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쓸모있는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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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라이트 (www.new-right.com)
  
  제목 : [서평] 쓸모있는 바보들(Useful Idiots) - 모나 채런저, 안진환 譯
  쓸모있는 바보들(Useful Idiots)
  좌파 정치인/언론인들의 편견과 모순 파헤쳐
  한국 좌파들이야말로 김정일의 '쓸모있는 바보들'
  [최정석 / 2005-08-20 01:38]
  
  
  제목 : 쓸모있는 바보들(Useful Idiots)
  저자 : 모나 채런, 안진환 譯
  출판사 : 조선일보사(2004)
  
  백악관 홍보실을 거쳐 현재 정치 및 문화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저널리스트 모나 채런(Mona Charen)이 2003년에 펴낸 '쓸모있는 바보들(Useful Idiots)'은 1980∼1999년대에 진보주의 또는 좌파에 기운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편견과 모순을 파헤친 책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미국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나 글을 나열한 것이다. 물론 모나 채런은 그들의 글과 주장에 대한 나름의 반론과 평가를 빼놓지 않았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독자마다 다양한 느낌과 지식을 얻게 되겠지만, 다음 두 가지 문제에 유념해 읽는다면 재미가 배가될 것으로 믿는다.
  
  첫째, 수없이 나열되고 있는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에서 때로는 직접적으로 또 때로는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진보적 이념의 편향과 오류가 무엇인지를 찾아보자. 특히, 사회주의 국가의 가혹한 인권탄압이나 독재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태도와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비교해 보라.
  
  그들이 보여주는 불공정한 태도 때문에 그들이 가진 이념의 근본이 자유와 평등 같은 보편적 가치인지, 아니면 ‘반미’나 ‘반보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진보주의를 대변해온 사회주의나 반자본주의적 색채가 짙은 자유주의 이념이 가진 편향을 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은 많지 않다.
  
  둘째, 미국 사회는 정치사회적 사건이나 상황에 따라 이념적, 정치적 대립의 구도와 역학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는 미국의 진보세력이 미디어와 학계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는 정치적 계기가 되었고, 반대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의 붕괴, 9·11 테러 등은 진보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위축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다양한 사건과 그에 대한 미국 내 이념 및 정치세력들의 반응,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국 사회의 이념적, 정치적 구도를 좇아가다 보면 시대가 흘러가는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타임스는 상당히 호의적인 어투로 인물소개 기사를 실었다. 그 날의 뉴욕타임스 예술·문화면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은, 1970년대 초 일련의 폭탄 테러를 일으켰던 두 명의 테러리스트인 ‘빌 에어스’ 와 그의 아내 ‘버나딘 도른’이었다.
  
  그들은 뉴욕시 경찰본부(1970), 미 국회의사당(1971), 국방부(1972) 등에 폭탄 테러를 저질렀지만, 이들 부부의 도덕함과 끔찍함은, 완곡한 표현들과 관대하고 부드러운 언어들 속에 묻혀버렸다.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후, 뉴욕의 국제무역센터는 끔찍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국제무역센터가 무너진 지 3일 만에 좌파 시위자들은 워싱턴 길거리로 몰려나와 ‘미국은 더 이상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오히려 미국을 비난하는 듯한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팔웰과 팻 로버트슨은 9·11 테러가 미국이 저지른 죄과에 대한 신의 응징이라는 논평을 냈다. 콜럼비아 대학의 에드워드 사이드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것에 비하면 아랍의 증오는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했고, 촘스키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테러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모나 채런이 보기에 이런 견해는 공정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도덕적인 부실(不實)’과 ‘지적인 허약성’을 드러내 보이는 위험한 사고일 뿐이었다. 그는 “진보주의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게 용서하거나 무시하는 반면, 자신들의 조국에 대해선 증오심으로 가득 차 비난을 퍼붓고 있다”고 개탄한다.
  
  ‘쓸모있는 바보들’이 공격을 시작하다
  
  모나 채런은 “항상 자기 조국인 미국을 먼저 비난하는 진보파의 ‘못된 버릇’은 월남전이 예상과 달리 지연될 때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최초에 미국이 베트남에 운명적인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미국내 진보주의자들은 예외없이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동의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갈수록 삐걱거리고 희생이 늘어나게 되자, 좌파 내에서는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뒤늦은 비난의 목소리는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태도였지만, 또한 아주 쉽게 대중의 목소리와 공명(共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미국을 ‘국제적인 무법자’라고 부르며 북베트남인들과 베트콩을 희생자로 묘사하였고, 최상의 결과는 베트콩의 승리와 미국의 굴욕적인 패배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1965년을 기점으로 해서는 더 이상 베트남 전쟁 자체만이 아니라, ‘물질주의’에서 ‘군국주의’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대한 모든 것이 그들에 의해 비난과 경멸의 표적이 되었다.
  
  좌파 언론들 또한 이런 경향에 앞장섰다. 베트남에 나가 있던 종군기자 대부분은 그 전쟁을 미국이 만들어낸 최악의 재앙이라고 보도했다. 미군이 베트남의 민간인에게 저지른 가혹행위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같은 시기 북베트남 군인들은 훨씬 더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다. 4,500명 내지는 5,500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으며, 그 가운데 많은 수가 산 채로 매장 당했는데도 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는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모나 채런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지적한다. “남베트남 역시 완벽한 민주주의가 구현된 나라는 분명 아니었다. 그렇지만 북쪽의 공산주의 체제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고 인도적인 나라였다. 공산주의자의 끔찍한 통치로부터 남베트남을 보호하고자 했던 국가에 대한 과장되고 가혹한 공격은, 정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게다가 공산주의자들의 실체와 실상을 고의로 못 본 체하는 태도야말로 심각한 도덕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캄보디아 학살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이웃나라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학살이 벌어졌다. 캄보디아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즈가 ‘론 놀’ 정부를 무너뜨린 지 3년 8개월 만에 캄보디아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기간 중에 캄보디아 인구 700만 명 중 150만∼200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불과 4년 만에 학살해버린 것이다.
  
  몇 년전 캄보디아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단을 주장했던 미국 좌파의원들은 또다시 미국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들은 캄보디아에서 들려오는 증언을 믿으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난민들의 증언은 모두 CIA가 퍼뜨린 낭설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리처드 코헨은 “한마디로 미국이 캄보디아를 ‘들쑤셔’ 말 그대로 석기시대로 돌려놓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본격적인 냉전의 시기로 들어서서, 진보세력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소련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1983년, 소련 공군에 의해 KAL기 격추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미국내 좌파들은 이 사건이 향후 군축정책에 끼칠 악영향만을 염려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소련에 대한 비난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70년대 후반 소련의 중거리미사일 배치에 대항해 NATO가 ‘퍼싱-Ⅱ’미사일을 배치하자 유럽 곳곳에서 좌파세력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의 '평화운동'은 일방적으로 서방 세계와 유럽 자유국가들을 향한 것이었으며 소련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죽음보다는 공산주의가 낫다’거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항복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냉전이 끝나고 동구권의 붕괴를 확인한 후에도, 진보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재빨리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갔다. “상점 앞에 길게 늘어섰던 사람들의 행렬이 자본주의로 바뀌면서 실업구제센터로 몰리고 있다”라든지, “가난한 사람들 집없는 사람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고통스러운 댓가”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은 찾으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찾지 않았고 보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거울에 비추어 보기
  
  이 책을 읽다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념적 갈등과 좌파진영의 언행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치게 된다. 시원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북한의 김정일이 보기에 한국의 좌파들이야말로 ‘정말 쓸모있는 바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똑같은 죄악을 저지른 미국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섬뜩할 만큼 빗나간 판단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도 좌파 일각에서는 미국 증오에 대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비난할 근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필자는 모나 채런과 같은 심정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 ‘북한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는 한국내 좌파 지식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미국내 좌파들이 그동안 세계사적 문제에서 어떤 실수를 범했는지, 그들이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바란다. 이 문제에 관한 고민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필요한 좌파적 양심과 진보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해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오늘날 한국에서의 이념 갈등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세계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교훈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과거의 인식에서는 벗어났지만 새로운 가치관의 수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 역시 이 책에 실린 풍부한 사례들이 큰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상정한 ‘적’들에 대한 의도적 공격이 지나친 나머지 전통적인 보수주의자의 입장만을 드러내거나 몇몇 대목에서는 약간의 의도적인 편협함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평가는 독자들 개인의 몫이 될 것이다.
  
  최정석 (남경대학 정치학 박사과정)
  
  
  
[ 2005-08-20, 11: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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