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후손과 친북파, 태극기를 조롱하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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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김일성은 해방 후 3년 동안 잘 쓰던 태극기를 버렸을까? 독립운동을 안 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조금이라도 한 사람은 절대 태극기를 버리지 못한다. 일제시대에는 소지한 것만으로도 감옥에 잡혀갔기 때문에 태극기는 해방의 상징이었다. 조선의 영혼이었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서 태극기를 흔들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희망이 솟아올랐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제대로 했다면, 절대 태극기를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99%가 반일파였던 한국인은 38선 이북에서나 이남에서나 해방 후 너도나도 태극기를 흔들었고 애국가를 불렀던 것이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김일성도 처음에는 태극기를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렁차게 애국가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김일성의 독립운동으로 조선이 해방된 줄 안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소련군에 개같이 충성하는 김일성을 내세워 북한을 완벽한 괴뢰국으로 만들어 놓은 후에 소련군이 리모컨 하나만 달랑 들고 물러나자, 김일성은 자신의 독립운동을 터무니없이 날조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역사를 왜곡하다가 언젠가부터 너무도 뻔뻔하게 김일성 장군이 일본군 100만 명을 물리치고 조선을 해방 시켰다고 전 주민을 세뇌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김일성도 딱 꼬집어 자신 있게 내세우는 것은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전투뿐이다. 중공군의 동북항일연군 소속 지대장(소대장급으로 중위 정도의 계급)으로 상부의 지령을 받아 박금철 등 국내 갑산파의 지원을 받아 압록강 상류 지역의 혜산진 보천보에서 일본 경찰 5명이 지키는 파출소를 습격한 사건이 바로 보천보 전투이다. 일본 경찰을 다 죽였다고 해도 겨우 5명이다. 그 다음 날의 동아일보에는 7명 죽였다고 나오는데, 이에는 애꿎게 죽인 민간인 2명을 포함한 숫자이다. 그래서 엄청난 전과를 세웠다는 말만 하지 구체적으로 몇 명을 죽였다는 말은 않는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도 김일성은 중공군 소속으로 중국 공산혁명 운동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마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김일성은 후에 소련으로 도망가는데, 거기서도 독자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라 소련군으로 들어가서 커삐딴(대위)이 된다. 한 계급 올라간 셈이다. 이 때 그가 거느린 조선인은 겨우 50여명. 평양의 위치도 몰라 처음에는 함흥에 도착할 정도로 북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소련 제25군은 미국의 원자탄 2방 덕분에 일본의 관동군과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않고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단숨에 북한을 점령했다. 이 때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4만 명. 그들은 너무도 쉽게 북한 전역을 장악할 수 있었다. 누굴 꼭두각시로 내세울까 고민하던 소련군은 정치적 술수가 능하고 소련군의 지시라면 불에라도 기꺼이 뛰어드는 33살의 김일성을 한 계급 높여 마요르(영어로는 major) 김 이르센이라고 부르며 그를 스탈린에게 추천했다.
  
   김일성은 처음에는 중공군 소속이었고 나중에는 소련군 소속이었다. 독자적인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운명이란 게 묘해서 만주에 남아서 모택동을 도와 처음에는 일본군과 싸우고 나중에는 국민당과 싸워 혁혁한 공을 세운 조선인이 무려 5만여 명으로 3개 사단(이들이 저 유명한 북한의 최정예 부대 제5사단, 제6사단, 제7사단임)이나 되었지만, 이들은 그저 연안파로서 처음에는 중용되다가 김일성에 의해 모조리 숙청되었다. 고작 50명으로 소련군의 88특별여단으로 적을 옮긴 김일성은 권력의 줄타기를 잘한 덕분에 정말 아무런 공도 없이 절대권력자로 등극한 것이다. 아마 권력의 향방에 동물적 감각이 있었던 김일성은 중공군은 당시 국내 문제로 조선이 해방된다고 해도 한반도에 신경 쓸 수 없다는 것을 간파했을지도 모른다. 국민당에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고.
  
   노무현 정부는 해방 전에는 독립운동의 상징이요, 해방 후에는 친일파 척결과 자주독립과 공산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킨 호국과 남북통일의 상징인 태극기를 다른 날도 아닌 일제의 쇠사슬에서 풀려난 날을 기념하는 남북축구경기 대회에서 아예 압수하고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만 흔들게 했다. 대한민국 경찰을 시켜 소련의 괴뢰국임을 증명하는 인공기는 사수했다.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 6·25 참전용사는 태극기를 목숨보다 귀중히 여긴다. 나라 없는 설움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요, 독립이 되어도 자유가 없으면 얼마나 비참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버리고 인공기를 채택한 것만 보아도 북한의 친일파 청산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이었나를 알 수 있는데,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친일파 청산을 부러워하고 김일성의 독립운동을 교과서에까지 실어 선전해 준다. 북한의 친일파 청산은 아무런 공이 없었던 김일성이 정권을 잡기 위한 일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친일파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자 우파와 국내 공산당과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도 차례로 제거했다. 심지어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소련에서 함께 온 50명의 만주파마저 대부분 숙청해 버렸다.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도 마찬가지이다. 해방 후 60년 동안 일제시대를 찬양하며 일장기를 흔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건만, 도대체 무슨 신통력으로 설령 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전원 무덤 속으로 들어갔을 친일파를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떻게 찾아내어 척결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은 조선 500년 동안 그리고 북한 정권 60년 동안 써먹은 수법과 흡사하다. 그것은 정적과 그 지지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과 북한은 정적을 숙청할 때는 꼭 권력의 위세를 빌어 정적의 과거를 뒤진 다음 그걸 꼬투리 삼아 그를 일방적으로 매도하여 인간 쓰레기로 만들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태극기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건국세력, 호국세력, 산업화 일꾼, 민주 투사를 모조리 수구보수세력으로 몰아 그들에게서 태극기를 빼앗고 한반도기를 강제로 쥐어 주고 인공기를 보호하다가 인공기 또는 제3의 기를 통일국가의 새 국기로 세우려는가 보다.
  
   태극기를 홀대하는 자는 사이비 독립운동가요, 사이비 민주주의자요, 사이비 민족주의자이다. 태극기를 홀대하는 자는 전에는 일본제국주의자 또는 친일파요, 지금은 북한공산당 또는 친북파다. 그 외에는 전세계 60억 인구 중에 그 누구도 감히 태극기를 업신여기지 못한다.
   (2005. 8. 16.)
  
  
  
[ 2005-08-17, 09: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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