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을 압도하는 공룡, 공기업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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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부보다 신용등급이 두 단계나 높은 삼성 때리기가, 한국이 망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신용등급을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 때리기가, 반딧불 시절에 태양처럼 세계에 군림하던 소니를 마침내 능가한 삼성 때리기가, 대한민국의 자랑 삼성 때리기가 점입가경입니다. 북한 퍼 주기에 동참하지 않는 한 정부여당, 방송, 시민단체 등이 염화시중의 눈짓을 주고받으며 그 강도를 계속 높여갈 겁니다. 다음은 2000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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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 체제 이후 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 외환위기의 원흉으로 재벌이 지목되었다. 이 결론에는 비단 정부와 여당만이 아니라 언론과 학계, 여론도 한 목소리를 냈다.
   외환위기에 대한 원인진단을 재벌의 문어발 확장, 황제 경영, 과다 차입, 중소기업 착취로 결론지었다. 전정권의 정경유착도 이에 빠질 수 없었다.
  
   재벌과 YS 정권을 비롯한 과거 역대 정권 전체가 국가 위기의 주범이라고 단죄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재벌과 야당은 나라 말아 먹은 주범으로 사라져야만 할 악의 집단으로 전국민에게 각인하기 위해 현정부는 언론과 학계를 총동원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야당은 국정 파트너가 될 수 없었고 한국 현대사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임시 정부에서 곧 바로 이어지는 국민의 정부라는 뜻에서 제2 건국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과다차입의 원흉인 재벌은 200% 부채 비율 2년만에 무조건 달성하기, 빅딜 강요 받기, 사업 축소 내지 전문화하기, 기업 총수 내쫓기기(대한항공, 대우, 현대 등), 사외 이사 전면 도입하기, 재벌 총수의 비서실 폐지하기 등으로 사정없이 얻어맞아 얼굴을 들고 나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얼굴이 퉁퉁 부었기 때문이다.
  
   30대 기업의 반이 사라졌지만, 대기업은 여전히 한국 수출의 70% 이상을 차지하여 현 정부가 최대의 치적으로 자신하는 외환보유고 850억 달러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이를 인정하는 곳은 대기업 자신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누구도 따뜻한 눈길을 보내지 않는 듯하다.
  
   희한한 일은 대기업이 전혀 끼어 들 수 없었던 금융개혁만 보더라도 현정부의 능력이 얼마나 과대 포장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이다. 각각 7조원 이상의 돈을 퍼부었지만, 서울은행은 아직도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고 제일은행은 겨우 5천억 받고 지분을 50%나 외국에 넘겼지만, 풋백 옵션에 의해 올해만 또 다시 5조원을 더 투입해야 한단다. 내년에 또 몇 조원이 더 들어갈지 아무도 모른다.
  
   자본금 12조원이면 기가 막힌 새 은행을 하나 만들 수 있다.
   멋진 외국 우량 은행을 하나 살 수 있다.
   우리 대기업이 국민 경제에서 그렇게 못된 역할을 할까. 그렇게 규모가 클까.
   OECD나 IMF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건 없지만, 큰 방향은 귀기울일 점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융 개혁과 공기업의 민영화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부채 비율 축소도 이들이 단골로 주문한다. 이 중에서 우리 정부나 언론, 학계는 주로 대기업의 개혁에만 신경을 집중시키지 않나 한다.
  
   그런데 이 셋 중에서 OECD나 IMF가 가장 모르는 부분이 한국의 대기업이다. 이들은 30년 전부터 줄곧 한국의 재벌은 반드시 망한다고 했지만, 무려 30년 동안 나날이 발전했다. 마침내 몇몇 대기업은 선진국의 대기업을 능가했다. 30년 동안 저들의 예측이 모조리 빗나갔다는 말이다.
  
   외환 위기 이후 드디어 예측이 딱 한 번 맞아 떨어져서 완전히 망할 줄 알았는데, 반이 무너지고도 한국의 대기업은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주문 중에 한국의 대기업에 대한 것은 상당히 에누리하고 들어야 한다. 음모설을 내세워도 좋을 정도이다.
   공병호씨 말처럼 한국에는 대기업을 연구해서 박사 학위를 딴 사람이 거의 없는데, 누구나 전문가를 자처한다. 학위 받았다고 꼭 전문가라는 법은 없지만.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금융개혁과 공기업의 민영화는 OECD나 IMF가 쌓은 지식과 정보가 방대하고 정확하다. 이건 이들의 말을 듣는 게 우리 나라 경제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수많은 나라가 거의 비슷한 공식(formula)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서는 OECD나 IMF가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강도 있게 저들이 오히려 놀랄 정도로 개혁 조치(부채 200%, 결합재무재표, 빅딜 등)를 밀어 붙이는 반면에, 금융개혁과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거의 충고에 귀기울이지 않고 정부의 생각대로 철저히 한국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결과는 참담하다.
   금융구조조정에 공적 자금 90조원을 투입하고도 다시 정부 말만으로도 30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하고 금융연구원 등에서는 40조원은 분명히 더 투입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도 잘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공기업 민영화에 이르면 더욱 황당하다. 정부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된다. 알고 보니 우리 나라 공기업이 30대 기업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1997년말 기준으로 공기업의 자산이 무려 542조원, 30대 기업의 총자산이 435조원. 대기업은 계속 줄어서 1999년말에 422조원. 공기업은 계속 늘었는데, 현재는 얼마나 되는지 통계가 나와 있지 않다.
  
   한전 하나만 해도 64조원으로 재계 2위인 삼성 그룹 전체 자산 67조원에 육박한다. 당장 30대 기업(자산 3조원 이상)에 편입될 수 있는 기업만 해도, 무려 11개로 이들 자산만 해도 160조원이다.
  
   만약 한전을 민영화해서 4대 기업 중에 어느 한 기업이 이를 인수한다고 하면 순식간에 2위와 격차가 두 배로 늘어난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은행이 있다.
  
   정부가 대주주로 되어 있는 은행을 포함하면 공기업의 자산은 1,000조원이 될 것 같다. 한빛은행 하나만 해도 자산이 83조원이다. 우리 나라 최대의 단일 법인도 정부가 대주주인데, 그 자산이 무려 100조원에 이른다. 현대 전체 자산이 88조원임을 감안하면 우리 나라의 공기업 비중이 얼마나 큰지 실감날 것이다.
  
   우리 나라 최대 기업은 바로 농협이다. 자산이 무려 100조원이다.
  
   정부가 공기업을 민영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공기업을 국내 기업에 인수시키면 안 그래도 재벌이 너무 커서 우리 나라를 망쳤다고 했는데, 재벌이 순식간에 두 배 세 배로 커진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실질적으로 대기업 외에는 공기업의 덩치가 워낙 커서 인수할 주체가 전혀 없는데, 만약 시장경제 논리에 충실하여 이들을 대기업에 인수시킨다고 하면, 한 대기업의 자산이 현재 최고 88조원에서 300조원으로 늘어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그렇다고 전부 외국에게 넘기자니 애국심이 발동해서 안 되겠고. 결론은 미적거리기다. 흐지부지하기다.
  
   두 번째 이유는 탐이 나도 보통 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는 순간 재벌 전체보다 훨씬 큰 공기업이 수중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충성을 다 바쳤으나 보상을 못해 준 사람들에게 놀고 먹는 공기업 사장, 이사, 고문 하나 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국회의원 공천에 밀린 사람들, 국회의원에 낙선한 사람들 -- 이들의 입막음용으로 공기업은 기가 막힌 전리품이다.
  
   외환위기 이후 신한은행(재일동포가 대주주)과 외국 은행 외에는 실질적으로 시중은행은 모조리 국가은행이 되어 버렸다. 외환 위기의 핵심은 사실은 관치금융인데(이렇게 보는 사람이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많다), 개혁을 한다면서 관치금융이 더욱 더 강화된 것이다.
   정부는 스스로 수렁 속으로 자꾸 빠져 들고 있다.
  
   전문 경영을 대기업에게는 그렇게 강요하면서도 공기업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더욱 드물다. 논공행상의 대상일 따름이다. 어찌 좋은 사람을 앉혀 놓았다 해도 시시콜콜 온갖 간섭 다한다. 그래서 이젠 모 은행장에 탁월한 금융인 한 분을 모시려 했지만, 끝내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나마 임기를 제대로 채우기도 힘들다. 까딱 잘못하면 쇠고랑 찬다. 부정부패자로 몰려서 개인 재산도 다 빼앗긴다.
   문제는 길어봐야 이제 2년 반이면 현 정권이 물러난다는 점이다. 다음 정권 들어서면 또 확 바뀔 게 틀림없다. 적당히 자리보전하는 게 최고다. 지금까지 죽 그래 왔다. (전문 경영인 체제가 거의 확립된 포철은 예외)
  
   재벌 총수는 10년이고 20년이고 30년이고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그대로이기 때문에 무능력한 전문 경영인은 가차없이 쫓겨나지만, 공기업은 주인(?)이 5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해바라기 잘하고 손발 잘 비비면 된다.
  
   공기업이 대규모 기업집단(재벌)보다 더욱 문제가 심각한 점은 대부분 독점 기업이라는 것이다. 대규모 기업집단은 아무리 사업 다각화(문어발확장)를 한다고 해도 공정거래법에 의해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할 수 없다. 그러나 공기업은 100%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 땅 짚고 헤엄치기요, 졸면서 돈 벌기다. 누구도 주인 의식이 없어서 서로 서로 좋은 게 좋다. 경영진이나 노조가 따로 없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돈 빼 가는 게 가장 현명한 짓이다.
  
   외환위기 이후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 공기업은 느슨하기 짝이 없다. 사기업에 도저히 비길 바 못된다.
  
   우리 나라의 대기업은 분명 문제가 많다. 고쳐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기업을 그대로 둔 채, 은행을 정부가 손댈수록 수렁 속으로 자꾸 빠뜨리는 참으로 한심한 능력으로 대기업에 온통 말씀과 호통을 쏟아 붓는 것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업은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공기업을 개혁해야 한다.
  
   먼저 자신을 고쳐야 한다. 국가 예산보다 훨씬 많은 1년에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주무르는 공기업, 독점 기업 공기업, 이를 손대지 않고 그보다 훨씬 잘하는 대기업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은 슬프디 슬픈 거대한 희극이다.
   (2000. 6. 4.)
  
  
[ 2005-09-26, 20: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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