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를 거점으로 한 파키스탄의 핵부품 조달망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21) / 이란의 핵개발 움직임 포착…“파키스탄이 원심분리기를 보냈다”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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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핵개발의 거점기지가 된 두바이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경한 조치에 나섰다. 부시 대통령은 9월 20일 “테러와의 전쟁은 알 카에다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전세계의 모든 테러 단체를 찾아내 이들을 멈추고 굴복시킬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국정연설에서는 ‘악(惡)의 제국’, ‘악의 축(軸)’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지목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들 국가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도움을 준 파키스탄은 언급되지 않았다. 파키스탄은 이때도 여전히 해당 국가들에 위험한 무기를 팔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6월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도 또 하나의 유명한 연설을 했다. 그는 적(敵)의 위협이 부상(浮上)하기 전에 이들을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위협이 너무 커지면 때는 이미 늦었을 수도 있게 된다고 했다. 이는 이른바 ‘선제공격 선포’라는 연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이번에도 파키스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핵확산 네트워크는 손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국의 합동정보위원회(JIC)는 2002년에 들어 A. Q. 칸 박사에 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2002년 3월 영국 정보당국은 파키스탄이 중동(中東)의 한 국가에 핵기술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리비아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칸 박사가 두바이와 아프리카 국가에 있는 네트워크를 사용해 이런 확산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칸이 말레이시아에 자체 제조공장을 만들고 측근을 자리에 앉혀 운영하도록 했다고 했다. JIC는 칸 박사가 1998년 이후 최소 40차례 두바이를 방문한 것을 파악했다.

칸은 유럽 국가들의 수출 규제가 강화된 1970년대부터 두바이를 통해 무역을 해왔다. 오랫동안 칸에게 물건을 조달해준 영국인 사업가 피터 그리핀은 1997년 두바이로 이주해 GTI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리핀은 영국 정부가 수사에 나선 2002년 무렵은 자신이 칸과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게 됐을 때라고 했다. 칸의 주요 조달책은 부하리 타히르였다. 타히르는 칸의 핵확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칸과 그리핀 등은 1970년대 초부터 두바이를 방문해 사업을 구상했다. 경제무역특구 성향의 두바이의 수출 규제는 덜 까다롭기 때문에 이를 허브로 물건을 파키스탄으로 보낼 목적이었다. 하나의 문제는 두바이에서 외국인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현지인이 후원인으로 이름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이때 칸은 스리랑카 출신 무슬림인 S. M 파룩이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파룩은 과일과 야채를 수입하는 작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칸과 그리핀은 파룩의 작은 아파트에 사무실을 차렸다. 파룩은 대단한 협상가이자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돈계산도 빠르고 입도 무거웠다.

말레이시아 진출

파룩의 조카인 타히르는 16세였던 1981년 스리랑카를 떠나 두바이로 가 삼촌 밑에서 일했다. 그리핀은 책 ‘디셉션’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타히르는 궂은일을 담당했고 땅바닥에서 쭈그려서 잤다고 했다. 유럽 등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했던 타히르는 삼촌 파룩이 하는 위험한 일에 발이 묶여 버렸다. 그리핀 등은 타히르가 처한 상황을 안쓰럽게 생각했다고 했다. 잡일만 할 줄 알았던 파룩의 인생을 바꾼 것은 칸 박사였다. 1985년 칸 박사는 타히르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타히르의 잠재력을 바로 알아봤다. 칸 박사는 스리랑카 시골에서 온 타히르를 탈바꿈시켰다. 천으로 몸을 둘러싸고 샌들을 신고 다니던 그의 복장부터 바꿨다. 양복과 수제 구두를 사줬다. 서양식 매너를 가르쳤다. 타히르는 빨리 배우는 청년이었다. 그는 칸이 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했다. 누구와 앉아 대화를 할 때는 다리를 꼬고 손에 깍지를 끼는 것마저도 똑같이 했다.

칸의 사람 보는 눈은 정확했다. 타히르는 삼촌 파룩의 사업을 이어받아 더 크게 키워 나갔다. 2002년 그는 두바이에서 ‘SMB 컴퓨터’라는 회사를 운영했다. 직원은 200명이 넘었다. 타히르는 이 위장회사를 통해 칸을 도와 리비아와 이란, 북한에 핵기술을 확산시켰다.

타히르는 1998년 6월 27일 말레이시아 외교관의 딸 나지마 마지드와 결혼했다. 두바이에서 열린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파키스탄 핵실험이 끝난 직후라 세계의 관심이 뜨거웠지만 칸 박사도 참석했다. 타히르의 부인 마지드는 결혼하기 1년 전 그에게 말레이시아 명문가(家)를 소개시켜줬다. 타히르가 소개받은 사람은 카말 압둘라였다. 그는 훗날 말레이시아의 부총리를 지낸 뒤 총리가 되는 압둘라 바다위의 아들이었다. 바다위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부총리를, 20003년부터 2009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그의 아들 카말은 정유회사인 ‘SCOMI’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재정상황이 좋지 않았다. 타히르는 이 회사 지분 25%를 사들이며 SCOMI의 회사경영을 도왔다. 이렇게 관계를 맺게 된 카말은 2000년 12월 타히르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칸은 리비아와 이란, 북한 등과 비밀 핵기술 이전 합의를 맺었지만 관련 기술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유럽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물론, 파키스탄 내부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품목들도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았다. 말레이시아는 칸이 딱 필요로 한 국가였다. 핵무기도 없고 IAEA의 감시도 받지 않았다. 일반 제품이지만 핵무기에도 사용될 수 있어 ‘이중용도 품목’으로 규정된 부품들의 수출도 규제를 받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기술자들의 실력도 뛰어났다. 이들은 제품이 무엇이 됐든 금방 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신발부터 전자기기까지 다 복제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이런 그들에게 원심분리기라고 다를 것은 하나도 없었다.

타히르는 2001년 12월 SCOMI에 정식 사업제안서를 들고 갔다. 두바이에 있는 정유회사에서 사용할 알루미늄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만들자고 했다. 타히르는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샤 알람 지역에 공장을 짓자고 했다. 인건비도 저렴하고 비어 있는 땅도 많았다. 타히르는 독일의 ‘비카르 메탈’이라는 회사로부터 알루미늄을 납품받기로 했다. 그는 유럽 수준에 맞는 알루미늄 부품을 만들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수출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무역중개회사 두 곳을 정했다. 하나는 ‘아리야시 무역회사’였다. 이 회사가 말레이시아에서 두바이로 물건을 보냈다. 피터 그리핀의 회사인 ‘GTI’가 두바이에서 이 물건을 받아 해외로 보내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핀은 말레이시아에서 보내오는 물건이 칸과 연계돼 있는 것은 몰랐다고 주장한다.

타히르는 말레이시아 부총리의 아들 카말 압둘라는 물론, 다른 동료들을 속여가며 핵무기에 들어가는 이중용도 부품을 생산했다. 총괄 엔지니어는 스위스 사람을 앉혔다. 부품 제작에 들어가는 원재료는 독일과 스위스 회사로부터 사왔다.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각국 정보당국의 눈을 피해 칸을 도왔다.

타히르가 말레이시아로 사업을 옮긴 것은 그에게 큰 다행이었다. 2001년 10월 영국 사법당국은 타히르의 오래 된 유럽 파트너인 아부 바크르 시디퀴를 체포했다. 파키스탄에 수출 규제 물품을 수출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바크르는 12개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벌금은 6000파운드였다. 타히르가 운영하던 SMB 유럽 지부는 문을 닫게 됐다. 사법당국은 타히르를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영국 정보국은 정부에 이들을 가만히 놔둘 것을 요청했다. 계속 불법활동을 하도록 놔두면 불법 거래의 주동자까지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거래를 끝내기 위해선 보다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국 정부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미국과 영국은 2002년 중반에 들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축출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여러 차례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은 사담 후세인도 중요하지만 칸 박사의 네트워크를 통해 리비아와 북한 등에 핵기술이 전달된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봤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확한 실체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북한과 리비아의 경우는 이미 정황 증거가 드러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라크에 집중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사담 후세인이라는 골칫거리

블레어 총리는 2005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했다.

<2001년 9월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게 됐다. 당시 나는 대량살상무기 문제와 관련해 이라크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란과 북한, 리비아, 그리고 A. Q. 칸 박사의 네트워크가 안중에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조치의 시작은 이라크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세계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모든 정권은 국제사회의 규범을 따라야 하고 테러조직은 이런 위험한 무기를 더 이상 손에 쥘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여러 학자들은 이 모든 위협의 시작점에는 파키스탄이 있었는데 왜 파키스탄이 아닌 국가를 우선순위를 꼽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이라크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 핵무기를 팔겠다고 한 국가는 파키스탄이었다. 무장단체들에 테러를 자행할 용기를 준 것 역시 파키스탄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과 칸 박사 밑에 있는 과학자들이 만나 ‘핵(核) 겨울’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것을 논의하게 된 이유도 파키스탄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미국과 영국은 “우선은 사담 후세인이 먼저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2002년 7월 영국의 합동정보위원회(JIC)는 파키스탄이 우라늄 농축 기술은 물론이고 핵탄두 설계도를 판매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핵탄두 설계도가 아니라 핵탄두 자체를 판매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리비아와 북한, 그리고 이란의 위협이 이라크의 위협보다 크다는 판단이 드는 상황이었다.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제거 계획을 세우는 사이 또 한 차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란국가저항위원회(NCRI) 대변인인 알리레자 자파르자데가 2002년 8월 미국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反체제 인사인 그는 이란이 수도 테헤란 남쪽 인근에 있는 사막에서 두 개의 비밀 핵시설을 가동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아라크 지역에서는 중수로(重水爐) 시설이, 나탄즈에서는 농축 우라늄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이 몇 개월 동안 보고해왔던 파키스탄의 핵확산 위협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자파르자데는 원심분리기를 사용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이 고도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파키스탄 이외에 이런 기술을 이란에 전달할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았다. 이란은 과거 플루토늄 핵시설만을 운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 IAEA가 우라늄 농축 시설을 아예 생각하지 못하게끔 했다. 북한 때와 마찬가지로 플루토늄 시설로 시선을 분산시킨 뒤 우라늄 농축에 나섰던 것이다.

자파르자데는 자신이 처음으로 이란의 핵시설 가동 사실을 파악해 폭로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오랫동안 알았음에도 비밀에 부쳤던 사안이다. CIA는 이란과 파키스탄의 핵협력이 1987년부터 진행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87년 이란의 과학자들과 혁명수비대 간부는 칸 박사와, 타히르, 타히르의 삼촌 파룩을 두바이에서 만났다. 이란 혁명수비대 일원으로 참석한 모하메드 에슬라미 장군은 칸 박사의 P-1 원심분리기 기술을 사들이기 위해 300만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얼마 후 P-1 원심분리기 샘플과 원심분리기 2000개를 만들 수 있는 부품들이 이란으로 보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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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8, 06: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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