)를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북한에서는 여행증(통행허가증) 없이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런 현실들로부터 북한 체제의 실체를 대면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또 북한주민들이 차라리 아이를 갖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현실에 대해 확인한 바 있다. 단편 <탈북기>에서는 반혁명 종파분자의 아들이자 적대 군중으로 분류되어 출신성분에 문제가 있는 남편의 입당을 위해 부문 비서의 환심을 사야만 하는 아내가 등장한다. 북한은 엄격한 계급사회이다. 아버지나 조부가 지은 가벼운 과실로도 꼼짝없이 ‘복잡 군중’, 심지어는 ‘적대 군중’으로까지 낙인이 찍힌다. 이런 그녀에게 부문 비서는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이면 남편의 입당을 도와주겠다며 은밀히 성상납을 요구한다.

“맘 놔라. 나그네 입당 문젠 이 내 손에 달렸으니 말이야. 이 내 손.” <탈북기>

북한 간부들의 초야권 남용은 북한에서 통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일이다. 게다가 세대를 거듭해서 지도부와 특권 계층의 의심을 사고 그들에게 낙인이 찍힌 이들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몹시 고단하기 짝이 없다. 평생 죄인의 낙인이 찍혀 감시의 눈이 따라붙고 공민증(신분증)에 출신을 알리는 일련의 번호가 영원히 따라다니게 되는 것이다. 남은 가족들마저 수용소로 보내질 위기에서 벗어나서 아버지의 과실(過失)과 전과를 지워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땅으로 탈출하는 길밖에는 없다.


북한주민을 연민(憐愍)하지 않는 한국인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 하나가, 그것도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 반디의 단편집 《고발》이 2014년 5월에 서울에서 출간되었음에도 어째서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인가? 어떤 어려움이 있기에, 도대체 얼마나 무지하고 관심이 없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가? 어째서 이 작품이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인가? 정말 일부 순진한 남한 사람들은 그들 정부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을 오히려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날마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북한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나의 남한 동지들은 어째서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가? 공산주의적 일상에 대한 무지 때문인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명백하게 휴전상황에 놓여있는 현실에서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그토록 이상한 일이란 말인가? 남한의 반쪽이라 할 수 있는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 그토록 불가능한 일인가? 그러고 나면 남한 정부를 어떻게 비난해야 할지 난감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고발》 프랑스어판 출간은 한국에도 어느 정도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주민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던 이미지 또한 바꿔줄 것이다. 반디는 북한주민들이 이토록 끝없이 이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연극에서 해방되고 지독한 감시의 눈에서 벗어나 북한 지도층이 꾸며대는 온갖 거짓말이 종지부를 찍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지금 김정은은 고립되어 혼자나 마찬가지이다.

<복마전> 오 씨 부인의 기억에서처럼 북한주민들이 현란한 정치사를 즐겨 듣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오 씨는 이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녀는 더 이상 이성이 마비된 동지나 적 또는 피해자가 아닌 것이다.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북한체제 하에서 고통을 받는 희생자들이다. 그렇기에 좌파든 우파든, 정부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지식인이든 정치인이든, 남한 사람들도 다른 모든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주민들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반디가 우리에게 소개하는 일곱 개의 단편들, 바로 인간에 대한 이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이다. ●

[ 2016-03-08, 18: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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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386     2016-03-08 오후 6:58
조희연 교육감이 제정신이면 친일인명사전보다 이 책을 먼저 모든 학교에 필독 도서로 보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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