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변호사

“내가 쪽방에 살다가 나와 노숙을 해. 그러니까 동사무소에서 주던 쌀도 안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 너무 몸이 아퍼.”

탑골공원의 담 뒤쪽 그늘진 골목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갈 곳 없는 노인들이 수십 명씩 도로의 경계석에 새들처럼 나란히 앉아 있기도 하고 흐느적거리며 길을 걷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주운 상자를 카트에 담아 힘겹게 끌고 가는 허리 굽은 노인들도 여러 명 눈에 띄었다. 시간과 공간에서 버려진 투명 인간들의 세계 같다고나 할까. 온기를 잃은 목요일 오전 열한 시의 늦가을 태양이 길바닥을 비치고 있었다.

그 길모퉁이의 플라스틱 작은 야외용 탁자 뒤의 접이식 의자에 앉아 나는 흐름을 이루고 지나가는 노인들의 군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는 이제 갓 변호사를 시작한 삼십대의 젊은 김 변호사가 노트북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 옆에는 작은 칠판에 ‘무료변호’라고 쓴 간판이 있었다. 젊고 늙은 두 명의 변호사는 거리의 변호사로 그곳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변호사를 처음 시작하는 옆의 김 변호사에게 물었다.

“어때요? 거리의 변호사로 처음 시작하는 감상이?”
“여기에 와서 보니까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가 따로 있는 것 같 습니다.”

“여기 그늘진 밑바닥에서 일 년 정도 있어보면 잘나가는 변호사들이 얻지 못한 귀한 철학을 얻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어떤 것보다 값진 보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젊은 김 변호사에게 위로조로 말을 해 주었다. 30년 전 내가 처음 변호사를 시작할 때 막연히 전국을 떠돌면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법률상담을 해주는 그런 일을 해 보고 싶었다. 문턱 높은 사무실과 돈이라는 체로 걸러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보다 거리의 변호사가 진짜 알아야 할 그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고 가족이 먹고 살려면 벌어야 했다. 그런 낭만은 혼자 살 때나 가능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육십대 중반의 노인이 되었다. 어느 날 어둠이 내릴 무렵 인사동 길을 걸어 탑골공원 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담을 따라 나란히 줄지어 불을 밝히고 있는 점쟁이 파라솔들이 보였다. 사주 관상을 보기도 하고 타로점을 치기도 한다고 포장에 적혀 있었다. 바로 그런 파라솔 하나를 얻어 ‘거리의 변호사’라고 깃발을 달고 상담을 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률상담은 따지고 보면 인생 상담이다. 살아가던 인생이 법의 늪에 빠졌을 때 나뭇가지라도 손에 잡고 나오려는 가장 농밀한 운명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뿐이지 이번에는 건강에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이제는 변호사일도 쉴 때지 새로 뭔가 시작하는 나이는 아닌 것 같았다. 마침 훌륭한 선배 변호사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법관생활을 해 온 선배 변호사 부부가 좋은 뜻을 펼치고 있었다. 그 부부는 종교단체에 그리고 사회단체에 남몰래 많은 기부를 했다. 대학 장학회도 꾸려가고 있었다. 그 부부는 사회의 그늘진 구석에 가서 좋은 일을 하면 매달 월급식의 일정한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세상의 소금이 될 젊은 변호사를 찾았다. 돈을 준다고 해도 응하는 젊은 변호사가 없었다. 솔직히 잘 먹고 잘살려고 비싼 학비를 투자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얻지 다시 가난과 고생의 구렁텅이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게 당연했다. 또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있었다.

인터넷 공고를 보고 다행히 지금 옆자리에 앉은 김 변호사 한 명이 지원을 해 주었다. 나는 탑골공원 담 옆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책임자를 찾아가 그 앞 길바닥에 플라스틱야외용 책상과 접이식 의자를 놓고 지나가는 노인들의 법률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젊은 김 변호사를 응원하기 위해 옆의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다. 노인들이 간판을 보고 접근했다. 대머리 독수리처럼 머리털이 다 빠진 늙은 여자노인이 다가와 앞에 상담객을 위해 마련한 등받이 없는 목의자에 앉았다. 이빨도 몇 개 보이지 않는 노인의 눈에서는 삶에 지친 사람에게서 나오는 악에 받친 빛이 흘러 나왔다.

“내가 쪽방에 살다가 나와 노숙을 해. 그러니까 동사무소에서 주던 쌀도 안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도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자꾸만 서류를 해 오라는 거야. 나라가 어떻게 해 줘야 할 거 아냐? 나 너무 몸이 아퍼.”

영양부족인 듯 작달막한 여자 노인은 내가 가죽만 남아 있는 앙상한 팔뚝을 보여주었다. 젊은 김 변호사는 즉석에서 주민센터의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거리에서 상담해 주는 변호사라는 신분을 밝히고 그 사유를 묻고 난 후 이렇게 대답했다.

“쪽방이나 고시원에 있다는 확인증이 있어야 주민 센터에서 쌀이나 돈을 줄 수 있다고 하네요. 할머니.”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던 남자 노인이 소리쳤다.

“시간당 최저임금 6470원 준다는 이 종이를 주워서 봤는데 나는 왜 그렇게 안주는 거야? 도둑놈들 아니야? 변호사가 전화해서 알아봐줘. 나 핸드폰도 없어.”
다시 그 뒤에 있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팔십대쯤의 영감이 말했다.

“우리 아들은 부도가 나서 거지가 되고 단칸방에 팔십 다섯 먹은 우리 부부만 사는데 동사무소 직원이 선택을 하래 부부가 일을 해서 한 달에 50만 원을 받든가 아니면 가만히 있으면서 의료비나 전기세 수도세 감면을 받든가 하라고. 어떤 게 유리한가 변호사 선생이 대답 좀 해 봐.”

산더미 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젊은 변호사를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한 영감이 내 앞에 다가앉더니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나는 원래 개인주택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마누라가 이혼소송을 한 거야. 법원에서 판사가 그 집을 마누라를 주고 그만 살라고 판결을 한 거야. 집에서 쫓겨 나와 노숙을 하고 있지. 재판을 다시 할 수 없을까?”

법치사회라고 하지만 그들은 법의 보호 밖에 있는 투명 인간들 같았다. 투박한 그들의 언어로 호소해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보호막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힘 자체도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법보다 밥이고 잠자리인 것 같았다. 본능만 남은 노인들은 뒷골목 거리를 꽉 채우며 지척거리면서 흐름을 이루어 걷고 있었다. 희망 없이 인생의 밤을 맞은 그들의 영혼의 불빛도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것 같아 보였다. 그들도 한때는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아버지였고 활기차게 일하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자 이제 그만 전을 닫으시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직원이 다가와서 햇빛을 가리는 텐트를 접기 시작했다. 젊은 김 변호사와 나는 탁자와 접이식 의자를 급식소 구석에 가져다 놓고 거리의 변호사 일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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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 2017-10-23 오후 8:24

    좋은 일을 많이 하시내요 방금 정규재TV를 봤는대 박원순 시장 아들 박주신씨 사건을 담당 하는 엄상익 변호사님 애기가 나오는대 그분이라면 진실을 얘기해 주셔야 여기에 쓰신 글이 진심이라 믿겠는대 아니시라면 다행이구요 참 세상은 갈수록 점점더 혼란스러우니 점점더 불신만 커져 갑니다 이나라가 왜 이리돼 가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 팜파 2017-10-21 오후 8:25

    언제나 엄변호사님의 글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대통령과 정치인, 기업가들, 지식인들이 이런 마음을 조금만 가져도
    나라와 사회가 많이 나아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 정답과오답 2017-10-21 오후 6:16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감탄과 존경을 함께 보냅니다
    변호사라는 최상층의 엘리트들 중에
    이런분이 있다는게 믿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하고는 관련 없으시지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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