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문의 광복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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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문의 광복 60년
  
  
  1945년은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이고 나의 아버지는 열일곱살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이다. 난 그때 아직 아버지의 눈동자 속에서 미래로 있을 때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에, 농촌의 중농집안에 삼남으로 태어나셨다.
  결혼후 스물중반에 가세가 기울어 져서 해방되던 해 돌아 가실때까지 소작농으로, 해뜨기전 새벽에 들녁에 나가고 깜깜한 밤이 되어야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고단한 삶을 사셨다.
  비슷한 처지의 할머니와 결혼해 구남매를 나았는데 다섯은 어려서 죽고, 큰 아버지, 고모님 두분, 그리고 막내인 나의 아버님만 성장하셨다고 한다. 가난에 찌들린 삶이라 자식들 교육도 거의 못 시켰다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너무 가난해, 옆집에서 준 쌀 몇되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어른이 된 큰 아버지는 일자무식에다 게으르고 투전판에 기웃하는 처지라, (몸이 약하고 성장이 더뎌 열일곱살이지만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아이같은) 막내동생인 나의 아버지보고 남의 집 머슴으로 가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우셨다고 한다.
  
  큰 아버지는 어찌된 일인지 농지 개혁이후도 자기 농사없이 몹시 가난하게 살았었다. 아버지는 형님 집안살이가 딱한 것이 안타까워 도움을 주곤 했는데 이게 오히려 나중에는 집안의 화가 되었다. 도와 주는 사람은 본전생각하게 되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더 의지하게 마련이니까!
  큰아버지는 슬하에 딸 일곱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아들 빼고는 다 초등학교만 졸업시켰지만 다 그럭저럭 성장해 지금 누님들 몇분은 벌써 손자를 보아 할머니가 되었다. 물론 밥굶는 분은 아무도 없다. 자식유학보낼 정도는 된다.
  아뭏든 살아 생전에 큰 아버지 함자는 동네 아이들도 친구 부르듯이 했다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큰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자식들 사는 걸 본다면 안타깝게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아버지는 결혼한 누님을 따라 도시로 나가 우여곡절끝에 기술을 배우고 가게를 차렸다. 결혼해서 사남매를 나았고 다 고등교육을 시켰다. 이제 그 사남매인 우리들도 가정을 꾸렸고 장년이 되었다.
  
  영남 지방에서 양반이라는 집안의 성씨 빼고는 내세울게 아무것도 없는 나의 친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나의 집안도 요즘 '민중' 운운하는 거기에 끼는 집안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얼치기 좌익들의 민중 민족공조 운운, 거기에 빨갱이 이야기를 살짝 씌어 놓은 그런 쪽하곤 다르단 말이다.
  
  할머니는 구십삼세까지 사시다 1983년에 돌아가셨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팬이셨다.워낙 어려운 삶을 살다보니 박정희 대통령시절 경제발전에 감격을 하셨던 것같다. 아버지는 항상 야당 (신민당)편이셨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어느 정도는 인정을 하셨다.
  그럼 1957년생인 나는? 사십이될 때까지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요즘엔?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의 영웅이라고 생각한단다.
  왜?
  김영삼 대중이 노무현 등 민주화 약장사 시절을 살아오면서 속된 말로 내 주제를 파악하게 되었거든.
  
  난 좀 무모해서 직장을 다섯번 옮겼었다. 요즘같은 노무현 정권 또 사오정이니 하는 시대엔 택도 없는 이야기지만,
  내가 직장을 주로 옮긴 1980년대엔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쌓아놓은 기반위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을 할때라 기회가 많았었다. 돈버는 재능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그런 방면에 운도 별로 없는 내가, 자가용차를 굴리고 에어컨 밑에서 이렇게 인터넷에 접속해 나랏님 노무현 비난을 맘대로 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 북쪽 김정일밑의 장관보다 더 낫지 않은가!
  
  내가 만약 북에 태어 났다면 어찌 되었을까?
  입이 간질간질해 참지 못해서 수용소로 갔을 게 뻔하고 가문을 망치고 또 사랑하는 부모형제, 아내 자식들에겐 얼마나 고통을 주게 되었을까?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우리가문도 이제 광복60주년이 되었다.
  난 관념적인 사상이야긴 하고 싶지않다.
  하지만 우리 가문의 해방 후 육십년을 보면, 개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했고 더구나 북에 비해선 말할 나위도 없다.
  
  오늘의 나를 있게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우리선조님께 감사하면서,
  조금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께도 감사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분이 이승만 대통령이고, 경제발전과 근대화로 오늘의 풍요로움을 마련해 준 분이 박정희 대통령이니까!
  
  
  
  
  
  
  
  
  
  
  
[ 2005-08-13, 23: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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