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행정으로, 행정에서 경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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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정치, 정치! 하루를 멀다하고 방송과 신문은 각각 정치에 대한 특별 생방송을 내보내고 이전투구식 권력다툼에 대한 특집으로 도배합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인에게 전국민이 놀아나고 있습니다. 임진강에서 한라산까지 불안과 혼란, 불신과 냉소가 그 때마다 커집니다. 다음은 2001년에 쓴 글입니다. (2005. 8. 8.)
  
  
  
  정치에서 행정으로, 행정에서 경영으로
  
   한국 현대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지 않나 한다. 해방 이후 1961년 5월 15일까지가 그 첫 시기라면, 1961년 5월 16일부터 1987년 6월 28일까지가 두 번째 시기, 1987년 6월 29일부터 2001년 현재까지가 세 번째 시기가 아닐까 한다. 아마 이 세 번째 시기는 최소한 내년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위기가 오지 않는 한 이 시기는 상당 기간 계속될 듯하다.
  
  [새로운 시대 구분]
  
   시대 구분을 대개 독재 정권이냐, 민주 정권이냐, 군인 대통령이냐, 민간인 대통령이냐, 제1 공화정이냐, 제2 공화정이냐, 등으로 구분하는 게 통설이다. 그러나 나는 그 통치 형태나 의사 결정 구조로 이를 구분해 보았다. 이렇게 하면 시대 전체의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점이 있다.
  
  [정치의 시대 (1945. 8. 15. ~ 1961. 5. 15.)]
  
   해방 이후 5·16 쿠데타 이전까지는 한 마디로 정치의 시대였다. 미군정 시대 3년이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기간도 있었고, 3년간의 미증유의 동란 시대도 있었고, 4·19 의거에 이은 의원내각제의 제2 공화정도 있었지만, 이 시기의 공통점은 정치가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 때의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것이 첫째 목적이었고 권력을 잡는 목적은 한정된 부를 합법을 가장하여 당당히 차지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인치(人治)의 시대였다.
  
  
   정치는 후진 사회일수록, 사회가 혼란할수록 독버섯처럼 화려하게 피어난다. 그 이유는 나라에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공정한 법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고 기존의 관습을 대체할 새로운 관행이 새 사회에서 정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큰 권력만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권력이라도 잡기만 하면 크고 작은 각종 이익을 쉽게 차지할 수 있다. 정치 전성 시대이다.
  
   권력을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 내리면, 정치는 그 힘을 자의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의지 또는 의사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당이다. 이 정당은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폭력조직과 다를 바 없게 된다.
  
  [한국 정치의 2대 명분--민족주의와 민주주의]
  
   해방 이후 가장 각광받은 대의명분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였다. 이와 대립되는 것이 친일파와 봉건주의였다. 민주주의는 둘로 나눠졌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후자는 이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민주주의로 포장을 했다. 친일파와 봉건주의는 아무도 이를 정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실지로는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치란 것이 조선시대에 관리가 되어 군림하는 것 아니면 일제시대에 권력을 독점하여 온갖 단물을 다 빨아 먹는 것 외에는 보고 배운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 민주주의를 보고 배운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도 속은 봉건주의와 일본제국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학교서 잘 가르친 민주주의]
  
   다행히 학교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이론대로 지속적으로 제대로 가르쳤다. 이렇게 배운 바와 현실 세계와 너무 동떨어진 것을 보고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게 4·19의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나 그 학생들의 봉기로 집권한 세력이나 민주주의를 행동으로 옮길 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상의 민주주의는 알되 현실의 민주주의는 몰랐던 것이다.
  
  [농지 개혁은 농업 시대의 가장 빛난 정치]
  
   한국의 정치인은 이 민주주의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정치에 참여하여 미국이 제공하는 잉여농산물과 원조 달러를 어떻게 갈라먹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관심사였다. 한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산업화에는 거의 관심도 없었고 어떻게 할 줄도 몰랐다. 농업을 어떻게 발달시켜 고르게 배불리 먹을 것인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다행히 공산주의자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민주주의만 내세웠을 뿐 실지로는 대토지 소유자로서 봉건주의자였던 여야 국회의원의 노골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이승만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1950년에 실질적으로 농지개혁을 완성했다. 6·25가 발발하기 직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빛나는 정치였다고 할 수 있다.
  
  [농지 개혁 다음은 산업화]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은 수천 년 비원을 이룰 수 있었다. 평소에 내던 소작료 정도를 5년만 내면(15할, 30%씩 5년간) 그 땅이 영원히 자기 땅이 된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 못지 않게 평등한 사회가 된 것은 이 농지개혁에 힘입은 바가 가장 크다고 본다. 문제는 한국은 경지 면적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아 농토를 아무리 평등하게 나눠 갖는다고 해도 겨우 보릿고개를 간신히 넘길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임 노동력과 근면을 이용한 산업화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쪽으로 거대한 발상의 전환을 하는 정치인이나 학자는 거의 없었다. 정치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 제2 공화정까지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부를 고르게 분배하는 것이었다. 정치가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국부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는 무력하기만 했다.
  
  [선거의 매력과 한계]
  
   권력을 잡는 최고의 방법은 선거였다. 조선시대처럼 과거에 급제하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일제시대처럼 지배족(일본인)이 있어서 권력을 독점할 수도 없었다. 고시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인의 하수인 내지 들러리, 또는 얼굴 마담 역할밖에 못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최고의 권력은 역시 정치인이 잡는다.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보다 확실한 게 없다. 선거에 이기려면 인기가 있어야 하고 인기가 있으려면 대의명분이 빛나야 한다. 그 대의명분은 이미 말했듯이 바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민주주의가 점차 득세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히도 언행이 일치한 게 아니었다. 정당 운영은 철저히 비민주적이었다. 봉건적이었다. 시대착오적이었다. 그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행정의 시대 (1961. 5. 16. ~1987. 6. 28.)]
  
   마침내 어지러운 정치의 시대를 끝내고 일사불란한 행정의 시대를 연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5·16 군사 쿠데타였다. 그것은 폭력에 의한 정권 탈취라는 점에서 분명히 쿠데타였지만, 그 후에 일어난 상전벽해의 변화를 보면 내용상으로 거의 혁명에 준하는 사건이었다.
  
   군인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은 급속하게 식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의 황금시대는 끝이 났다. 그 이전에는 국회의원만 되면 야당도 얼마든지 이권에 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면서 황금 시대는 황분(黃糞) 시대가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바로 국민과 손을 잡았다. 정치는 사실 국민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뜯어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아닌 밤의 홍두깨, 곧 법을 내밀어, 그들은 선량한 국민이 상업이나 공업을 해서 돈을 좀 벌면 어느새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와서 정치자금이란 명목으로, '보호기금'이란 미명으로, '보험'이란 사탕발림으로 수시로 돈을 뜯어갔다.
  
  [대통령과 국민을 이어 준 가교가 행정]
  
   그런데 이제는 '잘 살아 보세, 올해는 일하는 해'라면서 공장을 세우고 수출을 독려하면서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날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분배의 경제가 아니라 생산의 경제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약탈의 정치가 아니라 생산의 정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아예 정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행정의 손발을 부지런히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전관료가 말 그대로 밤을 새워 일했다. 장관, 차관, 국장, 실장, 과장 할 것 없이 지위가 높을수록 애국심과 긍지로 거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신바람 나게 일했던 공무원]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이 정치적인 결단을 하고 목표를 세우면 장관 이하 공무원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일을 했다. 모르는 것은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순박하나 어리석은 국민들을 계도하고 앞장서서 일을 했다. 패배 의식에 젖어 있던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가히 행정의 전성 시대였다. 나라의 부가 쌓임에 따라 이전과 달리 공무원도 월급만으로 그런 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능력 있고 소신 있지만 부정이 없는 위대한 관료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김학렬, 남덕우, 김정렴, 최형섭, 오원철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말만 아름다운 정치인 열 명, 스무 명도 못할 일을 혼자서 능히 담당해서 보란 듯이 성공시켰다. 이들은 하나같이 10여년 동안 장관 또는 장관에 버금가는 직책을 맡아 일관성 있는, 그러면서 유연한 정책을 펼쳐서 국민의 살을 찌우고 국가의 뼈를 실하게 했다.
  박정희 감독도 이들 명선수들에게 거의 작전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스타에게 스타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준 것이다.
  또한 이들 명관료들은 자의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법을 중심으로 예측 가능한 행정을 펼쳤던 것이다.
  정치의 시대가 인치(人治) 시대라면 행정의 시대는 법치(法治) 시대였다.
  
  [행정의 시대는 관료주의를 낳다]
  
   유능한 관료도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행정지상주의에 빠지고 관료주의에 물들어 서서히 시대에 뒤떨어지는 시기가 온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에 이런 증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바보 수준의 김계원 임자를 비서실장으로, 반미치광이 차지철 집사를 경호실장으로, 조울증 환자 김재규 투사를 정보부장으로 앉혀 놓고도 거대한 관료 조직이 나름대로 잘 돌아가는 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중산층이 급속히 대두되고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해외에 드나드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더 이상 정치 열기를 누를 수 없는 시대가 다가왔다. 정치에 대한 물꼬를 서서히 틀어야 할 때가 되었다. 국민들이 정치자유를 상당히 누릴 만큼 성숙해졌다.
  
   박정희 할아버지는 이걸 눈치 못 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권력의 정상에서 이슬처럼 사라지자, 갑자기 정치의 시대가 열렸다. 그것이 바로 1980년의 봄이다. 그러나 이것은 광주 사태를 계기로 금방 끝나 버렸다. 행정의 시대가 계속된 것이다. 다행히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김재익 경제수석과 정보화 시대를 이 때 이미 준비한 오명이란 두 걸출한 관료가 있어서 그런 대로 곳간이 가득 찼고 인심이 아쉬운 대로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이미 관료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업체의 유연한 조직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경영의 시대로 가야 할 때, 정치의 시대(1987. 6. 29. ~ )로 뒷걸음치다]
  
   경영의 시대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민주의 이름으로 정치권이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이런 방향으로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바를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나같이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마침내 시민이 폭발했다. 이 대세에 편승한 것이 바로 1987년의 6·29선언이다. 이 때부터 한국에는 다시 정치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제는 노동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거세게 밀어붙였다. 그들도 정치를 했다.
  
   최병렬 노동부 장관이 '무노동 무임금', '총액임금제'를 내세워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취하는 쾌거를 이루어 노동자도 경영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으나, 민주주의를 평생 부르짖던 분이 대통령이 되면서 모든 것을 정치로 환원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정치는 명분, 경영은 실리인데, 1987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4년 동안 오로지 명분을 앞세운 정치가 유령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를 휘젓게 되었다. 오히려 행정 시대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정치가 인치, 행정이 법치라면, 경영은 시스템에 의한 유연한 운영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는 이런 쪽으로 가야만 했다. 정치는 10%, 행정은 30%, 경영은 60%가 되어야 하는 시대인데, 정치가 60%, 행정이 39%, 경영이 1%인 나라가 한국이 아닐까 한다.
  
  [후진 정치는 시끄럽다]
  
   일본은 동경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찬란한 행정의 시대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경영의 시대를 계속 외면하다가 10년을 허송 세월하고 지금도 가쁜 숨을 쉬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시대착오적인 정치 시대로 거꾸로 되돌아가면서(인기 영합주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제2의 건국 등으로 민주주의를 독점하고 대한민국을 통째로 부정해서 홀로 고고한 척하기) 온통 싸우는 소리, 망하는 소리, 곡하는 소리, 욕하는 소리, 원망하는 소리, 저주하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뒤떨어진 정치가 앞선 행정과 경영에게 고함 지르고 매를 드는 나라]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내세운 거창한 명분의 정치가 오히려, 자유와 평등을 실지로 보장해 주고 국민을 주인으로, 왕으로, 소비자로 받들어 봉사함으로써 스스로도 이득을 취하는 기업의 경영을 잘잘못을 따짐 없이 단지 많이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개혁이란 이름으로 내세운 바와는 달리 사실은 자유를 죄악시하고 평등만을 강요함으로써, 아니 획일을 강요함으로써, 무엇을 하든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가 이제는 경영에서 배우고 행정도 경영에서 배우고 경영은 다시 국내든 외국이든 멋진 경영을 재빨리 배우고 응용하고 스스로 창조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하건만, 시어미 정치가 행정도 질타하고 경영도 타박하고 있다. 행정은 기세등등한 시누이로서 사사건건 눈흘기며 말리는 척 경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치는 그 힘이 강할수록 의사결정을 독점하려는 독재로 흐르기 쉽고, 행정은 그 힘이 강할수록 의사결정을 서로 미루어 책임을 지지 않는 무사안일로 흐르기 쉽고, 경영은 그 힘이 강할수록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개방하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하여 신속하게 최선의 방책을 찾고 일단 정해진 것을 내 일처럼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것은 그 때 그 때 바로잡을 수 있는 탄력성을 갖기 쉽다.
  
   정치는 부분으로 전체를 지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행정은 전체를 내세워 부분을 무시하는 애국심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경영은 전체는 부분을 위하고 부분은 전체를 위하는 조화로운 유기체를 갖지 않기가 힘들다. 정치가 행정을 수족처럼 부려 경영을 압박하면 행정도 정치를 닮기 마련이고 경영도 욕하면서 점차 정치를 닮고 행정을 닮아 가기 쉽다. 경영이 정치와 손을 잡고 행정과 어깨동무하면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힌다.
  
  [정치는 거름, 행정은 물, 경영은 나비]
  
   정치는 거름이 되어야 하고 행정은 물이 되어야 하고 경영은 나비이자 농부의 손길이 되어야 한다. 거름이 되어야 할 정치가 꽃 행세를 하며 뿌리를 자처하고 물이 되어야 할 행정이 줄기인 척하며 열매를 자처하면, 나비요 농부의 손길인 경영의 날개와 경영의 손발을 정치가 나팔 불고 행정이 쫓아가서 그 날개를 찢고 그 손을 묶어 버리면, 국민이란 씨앗은 썩고 그 싹은 시들고 그 줄기는 마르고 그 잎은 오그라들어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
  
   (2001. 3. 22.)
  
  
  
  
[ 2005-08-08, 08: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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