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Q. 칸의 반격: “北, 핵기술 확보 위해 파키스탄 軍部에 350만 달러 뇌물 전달”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19) / 이스라엘 정보당국 "파키스탄, 노동 미사일 구입 비용 4000만 달러 지불 못해 우라늄 농축 기술 이전"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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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단독범행인가, 아니면 정부도 개입했나?

이 시점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칸 박사의 북한 핵개발 협력과 관련해 다양한 주장이 있다. 큰 맥락에서 칸이 북핵 개발을 도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없다. 칸이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정부 몰래 핵기술을 이전했는지, 아니면 정부의 감독 하에, 혹은 묵인 하에 이를 진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주장이 나온다. 이런 논란은 이란과 리비아 등 국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나 북한 문제가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만이 실제 핵실험을 강행, 사실상의 핵보유국 수준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우선 무샤라프를 비롯한 전직 총리들과 육군참모총장 출신들은 칸이 해외에 핵기술을 판매하는 것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보고는 받은 적이 있으나 정부가 개입한 적은 없다고 한다. 일부는 아예 알지 못했다고 한다. 파키스탄이 정부 차원에서 칸을 지원, 핵확산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사람들은 크게 다섯 가지의 증거를 토대로 이를 주장한다. 정확하게는 파키스탄 정부가 북한 미사일의 대가로 파키스탄의 핵기술을 건넨 적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들고나오는 것 중 하나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증언이다. 그는 북한 노동 미사일의 대가로 파키스탄은 현금을 지급했지 핵기술을 전한 적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칸이 홀로 움직였다고 주장하는 측은 또 하나의 증거로 당시의 재정상황을 언급한다. 1996년 당시 파키스탄의 외화보유고는 바닥 상태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 미사일 구입을 위해 핵기술을 이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파키스탄은 북한으로부터 노동 미사일을 12~24기 정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가격은 약 48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추정된다. 파키스탄은 1995년부터 1996년 사이 총 8억 1900만 달러어치의 군수품을 수입했는데 이 정도면 노동 미사일도 무난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파키스탄이 북한의 노동 미사일을 필요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파키스탄의 미래가 걸린 ‘핵기술’을 교환할 정도의 값어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노동 미사일은 이미 수십 년 된 액체연료 미사일로 이보다 더 뛰어난 미사일은 많이 있었다. 이런 주장을 들고나오는 사람들은 북한이 이집트와 이란,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에도 미사일 기술을 돈을 받고 팔았는데 파키스탄이라고 왜 그렇게 하지 못했겠느냐고 한다.

네 번째는 파키스탄과 북한 사이에 핵협력이 이뤄졌다는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주장이다. 파키스탄의 수송기가 여러 차례 북한 평양에서 포착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사일 기술이 전달되는 것만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들이 들고나오는 마지막 증거는 무샤라프가 권력을 잡은 직후인 2000년 정보당국이 실시한 칸 연구소에 대한 감사 결과다. 정보당국은 핵실험 이후 칸 박사가 북한에 타고간 C-130 수송기를 조사했다. 핵 관련 기술을 몰래 비행기에 싣고 가져갔는지를 조사한 것인데 어떤 정보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부토 총리는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대가로 현금을 지급했다고 했다. 하지만 부토의 사후(死後) 출판된 회고록에서는 부토가 김일성을 만날 당시 ‘우라늄 농축 기술이 담긴 CD를 들고 갔다’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다. 부토는 죽은 뒤였고 파키스탄 정부는 극구 부인했으니 회고록에 담긴 내용 역시 완벽한 증거가 될 수는 없어 보인다. 또한 부토는 현금으로 모든 금액을 지불했다고 했으나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감청 내용에 따르면 이 역시 불확실하다. 이스라엘이 도청한 내용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1993년 노동 미사일 거래를 체결하고 북한에 4000만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1996년에 들어 파키스탄은 평양에 대금을 지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신 1992년 8월 북한 김영남(金永南)이 파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제안한 것처럼 우라늄 농축 기술을 전달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을 바꾼 칸 박사

파키스탄 정부가 칸의 핵기술 이전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평양을 오고 간 수송기에서 미사일 기술 외에 핵 관련 기술이 포착됐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한다. 이는 파키스탄이 당시 기록에 적혀 있는 대로 수송기에 어떤 품목이 실렸는지 공개하면 쉽게 해결된다. IAEA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여러 차례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파키스탄은 이를 제공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파키스탄이 시리아나 이란 등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돈을 주고 미사일을 사왔다는 주장이다. 당시 북한과 거래하던 국가 중 파키스탄만 유일하게 핵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북한이 돈보다 핵기술에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에 파키스탄을 여느 중동국가의 거래 방법과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칸 박사는 KRL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난 얼마 후인 2004년 자신이 핵확산에 가담했다는 자백을 한 뒤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단독적으로 핵기술을 확산했으며 정부의 개입은 일체 없었다고 했다. 외부와의 모든 교류가 차단됐고 그가 그렇게 좋아하던 언론과도 접촉이 끊겼다. 그런 칸은 2008년 7월 무샤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빠지자 침묵을 깨고 세상에 등장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00년 북한에 중고 P-1 원심분리기가 보내졌다고 했다. 그는 “북한 수송기가 사용됐고 군부는 관련 사실과 전달된 물건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무샤라프)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무샤라프는 1999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이런 언론 보도가 나오자 무샤라프 대변인실은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칸 박사는 2004년 자백 기자회견 당시에는 왜 단독으로 일을 처리했다고 말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당시 여당 핵심 인사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북한이 파키스탄 軍部에 뇌물을 줬다는 증거

2011년 7월 6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칸 박사가 북한의 전병호 무기개발 담당 책임 비서로부터 받은 편지를 입수해 보도했다. 편지의 작성일은 1998년 7월 15일이다.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한 직후다. 이 편지에는 파키스탄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 강태윤이 파키스탄에서 총격을 받고 숨진 부인 김사내의 시신(屍身)과 함께 북한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파키스탄 군부에 뇌물을 전달했으니 부탁한 물건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미국 언론들은 칸 박사가 추가로 공개한 성명서 등을 토대로 북한이 부탁한 것은 핵 관련 기술이었다고 보도했다. 의미가 있는 문건이기에 전문(全文) 번역해 소개한다.

A-Q-Kahn-Letter-2011-7-6.jpg

<각하,

귀하와 귀하의 가족 모두 잘 지내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강태윤 장군은 부인의 시신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귀하가 그에게 준 도움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바드룰 씨와 파룩 씨를 보내주고 공군의 보잉 수송기편을 마련해준 호의에 감사를 표합니다. 저는 강 장군이 타깃이었다고 확신합니다. 또한 CIA와 한국의 정보당국, 그리고 파키스탄 정보당국(ISIS)이 개입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이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돼 ISI가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처리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강 장군의 목숨이 위험에 빠져 있기 때문에 연(Yon) 씨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연 씨는 이란과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에서 근무했고 매우 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강 장군은  300만 달러가 카라맛 참모총장에게 지불됐고 50만 달러 및 다이아몬드와 루비로 만들어진 세트 3개가 줄피카르 칸 장군에게 전달됐다고 저에게 말해줬습니다. 약속하신 서류와 부품 등을 연 씨에게 전달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연 씨는 미사일 부품이 그쪽에 도착한 이후 돌아오는 비행기편을 타고 올 계획입니다.

각하, 최근 당신의 핵무기 실험들이 성공한 것에 대한 우리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아주십시오. 당신의 노력과 팀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각하, 건강과 장수(長壽), 그리고 당신의 중요한 사업에 성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문서 상단에는 ‘기밀(SECRET)’이라는 표시가 있다. 수신인은 ‘Dr. A. Q. Khan, Project Director, K. R. L’로 돼 있다. 문서 하단 발신인란에는 ‘Jon ByongHo, Secretary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D. P. R. of Korea’라고 쓰여 있다. 이 밑에는 한글로 ‘전병호’라는 서명이 휘갈겨져 있다.
 
카라맛 당시 참모총장은 이 편지가 가짜라고 반박했다. 그는 칸이 불법 핵확산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 한다고 했다. 편지에 언급된 줄피카르 칸 장군은 카라맛 참모총장의 측근이었다. 그 역시 편지는 조작됐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파키스탄 당국자도 편지가 가짜라고 했다. 공식 서한에 필요한 도장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짜 문서라고 했다. 이 당국자는 파키스탄 국내의 칸 지지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익명을 요구한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취재한 고위 미국 관료는 ‘정부 전문가들이 검토해본 결과 편지의 서명은 진짜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일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관료 역시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익명을 요구했다. 미국 정보 당국자들 역시 편지에 담긴 내용은 알려진 사실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편지는 영국의 기자 출신인 시몬 헨더슨이 워싱턴포스트에 전달하며 공개됐다. 헨더슨은 오랫동안 칸에 대한 글을 써온 사람이다. 그는 칸이 2004년 가택연금에 처하게 된 이후에 편지와 칸의 성명문을 입수했다.

칸 “내가 직접 참모총장에게 북한으로부터 받은 돈 전달했다”

칸의 성명문에 따르면 전병호는 1990년대에 파룩 레가리 대통령을 만나 파키스탄의 핵시설을 방문했었다. 레가리는 북한인 과학자들이 이 시설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칸은 1996년 노동 미사일에 대한 대금을 파키스탄이 계속 연체하게 되자 핵기술을 전달하는 대안이 논의됐다고 했다. 이는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입수한 첩보와 일치한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미국 정보당국자도 파키스탄이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했다.

칸은 편지에 덧붙여 보낸 성명문에서 북한이 파키스탄 군부에 뇌물을 전달한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강태윤이 50만 달러를 여행가방에 담아 카라맛에게 전달했으나 카라맛이 거부했다고 했다. 카라맛은 칸에게 강태윤을 만나 이 돈을 파키스탄 육군이 관리하는 비밀 계좌를 통해 전달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돈을 받으면 북한에 밀린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칸은 강태윤을 만나 50만 달러를 받은 뒤 직접 카라맛에게 전달했다. 참모총장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카라맛은 구미가 당겼고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카라맛은 칸에게 강태윤을 다시 만나보라고 지시했다.

칸에 따르면 강태윤은 이때부터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강태윤은 자신의 상관들이 “250만 달러를 추가로 제공할 뜻이 있지만 파키스탄이 우라늄 농축 기술에 도움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칸은 성명서에서 “남아 있는 250만 달러까지 직접 카라맛 장군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가방 하나와 상자 세 개에 나눠 담았다고 했다. 두 번에 걸쳐 전달했는데 한 번은 참모총장 관사에 직접 찾아가 전달했다고 했다. 상자 하나에는 50만 달러 현금이 담겼고 그 위는 과일로 채워졌다. 작은 가방에도 50만 달러를 담아 전달했다. 다른 상자 두 개에는 100만 달러씩 담았다고 했다. 관계자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증언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영변에서 발견된 파키스탄 원심분리기

파키스탄 원심분리기가 북한에서 사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칸이 편지를 공개한 얼마 전의 일이다. 2010년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견학했던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은 북한에 우라늄 농축 용도의 원심분리기가 2000개에 달한다며 시설이 매우 현대식이라 놀랐다고 했다. 그는 방문 이후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시설책임자에게 사용하고 있는 원심분리기가 P-1이냐고 물었다. 이 담당자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 만든 것이며 네덜란드의 알메로나 일본의 로카쇼무라 원심분리기를 모델로 했다”고 주장했다. P-1은 칸 박사가 URENCO에서 가져온 G-1 원심분리기 기술을 개량한 것이다. 앞에 ‘P’가 붙는 것은 파키스탄제라고 보면 된다. 헤커 박사는 이 기술자에게 P-1이 아닌 것이 확실하냐고 계속 압박했다. 그러자 이 책임자는 이 원심분리기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헤커 박사는 이 책임자의 ‘알루미늄 합금’ 발언에 각주를 달고 중요한 설명을 덧붙였다. 헤커는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했다는 것은 강한 마레이징 강철을 사용하는 P-2 원심분리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P-2는 URENCO에서 사용하던 독일식 G-2를 개량한 것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URENCO, 네덜란드 알메로 시설은 모두 칸 박사가 기술을 훔쳐온 것이다. 칸 박사와 북한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일부 언론은 ‘파키스탄의 P-1 원심분리기가 아니라 자체 생산이라는 점에 헤커 박사가 놀랐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헤커 박사는 얼마 후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원심분리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칸이 유럽에서 불법으로 취득한 P-2 원심분리기와 흡사했다고 제대로 설명했다. 그는 “파키스탄 설계도와 파키스탄이 제공한 트레이닝, 파키스탄의 조달 네트워크를 통해 북한이 기술을 종합, 작동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김정일이나 무샤라프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북한에 어떤 기술을 전달했는지, 정부 차원의 개입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은 칸 박사를 조사하면 나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가택연금 상태의 칸 박사에 대한 조사는 절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저명한 한국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이 2008년 1월 워싱턴포스트의 기고한 ‘A. Q. 칸이 아는 것’이라는 제하(題下)의 칼럼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칼럼이 쓰인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프로그램의 실체, 즉 시발점(始發點)을 알아야 핵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게 해리슨의 주장이다. 해리슨은 워싱턴포스트 동북아시아지국 지국장을 거쳐 국제정책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을 지냈다. 그는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했으며 한반도와 관련된 책도 여럿 썼다.  2016년 사망한 그의 글을 全文 번역해 소개한다.

<김정일이나 페르베즈 무샤라프 둘 중의 하나는 파키스탄의 미치광이 박사 압둘 카디르 칸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가 북한에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대해서 말이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평양과의 비핵화 협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칸은 전세계를 상대로 한 核월마트를 운영한 혐의로 3년 전 체포됐다. 이후부터 그는 국제사회의 조사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 무샤라프는 회고록을 통해 파키스탄의 핵프로그램 책임자(칸)가 북한에 ‘약 24개’의 원심분리기 모형을 제공했다고 했다. 이는 북한이 운영하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필요한 것이다. 북한은 이런 주장을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

북한의 유엔 대표부 김명길은 최근 오찬 자리에서 미소를 보이며 “협상에 A. Q. 칸을 초청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영수증은 어디에 있나?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다.

지난해 2월 13일 체결된 합의에 반대하는 존 볼튼 전 유엔 대사와 같은 사람들은 CIA가 2002년에 발표한 내용을 언급하며 이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이 무기화 가능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볼튼은 평양이 이 비밀 장소를 공개하고 해체하지 않는 이상 비핵화 합의는 모두 없던 일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측 협상가인 크리스토퍼 힐은 이런 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고 반박한다. 힐은 미국이 알고 있는 것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위해 필요한 특정 기기를 수입했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러시아로부터 알루미늄 튜브를 수입한 것이 그 중 하나라고 했다. 힐은 “북한이 지금까지 사들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사들였다는 사실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무기화가 가능한 수준의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한 원심분리기 수천 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사들였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 합의는 북한이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6자회담에 참여하는 다른 다섯 개 국가가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하는 상응조치를 취해야 가능하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야 할 필요도 있다.

평양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협조하겠다고 했다. 미국이 알루미늄 튜브 등이 수입됐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이에 대한 목적이 우라늄 농축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었다는 것을 해명하겠다는 것이다. CIA는 이에 대한 위성사진을 갖고 있고 북한은 튜브의 목적이 우라늄 농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원심분리기와 관련해서 파키스탄은 무샤라프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나 문서도 제시하지 않았다.

무샤라프는 왜 칸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파키스탄의 공식입장은 미국 정보요원이 칸을 조사하도록 허락해주는 것이 주권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칸은 국가영웅이다. 많은 파키스탄 국민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쳐들어간 것과 대량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미국을 싫어한다. 하지만 무샤라프가 진심으로 협력하기를 원한다면 IAEA를 통해 칸을 조사하도록 할 수 있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도 이런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니면 무샤라프가 직접 칸이 아는 것을 알아내 북한에 들이밀 수 있는 증거를 미국에 전달할 수도 있다.

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은 무샤라프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그를 비롯한 군부 핵심 인사들이 칸과 협력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무샤라프가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무샤라프가 북한 문제에 있어 부시 행정부를 돕기 위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원심분리기 수출 사실을 알렸을 수도 있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과의 싸움에서 파키스탄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워싱턴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무샤라프는 2004년 2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의 핵기술이 평양에 전달됐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극구 부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야 어찌됐든 미국은 칸 문제를 파키스탄과의 외교에 있어 최우선에 놓아야 한다. 최소한 IAEA라도 칸을 조사해 그가 북한은 물론, 이란과 시리아에 무엇을 건넸는지 알아내야 한다.

평양에 원심분리기가 전달됐다는 무샤라프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되면 북한 역시 사실을 밝히는 데 협조해야 한다. 비핵화 과정이 실제로 끝을 보기 위해선 말이다. 북한은 원심분리기는 그냥 연구 목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란과 마찬가지로 NPT에 따라 민간용으로 사용되는 저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다. 무기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IAEA의 사찰을 허락한다면 말이다. 북한은 민간용도의 우라늄 농축 혹은 전기 발전용도의 경수로 플루토늄 원자로 운영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완전한 비핵화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해리슨은 일각에서는 親北성향의 지식인으로 분류돼 비판을 받는다. 칼럼이 실린 12년 후인 지금 돌아보면 그가 우라늄 시설이 없다는 북한의 주장을 믿고 오판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북핵 협상에서 파키스탄과 북한의 협력 관계에 대한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는 그의 과거 주장은 여전히 타당하게 보인다. 2008년과 2011년 칸이 언론에 등장함에 따라 해리슨의 의문의 상당 부문은 해소됐다. 파키스탄 정부가 칸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점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04년 기자회견 당시 독자적으로 핵기술을 해외에 팔았다고 한 것 말이다. 그럼에도 미스터리는 깨끗하게 풀리지 않는다. 정부가 정확히 어느 정도 개입했을까? 왜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칸에 대한 조치는 똑같을까? 왜 국가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리고 지금도 일각에서 영웅으로 받들어지는 그는 가택연금을 받아들이며 혼자 죄를 끌어안고 갔을까? 2000년 초 중동(中東)에 부는 광풍이 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지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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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6, 04: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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