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의 자유-민주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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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 대통령은 야당, 학생, 신문, 기독교계가 유신체제 반대운동에 대한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을 때인 1974년12월5일에 국민교육헌장선포 제6주년 기념식 치사를 통해서 자유와 인권관을 이렇게 피력했다.
  
  '민족의 생존권은 국가존립의 기본전제일 뿐 아니라 모든 개인적 기본권의 바탕인 것입니다. 우선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민주주의와 자유 등 기본권을 수호해야 합니다. 그들과의 경쟁에 이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국력이 우세해져야 합니다. 국력 배양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길입니다. 사대의존적인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한 언동으로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조성하려는 인사들의 시대착오적인 존재는 역사속에서 기록조차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둡니다'
  
  朴대통령은 그해 12월1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통일안보보고회 치사를 통해서는 '자유와 민주가 자라날 수 있는 바탕이 국력배양'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야당과 재야세력이 주장하는 유신헌법의 개헌요구에 대해서는 '헌법만 고치면 만사가 하루아침에 다 저절로 해결되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신체제는 자주적이고 자립을 위한 창의적인 체제'라고 강조하면서 '유신체제의 정신적 기조는 주체의식과 애국심이다'고 말했다.
  
  朴대통령처럼 유신체제를 신념화하여 반대자들과 맞서고 그들을 설득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여권에서조차도 의외로 적었다.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이 체육관에서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식인데 어떻게 민주주의의 경험을 20여년 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그들을 약하게 만들었다. 朴대통령조차도 민주주의의 당위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더욱 설명이 어렵게 되었다.
  1960년대에 朴대통령은 야당과 언론의 공격에 대해 격정을 토로하면서 논리로써 대결하려고 했으나 유신시대에는 정보부 등을 동원한 강압적 방법을 썼기 때문에 지식인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朴대통령을 편들기도 어려워졌다. 자발적 지지조차도 어용으로 몰리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경멸당하고 여권에서도 진심 어린 지원을 받지 못했던 朴대통령의 유신이념은 그러나 朴대통령의 순수함과 실적을 인정한 생활인의 양해로 하여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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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正熙 대통령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日帝에 저항했던 연장선상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정부를 상대로 거의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근대화와 국민국가 건설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여야 할터인데 代案 없는 비판을 하고 있다고 화 난 목소리를 많이 낸 사람이 朴正熙였다. 1965년5월2일 진해 제4비료공장 기공식 치사에서도 朴대통령은 이렇게 토로했다.
  
  '과거 일제시대에 우리가 日帝와 싸우던 것과 마찬가지인 정신자세, 즉 倭賊이 와서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를 식민지화하고 우리가 남의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가 일제에 대항하던 이러한 정신자세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 인텔리 가운데는,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해야만, 그 사람이 아주 인텔리이고 지식인이고 애국자연합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그네가 아무리 생각해도 옳다고 여럿이 있는 앞에서 이야기하였다가는 '저 사람은 정부에 아부하는 사람이며 소위 요즘 말하는 사꾸라요, 저 사람은 무슨 정부의 앞잡이다'하는 이런 우리 한국의 인텔리들의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지기 전에는 한국의 근대화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朴대통령은 다수 지식인들의 명분론과 위선적 행태를 한국 근대화의 가장 큰 저해요인으로, 즉 극복해야 할 前근대적 봉건잔재로 보았다. 朴대통령은 이들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들고 나오지만 그것은 위장이고 본질적 정체는 守舊세력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가 말한 지식인의 범주에는 주로 비판적인 야당 정치인, 언론인, 교수들, 학생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덕담을 해야 할 신문의 날 행사를 빌어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예컨대 1966년4월6일 제10회 신문의 날 치사에서 朴대통령은 언론을 과거의 부정적 생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守舊라고 거의 단정했다.
  
  '지금 우리는 조국의 근대화와 국토통일이라는 국가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이끌어주어야 할 중대한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국민과 호흡을 같이 하고, 국민의 앞장에 서야 할 언론이 과거의 전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생리적인 반대와 부정과 懷疑(회의)만을 능사로 삼는다면, 그로 인해 덕을 보는 자가 과연 누구이겠으며, 그로 인해 무엇이 이룩될 수 있겠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듬해 신문의 날 치사에서도 朴대통령은 '한 민족이 떳떳하게 잘 살려고 하는 자주와 자립의 노력이 남의 일이 아닐진대, 대안 없는 비방과 자조적인 방관이 있을 수 없다'고 공격했다.
  
  그는 지식인들의 비판과 부정속에서 1차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것에 대해서 이렇게 의미부여했다.
  '돌이켜볼 때 1차5개년계획에 대해서는 너무나 의욕적이며 실현불가능하다는 비판과 의견이 국내외로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제철 기계부문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그 계획을 초과 달성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자립의 의욕이 용솟음치고,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자신에 가득차 있습니다. 이 의욕과 자신은 조국 근대화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朴대통령은 1960년대를 '근대화의 의지를 자각한 연대'라고 自評하기도 했다.
  
  
  
  
  
  
  
  
  
  
[ 2005-08-07, 02: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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