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대통령 되면 나라 팔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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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서 돌아가야겠다고 경호실장에게 부탁>
  - 1986년 4월 18일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全斗煥 대통령은 구라파 4개국 방문을 마치고 귀로에 아이슬랜드 상공 특별기내 집무실에서 수행 기자단과 기상 회견을 했다.
  
  거지처럼 도와 달라는 얘기 안 했어요
  
  대통령: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내가 83년도 버마 갔을 때 우리 청와대 기자단에서 몇 사람은 같이 갔었지 않나. 사실은 구라파의 경호는 1백 퍼센트 신뢰할 형편은 못 되기 때문에 내가 걱정했었어요.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면서 여러분을 만나니 흐뭇하기 짝이 없어요.
  EC가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공동 보조를 취해 공동 국가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목표로 나가고 있음을 이번에 실감했어요. 내가 영국 방문에서 대처 수상에게 당부한 것이 구라파와 동북아를 따로 떼어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해서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유엔에서 대화를 하고 남북한 간 긴장을 완화하는 것인 동시에 이것이 곧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소련이 우리의 유엔 가입을 반대하는 것은 보편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거든 당신이 소련을 적극 설득해달라고 했어요. 그 분이 내 설명에 전폭적으로 공감을 표시하고, 인식을 완전히 같이 했어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사실 나와 조금 관계가 이상했었어요.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북한을 승인하려고 했어요. 그 때 내가 초강경 외교 정책을 썼습니다. 프랑스가 자유 진영의 지도국인데 동구권에서 상응한 조치가 없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승인을 하면 북한을 오판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면 한반도는 물론 세계 평화에 위협을 주는 것이니 안 되다고 했어요. 그래서 프랑스에서 그 문제를 양보했었습니다. 내가 이번에 미테랑 대통령을 만나서 쭉 설명했더니 그분이 좋은 반응을 보였어요. 그 다음 날 다시 만나자고 해서 2차 회담까지 했는데 한국에 대해 매우 많이 이해한 거 같아요. 독일과의 관계는 우리나 마찬가지로 금세기 후반에 와서 분단된 유사성이 있어서 아주 얘기가 잘 됐어요. 콜 수상이 나한테 우정에 넘치는 얘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내가 이번에 가서 거지 같이 일방적인 도움을 달라는 얘기 일체 안 했어요. 동반자로 상호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구라파 갈 때 유언해 놓고 갔었다
  
  대통령: 오늘 방문 일정이 끝나고 내가 점심에 가족끼리 축배를 들었어요. 내가 이번에 갈 때 죽을까 봐 여러 가지 유언을 해놓고 갔었습니다. 경호실장한테 내가 꼭 살아가야겠다고 처음으로 부탁을 했어요. 그래야 우리 나라의 민주 발전이 돼요.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가 임기 동안 살아서 헌법을 준수해야겠어요. 대통령으로 죽으면 얼마나 영광스러워요? 그러나 그건 우리 나라 장래를 위해서 안 돼요.
  내가 스위스에서 하루 쉴 때 농가를 방문했었지 않습니까. 내가 간 집은 주인이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어요. 자식이 여럿 있을 때 농토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농사짓고 싶어하는 자식한테 준다고 해요. 이번에 돌아가면 우리도 장남한테 무조건 상속시키는 것보다 농사짓고 싶은 사람한테 주도록 검토해 봐야겠어요.
  구라파에는 자동차가 전부 작은 차들이었어요. 앞으로 우리도 허세를 없애야 돼요. 이 점 언론이 계도해주어야 됩니다.
  프랑스에서 2차 정상 회담을 할 때 미테랑 대통령이 1992년 올림픽이 파리로 유치되도록 지원해 달라고 해요. 쉬락 수상도 나한테 노골적으로 부탁을 해요. 내가 지원해 준다고 했습니다. 이런 게 우리 민족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에요. 가는 곳마다 부러워해요. 내가 구라파에서 확실히 재인식한 게 있어요. 올림픽이 끝나면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이 될 거라고 그 사람들이 그래요. 이 사람들이 올림픽 유치에 혈안이 돼 있어요. 우리는 민족이 생기고 나서 처음 이런 보물을 따온 건데 소화를 잘해야 돼요. 내가 훌륭해서 나라가 잘됩니까. 우리 국민이 훌륭한 거요.
  언론이 우선 순위를 알아야 돼요. 가다가 비행기가 떨어져서 저승에 가면 거기에 무슨 신문이 있겠어. 미국 사람 중에도 나보고 대통령 더 하라는 사람 많아요. 내가 안 해. 그렇게 하면 안 돼. 나는 정말 민주주의를 하려고 해요.
  
  재임 중 마지막 외국 순방
  
  全斗煥 대통령의 영국, 서독, 프랑스, 벨기에 등 구주 4개국 순방은 4월 5일부터 4월 21일까지 16박 17일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것은 대통령 취임 후 7번째 재임 중 마지막 외국 순방이었다. 구라파 순방은 全 대통령에게 내각 책임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기회가 됐으며 이 밖에도 국정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감각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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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제 개헌을 구상>
  - 1986년 4월 22일 오후 5시 45분부터 6시 10분 사이에 全斗煥 대통령은 필자를 집무실로 불러 내각제 개헌 구상을 이야기했다.
  
  현 체제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비판
  
  대통령: 내가 이번에 구라파를 돌면서 좋은 힌트를 얻었다. 큰 아이 재국이도 나한테 나름대로 건의했다. 우리 나라도 구라파 선진국들처럼 정부 형태를 내각책임제로 바꾸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좋은 것이 아니냐 하는 거야. 지금의 제도는 나쁜 사람이 대통령으로 오면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가 되기 어렵고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될 수도 없겠어. 金日成 폐쇄 사회라면 몰라도 지금은 우리 국민이 배운 사람이 많고 지식층도 넓어져 정치에 관한 비판이 강해졌어. 현 체제를 유지하면 국내적인 문제도 있고 외국의 비판 대상도 돼. 아무리 대통령이 온건해도 민주주의를 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한테는 그렇게 비칠 수가 없어. 대통령 한 사람이 나라를 운영하니 정당의 활성화도 안 돼.
  내가 이번에 구라파를 돌아보니 최선진국들인 이들 나라가 내각책임제를 가지고 잘 해나가고 있었어. 우리도 이제는 그것을 수요할 만한 수준이나 단계가 되었다고 봐요.
  이번에 순방 기간 중 내가 스위스에 잠시 머물렀을 때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의전수석, 공보수석, 총재 비서실장, 경호실장, 대사와 얘기를 해봤는데 의원내각제가 좋다고들 하더군. 스위스는 대통령도 교대로 하고 주지사(州知事)도 일년에 한 번씩 바꾸고 아주 이상적으로 되어 있어.
  나는 우리 나라도 내각책임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국민 의견이 의회 내에서 수렴되고 정치적 훈련이 되니까 민주 의식이 뿌리내릴 수 있어.
  대통령: 나는 지금 내각책임제와 함께 지방자치제도 단계별로 실시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어. 이것을 구상해서 서서히 추진할 작정이야. 여기에는 야당도 뜻을 같이 해서 성사되도록 해야 돼. 여당과 야당과 야당의 의견이 일치되는 것이 이상적이지. 개헌은 어느 한 쪽이 단독으로 강행해서는 안 되지 않나. 완전 합의가 어렵다면 대원칙에는 합의되도록 하는 게 좋아. 내가 이것을 오는 하계 기자 회견을 통해서 폭탄 선언을 하려고 한다. 정치란 말이 새면 혼란이 생기니까 보안을 지키면서 실무적인 준비를 해 두도록 해야 될 것이다.
  우리 나라 정치도 이제는 극한 대립을 피하는 제도적인 것을 만들어 가야 되겠어. 李承晩 대통령은 간선제로 국회에서 선출된 후에 날치기로 직선제로 고쳤고, 朴 대통령은 직선제를 간선제로 고쳤지 않나. 독재를 하려면 직선제가 더 좋아.
  
  나쁜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 팔아먹는다
  
  대통령: 내가 버마에서 당하고 난 후에는 동족 살상을 청산하기 위해서 북한을 개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더 깊이하고 있어. 통일 문제는 누군가 책임지고 해야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어느 천년 가도 안돼.
  주변 강대국의 이해가 조화를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내가 4개국 상호 수교를 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국력이 북한보다 월등히 강해야 한다.
  이것을 주변이나 중공이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게 있지만 우리 국력이 워낙 우위에 있으면 민족 자결 원칙에 따른 해결을 묵인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봐. 언젠가는 우리 나라에도 일본처럼 공산당, 사회당이 나와야 한다. 언제까지나 반공 가지고는 안 된다. 서기 2000년대가 되면 공산당도 제한이 없이 되는 시기가 되어야 해. 국민이 심판하면 되니까.
  국민 총생산액이 2,000억 달러 수준으로 되면 남쪽부터 그런 식으로 트는 게 되어야 해. 우리 국민 총생산액이 2,000억 달러가 되면 남북한의 국력 격차가 10대 1, 북한이 상대가 안 되지. 우리도 평화스러움 속에서 민족이 행복과 풍요 속에서 살아야지. 대를 물리는 전쟁 공포, 빈곤의 어려움, 정치 갈등, 대립에서 해방시켜야 돼. 정치적 갈등, 대립도 내가 무마시켜야겠고, 그러려면 현대적인 정치가 나와야 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나쁜 사람이 들어오면 나라를 팔아먹을 위험성이 있어. 5공화국 출범 후 굉장히 번창한 것은 돈을 뜯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방 후 온건 협상 정국으로 방향 돌려
  
  구라파 순방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야당의 장외 투쟁에 강경 대처로 맞섰던 全斗煥 대통령은 순방 후 귀국을 계기로 온건 기조 위의 협상 정국으로 방향을 돌렸다. 全 대통령은 하계 회견에서 여야 합의에 의한 내각제 개헌 추진 구상을 폭탄 선언으로 내놓으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4월 30일 3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여야 합의에 의한 개헌 불 반대 입장을 먼저 밝히고 내각제는 민정당의 당론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대목에서는 全 대통령이 장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장남 宰國씨는 당시 연세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 유학 중이었는데 全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그를 통해 젊은 층의 생각과 지식인 사회의 상식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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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정상들 선거에만 신경 쓰니 안보 지식이 없다>
  1986년 4월 22일 오전 9시 30분부터 10시 20분 사이 全斗煥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 간부들에게 구라파 순방 소감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비서실 1급 이상 비서관과 1급 이상 경호실 간부들이 참석했다.
  
  비행기는 한 시간 뒤에도 폭발하잖아
  
  대통령: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외국에서는 우리 지역 정세에 대해 어두워요. 선거하는 나라는 다 그런 것 같아. 민주 사회에서 국가 원수란 차기 선거에 모든 정신을 쏟으니 남의 나라 사정, 동북아 지역까지 연구하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선거하는 데에 필요한 국제 정세 이외에는 알려고 노력 안 해. 이게 자유 세계의 큰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어. 물론 군사 지도자들이 수시로 정치인들한테 설명을 해주기는 하겠지만…
  83년도엔가 내가 나카소네 일본 수상한테 주변 정세, 소련 위협,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 주변 정세 등에 대해 내가 보는 바를 얘기해 주니까 자기가 직접 내 메모지를 빌어서 열 몇 장을 써.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할 때 이 자료를 활용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어요. 이번에 대처 영국 수상한테도 동북아 안보와 구라파 안보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하니 아주 큰 흥미를 가지고 듣는 바람에 시간이 배 이상 걸렸어. 정상끼리 서로 이해하고 공동 인식을 한다는 게 중요해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북한을 승인하려고 했던 사람인데 자기가 6월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 고르바초프한테 북한에 대한 전쟁 억지, 남북한 유엔 가입 얘기를 꼭 하겠다고 했어.
  구주 통합이 우리 생각 이상으로 순조롭게 진행돼 가고 있어요. 경제적 통합뿐 아니라 정치 융합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어. 우리가 크게 나누어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구라파권으로 보고 뚫고 가야 됩니다.
  내가 이번에 사실은 굉장히 가기 싫었어. 정상 외교라는 게 나가보면 굉장히 피곤해. 구라파는 전부 한 동네니까 경호면에서 엉성해 보였어요. 일정을 마치고 벨기에에서 한 시간 날라가니까 안심이 되었어요. 비행기라는 게 한 시간 후에 폭발되는 이도 있잖아. 살아올 수 있나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경호 관계자들이 애 많이 썼어요. 구라파에서 괜히 죽어버리면 나라 꼴이 뭐가 돼. 잘 해나가다가 말이야.
  긴장이 풀리니 몸에 영향이 오더군.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제 저녁에는 훈련을 심하게 한 사람처럼 몸이 아파.
  이제 우리 나라가 세계적으로 기반이 단단한 나라로 부상이 되었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어. 조금만 밀고 나가면 세계의 인식이 달라질 거야. 우리가 어중간한 나라니까 다른 나라에서 우리 국내 정치 문제를 얘기하는데 우리 국력이 조금만 더 올라가면 겁이 나서도 못 해. 우리 국력이 어중간하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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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겁먹고 때려잡으려고 해서야>
  - 1986년 4월 28일 9시 30분부터 11시까지 全斗煥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했다.
  
  정부에 대한 외포감(畏怖感)이 저하됐습니다
  
  許文道 정무1 수석비서관: 이번 달에는 조기 개헌 주장 분위기로 시국이 흐트러졌습니다. 정부에 대한 외포감이 저하됐다고 평가됩니다. 민국련(民國聯)이 연합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대책 기조는 혼란을 지양하고 조기 개헌이 불가능한 점을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5월 2일부터 4일까지 대처 영국 수상이 방한하며 5월 7일에 슐츠 미 국무 장관이, 5월 12일부터 15일까지는 캐나다 수상이 방한할 예정입니다. KBS 시청료 거부는 각하의 임기 말 체제를 흔들려는 체제 도전의 저의로 봅니다. 일단 불합리한 점은 시정하고 반체제적 공세에는 의연하게 대응하겠습니다. 공영 방송의 보완 발전을 위한 종합 대책을 성안하겠습니다.
  康祐赫 정무2 수석: 국법 질서를 흩뜨리는 현상에는 강 온 양면으로 대처하겠습니다. 5.18 광주 사태 기념일을 즈음한 혼란 기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집단 시위는 초기에 철저히 대응, 학원의 용공 과격 불온 분자를 색출하는데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임금 타결 현황은 현재 1백인 이상 기업은 38%가 끝났는데 이것은 예년보다 빠릅니다.
  愼克範 교문 수석: 4월은 4.19 등으로 학원 소요가 고조된 한 달이었습니다. 소요 사태는 양적으로는 감소했지만 질적으로는 격화되는 양상을 나타냈습니다. 전방 입소 거부, 중간 고사 거부 확산 기도가 있었습니다. 교수 시국 선언은 불만 세력과 연계해서 23개 대학 638명의 교수가 참여했는데 이는 전체 교수 3만 3,000명의 2% 미만으로 크게 우려될 바는 없으나 4.19와 5.18을 연결, 불순 시위의 확산 기도가 우려되므로 축소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습니다.
  司空 壹 경제 수석: 경기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고 지난 달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26.3% 증가, 수입은 17.1% 증가로 수출 호조와 내수 확산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 EC 수출이 63%나 늘었으나 일본에 대해서는 9.5% 증가에 그쳤습니다.
  경상 수지는 2억 9,400만 달러의 적자로 작년보다 2억 8,000 달러가 개선되었습니다. 올 무역수지는 15억 달러 흑자가 날 것으로 예상되고 경상수지는 5억 달러 흑자로 전망됩니다. 금년도 대미 무역흑자는 55억 달러인데 대일 무역적자는 4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일 수출 촉진을 위해 모든 관계 부서가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가는 도매가 마이너스 3.1%, 소매 물가는 0.7% 상승했습니다. 금년 중 도매 물가 상승은 1%, 소비자 물가는 2.5% 내외로 안정될 것으로 전망되나 일본, 대만에 비해서는 높습니다. 금년도 성장은 7.5%에서 8% 이상 9%까지도 가능할 것이며 6차 계획 중 안정 기반이 확고히 정착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金鐘健 사정 수석: 법질서 문란 풍조에 편승한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5월 전 수사 기관 인력을 동원, 폭력 불량배, 범법 행위 단속을 펴 나가겠습니다. 공직 사회에도 자숙 분위기를 확산시켜 공무원 기강을 잡아나가는 동시에 수범 사례를 발굴하여 사기 양양 도모를 병행해 나가겠습니다.
  
  중산층이 커져야 사회 안정이 된다
  
  대통령: 정무1 수석이나 정무2, 교문 수석 등이 대체적으로 사회 기강의 이완 문제에 관해 지적했는데 정무1 수석 지적대로 우리 사회가 성숙했기 때문에 사소한 혼란은 흡수,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봅니다. 20년 전 우리 국민 소득이 100달러였을 때는 정치인이 시끄럽게 하고 언론이 받아서 치면 사회 혼란으로 아무것도 되는 게 없었어요. 여러분이 문제의 핵심을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은 나라가 좁고 계절적으로도 날씨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부지런하고 이웃에도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어요. 흥분도 잘 하고 감격도 잘 하는데 국민소득이 2,000달러를 넘게 되니까 오히려 국민 전체가 볼 때는 욕구가 더 많아집니다. 집 가지면 자동차 가져야 하고 상대적 빈곤감이 높아지는데 그것은 국민이 부지런하고 현명하기 때문에 더 잘 느낍니다. 우리 나라에는 위화감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지만 외국에서는 잘 안 쓸 거야. 여자가 세단 몰고 가는 것 농사짓는 사람이 두 눈 뜨고 못 보는 것이 우리 민족이야. 이제는 대부분 직장이 있고 생활이 그런대로 안정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을 중산층으로 보면 돼요.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것은 국가 사회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해요. 5공화국이 출범한 이후를 그전과 비교해보면 그전에는 우리 나라가 북한보다는 개방됐지만 폐쇄 국가였어요. 자유 민주 주의하는 나라치고는 경색되었습니다. 5공화국 이후에는 해외 여행 제한을 풀어버려서 국내외 출입을 개방해서 완전한 개방 사회가 된 겁니다. 아무리 누르고 힘으로 해도 외구에서 우리 문제를 더 잘 알아요. 우리 사회가 지난 5년 사이에 서구 선진국에 접근해가는 양상을 띠고 그만큼 발전돼온 게 사실이요. 나 자신은 물론 모든 지도자, 책임자들은 아직까지도 전통적인 종래 방법과 체제를 생각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반정부 세력도 맨날 국내에서만 있으면서 민주주의를 자기들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소화하고 있어요.
  
  때려잡으면 반대파를 만들어준다
  
  대통령: 그래서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 이런 진통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영국의 역사를 보면 1688년 명예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서민이 참정권을 갖기 시작했고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이 1929년, 20 세기 초 라고 해. 영국 민주주의는 아주 점진적으로 개선되어온 것 아닙니까. 우리는 몇 천년 동안 중앙집권제를 해왔지 않나. 영국이나 구라파는 지리적으로 불가피하게 지방 자치제가 먼저 확립되어 중앙으로 통합되어 갔지만 우리는 늘 중앙에서 국민을 통치해왔어. 세계 어느 나라나 민주 주의하는 나라는 지방 자치 안 하는 나라가 없어. 우리는 모든 문제를 일사불란하게 해결하는 걸 잘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문제가 나오면 누르고 때려잡고 해야 사회 안정이 되는 것으로 알지. 누가 말을 좀 하면 위기 아니냐고 하는데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얘기를 하도록 놓아두면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정부나 모든 조직이 건재해서 밀고 가면 다 제 위치로 돌아가게 됩니다.
  여유를 안 주고 눌러 가지고만 밀고 갈 수가 있나요. 88년까지는 갈 수 있을지 모르지. 그러나 그 후는 어떻게 되나. 개방이 됐기 때문에 국민이 깨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국민이 근대 민주 사회를 알게 되는 거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소화해야 되느냐, 떠드는 사람을 힘으로 때려잡으려고만 해서는 안 돼요. 물론 도로에 나와 떠드는 건 법질서를 어기는 거니 가만둘 수 없지. 우리는 모조리 그러다 보니 언 걸 때려야 하고 안 때려야 하는지 기준이 애매해졌어요. 교회나 성당에서 개헌 성명 운동 하는 것을 순화하지 않고, 경고도 안 하고 모조리 때려잡으려고 하면 우리 스스로 반대파를 만들어 주는 꼴이 돼.
  교수 서명한 것, 그 정도의 숫자는 무시해도 돼요. 잡아 쳤다 하면 갈 곳이 없으니 반대쪽에 가버리게 돼요. 그 사람들이 특정인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야. 우리가 괜히 겁을 먹고 옹졸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선진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모든 책임자들이 머리를 써서 관용을 베풀면서 설득해 나가고, 질서를 문란케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때려야 해요. 그렇게 되면 한 쪽에서는 우리가 힘이 없어 그렇지 않느냐고 생각할 지 모르는데 정부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해요.
  
  슬금슬금 풀어서 국민을 단련시켜야 돼
  
  대통령: 88년 이후에도 이런 안정 기조가 지속되도록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슬금슬금 국민이 시끄러운 상황에 단련이 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어요. 떠드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놓아두어서 나중에는 지쳐서 제 자리에 돌아오게 할 필요가 있어요. 서명 교수들을 반국가 행위로 몰리 않은 게 잘됐어요.
  경제 수석 보고에 일본에서 자본재 60%를 수입하고 있다니 다른 데서 사올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해서 다변화하도록 하시오. 금년에 10% 내지 20%라도 줄이고 내년에 그렇게 줄이고 해서 경제적 종속 관계에서, 탈 식민지 하자 이거요. 우리가 구라파와는 그래도 상관없는데 일본과는 과거 역사가 있어서 그러면 곤란해요.
  떠드는 사람들은 떠들고 정부는 제 할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고 국민이 느끼게 해야 됩니다. 정부가 아무 차질 없이 집행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떠드는 소리가 줄게 돼요. 종교계 인사 10만 명이 서명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정부는 모든 사업을 차질 없이 착착 밀고가면 되는 거요. 국민이 신민당 편도 아니고 정부, 민정당 편도 아니야.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우리 국민은 약자를 동정하는데 야당편도 아니고 여당편도 아니면 냉정하게 중도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니냐, 안 움직이는 그 세력은 정부, 여당편이라고 보면 돼요.
  
  두레박에 물이 안 새면 줄이 끊어져요
  
  대통령: 우리가 여론 순화를 하고 대세를 가지고 끌고 가는 것이 선진화에 절대 필요하다고 봐요. 나한테 와서 이렇게 놓아 두어도 되겠습니까 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누수 현상이야. 그게 겁먹고 하는 소리요. 항상 몽둥이로 패서 지하에 들어가도록 하면 어느 시기에 가서는 폭발하게 돼요. 두레박에 구멍이 없이 물이 하나도 안 새면 한 두레박이고, 구멍이 나서 새면 두세 두레박이지 한 두레박으로만 물을 떠 가려고 하면 줄도 함께 떨어져요.
  정부, 여당이 안정으로 대세를 잡아가면 떠드는 사람들은 떠들다가 지쳐요. 정치적 제스처를 써서 하기보다는 시간이 필요해요. 세상 시끄러워 되겠느냐고 걱정하지만 아무일 없지 않나. 이게 선진화되는 과정이에요. 나의 오늘 이 이야기를 공직자들한테 전해주기 바랍니다. 사실은 내가, 작년부터 조금씩 떠드는 것을 의도적으로 키워주고 시은 생각이 있었어요. 작년 선거 때 하도 떠들어서 그냥 놓아둘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가 그냥 넘어가자고 한 거요. 붙어봤지만 의석이 셋밖에 차이가 없었어요. 이제는 민정당도 자신감을 가져야 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걱정을 하는데 내가 건재 하는 한 누가 뭘 해도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나는 내 이후의 사회 전반을 안정 되게 하려고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거야. 모든 분위기가 내가 의도하는 대로 잘됐어요. 자신감을 가지고 밀고 나갑시다. 자신감은 신념에서 나와요.
  
  누수 현상에 대한 인식
  
  全 대통령이 임기 말의 누수 현상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86년 초반부터였다. 이 대목에서 누수 현상을 두레박에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 누수 현상에 대한 이 무렵의 인식을 말해준다. 全 대통령은 이때까지만 해도 누수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으나 임기 말에 다가갈수록 누수 현상에 대해 경직된 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또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全 대통령은 중산층을 안정희구 세력으로 판단하여 상당한 신뢰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全 대통령은 시국을 대처하는 데 있어 온건 기조와 강경 기조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다. 강경론자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가 민주주의의 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유연한 대응을 당부한 것은 자신의 주변에 있던 강경론자들을 설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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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란치 건의, 올림픽까지 계속 집권>
  - 1986년 4월 28일 낮 12시부터 오후 1시 50분 사이 全斗煥 대통령은 주요 언론사 사장들을 청와대로 초청, 점심을 함께 했다.
  
  내가 살아서 물러가야 민주주의가 됩니다
  
  대통령: 내가 이번 유럽에 가서 크게 감명을 받은 데가 프랑스였습니다. 우리는 정당끼리 싸우는데 프랑스는 보수 정당끼리 어울려서 사회당과 싸워서 좌익 대통령, 우익 정부를 구성해 가지고도 잘 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것도 선거 직전에 사회당에서 자기네한테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꿨기 때문에 사회당이 그래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해요. 우리 같으면 야당이 야비하다고 하고 드러눕고 언론은 잘 한다고 써주고 했겠지요.
  우리는 정치인들이 자기들 기준으로 민주주의를 해석해서 거기에 맞지 않으면 독재다 뭐다 해요. 독재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것은 개선이 되어야 해요. 야당은, 지금 직선제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마르코스는 간선제라서 25년을 했느냐, 직선제이니까 그랬습니다. 직선제는 민주주의고 간선제는 비민주적이라는 논리는 말이 안 돼요.
  정말 민주주의를 하려면 의회에서 해야 됩니다. 지금 야당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현판식을 합니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비상 조치권을 발동할 수도 있지만 힘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관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국회를 놓아두고 지도자들이 길거리에서 뛰어다니면 민주주의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드러눕고 사회봉 뺏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민주주의가 될 수는 없어요.
  내가 늘 말하지만 대통령이 어떤 일이 있어도 임기를 마치기 전에 죽지 않고 임기를 마치고 살아 나가면 민주주의 발전에 큰 전기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내가 반드시 살아서 나가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설사 빨리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라를 생각해서는 내가 살아서 임기를 끝내고 물러가야 됩니다.
  권력을 집권자가 계속한다고 해야 응집력이 생겨요. 그만둔다고 하면 누수 현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누수 현상이 나면 공직자 사회의 능력이나 효율이 감소됩니다.
  
  이북한테 한 종목도 줄 수 없어요
  
  대통령: 북한이 우리한테 별별 방해 공작을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올림픽을 반대하다가 공동 주최하자고 하다가 이제는 종목을 반반씩 나누자, 24개 종목 중에 열 종목만 내놔라… 내가 이번에 IOC 위원정을 만나보니 소련, 중공, 쿠바, 동구권이 어울려 IOC에 겁을 주었습니다. 이북에서 올림픽 종목을 몇 종목 안 주면 서울을 밀어버린다고 한다는 거예요. 언론에는 비밀입니다만…
  내가 구라파 방문 중에 IOC 위원장이 스페인에서 스위스로 날아와서 나와 만났습니다. 이 분이 손을 떨면서 긴장해요. 이북이 군사적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얘기를 해요. 이북이 군사적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얘기를 해요. 립시 사령관이 미국에서의 기자 회견에서 북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데 괜찮느냐고 물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이 직접 들었느냐고 물었어요, ‘직접도 듣고 소련, 중공, 쿠바 등 몇 나라에서도 그러더라’ 는 얘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러지 말고 이북한테 10개 종목을 떼어주고 서울 올림픽을 성공시키면 어떠냐’ 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절대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국이 이북에 비해서 군사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50년대처럼 그렇게 약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한미군이 있지 않느냐,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북에 한 종목도 못 준다고 했어요. ‘당신이 지금까지 의연하게 잘해왔는데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걱정 말라’ 고 했습니다.
  사마란치 위원장 말이 ‘그렇지만 각하는 88년 2월에 그만두시지 않느냐’ 고. 그만두시면 국내 문제는 어떻게 되드냐고 물어요. 그래서 내가 우리 국민이 얼마나 우수하냐, 나보다 백배 잘 할 유능한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올림픽엔 내가 책임지마, 걱정 말라고 거듭거듭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 말이 ‘군대 문제는 미군이 있어서 안심이 되는데, 대통령께서 올림픽만 마쳐주고 그 다음에 그만두면 어떠냐’ 고 해요. 그래서 내가 ‘헌법 때문에 안 된다’ 고 하니 ‘야당과 협상하면 되지 않느냐, 1년 정도인데 뭐 그리 어렵겠느냐’ 고, ‘88년 2월에 퇴임하시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고 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중요한 대사를 앞두고서는 싸우다가도 멈추어야 합니다. 소견 없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무책임한 소리를 하는데 언론이 중요합니다. 언론이 국민을 나쁜 방향으로 몰 수도 있고 좋은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분열시킬 수도 있고 단결시킬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일본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존경해야 될 점이 있다고 봅니다. JAL기 추락 사고가 났을 때 일본 언론이 어떻게 다루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인책 문제로 몰고 갔을 텐데 일본 언론을 뭘 물고 늘어지느냐, 미국의 제작 회사인 보잉 사(社)를 물로 늘어져요. 일본 언론이 모여서 회의를 한 것도 아닐 텐데 자세가 꼭 같아요. 결국 보잉 사가 손해 배상의 반을 부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본 기업이 미국의 첨단 기술을 훔치다가 FBI에 들킨 일이 있었을 때도 그래요. 우리 같으면 그 회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일본 언론은 함정 수사라고 미국을 몰아쳐서 결국 흐지부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언론이 국가 방향을 끌어가 주어야 합니다.
  
  언론은 우리 정부를 보호해 주어야
  
  대통령: 언론은 비판해야 할 임무가 있으니까 정부가 잘못하는 것은 비판해 달라 이겁니다. 그러나 국론 분열을 배제하면서 국력 결집을 위해서 우리 언론이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모든 언론 기관은 보도의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불공정한 것은 지적해야 합니다. 시정할 것은 과감히 시정하고 문공부에서도 KBS가 신뢰를 받도록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시청료는 법으로 돼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국민 보고 법 이겨라, KBS에 시청료 안 낸다는 명분을 가지고 국민의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저의로 확산돼 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86, 88이 다가오는데 나도 대통령을 무사히 끝나고 안전하게 보따리 싸서 우리 집에 돌아가도록 선례를 남겨야 선진화하는 길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가급적 내가 속상한 일을 참고 순리로 여론에 의해 풀려나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독사도 밟으면 무는 겁니다.
  외국 언론이나 외국 국회 의원이 정부를 까면 우리 언론은 좋다고 그걸 잡아서 쓸 게 아니라 우리 정부를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독재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 법을 어기는 사람은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철저히 다스립니다. 나한테 하실 말씀이나 의견이 있으시면 하시지요.
  (참석자들 침묵)
  
  왜 말을 많이 하는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全 대통령의 특징이었다. 왜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느냐 하는 것을 놓고 당시 한 수석 비서관과 이유를 따져본 일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全 대통령의 성격이다. 오찬, 만찬 등 1백 명이 넘는 다수 참석자들이 있는 행사에서는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한 분위기가 된다. 全 대통령은 이런 경우 사람들이 대통령의 말을 들으러 왔다고 생각하고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졌던 듯하다. 소규모의 비공식 모임에서는 대통령의 권위 때문인지 참석자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 어색한 분위기가 되기 때문에 직선적인 성격인 全 대통령은 자신이 그것을 없애려고 나서는 것 같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그가 화술에 있어 순발력이나 어휘 구사력, 논리 등에 스스로 자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젊은 시절부터 군에서 훈시하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全 대통령은 말을, 사람을 다스리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생각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다른 수단과 더불어 말을 통해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며 자신의 뜻에 맞게 움직이게 하려고 애썼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말을 해놓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한테 말빚을 져서 행동의 제약을 받았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단임의 약속 같은 것은 말빚 때문에라도 지키지 않을 수 없었을 만큼 너무나 빈번하게 했기 때문이다.
  
[ 2005-08-05, 15:2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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