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범인으로 믿었던 두 사람
[實錄연재]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나 기다리신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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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注―‘김기철 씨는 왜 요절했나’는 1981~1982년에 걸쳐 월간 〈마당〉에 연재 후, 1987년 한길사에서 나온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에 포함되었다가 2011년 조갑제닷컴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현재는 절판)되었다. 조갑제 기자가 가장 애착 가는 기사로 꼽은 이 글을 조갑제닷컴에 재연재한다.
‘김기철 씨는 왜 요절했나’ 4장 공소시효 끝나다 ①

  
  4. 공소시효 끝나다
  
   <저자注> 내가 1981년 10~12월호 <마당>에 세 차례 연재했던 ‘근하 군 살해 사건의 입체 연구’는 이 사건을 化石(화석)이 아닌 神話(신화)로 만드는 데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그 기사는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읽혔다. 기자 재교육장에선 교재로 사용되었다. <神話 1900>이란 연극(각본 윤대성, 실험 극장, 1982년 대한민국 연극제 공연)으로 탈바꿈하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늘 미흡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주연배우 두 명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그 기사를 썼다는 자책감 같은 것이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두 주인공을 찾기 위해 광고도 세 차례 내었으나 소득이 없었다. 재판기록에 나타난 생년월일이 주민등록상의 그것과 달라 현주거지 확인도 잘 되지 않았다.
  
   김근하 군 살해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나, ‘내가 범인이다’라고 나서도 처벌을 할 수 없는 1982년 10월17일을 석 달쯤 앞둔 어느 날, 인천에서 황덕수라는 분이 나를 찾아왔다. 원고 한 뭉치를 들고서.
   “선생님은 그들이 무고하다고 썼지만 나는 그들이 범인이라고 아직 믿고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을 한번 읽어보십시오.”
  
   그는 근하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김태현 검사가 데리고 다녔던 민간인 수사원 구영근 씨의 밑에서 수사를 거들었던 사람이었다. 사법경찰관이 해야 할 성질의 수사까지도 그때 열아홉 살이었던 황 씨는 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을 보는 황 씨의 눈은 검찰 측의 그것과 같았고 그래서 나의 직업적 흥미를 돋우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범인이다’는 생각을 15년 동안 간직하여왔다는 점에서 황 씨의 견해는 검찰뿐 아니라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풀려난 김기철 씨 등을 그 뒤로도 의혹의 눈초리로 지켜보았던 일부 이웃들의 의식도 얼마만큼은 대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황 씨는 내가 쓴 원고지 400장분의 기사를 읽고도 자신의 생각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조 선생님, 너무 그렇게 검사들만 나쁘게 보지 마십시오, 선생님은 검사가 전과자의 각본에 말렸다고 썼지만 김 검사가 그럴 분이 아니에요. 한 달 동안 그들과 같이 지내고 친해지기까지 했던 나는 그들이 범인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더구나 조 선생님은 금식이와 대범이를 만나지 않고 이 기사를 썼지 않습니까? 지금 만나보면 다른 얘기가 나올지 모릅니다.”
  
   그는 나의 아픈 데를 건드렸다. 아니 약점을 찌른 것이었다. 근하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서 김금식 씨와 정대범 씨는 검사들이 타고 있는 마차를 끈 두 필의 말이었다. 이 두 말은 가는 방향까지도 마음대로 잡아나갔다. 두 말은 비탈길을 오르다가 스스로 줄을 끊어버렸다.
   마차는 검사들을 태운 채 비탈 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결정적 시기에 가서 이런 반역을 한 두 사람과 만나지도 않고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이미 발표된 기사나 판결문으로만 추리한 것은 또 다른 誤報(오보)가 아닌가 하고 황 씨는 나를 추궁했던 것이다.
  
   나는 취재의 미흡함을 보충하고 나의 믿음(그것은 또한 법원의 확신이기도 하다)을 재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황덕수 씨와 같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깨끗이 씻어주기 위해 두 주인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러면 먼저 황 씨가 가진 의심의 구조와 그가 이 사건에서 맡았던 역할을 알기 위해서 황 씨가 써온 手記(수기)를 한번 읽어보자.
  
  
  [검찰 측 수사 요원의 수기] 내가 범인으로 믿었던 두 사람(上)
  
  “너 심부름 좀 할래?”
  
   1968년 5월2일,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들자 부산의 번화가 남포동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나(황덕수)는 남포동2가에 있는 ‘팔광류’라고 하는 무술도장에서 관원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때 고모부의 친구로, 경찰 유도사범을 한다던 구영근 씨(신분은 민간인)가 나를 찾아왔다.
  
   “덕수야! 너 심부름 좀 할래?”
   “무슨 일인데요?”
   “응, 누굴 미행하는 일이다.”
   “예, 하지요. 미행하는 게 여자라면 더 재미있겠는데….”
   나는 지레짐작으로 바람난 어느 여자를 그 남편의 부탁으로 미행하는 줄 여기고 신바람이 나서 具(구) 사범의 뒤를 따라나섰다.
  
   남포동 차도에는 검정색 지프 한 대가 대기해 있었다. 차 번호는 22호가 아니면 55호였던 걸로 기억된다. 구 씨를 따라 그 차를 타고 달려간 곳은 부산지방검찰청 앞이었다. 그는 지검 앞 ‘천수다방’이란 곳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커피 한 잔을 시켜주고는 나가버렸다. 커피를 마시며 얼마 동안 앉아 있자니 한 중년 신사가 다방 입구에 나타나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나를 불렀다. 다방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그를 보자 “영감님, 어쩐 일이십니까?”며 모두들 인사를 했다. ‘영감’이라고 불린 그 사람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나에게 신문하듯 몇 가지를 물었다.
  
   “너 18살이지?”
   “네.”
   “너 이름이 덕수지?”
   “네.”
   “내가 시키는 일을 할 수 있겠어?”
   “네.”
  
   나는 얼떨결에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는 그를 따라 다방의 2층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내가 타고 왔던 그 지프에 올라탔다. ㄷ자형으로 생긴 뒷자리엔 구 씨와 함께 낯선 세 사람의 얼굴이 어둠 속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중년 신사가 앞자리에 선임 탑승을 했고, 앉을 자리가 없어 나는 운전사와 중년 신사 사이의 뒤쪽 바닥에 주저앉았다. 중년 신사의 지시로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차안에는 여전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구 사범님, 뭐하러 가는 거요?”
   나의 목소리가 차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도둑놈 잡으러 간다.”
   “이 밤중에요? 굉장한 놈인 모양이네요. 도둑놈 같으면 경찰들이 할 일이지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합니까?”
   “그래! 필요해.”
   나는 잠시 후면 전개될 상황을 제멋대로 그려보면서 호기심과 흥분으로 가슴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차는 서면 로터리를 지나 가야동 쪽을 향했다. 지프는 가야동의 어느 으슥한 골목길에서 멈췄다.
  
   “덕수야, 저자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든지 도망치려고 하면 반죽음을 시켜도 괜찮으니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구 씨가 내 곁으로 다가와 뒷좌석에 타고 있던 한 사나이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도리우치’라 불리던 빵모자를 푹 눌러쓰고 뒷자리의 중간에 앉아있던 덩치가 큰 사나이였다. 자세히 보니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수갑을 차고 있었다.
  
   “구 사범님, 뭐하는 자입니까?”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슬며시 물어보았다. 그러나 구 씨는 “나중에 알게 돼”라는 말밖에 더는 일러주지 않았다. 빵모자의 사나이는 손짓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무어라고 지껄였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중년 신사가 뒤를 돌아보며 구 씨를 불렀다. 중년 신사로부터 무슨 지시를 받고 내 곁으로 되돌아온 구 씨는 혼잣소리로 “납치를 하라니 그걸 어떻게 해”라며 투덜거리더니 나에게 이렇게 지시를 했다.
   “너 저 앞 합승회사로 가서 취직을 하러 온 척하면서 김이수라는 자가 아직도 배차 업무를 보고 있는지 한번 알아봐.”
  
  김기철과의 인연
  
   구 씨는 중년 신사가 내린 지시를 다시 나에게 시키는 듯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며 버스회사로 다가갔다.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종점에 정차 중인 여러 대의 합승버스 중에 조수 차림의 젊은이들이 모여앉아 있는 차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젊은이들한테 접근, 김이수의 동생뻘 되는 사람이라고 둘러댄 뒤 이것저것 캐물어보았다. 김이수는 이미 그 회사를 그만둔 뒤였고 범천동 돌산 부근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구 씨에게 보고했고, 구 씨는 다시 중년 신사에게 마치 자기가 확인한 것처럼 보고를 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차를 돌려 범내골 로터리 쪽으로 향했다. 밤 12시가 넘은 모양이었다. 로터리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입초 순경이 손전등으로 차 안을 비추어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차 넘버 보면 몰라!?”
   중년 신사가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모르겠습니다.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야! 바빠. 빨리 바리케이드 치워!”
   “그래도 신분을 밝혀주셔야지요.”
   입초 순경은 쉬 물러서지 않았다.
   “나 부산지검 검사야!”
   그제야 순경은 차 번호판을 확인한 뒤 바리케이드를 치워주었다.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중년 신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입초 순경이 저 정도는 되어야지! 어떤 녀석은 ‘차 번호 봐!’ 하면 얼른 경례를 붙이고 통과시키고 말거든.”
  
   나는 비로소 이 중년 신사가 검사임을 알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나의 호기심도 더 커졌다. 범내골 변전소 앞에 차를 세워두고 돌산으로 향했다. 돌산에는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에 차가 올라갈 길이 없었다. 빵모자 사나이의 확인으로 김이수의 집을 알아낸 우리는 다시 큰길 쪽으로 내려왔다. 차를 세워둔 곳이 가까워지자 金 검사는 나에게 따로 지시를 내렸다.
   “덕수! 사람은 信義(신의)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맡은 바 책임은 끝까지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이곳으로 다시 와 김이수의 행방을 알아주기 바란다.”
   그러고는 운전기사에게 나를 집에까지 태워다 주라고 말했다. 나는 마침 검사의 수사지휘를 직접 받는 수사관이 된 기분이었다.
  
   이튿날(5월3일) 새벽녘이 되자 나는 범천동 돌산을 향했다. 마침 김이수의 집과 앞뒷집으로 이웃하고 있는 곳에 나의 5촌 아저씨의 집이 있었다. 나이는 나와 별로 차이가 없었지만 촌수로 따져 5촌 아저씨뻘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김이수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방 뒤 벽 쪽에 붙은 조그만 봉창문을 열어 재끼면서 말했다.
   “니가 그 사람을 어찌 아노? 바로 저 집 아이가! 저어기 세수하고 있는 사람이 이수다.”
   5촌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흰 셔츠를 입은, 신체가 건장한 30대의 사나이가 세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돌산을 뛰어 내려와 공중전화통을 붙들었다. 검찰청으로 다이얼을 돌렸지만 너무 이른 탓인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검찰청 전화번호 밑에 ‘김태현 검사 자택’이라고 쓰인 번호를 돌려보았다.
  
   “여보세요.”
   중년 신사, 아니 김 검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여보세요, 저 덕숩니다. 김이수가 지금 집에서 세수하고 있는 걸 보고 전화를 겁니다.”
   “알았어! 저녁때까지 잘 미행하다가 검찰청으로 전화해!”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지난밤에 통금이 지나도록 쫓아다녔는데 막상 찾고 나니 저녁때까지 미행만 하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종일 김이수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오후 6시경 지금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검찰청에 전화를 거는 사이에 그를 놓쳐버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끝내 못 찾고 김이수의 집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터벅터벅 산길을 오르다 보니 사람들이 빙 둘러선 가운데에서 두 남녀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말다툼을 하고 있는 남자는 바로 내가 조금 전에 놓쳐버린 김이수가 아닌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 듯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동안 나는 재빨리 검찰청으로 전화를 했다. 싸움이 주위의 만류로 시들해갈 무렵 김 검사 일행이 들이닥쳤다. 具 씨가 김이수를 불러 세웠다.
   “여보! 잠깐 좀 봅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이러시오. 이웃끼리 약간 다툰 걸 가지고 누가 신고라도 했소?”
   김이수는 파출소에서 나온 사람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아니 잠깐 알아볼 일이 있으니 좀 갑시다.”
   “그래 갑시다. 가자면 못갈 것도 없죠.”
  
   그의 양쪽 팔을 구 씨와 또 한 사람이 꽉 끼었다. 순간 김이수는 뿌리치고 도망갈 자세를 취했다.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이러십니까?”
   옆에서 구경하는 척하고 있던 나도 합세를 했다. 합기도 도장에서 배운 연행술을 써먹었다. 이렇게 해서 몸부림치는 그를 변전소 앞에 세워둔 지프까지 끌고 내려와 검찰청으로 연행했다. 지프 속에서 검사는 말했다.
   “나는 모 경찰서 수사과장이다. 너 범일동 기원에서 김금식이와 함께 라디오를 훔친 일이 있지?”
  
  그것은 근하 사건 수사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굉장한 사건으로 여겼던 것이 고작 몇 년 전에 발생한 절도사건이라니. 그럭저럭 밤 12시경이 되었다. 우리는 부산지방 검찰청 2층에 있는 4호 부장검사실로 들어섰다.
   “구 사범님, 이따위 시시한 사건을 가지고 하루 종일 미행을 하게 만들다니, 담빡 잡아들이면 될 일을 갖고….”
   나는 투덜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영장이 없어 그런 것이야. 그리고 도둑은 아니니까 조금 있어 봐!”
  
   꼭 스무고개를 풀어나가는 듯한 알쏭달쏭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검사실에 들어서니 똥 냄새가 확 풍겼다.
   “누가 똥 쌌나?”
   “내가 쌌소.”
   대답한 것은 김이수였다. 구 씨가 닦으라고 신문지를 주었다. 해병대의 카키색 팬티를 벗어 김이수는 슥슥 문지른다. 구씨가 “야, 그 팬티 버려. 새 것 사줄게”라고 하자 이수는 “사긴 누가 사주어요” 하면서 다시 팬티를 입었다. 무뚝뚝하지만 듬직하고 저력이 있는 행동이었다. 부장검사실에서는 다시 김이수에 대한 신문이 시작되었다. 곁에서 커피를 마시며 건성으로 신문 내용을 듣고 있던 나는 ‘근하’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매일같이 신문, 방송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던 사건인지라 ‘근하’라는 이름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던 참이었다.
  
   “이 者가 근하 군 유괴 사건의 범인이란 말인가?”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동네 아주머니와 “너 새끼만 귀한 줄 알고 남의 자식 귀한 줄은 모르느냐”고 싸움질을 하던 이 사내가 남의 자식을 죽여 바닷속에 던져 넣으려 했던 사람이라니!
   그날 밤 김이수는 몇 년 전의 절도사건으로 긴급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부산교도소에 수감되었다(저자注―김이수는 김기철의 별명. 뒤에 김기철 씨는 살인혐의는 물론 절도 혐의도 벗었다). 그 며칠 뒤 具 씨가 또 나를 찾아왔다.
   “덕수야! 너 대신동에서 노는 대범이라는 친구 모르냐? 네 또래인데 유도, 합기도 3단에 왼손잡이라던데….”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날부터 또 예의 그 빵모자 사나이의 안내에 따라 완월동, 300번지 등 부산의 사창가를 헤매고 다녔다. 빵모자가 “정대범이는 완월동 X호에 잘 가는데…”라고 하면 그의 말에 따라 며칠을 두고 그곳을 헤매는 식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한쪽 손에도 수갑이 채워졌다. 그 사나이의 한쪽 팔과 내 팔이 수갑으로 연결되었고 그 위에 바바리 코트가 걸쳐졌다. 빵모자 사나이의 도망을 방지하고, 지나다니는 행인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목적인 듯했다.
  
   구 씨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빵모자를 눌러쓴 사나이는 현재 폭행죄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금식이란 자로서, 그가 근하 군 유괴 사건의 共犯(공범)이며 그의 자백에 따라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보도진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극비 수사를 펴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具 씨는 “우리 영감님은 유괴 사건 수사의 베테랑인 4호 김태현 부장검사인데, 너는 金 검사의 자연석을 수집하는 심부름꾼(김 검사는 자연석 수집 취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으로 행동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경찰에도 지시하지 않고 金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는 만큼 절대 비밀을 지키라고 다짐을 했다.
  
  
  (계속)
  
[ 2020-07-23, 11: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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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건     2020-07-27 오전 9:48
참 별일이네요. 흥미진진하구요. 검사 쪽에 서있던 이는 아직도 진범이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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