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스파이가 된 번역가, 유럽 최고기밀인 ‘원심분리기’ 기술을 빼내다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2)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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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의 비밀 핵 연구시설에 취직

A. Q. 칸은 1972년 3월 브라버스 교수의 추천으로 네덜란드의 한 기술 회사인 FDO에 금속공학 관련 번역가로 취직했다. 당시 루벤대학의 금속공학 과정은 유럽 전역에서 인정을 받아 이렇게 교수의 추천으로 취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FDO는 ‘네덜란드 울트라 원심분리기(UCN)’라는 회사에 부품과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UCN은 URENCO의 네덜란드 협력사였다. 당시 네덜란드 동부 알멜로 지역에 위치한 UCN 시설은 비밀리에 엄청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과거와 다른 원심분리기 기술을 사용해 우라늄을 농축하는 프로젝트를 연구 중이었다.

FDO에 근무하기 위해 칸은 네덜란드 정부의 신원조회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무슬림계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신원조회는 다른 내국인보다 까다로웠다. 핵 관련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FDO의 금속공학 부서장 역시 칸과 델프트에서 같이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는 칸이 이미 서방세계에 11년째 살고 있고 네덜란드인 부인과 자식 두 명을 이곳에서 기르는 등 문제가 없다고 했다. 칸의 학교 동료들은 칸이 귀화할 목적을 갖고 있다는 말도 신원조회 과정에서 해줬다. 네덜란드 정보당국(BVD)은 신원조회 과정에서 칸의 부인인 헨리가 네덜란드 국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사실 헨리는 네덜란드어를 할 수 있는 남아공 국적자로 영국 여권을 소지하던 사람이었다. FDO는 BVD에 칸이 하급 기밀 인가를 받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을 시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암스테르담에 있는 본부에서만 근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최고급 기밀의 원심분리기 기술 연구를 하는 알멜로 시설에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칸은 하급 기밀 인가를 받고 취직하게 됐다.

칸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FDO는 그에게 이틀 동안 알멜로 시설을 견학하도록 했다.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칸은 이들이 비밀리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미국뿐이었다. 이들 국가들은 ‘디퓨전’ 방식으로 우라늄을 농축했다. 돈이 많이 들고 매우 복잡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알멜로의 과학자들은 원심분리기라는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고 있었다. 디퓨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기술이었다. 당시 알멜로에서 사용하던 원심분리기는 CNOR이었다. 알멜로 연구진들은 이 원심분리기 기술을 사용해 전력을 만드는 수준까지 농축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무기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드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문제는 CNOR의 회전자(rotor)였다. 빠르게 회전하면 이를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게 됐던 것이다.

칸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 알멜로 연구진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갔다. 칸은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듣자 자신이 루벤에서 연구할 당시 이에 적합한 금속 물질을 알아냈다고 연락을 했다. 알멜로 연구진들은 칸에게 기밀 연구 도면은 물론, 물건을 납품하는 회사들의 명단을 전달했다. 칸은 유럽에서 가장 비밀리에 진행되던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얻어냈다.

1972년 후반 두 명의 파키스탄 과학자들이 FDO를 방문했다. 칸은 이들을 만나 자신이 아는 비밀을 소개하려 했으나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이들 과학자들은 파키스탄 정부의 임무를 받고 온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플루토늄을 통한 핵무기 개발을 하려 했다. 우라늄 농축이라는 기술이 존재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스파이가 된 번역가

그는 18개월간 조용히 생활하며 정보를 차곡차곡 모아갔다. 그러다 1974년 5월 TV를 통해 인도의 핵실험 장면을 목격하게 됐고 분노에 차 부토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게 됐다. 그해 9월 부토 총리가 자신을 도와 달라는 편지를 보내자 칸은 행복에 젖었다. 그러나 바로 일을 그만두면 생길 의심을 피하기 위해 크리스마스까지는 네덜란드에 머물겠다고 했다.

칸은 남은 3개월 동안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독일 과학자들이 G-2라고 불리는 원심분리기의 시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CNOR보다 훨씬 더 뛰어나며 더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오랫동안 지속됐다. 칸은 G-2의 청사진을 구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청사진을 구하는 것은 그의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G-2 관련 정보는 독일어로 쓰여 있었고 알렐모의 연구진들은 거의 네덜란드어와 영어밖에 할 줄 몰랐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 그리고 영어에 능통한 칸은 번역 임무를 자원했다. 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독일 연구진은 G-2 관련 정보를 12 파트로 나눠 보냈다. 한 명의 번역가가 모든 기밀을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칸은 2개의 파트를 번역하게 됐다. 이는 ‘G-2 사용법’이라는 파트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칸은 자신이 알멜로에 가서 번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멜로에 있어야 정확한 정보를 갖고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74년 그는 알멜로에 있는 임시건물에 책상을 얻었다. 이곳은 원심분리기 시설 바로 옆에 있는 건물로 최고 기밀 인가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칸은 번역 업무를 하는 다른 한 사람과 방을 같이 썼다. 그는 칸이 번역해야 하는 부분 앞쪽에 있는 부분을 번역하고 있었다. 이 인물은 훗날 수사과정에서 자신이 ‘책상을 비운 적이 여러 차례 있었고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관련 자료를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약 3주의 시간 동안 칸은 작은 검정색 공책에 기밀들을 받아 적었다. 그는 번역된 자료들이 FDO의 암스테르담 본사로 보내져 타이핑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칸은 오랫동안 FDO의 타이피스트들과 인맥을 쌓아왔다. 간식들을 건네고 수다를 떨며 쌓아온 친분이었다. 칸은 이들을 통해 전체 보고서를 다 읽을 수 있게 됐다.

부토 총리 “칸만이 핵보유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사람”

1974년 12월, 칸은 가족들과 함께 파키스탄 카라치로 떠났다. 그는 회사에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난다고만 했다. 부토 총리를 만난 칸은 우라늄 농축에 대해 강의를 했다. 파키스탄은 1956년에 원자력에너지위원회(PAEC)라는 기구를 만들고 플루토늄을 기반으로 한 핵개발을 하려 했지만 진전을 보이지 못해 왔다. 칸은 원심분리기 기술을 사용하면 플루토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핵개발을 할 수 있고 시간도 두 배나 빠르다고 했다.

칸은 계속해서 부토를 설득했다. 인도는 1974년 한 해 1억 3000만 달러의 예산을 핵개발에 사용했다. 당시까지 플루토늄 개발을 위해 10억 달러 이상을 썼다. 칸은 그가 훔쳐온 원심분리기 기술을 사용하면 6만 달러로 핵폭탄에 필요한 핵물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칸은 술레이만 산맥 인근에 엄청난 양의 우라늄이 매장돼 있어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해외에서 수입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칸은 이때 처음으로 무니르 아메르 칸 PAEC 위원장을 만나게 된다. 둘은 평생을 라이벌, 혹은 앙숙으로 지내게 된다.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무니르 아메르 칸 입장에서는 40세의 젊은 유학생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방법으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게 못미더웠다. 칸 박사는 부토 총리를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무니르와 그의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이고 사기꾼이다. 조국을 사랑하지도 않으며 당신에게 충성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부토는 “칸만이 파키스탄을 핵 보유국으로 만들겠다는 나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토 총리는 칸에게 가족을 데리고 네덜란드로 돌아가 우선 조용히 생활하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독일제 원심분리기와 관련해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라고 했다.

칸의 出國

A. Q. 칸은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당시 그의 집에는 외교관 자동차 번호판을 단 차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칸의 집을 방문했던 외교관들과 파키스탄 정보국(ISI) 요원들은 원심분리기 기술을 비롯한 더 많은 내용을 훔쳐올 것을 요구했다.

이때 칸이 접촉한 사람은 같은 회사 FDO에서 사무실을 함께 쓰는 프리츠 비어먼이었다. 그는 입사한 지 얼마 안된 젊은 기술자였고 회사 내부에서 사진 촬영 업무 등을 담당했다. 비어먼 역시 친구가 많지 않은 외로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비어먼은 자주 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어느 날 칸은 비어먼에게 알멜로 연구소에 있는 원심분리기 시설의 사진을 찍어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이런 내용은 비어먼이 월간 애틀란틱과의 인터뷰에 소개돼 있다. 사회 생활 경험이 적었던 비어먼은 칸이 이런 요구를 하자 두려웠다고 회고했다. 칸은 비어먼 집에 있는 서류들 역시 사진을 찍어 보여달라고 했다. 비어먼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칸은 비어먼에게 파키스탄을 여행할 수 있는 여비를 대주겠다고 했다. 그제야 비어먼은 의심을 갖게 되고 회사 상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불안했던 그는 그의 집 전화가 아닌 공중전화를 사용했다. 그리곤 칸의 집에서 열리는 만찬엔 여러 파키스탄 사람들이 참석하고 외교관 자동차 번호판을 단 차량들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칸의 서재에는 외부 반출이 금지된 회사 기밀 서류들도 놓여있었다고 했다. 상급자는 비어먼이 문제를 이유없이 키운다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975년 8월, 브뤼셀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 직원인 술프카르 아메드 버트가 네덜란드 회사로부터 고주파 인버터(전력변환장치)를 구입하려 나서기 시작했다. 이 장치는 원심분리기의 회전을 돕는 데 필요한 중요한 장치였다. 버트는 URENCO에서 연구 중이던 G-2 시안에 사용되는 정확한 부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URENCO의 연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것을 알 수 있었다.

1975년 10월, FDO는 칸을 불러 징계를 내리거나 추궁하는 대신 그를 다른 부서로 전출시켰다.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파악한 칸은 그해 12월 가족들과 함께 파키스탄 카라치로 떠났다. 그의 가방에는 그가 작성한 메모와 서류로 가득했다. 훗날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칸은 당시 원심분리기 CNOR과 G-2 시안에 필요한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의 목록과 설계도, 사용설명서 등을 들고 나왔다.

파키스탄으로 돌아온 칸은 부인 헨리를 통해 FDO 회사 측에 파키스탄으로 떠나게 된 경위를 설명하도록 했다. 그는 몸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후 칸은 프리츠 비어먼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칸은 프리츠가 자신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우리가 네덜란드를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며 “맛있던 치킨 요리가 점점 더 그리워지고 있다”고 했다. 칸은 프리츠 비어먼에게 자신이 곧 네덜란드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칸의 부인 헨리는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네덜란드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들은 칸의 가족이 언젠가는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FDO 역시 의심을 하지 않았다. 비어먼이 신고한 내용은 이렇게 묻혀버렸다. 칸이 서류가방에 핵기술 관련 문서를 담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네덜란드 정부가 파악한 것은 이로부터 3년 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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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03: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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