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戰友들의 영혼이 증거물을 그물에 담아주는 것 같았다."
조갑제닷컴 新刊 <爆沈 어뢰를 찾다!>의 著者, 權永代 해군 UDT 현장 지휘관 인터뷰

金東鉉 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기사본문 이미지


權永代(해군 대령)

1965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출생. 1988년 海士를 졸업했고 1989년 해군 UDT/
SEAL 교육을 수료했다. 이후 해군 특수전 장교로서 작전대장, 특전대대장,
특전전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고, 해군 전투병과 장교로서 고속정 艇長
(정장), 초계함 함장, 기동군수지원함 함장 등을 역임했다. 정책부서인 연합사,
해군본부 및 해군작전사령부 등에서도 근무했다. 천안함 爆沈(폭침)시에는
해군 특전대대장으로 UDT/SEAL 戰力(전력)의 현장지휘관 임무를 수행했다.



“사실만 보여주면…”

<이 글은, 아직도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한 목적이다.…왜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인을 못 믿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군인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총을 쥐어주고, 나라를 안전하게 지킬 것을 바라면서 편히 잠을 잘 수 있는가? - 著者(저자)의 ‘프롤로그’ 중에서.>

천안함 爆沈(폭침) 사건의 현장에서 56일간 해군 탐색구조단 UDT 부대의 현장 지휘관으로 일한 權永代(권영대) 대령(51·사고 당시 중령)이 밝힌 이 책을 내게 된 이유다.

2016년 2월 초순, 수도권 한 해군 기지에서 그를 만났다. 1m72cm, 다소 마른 체형의 그는 운동으로 단련된 몸매였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출생으로 1988년 海士(해사)를 졸업했고 1989년 해군 UDT/SEAL 교육을 수료했다. 이후 해군 특수전 장교로서 작전대장, 특전대대장, 특전전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고, 해군 전투병과 장교로서 고속정 艇長(정장), 초계함 함장, 기동군수지원함 함장 등을 지냈다. 그는 정책부서인 연합사, 해군본부 및 해군작전사령부 등에서도 근무했다. 천안함 爆沈(폭침)시에는 해군 특전대대장으로 UDT/SEAL 戰力(전력)의 현장지휘관 임무를 수행했다.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약 4년 전이고, 본격적으로 책 형태로 만들기 위해 원고를 준비한 것은 2년 전입니다. 사고 후 4년이나 지났어도 천안함 爆沈(폭침)사건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에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내용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천안함 爆沈(폭침) 조사 과정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확고한 증거물을 건져올린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 책을 쓰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당시 작성했던 56일간의 日記(일기)를 토대로 책을 엮었다. 權 대령은 가급적 개인적인 생각은 배제하고 현장에서 확인된 객관적 사실 위주로 글을 정리했다고 말한다.

“100% 객관적 사실만 보여주면 그걸로 다 북한에 의한 폭침이란 게 드러납니다. 현장을 지켜본 해군, 해병대 등 各軍 관계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몇 사람이 사실을 조작했다고 하면 그 비밀이 지켜지겠습니까. 사고 조사 현장의 주요 지원인력들은 士兵(사병)들이었는데 그들이 거짓이나 사건 은폐를 보았다면 제대 후에 다 공개하지 않았겠습니까.”

-천안함 침몰 첫 보도를 보고 암초충돌, 내부폭발, 어뢰공격 등 어느 쪽에 먼저 심증이 갔나요.
“최초 보도는 진해에서 들었습니다. 해군 장교의 기본상식으로는 破空(파공) 등에 의한 침수상황으로 이해했습니다. 설마 敵(적)의 공격에 의한 폭발이라곤 생각 못하고 가스터빈 등 배 안의 뭔가 폭발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후 이어지는 보도를 통해 船體(선체)가 절단된 것을 보고 내부 폭발로 선체가 두 동강 날 수는 없다고 보았고 어뢰 및 기뢰의 공격에 의한 상황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사고 현장엔 천안함을 좌초시킬 암초가 없다”

-사고 초기에 암초 충돌설이 많이 나왔는데요.
“암초에 의한 충돌로, 선체가 절단되는 상황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군함이 아니라 일반 상선을 타는 선원들의 생각도 저와 같을 것입니다.”

-최근 법원서 유죄판결을 받은 신상철이란 사람은 지금도 암초에 의한 침몰이라고 계속 주장합니다.

“제가 2개월 가까이 천안함이 피격된 해역을 샅샅이 봤는데 천안함을 좌초시킬 만한 암초가 없습니다. 선체가 분리된 채 인양된 천안함의 실체는 도저히 좌초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사람은 조사 기간 동안 현장에 와본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군 특수전 요원인 한주호 준위의 작업중 사망은 천안함 피해 수습 과정의 한 전환기를 가져왔다. 일부 해군에 부정적이던 여론을 일시에 反轉(반전)시켜 국민들이 해군과 특수전 대원들의 노고를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 이 책에도 한 준위의 감투정신을 소개한 기록이 상세하게 나온다. 權 대령은 美(미) 군함으로 후송돼 심폐소생술을 받던 한 준위에 대해 의료진이 포기하려 하자 한 시간 이상을 더 해보도록 강권했지만 결국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한 준위는 UDT/SEAL의 살아있는 전설”

“한 준위는 UDT/SEAL의 살아있는 전설이었습니다. 특수전 요원의 표본이었어요. 그의 솔선수범 정신은 그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었습니다. 훈련 중 피고름이 생긴 대원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제거하는 등 후배 대원들에겐 정신적 支柱(지주)였습니다.”

權 대령은 “한 준위는 어떤 임무에서도 자신이 빠질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청해부대 1진(2009년 3월 파병) 선발시 해군에서는 교전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선발에서 제외시킬 것을 고려했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장비 준비, 대원의 교육훈련 등을 하면서 ‘제외시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종 선발 무렵 한 준위가 權 대령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대대장님, 군 복무 30년이 넘어 이제 제대를 앞두고 있는데, 대원들과 함께 實戰(실전)을 치를 수 있는 곳에 가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차마 뿌리치기 힘든 건의였고, 결국 청해부대 제1진에서도 편안한 보직이 아닌 실전에서 가장 먼저 敵과 마주치는 보직으로 다녀왔었다고 한다. 權 대령은 특수전 요원은 일반 군인들과 다른 면이 있다고 했다.

“특수전 요원은 스포츠카와 비슷합니다. 젊었을 때 자기 체력의 한계까지 다 뽑아냅니다. 40대가 되면 체력이 떨어집니다. 아픈 곳도 많고 연골 정도는 다 나가고… 사고 당시 53세, 제대 2년 남았을 때지요. 한 준위는 어쨌든 솔선수범입니다. 훈련 때면 먼저 深海(심해)에 들어가 안전을 확인하고 후배들을 내려보냅니다. 제가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말을 안 듣습니다. 의가사 제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도 UDT 대원들은 아프다는 얘기는 지독하게 안합니다. 임무에서 빠질까봐서….”

權 대령은 “대부분의 UDT는 목숨을 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그 자신도 훈련을 받으며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런 고통을 겪은 이후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는 말도 했다.

“중대장 때인 1990년 한 해에만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4월 팀스피리트 훈련 때 새벽 3시의 해상침투 훈련에서, 고무보트가 전복돼 정신을 잃기 직전 파도에 밀려 해안에 도달해 살아났습니다. 또 8월의 수중침투 훈련중엔 공기통의 공기 부족으로 질식사할 뻔하기도 했어요. 두 달 뒤인 10월엔 낙하산을 이용한 해상강하 훈련중, 낙하산이 완전히 펴지지 않아 자유낙하를 하다 물 속에 들어가기 직전에 낙하산이 펴져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교육단계에서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어렵게 기술을 배우다 보니 UDT들은 제대 전에 實戰(실전)에서 써먹어야겠다는 강박감을 항상 갖고 삽니다.”

KBS 誤報의 전말

이 책에는 언론보도로 인해 피해 사례도 실렸다. 2010년 4월7일 KBS에서 한 준위가 제3의 浮漂(부표), 즉 ‘다른 곳에서 죽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한 준위가 제3의 장소에서 죽었다고 보도한 KBS 보도는 오보가 맞나요.
“완전한 오보입니다. 당시 현장에는 각종 위치부이(최초 함수가 사라진 위치에 설치된 부이, 발견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부이, 잠수작업을 위한 부이 등)가 떠 있었습니다. KBS 기자가 백령도에 있던 예비역 UDT의 말을 듣고 보도한 것입니다. 해안 높은 곳에서 바다의 지점을 보면 정확한 위치 선정이 어렵습니다. 여기저기 漁網(어망)도 있고 위치부이도 이미 여러 곳에 있었어요. 아쉬운 것은 그쪽 지점이 맞냐고 해군에 문의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보도부터 나갔습니다. 또 현장에는 작업인원뿐 아니라 특전사 병력, 소해함, 해병대원들은 물론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며칠 뒤 언론사 대표단이 현장을 방문했는데 그들 중에 KBS 사장님도 오신다기에 제가 따져보려고 별렀는데 사장님이 먼저 오보를 사과하셔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또 발전기 같은 게 올라왔네”

천안함 사고 후 50여 일이 지난 5월15일 조사단의 쌍끌이 어선이 결정적 증거물인 북한 어뢰를 발견한다. 그날 權 중령은 대평 11호 갑판에서 현장을 수습했다.
“갑판장이 ‘또 발전기 같은 게 올라왔네’ 하는 겁니다. 곧바로 그물을 찢어 꺼내는데 스크류였습니다. 제가 2000년 미국에서 폭발물처리(EOD)과정 유학을 다녀왔어요. 이런 어뢰에 대해 한 일주일 정도 교육을 받았으니 어뢰가 눈에 익었고 이게 바로 爆沈(폭침)의 물증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權 중령은 즉시 배에 함께 있던 5전단장에게 보고 후 탐색구조단장께 무선으로 보고했다. 다행히 단장이 잠수함 근무 경험이 있어 어뢰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책에 실린 두 사람의 통화내용을 옮긴다.

<“필승! 사령관님, 오늘 1회 작업시 어뢰 테일 부분을 인양했습니다.”
“엉!! 스크류 있어?”
“예, 트윈 스크류 21인치 어뢰 맞습니다. 일부 나사부분에 녹은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깨끗한 상태입니다.”
“뒷부분이 검정색으로 되어 있고, 스크류 날개가 엇갈리게 되어 있는 게 맞아?”
“예, 정확합니다.”>

權 대령은 당시 어뢰를 찾은 것은 기적같은 일이라고 회고한다.
“사실 뭘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한 겁니다. 손톱만한 쇠붙이 쪼가리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심정으로 바다 밑을 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다에서 배의 파편 등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어뢰까지 나온 겁니다. 사망한 戰友(전우)들의 魂(혼)이 우리에게 증거물들을 그물에 담아주는 것이라고까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뢰 발견시 ‘1번’ 글씨를 본 기억이 없다고 썼습니다.
“처음엔 어뢰의 외부 모습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고, ‘1번’이라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 부분은 알루미늄판 같은 것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모든 수거물들은 손상의 우려 때문에 최대한 접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고, 따라서 스크류를 돌려보는 정도에서 더 이상 접촉을 자제하였던 겁니다.”

김남식 선장, “국가에서 필요한 일이라면 해 봐야죠”

-쌍끌이 어선 김남식 대평 11호 선장은 민간인이면서 군인 못지 않은 열성을 보였고 결국 물증을 찾는 1등 공신이 됐습니다. 곁에서 함께 일하며 본 김 선장은 어떤 분이었나요.
“카리스마가 있는 분입니다. 덩치는 작지만 정말 야무지고 소신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작업이 停潮(정조)시에만 가능하여 하루 2~3회 정도라고 했으나, 막상 일을 시작하면서 욕심이 생겼어요. 그물을 많이 끌수록 증거물이 올라올 가능성이 높은 거죠. 저희는 어선이 이겨나갈 수 있는 流速(유속)에서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선장은 물론 어선 선원들의 고초를 요구하는 것이었어요. “국가에서 필요한 일이라면 해 봐야죠”라는 것이 선장의 대답이었고, 결국 하루 7~8회까지도 投·揚網(투·양망)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權 대령은 천안함 폭침 후 증거물을 찾을 때까지 가장 고생한 사람이 사망한 한주호 준위와 대평 11호 김남식 선장이 아니었냐는 질문엔 고개를 저었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그걸 수습하는 데 누구 한두 명만을 영웅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현장에 투입된 全 인원들은 물론이고 물 속에서 魂(혼)이 된 전우들까지 포함해 모두의 염원과 노력이 맺은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權 대령은 이 책을 통해 “바다의 위험함을 일반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해군은 적과 싸우기 전에 바다와 싸워서 이겨야 된다고 합니다. 정말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들이고, 특히 해상에서 자연을 잘 이해하고 순응하지 못하면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상에선 아무리 큰 함정이라도 한낱 조각배에 불구하고, 높은 파도에 배 안의 모든 물건들이 뒤집힐 정도로 바다의 힘은 강력합니다.”

權 대령은 천안함 탐색구조 작전 종료 후 ‘保國(보국)포장’ 받았다. 그는 1남 1녀를 두었다. 스물세 살 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해군에 입대해 副士官으로 함정 근무를 하고 있고 딸은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爆沈 어뢰를 찾다!
천안함 水中작업 UDT 현장지휘관의 56일간 死鬪


權永代

260페이지(화보 8페이지) | 128*188mm | 13,000원 | 2016년 3월15일
| 979-11-85701-33-2 03390

정치/사회 > 국방/군사 > 국방/군사일반

기사본문 이미지

※전화주문 가능(02-722-9411~3)


[ 2016-03-14, 11: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