欽明천황의 新羅 저주 발언 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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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532년 김해에 있던 금관가야가 신라에 항복하고 562년엔 고령에 있던 大伽倻가 신라한테 망했다. 이로써 가야연맹은 전부 신라에 흡수되었다. 백제와 함께 가야를 지원해왔던 倭의 조정은 큰 슬픔에 휩싸인다. 당시의 긴메이(欽明)천황이 한 말은 日本書紀
  562년6월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박병식 옮김).
  <신라는 서쪽 보잘 것 없는 땅에 있는 작고도 더러운 나라이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며, 우리가 베푼 은혜를 저버리고 皇家를 파멸시키고, 백성을 해치며, 우리 郡縣(군현)을 빼앗았다. 지난 날에, 우리 神功皇后가 神靈의 뜻을 밝히고 천하를 두루 살피시어,
  만백성을 돌보셨다. 그때, 신라가 天運이 다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애걸함을 가엽게 여기사, 신라왕의 목숨을 살려, 있을 곳을 베풀어서 번성하도록 하여주었다. 생각해보아라! 우리 神功皇后가 신라를 푸대접한 일이 있는가. 우리 백성이 신라에게 무슨 怨恨을 품었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긴 창과 강한 활로 미마나(任那)를 공격하여, 온 백성을 죽이고 상하게 하며, 간과 다리를 잘라내는 것도 모자라 뼈를 들에 널고 시신을 불사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미마나의 우리 친척과 모든 백성들을, 칼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마음대로 저지른다. 하늘 아래 어느 곳 백성이, 이 말을 전해듣고 가슴 아프게 생각지 않겠는고! 하물며, 황태자를 비롯하여 조정의 여러 대신들은, 그 자손들과의 情誼(정의)를 회상하며 쓰라린 눈물을 흘리지 않겠느냐. 나라를 지키는 중책을 맡은 사람들은, 윗분을 모시고 아래 사람들을 돌보아오며, 先君의 은총을 입고 후대에 그 자리를 이어준다.
  그러므로 분골쇄신하여, 힘을 합하여 간악한 무리에게 천벌을 내리게 하여, 天地에 맺힌 痛恨을 풀고, 임금과 선조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신하와 자손의 길을 다하지 못한 후회를 뒷날에 남기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欽明천황이 가야사람들을 친척이나 同族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향과 同族을 멸망시킨 신라에 대한 증오심과 저주가 스며 있는 말이다. 단순히 우호국가를 멸망시킨 敵國에 대한 증오심 정도가 아니다. 자신들의 조상과 자신들의 뿌리를 잘라버린 新羅에 대한 한서린 저주인 것이다. 欽明천황은 서기 571년4월15일 죽음을
  앞두고 또 이런 遺言을 남긴다.
  <천황이 마침 대궐 밖으로 나가 있던 황태자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 불러들이고 病床 가까이 오게 하여, 그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내 병이 무거우니, 너에게 뒷일을 당부하여 둔다.
  너는 신라를 쳐서 미마나(任那)를 재건하라. 그리하여, 옛날과 같이,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면, 내가 죽어도 한이 없겟다’. 천황이 이 달에 돌아가셨다>
  日本書紀를 읽어보면 百濟가 망했을 때 天皇家가 보여준 반응보다 가야가 망했을 때 보인 반응이 훨씬 切痛(절통)하다. 이는 일본의 天皇家가 伽倻系 사람들이고 백제계 관료들을 등용하여 함께 본토의 百濟 伽倻와 손잡고 新羅를 공격해온 관계라는 점을 추정하게 만든다.
  天皇家의 입장에서 보면 백제는 우호국이지만 伽倻는 본국이다. 본국이 망했으니 더 원통한 것이다. 倭는 伽倻를 수복하려는 집념을 버리지 않으나 百濟가 망한 뒤엔 10년도 가지 않아 親신라 정책으로 전환한다. 그렇다면 天皇家는 혹시 伽倻金氏가 아닐까. 일본 天皇의
  姓을 아는 일본사람은 없다. 천황가는 姓이 있는데도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알리면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기는 것일까.
  
[ 2005-09-26, 11: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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