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나라 10개가 모두 게르만족 국가
역시 법치가 행복을 만든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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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지속가능해결방안모색네트워크(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가 지난 주에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는 국가별 랭킹을 냈다. 가장 행복한 나라 10개는 다음과 같았다.
  
  1. 핀란드
  
  2. 덴마크
  
  3. 노르웨이
  
  4. 아이슬란드
  
  5 네덜란드
  
  6. 스위스
  
  7. 스웨덴
  
  8. 뉴질랜드
  
  9. 캐나다
  
  10. 호주
  
  
  
  가장 행복하지 못한 나라 10개는 이렇다.
  
  1. 남수단
  
  2. 중앙아프리카공화국
  
  3. 아프가니스탄
  
  4. 탄자니아
  
  5. 르완다
  
  6. 예멘
  
  7. 말라위
  
  8. 시리아
  
  9. 보츠와나
  
  10. 아이티
  
  가장 행복한 나라 10개는 인종적으로 게르만족이 많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다섯 나라는 바이킹의 후예들이 많이 산다. 게르만족과 그 일족인 바이킹은 야만인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때도 법치 하나는 확실하였다. 법이 안정된 제도를 만들고, 그것이 안정된 삶을 가능하게 하며 그 속에서 행복이 우러나는 것이다.
  
  한국과 안보상 처지가 비슷한 이스라엘과 대만이 한국인들보다 훨씬 행복감을 갖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이스라엘은 150여개국 중 늘 11~13등으로 나온다. 한국은 54~57등이다. 자주국방하는 보람과 자주국방을 피하는 심리의 차이가 아닐까?
  
  행복지수의 조건은 국민소득, 사회적 지원, 건강수명,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이다. 정부가 국민행복과 불행의 가장 큰 요인이다.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와 자유를 제한하는 나라의 차이가 행 불행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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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히스토리 채널의 연속 드라마 ‘바이킹’엔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史實(사실)에 충실하다. 8세기 말에서 12세기까지 유럽을 뒤흔든 바이킹-노르만은 용맹하고 잔인하고 영리한 戰士(전사)들이었다. 이들은 유럽 기독교 문명을 공격하다가 기독교화 된다. 문명 파괴자가 문명 건설자로 바뀐다. 천주교의 개혁을 지원하고 십자군 전쟁에 앞장서고 로마네스크 건축 붐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바이킹 시절의 野性(야성)과 용맹성은 잃지 않았다. 바이킹-노르만은 정복지를 잘 다스려 一流 국가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이들이 다스린 나라들은 예외 없이 富國强兵의 法治국가가 되었다. 잉글랜드, 시실리 왕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그런 비결의 핵심은 이들의 法治(법치) 정신이었다. 야만 상태에서도 法的 제도와 전통을 유지, 발전시켜간 점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바이킹-노르만의 法(법)에 대한 관점이 독특했다. 그들은 법을, 正義(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질서로 여겼다. 그들의 법 집행은 증거와 證人(증인)을 重視(중시)하고, 매우 실용적이었다. 바이킹은 나쁜 행위가 반드시 나쁜 사람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殺人(살인) 행위에 대한 처벌도 슬기롭게 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일정한 時限(시한)에 자수하면 정상을 참작하였다. 바이킹 법은 살인한 자는 행위를 한 뒤 만나는 첫 번째 사람에게나 세 집을 지나치기 전에 자수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살인을 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을 경우엔 추장이 재판장 역할을 하는 주민회의에서 피살자 가족에 대한 배상을 하는 조건으로 死刑(사형)을 면제해주기도 했다.
  
   사람을 죽이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밤에 몰래 죽이는 행위는 용서하지 않았다. 바이킹은 善과 惡보다는 명예와 수치심을 法治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정정당당한 행동을 했느냐의 與否(여부)가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잣대가 되었다. 예컨대 누군가가 사고를 만나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행위는 살인죄에 준하여 처벌했다. 회식 장소에서 살인이 벌어지면 모든 참석자들은 가해자를 체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는 피살자 유족들에게 배상해야 했다. 도둑질을 하다가 발각된 절도범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지만 강도를 죽여선 안 된다. 절도는 피해자 몰래 하지만 강도는 面前(면전)에서 이뤄지므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은 보장되었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사소한 절도에 대한 처벌법은 통로를 만들어 지나가게 해놓고 마을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 집단 폭행에서 빠지는 주민에겐 벌금을 물렸다. 범죄자 처벌을 공동체의 의무로 규정한 것이다. 종북세력에 대해서도 한국인이 이런 法的 의무를 지도록 하면 문제 해결이 쉬울 것이다.
  
   법치엔 王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천재지변이 잦고 농사를 망치고 바다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주민들이 굶게 되면 神(신)에게 황소를 잡아 바쳤다. 효과가 없으면 산 사람을 祭物(제물)로 바쳤다. 이것도 소용이 없으면 왕을 祭物(제물)로 바쳤다.
  
   바이킹은 ‘피의 독수리’라는 잔인한 死刑(사형) 집행 의식을 지녔다. 바이킹이 남긴 詩와 그림에 소개된 방법은 이렇다. 히스토리 채널 시리즈 ‘바이킹’에선 그 장면이 생생하게(처참하게) 방영되었다. 이 사형 방식은 왕이나 주교, 또는 추장과 같은 자가 重罪(중죄)를 범했을 때 적용하였던 것 같다.
  
   사형수의 등을 칼로 갈라 가죽을 벗기고, 등뼈를 드러낸다. 갈비뼈를 부러뜨려 날개처럼 펼친다. 상처엔 소금을 뿌린다. 허파를 등 뒤로 잡아 당겨 어깨 위에 얹어 놓는다. 이 모습이 ‘피로 그린 독수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렇게 칼질을 해도 사형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아야 한다.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버티면서 죽어야 바이킹 신화에 나오는 오딘 神(신)을 만날 수 있다. 한번이라도 소리를 질렀다가는 죽어서 좋은 데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캔터베리 대주교, 잉글랜드의 노슴브리아 왕, 노르웨이의 왕자가 이런 형을 받아 죽었다고 전한다.
  
   노르만 戰士(전사) 집단의 이탈리아 남부 정복 역사를 다룬 책 ‘南의 北人’(The Normans in the South, 1016-1130) 著者 존 율리우스 노르위치(John Julius Norwich)는 유럽에서 無法(무법)천지를 만든 노르만과 바이킹이 法治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였다는 것은 하나의 파라독스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파렴치한 노르만 지배자라도 아주 독창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곤 하였다는 것이다. 노르만 戰士들은 국가를 세우는 데는 법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법치를 강화하는 것이 정권을 강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계산하였다. 이들은 법을 도덕적으로 보지 않고 실용적으로 인식하였다.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 헨리 2세와 시실리의 노르만 王朝 건설자 루제로 왕은 치밀한 법적 제도를 갖추는 데 총력을 경주하였다. 그들은 법을, 관념적 理想(이상)이나 正義(정의)라고 착각하지 않았다. 노르만은 법을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여겼다. 노예는 튼튼할수록 도움이 된다. 법치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지배자와 공동체에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야만의 바이킹이 유럽 문명의 위대한 遺産(유산)인 法治의 한 건설자가 된 것은 세계사에서 가끔 발견되는 경이로운 逆轉劇(역전극)의 한 幕(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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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의 美學: 유목민의 경우
  
   "위험한 변경(The Perilous Frontier)"은 북방 유목민족 전문학자 토마스 J.바필드가 쓴 책인데 이런 대목이 있다.
  
   <이 기마유목민족들은 가장 발달된 정착문명인 중국과 인접하여 살면서도 중화적 문화와 이념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속으로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경멸했다. 돔의 천장 같은 광활한 하늘 아래에서 말젖과 말고기를 먹으면서 천막에서 나고 죽고 전쟁과 모험을 동경하는 자신들의 삶이 농경민족보다도 더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목축생활이 유지될 수 있었고 이에 기초한 기만군단의 우세도 계속될 수 있었다.>
  
   高麗史에는 몽골장군 흔도가 고려 장군 金方慶(김방경)에게 한 이런 말이 실려 있다.
  
   <내가 보건대 고려 사람들은 모두 글도 알고 불교를 믿는 것이 漢族(한족)과 유사한데 매양 우리를 멸시하면서 "몽골 사람들은 살륙만 일삼으니 하늘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하늘이 우리에게 살륙하는 풍속을 준 것이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에 불과하니 하늘은 그것을 죄로 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대들이 몽골 사람들에게 굴복하게 된 까닭이다.>
  
   먹물 먹은 사람들에 대한 武士들의 경멸과 "우리식"에 대한 자부심을 담고 있는 흔도의 이 오기서린 일갈은 몽골기마군단의 파괴력이 자라난 정신적 토양, 그리고 그들의 美學을 보여주고 있다.
  
[ 2019-03-25, 01: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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