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과 미국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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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한민국의 현재 지식인들이 2, 3류라고 생각될 때가 있었다. 金庾信, 世宗大王, 李舜臣, 이승만, 朴正熙 같은 민족사의 1류 지식인들에 비해서 그렇고 선진국의 지식인들에 비해서 그러하다. 1류와 2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쟁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여부(與否)이다. 특히 무력대치의 분단국가에서 지식인 노릇을 하겠다는 사람은 모국어처럼 전쟁을 알아야 한다. 이 전쟁에 대한 기본상식조차 없으니 전략이 나올 수가 없다. 전략은 전쟁의 원리를 국가나 기업경영에 응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사회과학은 그 기저에 전쟁에 대한 이해와 전쟁 원리의 응용을 깔고 있다. 전쟁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직운용방법론이 미국의 기업경영에 응용되고 이것이 다시 행장의 현대화를 위해서 도입되었다. 駐韓미군을 통해서 한국군에 전해진 현대적 조직운영법은 5·16 후에 정부 행정조직으로 넘어와서 우리 행정기능이 근대화의 견인차가 될 만큼 효율적으로 발전된 것은 전쟁과 사회발전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한 사례에 불과하다.
  
  미국 대학에서 일상적으로 듣게 되는 전략(Strategy), 작전(Operation), 전술(Tactic), 무게 중심(Center of Gravity) 같은 용어들은 학문의 방법론에서도 군사적 思考가 많이 응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군대와 전쟁의 긍정적인 면을 소개만 해도 전쟁광이니 국수주의니 하는 비난을 퍼붓는 병적이고 패배적인 지식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일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 우리 민족의 뇌리와 핏줄 속에 눌어붙어 있는 사대적, 위선적, 후진적 찌꺼기들은 없어지지 않고 사회의 선진화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해방 후 우리가 모처럼 확보한 군사문화를 잘 정리하여 국가, 기업,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는 것이지 [군사문화의 청산]이 아닌 것이다. 군사문화를 잘 소화해야 朝鮮朝的인 문약성을 극복하고 강건한 국가 체질과 시민윤리를 갖추게 될 것이다. 선진국 체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비책(秘策)은 바로 이 군사문화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국익의 추구]라는 강좌의 담당 교수 로버트 블랙윌은 키신저의 보좌관을 오래 지냈고 부시 행정부에서는 백악관의 안보회의(NSC=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유럽담당 책임자로 있었다. 이 기간 중 독일통일 과정에 미국측의 전략 수립 책임자로 깊이 개입했다.
  
  그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미국이 한 역할은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외교활동으로 꼽힐 것이라고 자랑하곤 했다. 백악관 시절에 그의 직속 부하였던 필립 젤리코 하버드 대학 부교수가 쓴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全기록 [독일은 통일되고 유럽은 바뀌었다]란 책을 자신의 강좌에서 교재로 썼다. 기자는 블랙윌 교수에게 {미국이 한반도 통일에 대하여 가장 우려하는 것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이 통일한 뒤에 駐韓 미군을 철수하라고 요구할까 봐 걱정이고 혹시 북한의 핵무기 제조 기술과 핵 물질을 인수하여 핵 개발을 시도할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걱정은 블랙윌 교수가 독일 통일에 관계할 때도 품었던 것이다. 독일과 미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갔는지를 알면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예측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이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를 탈퇴하여 중립국이 되려고 할까 걱정했다. 중립 독일은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중립 독일은 또 동독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군과 서독에 있는 미군을 다같이 나가라고 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미국의 세계 전략에 심대한 타격을 주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통독(統獨) 과정에서 통일된 독일을 나토 안에 묶어놓고 주독(駐獨) 미군과 핵무기를 계속해서 독일에 놓아둘 수 있도록 다짐받는 데 외교의 목표를 두었다.
  
  이런 미국의 본심은 당시 국무장관 베이커가 1990년 2월 모스크바에서 세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장관에게 한 말에서 드러난다. 베이커는 {미국이 동독이 제안한 통일 독일의 중립화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은 중립화된 독일은 나토에 묶여 있는 독일보다도 소련에 대하여 더 위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립 독일은 핵무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정치력이 있는 나토에 독일이 매여 있으면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통일된 독일이 나토에 남게 되면 나토의 지휘 아래에 있는 부대는 지금의 동독 지역에는 주둔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베이커는 이런 논리를 고르바초프에게도 들이댔다. 그는 {미군이 나간 중립 독일과 나토에 묶여 있는 독일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고르바초프는 {당신의 제안은 매우 현실적이다. 나는 베르사이유 체제의 실패가 되풀이되어 독일이 또다시 재무장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 실수를 막기 위해서는 독일을 유럽 체제 안에 묶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제안을 한번 검토해보자}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나토의 관할권이 동독에는 미치지 않도록 한다는 발상은 서독 외무장관 겐셔의 작품이었다. 이 발상을 베이커에게 주어서 소련을 설득하도록 한 것이었다. 독일통일 과정에서 소련이 의외로 쉽게 미국, 독일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은 본질적으로 美·獨의 설득논리에 소련의 지도부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에 바탕을 둔, 잘 가꾸어진 정책과 논리는 엄청난 武力이나 돈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 글은 1997년11월호 월간조선에 실었던 '하버대 연수기'의 일부이다.
  
  
  
[ 2005-09-26, 16: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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