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신설동 풍경

이따금씩 시간을 내어 조용히 흐르는 청계천을 따라 동묘(東廟) 부근까지 산책을 한다. 사람들이 들끓는 동묘 옆길의 벼룩시장을 지나 길을 건너면 오래된 낡은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그 앞의 인도에서 나는 60년 전 창신동에 있는 유치원을 향해 가방을 메고 혼자 타박타박 걸어가던 꼬마인 나를 만난다. 고향 동네인 그 부근은 지금도 깊은 우물 속같이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 낡고 오래된 단층 벽돌건물의 귀퉁이에는 초라한 작은 만두가게가 있었다. 둥그런 낡은 솥에는 하얀 김이 솟아나왔다. 작은 만두가게의 쪽창을 통해 늙은 가게 주인의 우수 어린 옆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는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에 앉아 선반 위에 놓인 흑백 텔레비전에 망연히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시대에 밀리는 그의 찐빵과 만두를 누가 사먹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벼룩시장 근처의 돈 없는 노인이나 노숙자들이 가끔씩 싼 맛에 사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산책길에 다시 그 앞을 지나가는 데 작은 만두가게는 연기같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핸드폰을 파는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만두가게 늙은 주인의 우수에 찬 옆모습이 망연히 떠올랐다. 작은 만두가게 주인이라는 그의 세상에서의 배역이 끝이 나고 그는 무대에서 떠난 것 같았다.

동묘를 지나 신설동 네거리 조금 못 미처 보문동 쪽으로 꺾어지는 길이 내가 뛰어놀던 곳이었다. 60년 전 그곳은 가난한 동네였다. 낙산 밑과 청계천변에는 판잣집들이 게딱지 같이 붙어 있었다. 겨울이 되면 길가의 작은 가게를 빌려 어머니는 편물점을 했다. 넉넉하지 못한 시절 사람들이 헌 스웨터를 가지고 오면 실을 풀어 다시 짜주는 삯 뜨개질이 많았다. 나는 어머니 옆에서 푼 실에 초를 먹이고 그 실을 깡통에 감곤 했었다. 스웨터가 공장에서 기계로 대량생산이 되자 우리의 작은 편물점은 문을 닫았다.

편물점 맞은편에 구두방이 있었다. 구두방에 기술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내 또래의 아이를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구두방이 문을 닫았다. 도제(徒弟)로 들어간 아이는 구두밑창을 재봉하지 않고 본드로 붙이면서 더 이상 구두제작은 기술이 아니라고 하면서 문을 닫은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 동네의 건강을 지켜주는 유일한 작은 의원(醫院)이 있었다. 항상 진료실에서 묵묵히 혼자 있던 의사 선생님은 나이 90이 넘도록 자리를 지켰다. 내가 서너 살 때 체하면 그 의원에 가서 겁에 질려 울면서 주사를 맞았다. 그 의사는 실연한 동네 처녀가 먹은 수면제를 토하게 하기도 하고 살이에 지쳐 싸운 사람들의 상처를 꿰매주기도 했다. 왕진을 와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죽음을 증명해 준 사람도 그 의사였다.

내가 이십대 초 어느 겨울날 그 의원에 갔었다. 늙은 의사는 찬 링겔병을 무쇠난로 위의 주전자 속 미지근한 물에 넣었다가 내게 주사를 놔 주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였다. 아흔 살이 넘은 그 의사는 가난한 동네에 유일하게 남은 역사였다. 몇 년 전 다시 그 앞을 지나칠 때였다. 담쟁이가 기어오르던 작은 의원이 없어지고 그 자리는 스마트 폰을 파는 점포로 바뀌어 있었다.

고향 풍경이 색이 바래듯 하나 둘 그렇게 사라져 갔다. 좁은 골목에 있던 만화방도 없어졌다.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던 목욕탕도 마트로 변했다. 교회 앞의 늙은 고목나무만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아직도 남아 옛날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이따금씩 고향인 신설동을 찾아간다. 기억 저쪽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걷고 있는 소년인 나를 보기도 한다. 세월 저쪽에서 가물가물 학생 모자를 쓴 청년이 비 내리는 버스 차창에 내내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동네 의원 선생님같이 일생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성경을 읽으며 일생 변호사의 길을 따라 내려왔다. 가을 들판에 조용히 피어있는 들꽃 같은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만해도 내겐 고마운 세월이라는 생각이다.










[출처] 신설동 풍경|작성자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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