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은 방패, 인권이 槍(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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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하버드 대학에서 수강한 [국익의 추구]란 과목에서 교재로 쓰인 [NSC 68]이란 유명한 문서가 있다. 1949∼50년 사이에 입안된 백악관 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문서이다. 이것을 기초한 사람은 폴 니츠, 당시 국무부의 정책기획부장이었다. 애치슨 국무장관의 후원을 받아 작성되어 트루먼이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대소(對蘇) 기본전략으로 채택된 이 문서는 그 뒤의 냉전과 역대 美 대통령의 思考에 큰 영향을 끼쳤다. [NSC 68 때문에 미국은 냉전에서 이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 문서가 작성되고 있던 때 트루먼 대통령은 군비를 감축하고 국내 복지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고 했다. 폴 니츠는 NSC 68에서 소련이 서구문명을 파괴하려는 세력이라고 단정한 뒤에 對蘇 강경론을 주장하고 군비증강을 요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4월7일에 이 문서에 서명은 했지만 군비증강 건의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군사력은 방패, 인권은 창
  
  그러다가 두 달 뒤에 6·25 남침이 일어났다. 폴 니츠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트루먼은 다시 이 문서를 꺼내보고는 당장 다음 회계연도의 국방예산을 세 배로 늘리도록 했다. NSC 68과 한국전쟁의 이런 타이밍이 미국의 본격적인 냉전 전략을 출범시켰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냉전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 한반도 통일은 그 냉전을 최종적으로 종식시킬 것이다.
  
  소련 공산주의는 서구의 개인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非문명적, 非서구적 이단 세력이란 것이 이 문서가 서두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는 도덕적 관점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부른 근거가 여기에 있다. 폴 니츠는 소련의 침략노선으로부터 방어해야 할 미국의 가치를 개인주의에 두었다.
  
  [자유로운 사회는 개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본다. 개인의 자율(自律)과 자중(自重)만 있으면 개인과 개인의 권리 사이에는 층돌 없이 공존할 수가 있다. 이런 자유사상에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과 깊은 관용, 그리고 法治의 전통이 생겨난다. 이것이 자유 사회의 통합성과 활력을 조성하는 것이다]
  
  폴 니츠는 또 [공산주의는 이런 장점을 악용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인간의 非이성적인 측면을 선동하여 사회를 파괴하려고 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고 단정했다. 그는 자유세계의 약점은 불가피한 최후 수단으로서가 아니면 전쟁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따라서 對蘇 전략도 이런 약점을 직시한 바탕에서 저들의 군사적 모험주의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유사상의 우월성을 과시함으로써 [러시아 인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니츠는 [소련 체제의 본질적인 성격을 바꾸어놓는 것이 승리의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본질적인 성격변화가 외부로부터 강요되어서가 아니라 [소련 내부의 자체적인 동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라고 니츠는 강조했다. 그는 군사력을 방패로 보고 인권을 槍으로 해석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을 증강하여 소련의 침략을 저지한 다음에는 자유세계의 강점인 인권을 무기로 삼아 전체주의의 反인간성을 폭로함으로써 적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곧은 것으로 敵의 굽은 곳을 치면 백전백승이다'라고 金庾信이 말했다. 신라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우리의 곧은 것]을 니츠는 개인주의의 인권존중으로 보았고 [적의 굽은 것]을 공산주의의 反인륜성으로 해석한 것이다. 金庾信과 니츠의 대전략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를 한반도 상황에 적용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우리는 1953년 이후 韓美동맹군의 군사력을 방패삼아 敵인 북한당국의 도발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 단계의 공격은 인권이란 창으로써 적의 사령부를 찔러 북한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돌려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인권을 어떻게 창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는가. 우리의 통일 원칙은 [인권의 원칙] 하나로 족하다. 인권,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3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3대 조건이란 평화, 즉 한반도에 동족상잔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것, 복지, 즉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의 확보, 자유, 즉 인간의 정신적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 3대 조건으로 갖추어진 인권의 원칙은 남북한에 동시에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친북세력이 흔히 말하는 논리-[북한은 우리와 발전단계도 다르고 체제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인권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말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차별대우이다.
  
  이 인권의 원칙을, 북한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공격무기로 이용하려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종국적으로는 북한 지배층을 약화시키고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돌려놓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식의 對北퍼주기는 김정일 정권을 강화시켜주고 북한 주민의 고통을 연장시킬 뿐이다. 북한에 대한 원조는 평화, 복지, 자유의 3대 조건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이용해야 한다. 식량원조의 조건으로서 북한 인민군의 군비축소를 요구하며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도모하고, 생산성이 낮은 집단농장을 사유화하도록 유도하며, 아우슈비츠보다도 더한 인간 도륙의 현장 정치범수용소의 폐쇄를 주장할 수가 있다. 이 모든 요구 조건은 북한 지배층과 체제의 약화를 목표로 한다.
  
  이런 전략적 思考가 결여된 식량 원조나 경수로 건설은 북한 지배층을 연명시켜 흡수통일을 지연시킬 뿐이다.
  
  인권의 무기화가 가능하려면 한국 안에서 먼저 위선적 평화론과 사대적 현상유지론이 정리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지금 북한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지원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북한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해왔던 사람들이다. 북한 지배층에 대해서 인권의 창을 들이댈 수 없는 사람들이 북한 주민의 인도적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겠는가. 인도만 알고 인권을 모르는 사람이 부르짖는 인도란 것도 알고 보면 기만적 선의(善意)이다.
  
  우리나라는 朝鮮朝 이후 상무정신이 거세된 탓으로 침략전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희한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런 전통의 나라에서 자위적 목적의 전쟁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전쟁을 부추기는 국수주의자]로 몰아서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집단이 있다. 거세된 남자를 강간범으로 몰아버림으로써 자신의 금욕성을 강조하려는 식의 이런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굽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 굽은 것을 우리의 곧은 것, 즉 인권이란 창으로 쳐서 바로 편 다음에야 적의 굽은 것을 제대로 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1997년11월호 월간조선에 실었던 '하버대 연수기'의 일부이다.
  
  
[ 2005-09-26, 16: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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