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당신도 작가인가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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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2000년 6월 15일 이후 한국은 넘치는 열정으로 간과 쓸개를 다 꺼내놓고, 북한은 열정을 가장한 차디찬 이성의 칼로 서슴없이 그 간과 쓸개를 야금야금 잘라 먹는다. 북한이 마련한 가설무대에서 북한의 창작 일꾼들은 철저히 사전에 연습한 대로 연기를 하는데, 한국의 몽상꾼들은 ‘문학은 하나다!’라고 눈시울을 적신다.
  
   [장길산]과 [객지]로 문명을 날린 후 [어둠의 자식들]과 [무기의 그늘]로 참여문학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황석영은 자고로 행동은 아득하고 말만 눈부신 일개 작가의 신분으로 불법 방북과 반(半)망명을 ‘실천’함으로써, 대학가의 임수경과 종교계의 문익환이 닦은 오솔길을 신작로로 넓힌 통일 일꾼으로 우뚝 솟았다. 한국의 국어사전에 나온 것과는 판이한 정의에 따른, 북한의 조선어 사전에 나오는 정의에 따른 반독재, 반미, 자주, 민중, 통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앵무새처럼 되뇌는 사람들에게, 그는 빛나는 통일의 광명성으로 떠오른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한국에 돌아와 별까지 달았다. 김영삼 정부 이래 권력 큰 잔치의 로열석과 1등석에 대한 가장 확실한 예약인 별까지 달았다.
  
   그 사이 남북의 정상이 만나 ‘우리끼리 평화통일하자’고 새끼손가락을 걸자, 미일중러의 강대국이 언제든지 휴지조각으로 만들 게 뻔한 약속을 다짐하자, 그는 2002년에 남북 양쪽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당당히, 해발 500미터 이하의 산에는 풀 한 포기 없는 북한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투옥과 고문으로 점철한 독립 운동가가 해방 공간에서 어딜 가나 권위의 후광으로 절로 빛났듯이, 그는 그저 거기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행동 없이 통일 구호만 외쳤던 한국의 작가들을 압도했다. 감히 이 때는 다른 작가들은 끼어 들 수도 없었다. 황석영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지난번에는 다른 사회단체들의 민간교류에 동행한 방문이었으니까, ‘문학적’인 합법적 방문은 이번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처음인 셈’이다. (문학은 하나다! --2005. 7. 27. 조선일보)
  
   공산혁명 70년에 그 빛나던 러시아 문학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문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면서 씩씩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말로 공산당의 강령을 선전하는 아편으로 전락했다. 이를 거부한 소설이 딱 두 편 나왔다. 그것이 바로 [닥터 지바고]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이다. 이것만이 문학이었다. 나머지는 모조리 정치 선전물에 지나지 않았다. 70년 동안 소련의 작가가 쓴 글은 원고지로 시베리아 평원을 한 자 깊이로 덮고도 남았겠지만, 소련이 붕괴한 후 그걸 예술품이라고 읽는 사람은 괴이한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 외에는 없다. 쓰레기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광기의 70년 동안, 소련은 짜르 시대보다 춥고 어두웠다는 말이다.
  
   예술은, 문학은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꽃필 수 없다. 인구 10억의 중국에서도 모택동의 어록만 가슴마다 품고 다녔을 뿐, 반세기 이상 문학이 존재할 수 없었다. 북한은 60년 동안 문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일성 김정일 신화와 전설 만들기가 최고의 창작일 뿐이다. 일제시대에도 훨씬 못 미친다.
  
   황석영의 소설이 수백만 부 팔렸다는 것은 한국이 그만큼 자유와 풍요를 누렸다는 말이다.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에도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불과 몇 부 팔리지 않았다. 인세 받을 형편이 못 되었다. 왜? 그것을 사 볼 중산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 볼 민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극소수 귀족 외에는 입에 풀칠도 겨우 하는 농노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농노가 해방된 후에도 제 돈 내고 소설을 사 볼 한가한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황석영이 그렇게 비틀고 쑤시고 꼬집고 짓씹는 한국은 60년대부터 이미 10만부가 팔리는 소설이 나왔다. 70년대 80년대면 이제 중고등학생도 용돈으로 얼마든지 1년에 소설 몇 권 정도는 사 볼 수 있었다. 80년대 90년대면 중고등학생이 사는 테이프나 CD 덕분에 1년에 수십 억을 버는 가수도 탄생했다. 표현의 자유는 나날이 커져서 80년대 말부터는 20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에 비해서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문학 작품도 검열 받지 않았다. 더불어 풍요도 넘쳐 흘러 한국 중고등학생들이 세뱃돈과 용돈 중에서 그렇고 그런 작가에게 툭툭 던지는 푼돈이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에 귀족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문학가에게 베풀던 시혜를 능가했다.
  
   자유와 풍요에 대한 생각이 졸부의 막내아들 수준이고,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해가 조선시대 후기의 양반지주 수준에 머문 민주화 세력이 우르르 친북 세력으로 둔갑하면서, 한국의 예술은, 문학은 천박해지고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들보다 한참 앞선 국민들을 계몽시키려고, 민주와 통일을 가르치려고, 의식화의 호루라기를 불기 시작했다. 서서히 남북의 문학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남북의 문학이 하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60년 동안 양산된 북한의 문학이란 것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와도, 요덕수용소의 노예 생활 10년을 그린 강철환의 [수용소의 노래] 한 권이 뚜벅뚜벅 걸어가면 즉시 자중지란을 일으키며 혼비백산 달아날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초기의 작품 외에는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한 권씩 팔려고 해도, 발과 입만 부르틀 뿐 통일의 그 날 이후에는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을 것이다.
  
   황석영이 민중을 위하고 한민족을 위하고 북한주민을 위한다면, 북한의 산하가 아름답다고, 산천은 의구하다고,
  
   “그러나 우리가 너나 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네 산하의 의연함과 아름다움이었다.”
  
   거기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저무는 청천강 변에는 예전 그대로 벌거숭이 아이들이 헤엄을 치고, 어른들은 그물로 고기를 잡고, 저녁새는 깃을 찾아 날아갔다.”
  
   이런 말을 어찌할 수 있을까. 농지를 넓힌다고 500미터 이하의 산은 모조리 다락밭으로 만들어 전국의 산을 벌거벗긴 것에 대해 어찌 한 마디도 못하는가. 악착같이 협동농장을 고수하느라 사하라 사막처럼 메마른 땅에 한국의 고급 비료를 아무리 주어도 옥수수가 어린애 손가락만한 것에 대해서는 왜 한 마디도 못할까.
  
   북한의 작가들이 과연 속으로 당신을 존경할 것 같은가. 그들의 봉급이 한 달에 2천원에서 3천원, 많아야 5천원, 이미 시장환율로 1달러에 2500원이니까, 겨우 한 달 봉급이 1달러 많아야 2달러인 그들이, 연봉이 12달러인 그들이, 많아야 연봉이 20달러인 그들이 인세만 해도 1년에 수억원이 되는 당신을, 연간 수입이 12만 달러도 넘을 당신을, 그들보다 1만 배 이상 버는 당신을 존경할 것 같은가. 그런 지옥에 대해서 한 마디 쓴 소리를 않고 단 소리만 바치는 당신을 그들이 과연 존경할 것 같은가. 속으로는 그들이 당신을 얼마나 경멸할까. 그나마 그 월급도 못 받을까 봐, 그들이 민족이니 통일이니 6․15 공동선언이니 맞장구칠 뿐임을 당신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북한의 독재자들이 60년 실정을 덮으려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경제봉쇄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슬쩍슬쩍 꺼내는 당신을 보고, 북한의 작가들이 속으로 뭐라고 할까.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이보오, 남조선의 답답 양반, 중국과 러시아, 동구를 보오! 그들이 왕년에 경제봉쇄 때문에 못 살았던가. 스스로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을 쳤기 때문에 못 살았을 따름이라우. 그걸 스스로 걷어 버리자 서방에서 자유와 풍요가 넘치도록 흘러 들어간 거라오. 우리도 하루 빨리 그러고 싶소.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제발 방해하지나 마오.”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을 이중으로 쳐진 땅에서 살지만, 해방 이후 국경에 거미줄도 한 번 친 적이 없는 한국에 산 당신보다 북한의 신화와 전설 작가들이 훨씬 북한의 공포와 기아의 원인에 대해서 잘 안다.
  
   “문학은 하나다!”
   천만에! 북한에는 문학이 존재한 적이 없다. 없는 문학과 어떻게 하나가 된단 말인가. 이제 한국에도 문학이 없다. 누군가 문학 비슷한 걸 쓰면, 코드가 다른 문인들이 앞장서서 화형식을 거행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풍토에서 어찌 문학 같은 문학이 나올까.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거나, 개념이 애매모호한 민중과 자주와 평화와 통일을 부르짖거나, 지식은커녕 상식도 턱없이 부족한 자들이 감히 한국의 역사를 들먹이며 무릉도원을 꿈꾸는 이야기나 지껄일 따름이다.
  
   친일을 거부하다가 옥사한 윤동주 시인처럼 친북을 질타하는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어찌 축복의 남녘땅에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가. 공포와 기아의 고려연방제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작가 특유의 직관이 번쩍이는 작품이 왜 이리도 눈에 띄지 않는가.
  
   입심이 좋아 황구라라고 불린다는 당신, 황석영, 뱃심은 그보다 더 좋다는 걸 알겠소만, 어찌 한 조각 양심은 안 보이는가. 김정일의 곰 발바닥 요리를 혹시 당신도 맛본 것 아닌가. 그 자리에서 당신의 양심을 꿀꺽 삼켰는가.
   (2005. 7. 27.)
  
[ 2005-07-28, 08: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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