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전혀 꾸미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정직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화면에서 정치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노조위원장과 미모의 여성 국회의원과의 정책토론이었다. 일류대를 나온 변호사 출신의 여성 의원은 분장과 옷 그리고 토론을 진행할 자료까지도 완벽하게 갖춘 것 같았다. 토론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자 여성 국회의원은 국제수지나 외환문제 물가안정 등에 관한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날카롭게 정책적인 핵심을 얘기했다. 그녀가 쓰는 해박한 경제 전문용어들은 논쟁의 상대방인 중졸(中卒) 출신 노조위원장을 주눅들게 하고 있었다.
대응하는 중졸 출신 노조위원장이 전문용어를 틀리게 말하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이 꼬이고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게임이 되지 않았다. 여성의원의 표정에 순간 경멸이 스쳐지나갔다. 밀리고 있던 노조위원장이 태도가 바뀌었다.
“저는 무식해서 복잡한 전문용어를 몰라요. 그렇지만 공장의 바닥에서 평생 지낸 놈이니까 내 식대로 얘기할께요. 자동차를 양쪽에서 똑같은 바퀴를 끼우는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은 월급을 반도 못 받아요. 그 기분이 어떻겠어요. 식당도 한 사람은 좋은 식당 가고 다른 한 사람은 개밥을 먹는 기분이예요. 그게 좋겠습니까?”
그는 자기 방식대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표현이었다. 투박한 용어로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됐다. 논쟁은 의외로 노조위원장의 승리였다. 우연히 본 정치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그 며칠 후 이웃에 사는 대학 선배와 바둑을 두고 밥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기자 출신인 그 선배는 정부대변인을 오랫동안 지낸 경력이 있었다. 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유학간 아들이 일본의 노무라 증권에 가서 면접시험을 봤는데 뜻하지도 않게 합격을 했어. 합격시키고 회사에서 기다릴 테니까 졸업하고 와서 일하라고 하더래.”
스펙을 잔뜩 요구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다른 것 같았다.
“일본 회사에서는 면접 때 어떤 점을 보더랍니까?”
내가 물었다.
“일본에서는 전혀 꾸미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정직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걸 일본에서는 ‘시젠타이’(しぜんたい )라고 부른다는 거야. 그게 합격의 동기지. 내가 얼마 전 홍콩에 묵을 때 호주 방송을 비롯해서 영어권 방송을 여럿 봤는데 사회자랑 출연진들이 아주 자연스러워. 속에 있는 걸 솔직히 드러내고 감정표현도 진솔해. 연설이나 대중 앞에서의 인사도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해.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그건 쉽게 되는 게 아니지. 끊임없이 내공을 닦고 속에 내용물이 꽉 찼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거지. 그걸 보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그들이 우리보다 질이 높은 거구나 하고 느꼈어. 그걸 보면서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에야 후회를 하는 거야. 젊었을 때 대변인을 하면서 난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야. 말 한 마디라도 꾸미지 말고 진심으로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삼십 년 드나든 법정 풍경을 떠올렸다. 법정은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하는 법률용어와 공허한 관념만 가득찬 것 같았다. 거짓말로 법정의 공기는 오염되어 있었다. 눈물과 정직한 호소는 시궁창 같은 거짓 속에 매몰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법정의 변론태도를 바꾸었다.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짜 말을 한 마디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화면에서 정치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노조위원장과 미모의 여성 국회의원과의 정책토론이었다. 일류대를 나온 변호사 출신의 여성 의원은 분장과 옷 그리고 토론을 진행할 자료까지도 완벽하게 갖춘 것 같았다. 토론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자 여성 국회의원은 국제수지나 외환문제 물가안정 등에 관한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날카롭게 정책적인 핵심을 얘기했다. 그녀가 쓰는 해박한 경제 전문용어들은 논쟁의 상대방인 중졸(中卒) 출신 노조위원장을 주눅들게 하고 있었다.
대응하는 중졸 출신 노조위원장이 전문용어를 틀리게 말하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이 꼬이고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게임이 되지 않았다. 여성의원의 표정에 순간 경멸이 스쳐지나갔다. 밀리고 있던 노조위원장이 태도가 바뀌었다.
“저는 무식해서 복잡한 전문용어를 몰라요. 그렇지만 공장의 바닥에서 평생 지낸 놈이니까 내 식대로 얘기할께요. 자동차를 양쪽에서 똑같은 바퀴를 끼우는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은 월급을 반도 못 받아요. 그 기분이 어떻겠어요. 식당도 한 사람은 좋은 식당 가고 다른 한 사람은 개밥을 먹는 기분이예요. 그게 좋겠습니까?”
그는 자기 방식대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표현이었다. 투박한 용어로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됐다. 논쟁은 의외로 노조위원장의 승리였다. 우연히 본 정치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그 며칠 후 이웃에 사는 대학 선배와 바둑을 두고 밥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기자 출신인 그 선배는 정부대변인을 오랫동안 지낸 경력이 있었다. 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유학간 아들이 일본의 노무라 증권에 가서 면접시험을 봤는데 뜻하지도 않게 합격을 했어. 합격시키고 회사에서 기다릴 테니까 졸업하고 와서 일하라고 하더래.”
스펙을 잔뜩 요구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다른 것 같았다.
“일본 회사에서는 면접 때 어떤 점을 보더랍니까?”
내가 물었다.
“일본에서는 전혀 꾸미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정직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걸 일본에서는 ‘시젠타이’(しぜんたい )라고 부른다는 거야. 그게 합격의 동기지. 내가 얼마 전 홍콩에 묵을 때 호주 방송을 비롯해서 영어권 방송을 여럿 봤는데 사회자랑 출연진들이 아주 자연스러워. 속에 있는 걸 솔직히 드러내고 감정표현도 진솔해. 연설이나 대중 앞에서의 인사도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해.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그건 쉽게 되는 게 아니지. 끊임없이 내공을 닦고 속에 내용물이 꽉 찼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거지. 그걸 보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그들이 우리보다 질이 높은 거구나 하고 느꼈어. 그걸 보면서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에야 후회를 하는 거야. 젊었을 때 대변인을 하면서 난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야. 말 한 마디라도 꾸미지 말고 진심으로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삼십 년 드나든 법정 풍경을 떠올렸다. 법정은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하는 법률용어와 공허한 관념만 가득찬 것 같았다. 거짓말로 법정의 공기는 오염되어 있었다. 눈물과 정직한 호소는 시궁창 같은 거짓 속에 매몰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법정의 변론태도를 바꾸었다.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짜 말을 한 마디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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