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지배한 박정희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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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8.15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朴대통령에게 찾아온 것은 국민들의 위로이기도 했지민 야당과 지식인층이 주도한 유신체제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도전이었다. 朴대통령이 이 시기 어디에 신경을 가장 많이 쓰고 있었는가를 대통령 면담일지로 분석해보면 의외로 국내정치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金正濂 비서실장은 '朴대통령이 1970년대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안보(국방 외교)부문이었다. 다음이 경제, 마지막이 국내정치였다'고 말했다.
  
  대통령 면담일지에 나타난 시간배분도 金 전 실장의 증언과 거의 일치한다.
  면담일지를 보면 이 무렵 朴대통령이 느긋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귾임없이 여러 형태의 국가적 위기가 닥쳐오는 데도 그 한복판의 사령탑에 앉아 있었던 朴대통령의 시간관리는 여유가 있었다. 허둥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한가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는 朴대통령의 경이로운 조직관리 행태 덕분이다. 그는 有備無患이란 말을 자신에게도 적용하여 어떤 사건 사고가 나도 대비할 수 있는 체제를 평소에 유지하고 있었다. 지휘관으로서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되는 일이 기습을 당하는 것이란 생각에 철저했다. 그는 또 아래 사람들에게 권한을 크게 위임해놓았고 국가의 조직을 유기적으로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자동적인 대응이 되도록 시스템을 짜놓았기 때문에 당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사회가 가장 바쁘게 굴러갈 때 정작 대통령은 한가했다는 것은 그가 시간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유신이후, 특히 陸英修여사 피살 사건 이후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폭과 회수가 그 전보다 더 줄었다. 유신조치가 정치코스트를 줄이는 데 큰 목적을 두었으므로 대통령이 여야 정치인들과 만나는 회수도 줄었고 차지철 경호실장이 경호를 강화했으므로 면담할 수 있는 사람들도 줄었다. 朴대통령이 자주 만난 사람들은 군인, 관료, 외교관, 정보기관장들이었다.
  
  
[ 2005-08-07, 17: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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