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왕조의 정통성 콤플렉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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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인즉슨 맞지 않느냐고 북한의 선전선동에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맞장구치는 게 있다. 북한이 정통성이 있다는 망언이 바로 그것이다.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대개 두 가지를 든다.
  첫째는 김일성의 독립운동과 친일파 청산. 둘째는 민중 중심의 사회 건설.
  
   김일성(金日成)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명이 아니다. 그 아들 이름이 김정일(金正日)인데, 중국이든 한국이든 이렇게 부자지간에 순서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름에서 같은 한자를 쓸 수가 없다. 그것은 항렬이 같다는 뜻이니까, 아버지를 형이라고 부르는 망측한 짓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이것을 합리화하려고 그랬는지 아예 순서까지 같게 하여 아들을 정남, 정철 등으로 작명하여 아예 동생 취급하고 있다. 김일성이 일자무식자도 아니고 중졸 정도의 학력은 갖고 있었고 중국어도 할 줄 알았는데, 더군다나 가문과 효성을 그렇게 중시한 사람으로서 김일성이 본명이었다면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리가 없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는 본명이 김성주(金成柱)다. 그 동생이 바로 김영주(金英柱)로 김정일이 세자로 책봉되기 이전에 2인자로 군림했다. 둘째 동생은 철주(哲柱)였는데, 어린 나이에 죽었다. 돌림자가 '柱'자인 것이다. 이래야 이름이 아귀가 맞는다. 원래의 김일성은 독립운동으로 꽤 이름을 날렸는데, 아마 해방 무렵에는 사망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도용한 듯하다.
  
   김일성은 죽기 2년 전에야 시인했듯이 중국공산당의 일원으로 조선인이 아닌 되놈을 위해서 공산주의 운동을 했을 뿐이다. 김일성은 6․25 당시 중공군의 총사령관이었던 팽덕회에게 군사작전권을 달라고 했다가, 크게 면박을 받았다.
   “내가 동북항일연군의 사단장으로 있을 때, 당신은 일개 소대장에 지나지 않았어. 감히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군대를 지휘할 능력이 없어! 당신한테 작전지휘권을 넘기면, 맥아더한테 맥도 못 추고 진단 말일세!”
  
   중국측 기록에 그의 활동이 전혀 안 나타나는 걸로 보아, 그는 거기서도 별 볼일 없었던 모양이다. 안 그랬으면 소련으로 건너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행운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었던 그가 소련군 대위로 소련군 4만 명의 충실한 앞잡이역할을 한 덕분에 김씨 왕조를 개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조선시대의 봉건사상에 젖어 있던 자라, 오로지 자기 가문과 패거리밖에 몰랐다. 그래서 용비어천가를 흉내내서 자기 조상들을 김씨 조선의 위대한 왕족으로 떠받들고 친가와 외가의 친척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마침내 아들에게 왕권을 물려 준 것이다. 그의 패거리는 고작 50여명으로 해방공간에서 북한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파당 중에 연못 속의 미꾸라지 정도의 힘밖에 없었고 독립운동도 가장 적게 했지만, 오로지 소련군 4만 명의 힘에 빌붙어 국내의 민족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만주에서 온 쟁쟁한 독립운동가 등을 모조리 제치고 국가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다.
  
   김일성이 이끈 만주파는 무엇보다 먼저 명망, 업적, 조직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던 조만식이 이끄는 민족주의 우파가 남쪽의 이승만과 손을 잡고 함께 승천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용이 되기 직전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소련군의 군사력을 빌어 그들을 어린애 팔 비틀 듯 쉽게 두들겨 잡아 용은커녕 지렁이 신세로 추락시켰다. 대신 자신은 미꾸라지 신세에서 용의 신분으로 비상했다. 그 후에 나머지 파벌과는 전략적 제휴를 했다가 권력이 공고해지는 것과 때를 맞추어 그들마저 하나하나 숙청하고 나중에는 오로지 자기들끼리 요직을 독차지했다.
  
   소련의 지시에 따라 초를 다투어 인민군을 창설한 김일성은 스스로 별 5개를 달고는 북한 전역을 무력으로 재점령했다. 38선 이남까지 적화하려는 스탈린의 흉계에 따라, 김일성은 사실상 소련군이 창설하고 조직하고 무장시킨 인민군의 우두머리가 됨으로써, 다시 말해서 소리 없는 군사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김일성은 스스로 얼마나 정통성이 취약한가를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와 군사와 문화 이 세 방면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치에서는 공산주의를 중공이나 소련보다 더 철저히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정적을 잔인하게 숙청하여 처형하거나 강제수용소에 집어넣었다. 자연히 그 때마다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사라졌고, 알더라도 공포에 질려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정통성에 강한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은 아주 잔인했다. 멸구봉언(滅口封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대적인 숙청과 더불어 그 자리에 새 사람들을 끌어올려 그들에게 큰 은혜를 베풂으로써 그들을 모조리 충직한 가신으로 만들었다. 이어서 그는 문화 작업에 들어갔다. 선전선동과 세뇌작업! 대대적인 숙청과 때를 같이 하여 김일성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정치와 문화 못지않게 그는 군사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내의 잠재적 반란 세력을 완벽히 장악하고 적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다.
  
   통일! 만약 소련과 중공의 힘을 빌려서 수백만 명을 희생하든 말든 통일만 이룩하면, 일본군 100만 명을 물리친 것 이상으로 큰 일을 하게 된다. 이보다 큰 정통성은 없다. 스탈린의 세계적화야욕과 김일성의 정통성 콤플렉스, 이 둘이 합하여 일어난 비극이 바로 6․25 동란이다. 두 독재자의 동상이몽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해도 한국의 전력이 인민군한테는 숫제 상대도 안 되었기 때문에 이미 그 때는 상황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천만 뜻밖에도 미군이 너무 빨리 돌아오는 바람에 김일성은 20세기의 태조대왕이 될, 누구도 시비하지 못할 정통성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김일성이 권모술수에 능할 뿐 대장군이나 국가 원수가 될 그릇이 아니었다는 것은 서울 점령 후 3일간 서울에 머문 실책에서 알 수 있다. 설령 소련의 군사 고문이 반대하더라도 곧바로 내려갔어야만 했다. 거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다. 덕분에 한국의 운은 기적처럼 촛불을 밝히며 되살아나 후에 박정희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여 태양처럼 빛날 수 있었다. 세계11위의 경제대국!
  
   북한 정통성의 두 번째 이유로 민중 중심의 평등한 사회를 근거로 대는데, 소련과 동구가 발가벗겨진 지 언젠데 아직도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말을 할까. 공산국가 중에서도 북한은 최악이다. 북한은 사실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철저한 봉건사회요, 전제군주국가요, 병영국가요, 노예국가이다. 북한을 평등사회라고 부러워하는 자는 마르크스 맹신도 내지 김일성교 광신도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몽상가거나 자폐증 환자일 것이다. 바보일 수도 있겠다.
  
   김정일의 정통성 콤플렉스는 그 아버지보다 훨씬 심하다. 부자세습은 전세계 공산국가에서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김일성과 달리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가시적인 업적이 없다. 김일성은 날조와 선전선동에 지나지 않지만, 독립운동으로 조국을 해방시켰다는 것과 미제침략을 물리쳤다는 것이 있다. 전자는 미군이 피로써 일본군을 물리침으로써 확보한 전리품을 중간에서 재빨리 가로챈 소련군에 의한 것이고, 후자는 자기 자신이 외세를 업고 기습남침했다가 중공군 덕분에 기사회생한 것이지만, 하여튼 조선이 독립한 것은 사실이고 북한이 살아남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국경을 전면폐쇄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신화와 전설로 10년, 20년, 50년 세뇌하면 서서히 먹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김일성의 통치 기간에는 북한주민들이 배불리 먹은 적은 없지만, 그런 대로 허기는 면했었다. 반면에 김정일은 신화와 전설을 뒷받침할 객관적 정황이 전혀 없다. 더욱이 김일성이 죽은 다음부터 극심한 식량난으로 극소수 공산귀족 외에는 아사(餓死)귀신이 되거나 영실(영양실조)동무가 되었다. 그래서 김정일은 오로지 김일성을 태양신으로 모시고 순 엉터리일망정 그가 구축해 놓은 정통성에 목을 매는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유훈통치이다.
  
   김일성처럼 김정일도 정통성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적화통일이다.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적화통일은 전혀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그래서 김일성처럼 날마다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여 인민들이 딴 생각을 못하게 하여 절대권력을 누리며 호의호식할 생각을 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듯하다. 한국의 친북좌익세력 덕분이다. 방송은 99% 장악되었고, 신문도 70% 이상 굴복시켰고, 국군도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정부여당과 각종 시민단체도 자주와 평화라는 말에 깜박 죽는다. 거대 야당도 평양에 서로 줄을 대려고 안달이다. 부시가 외과수술을 하려고 레이저 칼을 들기 전에 후다닥 해치울 수 있을 것 같다. 미사일 몇 방이면 혼비백산, 여야 합의로 한국이 통일선언을 헌납할 듯하다.
  
   글쎄,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될까.
  
   (2005. 8. 19.)
  
  
[ 2005-08-25, 07: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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