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연습 기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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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연습 기간이 없다>
  - 1986년 6월 18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全斗煥 대통령은 과학기술대학 개교식에 참석하고 관계자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는 李正五 과기원장, 崔鐘浣 과기원 이사장, 과학기술대학 관계자, 충남도 유지, 인삼 연구소, 에너지 연구소, 기계 연구소, 국방 연구소, 표준 연구소, 화학 연구소, 동자 연구소 관계자 등 180명이 참석했다.
  
  북한은 파산 상태입니다
  
  대통령: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과학기술대학이 출범해서 개교식을 갖게 된 데 대해 나는 큰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에 과학원까지 옮겨오게 되면 세계적인 과학 두뇌의 집단이 형성될 겁니다. 내가 왜 과학 기술 분야에 열의를 쏟고 있느냐, 오늘날의 세계는 경제 전쟁이고 경제 전쟁은 과학 기술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과학 기술이 낙후된 나라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선진국에 종속되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수 없어요. 오늘날 선진국들이 기술 쇄국 정책을 쓰고 있는 여건에서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과학 기술 개발뿐입니다.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아요. 수출이 안 되면 발전될 수가 없어요. 수출이 되려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야 되고 그것은 우수 두뇌가 해야 됩니다.
  내가 81년부터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해 있는 정력을 다 쏟았어요. 매년 예산을 조금씩 늘려서 GNP 2%를 과학 기술 분야에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GNP 3%까지 연차적으로 끌어올려야 됩니다.
  우리 국민만큼 우수한 두뇌를 가진 국민이 없습니다. 올림픽이 잘 끝나서 91, 92년이 되면 GNP를 두 배로 늘릴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한시도 긴장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에 사고 있습니다. 金日成이가 금년 75세인데 아무리 보약을 먹어도 5년 후면 80세가 돼요. 80세면 중책을 맡지 못해요. 권의 의식만 있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어요. 후계자 金正日이라는 게 金日成 없는 金正日이란 생각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金日成 생전에 일을 저지르거나 무슨 보장을 받든지 하려고 할 겁니다. 북한은 외채가 36억 달러인데 이자를 못 갚고 있어요. 파산 상태에 있어요. 88년까지 우리 나라에선 정치 사회의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 동안 정국이 시끄러웠는데 내가 과학 기술자 여러분에게 송구하게 생각해요.
  
  정치가 흑백 전쟁을 하니
  
  대통령: 우리 나라 정치라는 게 꼭 뜯어고쳐야 할 게 있어요. 흑 아니면 백이라는 갈림길에서 정치 아닌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했는데도 신민당 책임자라는 사람이 몇 월까지 대통령 물러가라고 했는데 국민학교만 나와도 그런 소리는 할 수 없어요. 한나라 정권을 우습게 보는 거고 법을 우습게 보는 태도에요. 프랑스에서는 여당이 총선 1개월 전에 선거법을 개정했다고 해요. 우리 같으면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 드러눕고 했을 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 기준이 잘못돼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는 게 참 어려워요. 그런 정치인을 국민이 선출해서 국론 분열과 혼란이 조성되는 게 현실입니다.
  확실한 것은 한 나라 정부가, 정치적으로 떠들고 학생 데모를 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힘으로 다스리는 건 하루아침거리도 안 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힘으로 확확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안 돼요. 인내를 하면서 뜻있는 국민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수습, 해결되어야 국민 화합과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보고 속상하실 텐데 참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나는 전체 상황을 볼 때 그렇게 심각한 상황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상회담 한다고 다 성공하나
  
  내 나이가 우리 나라 나이로 지금 쉰여섯인데 대통령 그만 둘 때는 쉰일곱이 됩니다. 사실은 그 대부터 대통령을 해야 됩니다. 대통령은 연습 기간이라는 게 없어요. 6년째 하니까 좀 실력 발휘가 된다고 할까…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레이건 대통령과 첫 정상 회담을 할 때 입술이 바싹 마르고 그랬어요. 미국이 미군을 철수한다고 했었는데 내가 가서 말을 잘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군에 있다가 대통령이 됐는데 그 전에는 장관도 못 만나보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이제는 선진국의 정상들도 나와 국제 정세를 얘기하면 회담 시간을 연장해서 내 얘기를 들으려고 해요. 대처 영국 수상과는 2시간 동안 회담을 했고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정상 회담을 한번 더 하자고 해서 두 번을 했습니다. 정상 회담을 해서 다 성공하는 줄 아십니까. 내막적으로는 완전 실패하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대통령을 6년 가까이 하니 덕망과 지도력 있는 세계 정상들을 거의 다 만나봤어요. 공산권을 제외하고 자유 진영의 내로라 하는 분들을 다 만났는데 내 얘기를 100% 공감하고 적극 협조해 줍니다.
  이제는 학생이 아무리 떠들어도 국민이 호응을 안 해요. 시장에 있는 바구니장수 아주머니까지도 비판적 자세입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이 성숙되어 민주 국민으로 단련이 되었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연구만 하면 됩니다. 정치인들이 시끄럽고 한 것은 우리 현실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국민의 힘으로 해결이 되고 정부도 인내로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만약에 사회가 혼란해서 여러분이 연구하는 데 불안을 느낄 정도가 될 때는 정부에서 국법으로, 힘으로 국민 전체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조치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없다고 나는 확실히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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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수 현상, 그 따위 용어 쓰지 마라>
  - 1986년 6월 30일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까지 全斗煥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보고회의를 주재했다.
  
  양 金의 분열 조짐이 보입니다
  
  許文道 정무1 수석: 개헌 특위 구성으로 정국은 전반적인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민정당이 야당의 직선제 주장에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야권은 국회 헌특을 둘러싸고 양 金간에 이견을 보여 분열의 싹이 트고 있습니다. 金泳三은 국회에서의 개헌 심의를 주조(主調)로 하고 있는데 반해 金大中은 국회 심의에 기대할 게 없다면서 구속자 석방 요구 등 장외 투쟁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재야에서는 文益煥의 석방을 주장하고 있고 좌경 운동권은 개헌 정국을 마비시키고자 전국적 조직을 가동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체제 홍보는 치적 홍보와 연계해서 시행하겠습니다.
  康祐赫 정무2 수석: 지방 행정의 중점은 벼 병충해 방제, 병수해 예방, 녹음기 경계 태세 강화, 아시안게임 준비 만전에 두겠습니다. 문제권 학생들의 농촌 봉사 활동을 빙자한 의식화 활동 기도를 철저히 저지해 나가겠습니다.
  86을지 연습이 7월 14일부터 25일까지 실시됩니다.
  愼克範 교문 수석: 학원 상황은 큰 차질 없이 학사 일정을 마쳤습니다. 교수들의 시국 견해 표명에 중등 교사들이 동조, 반정부 행동이 확산되는 조짐이 있습니다. 86아시안게임 준비상황보고회를 7월 4일에 각하 임석하에 개최하겠습니다. 86아시안게임 차가 예비 엔트리는 36개국 중 25개국에서 5천 명이 참가를 통보해왔습니다. 6개국은 불분명합니다.
  司空 壹 경제 수석: 현재 경기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제조업 가동률은 전월의 78.1%에서 83.2%로 늘었습니다. 수출 총액은 160억 9,300만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20.8% 증가했습니다. 상반기 수입은 161억 4,400만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11.9% 증가했습니다. 5월말 현재 미국에 대한 흑자는 24억 8,600만 달러입니다. 물가는 도매가 마이너스 3.5%, 소매가 1.3% 상승했습니다. 현재 경기는 상당한 호황이나 과열을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닙니다. 6월 25일 현재 임금 인상 조정 동향은 74.5%가 타결되었으며 인상률은 평균 6.5%입니다.
  대통령: 금년도 전반기의 모든 상황을 참고로, 예상되는 상황에 대비, 후반기 발전 계획을 차근차근 시행해 나가기 바랍니다. 그 동안 인천 사태 수배자가 45명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도 검거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보, 수사에 맹점이 있다는 얘기가 돼요. 우리 나라가 손바닥만한데 숨을 곳이란 뻔하지 않나. 하기 방학 중에 수배자 색출에 최선을 다하시오.
  야당이 얘기하는 구속자 석방 주장에 대해서는 정부 여당이 확실히 알고 일관된 답변을 해야 돼요. 구속자 석방은 개헌 특위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요. 무슨 나라가 헌법 만드는 데 법 위반한 사람의 석방 문제와 연계시키나. 개헌을 못 해도 관계없어요. 다만 법 집행 과정에서 개전의 정이 있거나 반성하면 교육, 순화하는 거야 지금도 하고 있는 거지. 타협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정부가 최선을 해달라고 하면 그런 범위 내에서 하는 겁니다.
  
  ‘공직자 무사안일’ 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대통령: 청와대 가족은 앞으로 ‘집권 후반기 누수 현성’ 그런 말은 쓰지 말도록 하시오. 어떤 자가 만들어 낸 용어인지 모르지만 그 따위 용어를 쓰는 자체가 나라나 대통령인 나를 위해 충성하는 자세가 아니야. 그런 말 자체가 유언비어가 돼요. 꼭 표현을 한다면 ‘공직자 무사안일’ 이라는 용어를 쓰면 될 일이지, 없는 용어를 만들어서 찾아가지고 쓰는 건 문제야. 우군(友軍)에서 그런 소리를 많이 하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하는 게 아니라 무책임한 소리요. 정부의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쓰는데 정권 이양시기가 다가오니 괜히 초조해가지고 일도 안 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7월, 8월은 방학, 하계 휴양이 실시되고 아시안 게임을 앞둔 기간인데 사정(司正)에서는 특히 공무원 기강 확립을 철저히 해야겠어요. 사정 비서실이 중심이 되어 부조리 척결에 각 기관의 감사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서 부정이 일체 없도록 하시오. 부처에 부정이 있으면 장, 차관이 책임져야 해. 감사관도 문책하겠어. 사정(司正)에서는 감사 회의를 해서 분위기를 잡아나가도록 해요.
  
  조건이 나쁠 때 뚫고 나가야
  
  대통령: 지금 국회의원 재판하는 것 하는 거요, 안 하는 거요. 사법부의 협조를 얻어서 빨리빨리 마치라고 하시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나라에는 공무원들 중에 10년에서 30년까지 한 곳에서만 근무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경찰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은 특별한 사명감도 없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 지방에서 돌아가는 일을 다 아는 사람들이요. 이 사람들을 진짜 공무원으로서 움직이도록 유도한다면 1당 만(一當萬)이 된다는 거요. 수배자 45명을 못 잡는 것도 실제 움직여야 할 사람들이 안 움직이기 때문이야. 이 사람들에게 사명감을 심어주어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해요.
  경제 수석 보고대로 경제가 호황과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우리 나라의 국운이요. 정치 문제로 어려울 때 국민들이 살기마저 어렵다면 얼마나 힘들겠어. 아무리 똑똑한 국민이 많아도 경제가 잘못되면 후진국이 되고 말아요. 경제가 좋은 것을 정치 사회 분야에서 최대한 활용해야지 이런 걸 활용 못 한다면 무능한 거요.
  6월까지 시끄러운 일이 많았으나 좋은 일이 더 많았어요. 9월부터는 모든 계획을 보완 정비해서 일사불란하게 밀고 가야 돼요.
  책상 계획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계획을 세웠으면 반드시 실천해야 되고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야 돼요. 비서실이 행정부를 독려하고 철저히 챙겨야 됩니다. 조건이 나쁠 때 뚫고 가야 이기게 되어 있어요. 상대는 이 때를 활용하는데, 날씨가 덥다고 에어컨이나 틀고 앉아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맞아 죽게 돼 있어요. 정부 여당이 7, 8월을 최대한 활용해야 돼요.
  
  누수 현상 실감하고 있었다
  
  全 대통령이 이 대목에서 누수 현상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라고 할 만큼 불쾌한 심경을 나타낸 것은 자신이 그 당시에 누수 현상을 느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수배자를 검거하지 못한 것은 누수 현상으로 정부 부서의 움직임이 둔화됐기 때문이 아니냐고 보고 각급 행정 조직을 활성화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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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따라잡자>>
  <열 살 때 취직, 곧 쫓겨나다>
  - 1986년 7월 11일 저녁 6시부터 8시 30분까지 全斗煥 대통령은 시, 도지사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저녁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는 鄭右謨 내무장관, 李相熙 차관, 廉普鉉 서울시장, 金鎭遠 부시장, 鄭埰鎭 부산, 李相淵 대구, 朴培根 인천시장 등이 참석했다.
  
  일본 말로 ‘요시’ 하는 정신으로
  
  대통령: 나라가 잘 되려면 사람이 정신을 다 쏟아도 하늘이 도와줘야 돼요. 우리 국민이 애쓰는 걸 알아서 이렇게 좋은 비를 내려주는데 금년에도 작년에 이어 대풍이 들면 우리 경제 성장이 수십 년 내 알찬 성장이 될 겁니다.
  얼마 전에 인천에서 야학에 다니는 학생이 나한테 돈 2,000원을 보내 왔어요. 그 야학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자기 형편도 시원치 않은데 40명을 모아서 대학생들과 함께 무보수로 가르친다고 해요. 인천시에서 추천해서 훈장도 받고 청와대에서 오찬도 하고 간 모양인데 그 야학에 다니는 전금성이라는 학생이 고맙다고 편지를 보내온 겁니다. 자기 이름도 쓰지 않고 목공을 하면서 월급으로 받은 5만 원 중에서 2,000원을 보낸다고, TV에서 보니 대통령께서 영손녀를 안고 계시는데 갓난 애기 모자라도 하나 사주라고 썼어요. 진심인 것 같아. 내가 그걸 받고 참 고마운 돈이라고 생각해서 인천시에다 연락을 해서 그 학생을 찾아서 내 뜻을 전하고 야학에 200만원을 도와 주었어요.
  전남지사: 저희 도에서는 가수 김연자 양이 고아원에 1억 원을 낸 일이 있습니다.
  대통령: 대단한데… 정말 고맙군. 도지사가 불러서 표창을 하도록 하시오.
  전남지사: 김 양이 재일 교포와 결혼을 했습니다.
  대통령: 崔泳喆 부의장과 연결을 시켜주도록 해봐요.
  여러분은 집안 형편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참 어렵게 살았어요. 나는 다행히 우리 집안에서 부모님의 특별 대우를 받았어요.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콩을 떠서 청국장을 만들어 간장에 찍어 먹는 거 있지. 내가 열 살 때 그걸 만들어 파는 일본 사람 집에 취직을 했어요. 그 집이 과수원을 하면서 메주를 떠서 상자에 넣어 일본인들 집집마다 보내서 파는 거였어요. 내가 어떤 학원에 다닐 때였는데 오후에 그걸 돌리는 일을 맡았어요. 그 집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한지 일요일에는 내가 그 일을 마치면 점심때인데 자기네들은 점심을 먹으면서 열 살짜리인 나한테 밥 먹으라 소리 한 번 할 만도 한데 절대 그런 말을 안 해. 어떻게 보면 경우가 바른 거야. 내가 결국 봉급도 못 받고 그 집에서 쫓겨났어요. 리어카를 끌어야 하는데 그 메주를 가득 싣고 가다가 돌멩이에 걸려 내 체중이 들려서 다 쏟아졌어요. 거기에 모래가 들어가고 못 쓰게 된 거지. 그때까지 20여 일을 죽을 고생을 했었어. 내가 전화를 걸어 리어카를 쓰러뜨렸다고 했더니 나오지 말라고 하더군. 돈도 못 받고… 오르막에 혼자 끌고 가는데 내 체중보다 무거우니까 그렇게 된 거요. 내가 신문 배달도 해보고 대구 약전 골목에서 약 운반도 해보고 했는데 다 실패했어. 나는 끝까지 붙어 있으려 했는데 주인이 나가라고 했어요. 내가 너무 어리다는 거였어요. 나는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은 없어요. 내가 당할 때마다 내가 너보다 낫게 될 것이라고 각오를 했어요. 일본 말로 ‘요시’ 하는 거 있지.
  우리가 어려운 아이들한테 절대 용기 잃게 하는 일이 있으면 안 돼요. 못사는 애가 잘 성장하면 어려운 사람에 대한 사정을 알아요. 그래야 정말 민심을 아는 거지. 어려운 사람이 노력해서 살려고 하지 않고 친척한테 기대려 하는 건 거지 근성이야.
  나는 어려운 일이 있는 애들이 눈에 띄면 도와주려고 해요. 어려운 집안의 애들엔 투자를 해도 아깝지가 않아요. 조금만 도와줘도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을 도와줘야 돼요. 한꺼번에 팔자 고치게 해주면 안 돼요.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고 노력을 통해서 일생을 진실하게 발전하는 길을 터 줘야 돼요.
  요전에 부산에서던가 구두닦이 하는 웬 아주머니를 장한 어머니로 선발한 일이 있어요. 남편이 외항선을 타는데 돈을 잘 벌다가 욕심을 내어 사업을 하는 바람에 완전히 알거지가 됐다고 해요. 그 후에 부인이 구두닦이를 시작해서 애들 공부 다 시키고 저축하고 집도 사고… 하도 열심히 살아서 내가 좀 도와줬어요. 구두를 하루 600켤레를 닦으면 앞이 캄캄해진다고 해요. 점심도 안 먹고 모아서 저축을 한대요. 역경을 극복하면서 열심히 사는 분들이 애국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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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웅산 사건 후 보복 말렸다>
  - 1986년 8월 11일 오전 9시부터 10시 30분까지 全斗煥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청와대 출입 기자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확
  
  대통령: 내 개인적 소신은 예나 지금이나 현행 헌법이 대통령 책임제로서는 아주 훌륭한 헌법이라는 거요. 인간이 권력에 대해 초연하다는 것, 상당히 어려운 겁니다. 심지어 레이건 미국 대통령도 3번 연임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제도로 하든지 집권자가 헌법에 명시된 임기를 준수하고 다음 사람에게 쿠데타나 폭력이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겨주고 나오고 하는 그런 평화적 정부 이양이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중요해요.
  헌법이 100%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몇 임기를 운영해보고 필요하면 부분적으로 수정을 해나가야지, 심심하면 근본적 개헌을 해서 되느냐 하는 겁니다. 법과 제도만 고친다고 민주주의가 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중요하고 양심적인 운영이 중요해요.
  버마에서 아웅산 사건을 당하고 몇 분 사이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 다음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이 오질 않았어요. 내가 그 때 내자에게 말했어요. 이번에 내가 만약 죽었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내가 살았으니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하늘이 하는 일이지, 인력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 내가 살았다는 것은 분명히 하늘이 나한테 하라고 하는 일이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습니다. 버마에서 싱가포르 상공까지는 착잡한 심경이었어요. 싱가포르에서 서울로 오는 태평양 상공쯤에서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내가 살았는데 왜 살게 했겠느냐” 고 물으니 내자가 “당신이 우리나라에서 평화적 정권 이양을 하는 국가 원수가 되라고 그리한 것이 아니겠느냐” 고 했어요. 내가 새로이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막아야겠다, 그래서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이와 같이 내 집념은 생사를 넘는 강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개헌 문제로 사회 혼란이 조성되었지만 나는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힘으로 다스리는 쉬운 방법을 쓰지 않았어요. 내가 대통령이 된 이후 6년 동안 한번도 군을 출동시킨 일이 없습니다. 군을 출동시킬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딴 마음이 있었다면 명분을 찾아서 출동시킬 상황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나는 지금까지 정부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안정을 위해 가급적 인내해왔습니다. 사실 폭력이나 사회 혼란 조성은 국민에 의해서 비판 받고 정리되는 것이 진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정말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감시에 의해서 여(輿)든 야(野)든 학생이든 폭력을 행사하면 설 땅을 잃는다고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정부의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해요.
  
  비상조치 내리면 안 될 것 없지요
  
  저 사람들이 폭력으로 나오는데 해치울까, 위수령이나 계엄을 펴서 모조리 잡아다가 구금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확 해버릴까… 그렇게 건의하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그 때마다 그것은 구시대적 방법이다, 그러면 발전이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내가 불쾌하지만 인내하고 책임자 여러분이 좀더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대화로 풀어나가라, 이것이 내 정치 소신이다 라고 했어요. 야당에서 몇 사람 떠든다고 힘으로 확 누르려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바람직스럽지 못해요.
  내가 사심이 있다면 반체제 쪽에서 폭력을 써서 혼란을 조성해주는 것이 오히려 좋은 거지. 강경 대처를 할 수 있는 명분을 주니까. 그것을 꼬투리 잡아서 비상조치를 내리고 헌정을 중단시키고 밀고 가면 안 될 거 없어요.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은 18년 동안이나 계엄하에서 대통령을 했지 않나. 계속 집권을 하려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야.
  내 임기중이라도 여야가 합의해서 훌륭한 헌법을 만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게 내 진심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반드시 여야가 합의를 해야 돼요. 국민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지, 어떤 한 정당에 의한 개헌은 안 된다는 겁니다. 옛날처럼 의사당 별관에서 변칙으로 한다든지 비민주적으로 하면 안되고 반드시 진정한 의미의 국민적 합의로 해야만 다음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다는 게 내 소신입니다. 나는 낙관하고 있어요. 여야가 사심을 버리고 눈을 똑바로 뜨고 보면 얼마든지 좋은 안이 나올 수 있어요.
  
  대북 보복 말리느라 땀 뺐다
  
  대통령: KAL 007기 격추 사건이 얼마나 슬프고 원통한 일이었나, 그리고 한 달 후에 버마에서 북한이 나를 죽이려고 테러를 했는데 원래 국가 원수에 대한 테러는 선전 포고 사유가 될 수 있어요. 그 때 우리 군에서는 육군, 해군, 공군 할 것 없이 북한을 때리려고 해서 세네월드 UN 군 사령관이 얼굴이 새하얗게 됐어요. 내가 버마에서 돌아와보니 군에서 전부 때릴 준비가 다 되어 있었어요. 위에서 승인을 안 해도 들어가겠다는 거야.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그래서 내가 그 보고를 받고 바쁜 가운데에서도 전방을 돌고 군 지휘관들을 만나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준 데 대해서는 감사한다, 그러나 전투를 하고 안 하고 하는 상황 판단은 국가 원수로서 폭넓게 보니 여러분보다는 낫다, 내가 필요한 시기, 적절한 시기에 때리라고 할 때 때리라고 했어요. 내 명령 없이 병사 한 명이라도 넘으면 나에 대한 불충이다… 내 명령에 따르라… 그래서 진정을 시켰습니다. 육군, 해군, 공군의 사령관들이 매일 국방부 장관을 만나서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이 그 때 서울에서 열리고 있던 IPU 총회를 훌륭하게 치르고 버마 사태로 순국한 분들의 장례식도 치르고 그런 어려움을, 발전을 위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서 지금 이만큼 안정을 다지고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런 민족과 이런 국민을 세계에서 쉽사리 찾을 수 없어요.
  지금 북한이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88년까지 승부를 보려는 저의를 갖고 있다고 나는 봐요. 북한은 30년 이상 국민 복지를 희생하고 군사비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GNP 규모가 해마다 커지니까 북한이 군사력으로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오게 되어 있어요. 88년에 올림픽과 정권 이양이 잘 끝나면 북한은 대화 노선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90년에 가면 틀림없이 진짜 대화를 하려고 할 것이고 올림픽만 끝나면 중공과 소련도 우리한테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든 우리가 취약점을 보이면 저네들은 집중 공격을 해요.
  
  적은 것은 주고 큰 것을 먹자
  
  대통령: 우리 같이 야무지게 발전을 하는 나라도 없어요. 우리는 우리끼리 엽전이니 짚신이니 과소 평가를 하는데 우리만큼 정직하고 성실하고 저력있는 민족이 없습니다. 지정학적 위치를 보더라도 우리는 중국, 일본, 소련 같은 세계적인 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어요.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를 제외하고 이렇게 강대국에 흡수되지 않고 자주 독립을 지켜온 나라가 어디 있나요. 고종 황제가 소련 영사관에 도망을 쳤는데 우리가 너무 힘이 없고 국제 정세에 어두워 그랬지만 그 때 우리가 청나라의 일부가 되었다면 군(郡) 정도 밖에 안 됐을 거요. 국운이 있어서 일본이 패망하는 바람에 오늘날과 같은 생존과 발전의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고 나는 봐요. 세계 최강국들의 주변에 싸여 있는데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어요. 지금 우리 나라가 이 지구상의 159개 국가 중에서 GNP 순위가 20위인데 우리도 세계의 중심부에 들어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내년에 GNP 1천억 달러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수출이 견인차 역할을 해야 돼요.
  지금 담배 수입이 미국과의 감정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대만에는 20년 전부터 자유 수입이 되고 있고 소련과 중공에도 막 들어가는데 미국의 혈맹이라는 우리 나라에만 못 들어온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우리가 1년에 3,500만 달러어치의 엽연초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1년에 양담배 4,000만 갑이 들어와봐야 1,500만 달러밖에 안 돼. 결국 우리한테는 미국 시장밖에 기댈 데가 없어요. 적은 것은 주고 큰 것은 먹자, 이게 국제 사회를 살아가는 묘수라고 봐요. 우리의 대미(對美) 흑자가 지금 60억 달러이니 미국 사람들이 화가 나게도 되어 있어요. 국제 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기동성 있게 해야지, 미련하게 고집만 피운다고 되는 게 아니야.
  
  하계 회견을 위한 기자 간담회
  
  全 대통령은 여름철 기자 회견을 하는 게 관례였다. 기자 회견은 서면 자료와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기사화되고 녹화 화면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간담회에서는 全 대통령이 준비된 자료 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기자들에게 밝히거나 질문에 대답해 주는 배경 설명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이 대목에서는 버마 사건 때의 군 동향을 밝힌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양담배 수입에 관해 언급한 것은 야당이 7월 21일 이의 철회를 요구한 데 대한 대응 논리였다.
  
  
[ 2005-08-10, 16: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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