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가동을 시인하는 북한…무샤라프 “北과 어떤 核 협력도 없다”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22) / 서로 속이고 숨겨주고 모른 척을 하는 미국과 파키스탄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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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은 이란으로부터 얼마를 받았나?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당시 이란이 파키스탄에 전달한 금액이 300만 달러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엇갈린 증언이 나오는 것이다. 학자들의 중론(衆論)은 300만 달러다. 칸 박사는 이 중 25%만을 받았고 나머지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칸의 조력자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란이 당시 800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중 가장 많은 돈은 칸의 유럽 조달책 고타드 러치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칸의 또 다른 조력자인 하인스 메부스가 1987년 두바이 회담을 준비했다고 한다.

파키스탄이 10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파키스탄과 관련해 오랫동안 글을 써온 더글라스 프란츠와 캐서린 콜린스는 관계자들 인터뷰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300만 달러가 러치에게 돌아갔다. 러치가 계약을 처음에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파룩과 칸은 200만 달러를 각각 받았다. 메부스는 100만 달러를 받았다. 스위스 출신 엔지니어인 프레드리 티너는 50만 달러를 받았다. 티너도 칸처럼 당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또 다른 100만 달러는 은행계좌를 통해 파키스탄의 한 치과의사에게 들어갔다. 이 치과의사의 존재는 미스터리하다. 일부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이 치과의사가 받은 돈이 파키스탄 정부나 군부에 전달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50만 달러가 비는데 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치과의사의 신원은 나중에 확인됐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자파르 니아지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파키스탄 인민당과 베나지르 부토 총리와 매우 친했던 사람이다. 니아즈의 과거 삶을 봤을 때 그가 정부나 군대를 위해 돈을 대신 받았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니아즈라는 엉뚱한 사람의 이름을 집어넣어 나중에 수사가 진행됐을 시 의심을 피하려 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2004년 칸 박사를 수사했던 한 정부 관계자는 훗날 인터뷰에서 칸이 이란에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다 도청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칸은 “파키스탄과 이란의 핵협력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이미 죽은 사람들의 이름만 대라.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니아지의 이름이 공개된 것도 그가 죽은 뒤였다. 칸 박사 등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핵기술을 팔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100만 달러 시나리오’가 매우 중요하다. 칸 박사 등을 통해 니아지라는 사람의 이름을 공개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독단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정확한 금액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300만 달러’가 가장 신빙성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국을 거쳐 국방장관을 지낸 모셰 야론은 이스라엘이 이란과 파키스탄의 핵협력을 면밀히 주시해왔다고 했다. 이스라엘 정보군 소속의 8200부대는 파키스탄이 이란에 핵무기 시설을 제공하는 등 말도 안 되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는 당시 독일을 방문했을 때 이런 얘기를 꺼내 놨다고 했다. 독일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독일도 지금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란 반체제 기관인 NCRI에 이란의 핵시설 기밀을 전달한 것은 이스라엘의 모사드라는 주장도 있다. 서방세계가 이란의 핵시설을 묵인하려 하자 모사드가 NCRI를 이용, 이를 세상에 터뜨렸다는 것이다.

이란 핵시설에 대한 폭로가 나오자 상황은 계속 커져갔다. 민간 위성사진 회사들은 나탄즈 시설의 사진을 공익을 위한 목적이라며 세상에 퍼뜨렸다. 엄청나게 큰 부지에 들어선 핵시설을 누구나 볼 수 있었다. 핵 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위성사진을 검토, 이 시설의 규모라면 약 5만 개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될 수 있다고 했다. 파키스탄제 원심분리기가 이 시설에서 제대로 작동한다고 가정하면 75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자 이란은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 사실을 시인했다. 이는 민간 발전용도라고 해명했다. IAEA의 사찰을 받겠다고 했다. 이란으로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었다.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가동 사실을 인정하는 북한

미국이 이라크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2002년 6월 미국 CIA는 대통령에게 북한이 상당한 양의 우라늄을 농축했다고 보고했다. CIA는 파키스탄이 북한에 우라늄을 사용한 핵폭탄을 만들기 위한 원심분리기와 관련 자료들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CIA는 A. Q. 칸을 비롯한 파키스탄의 과학자들에 대한 여행 제한 약속을 파키스탄이 했지만 여전히 일부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등 각국 정보당국의 레이더망을 피해 비밀리에 모의실험을 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제공했던 C-130 수송기가 또 한 차례 평양에서 포착됐다. 미사일 관련 부품을 싣고 파키스탄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보였다.

북한이 파키스탄의 도움을 받아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잡은 미국은 행동에 나섰다. 2002년 10월 3일, 이 증거를 갖고 방북(訪北)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추궁에 북한의 외교부 부상(副相) 김계관은 “반북(反北)세력의 조작”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일본 측 외교관은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자 “북한은 굳어버렸다”고 했다. 또한 “북한은 미국이 파키스탄과 평양 사이의 거래의 퍼즐을 맞췄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다음 날 강석주 제1부상은 켈리 특사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그 요지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른 데 대한 직접적인 조치라는 것이었다. 켈리는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협력에 관한 증거를 들이밀었다. 강석주는 “우리는 그보다 더한 것도 갖게 돼 있다”고 했다.
 
강석주는 미리 정리한 내용을 읽어가면서 “이는 당(黨)과 정부의 입장에 의거한 것이다”고 몇 차례 강조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미국 관리 8명은 대화록의 정확성을 확인한 뒤 워싱턴에 보고했다. 나중에 한국과 미국에선 북한 정권이 자신들의 불법활동을 인정할 리 없다면서 이는 통역의 잘못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북한, 핵기술 이전 위협까지 했다”

북한이 켈리 차관보에게 전달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우라늄 농축 시설 운영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의 핵협력에 대해서도 극구 부인을 하지 않았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2002년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국장을 지냈다. 그는 켈리 차관보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었다. 그는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2002년 10월 평양에서 강석주와의 협상에 백악관을 대표해 참석했는데, 그는 미국이 일본과 한국에 대한 핵우산과 (대북) 제재를 끝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이 대북 경제 지원을 하도록 (미국이) 압박하고, 인권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북한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 후 북한은 핵기술을 이전하겠다고 위협했다'며 '우리는 그들의 요구에 굴하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이 핵기술을 이전하겠다는 위협까지 했다는 것이다.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폭탄을 만드는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한 북한은 제네바 합의가 금지한 불법활동을 자백한 것이 되어 법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은 진전되지 못했다. 북한은 2002년 12월 영변의 플루토늄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1월에는 NPT에서 공식 탈퇴했다.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으로서도 해명(?)이 필요했다. 그는 2002년 10월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보당국자를 인용, “파키스탄이 북한 핵프로그램에 필요한 핵심 장비를 수출하는 국가다”라고 했다. 파키스탄이 수출하는 장비 중에는 원심분리기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무샤라프는 이런 보도가 나온 뒤 이슬라마바드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핵 분야에 있어서 북한과는 그 어떤 협력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파키스탄 정부 차원에서 여러 차례 말해왔고 나도 여러 차례 말해왔다. 파키스탄은 핵기술을 절대 확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얼마 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공식석상에서 무샤라프의 발언을 신뢰한다고 했다. 그는 “파키스탄과 북한 사이의 어떤 접촉도 우리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럴 시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 사안의 중대성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1980년대부터 계속돼 온 미국과 파키스탄의 특이한 외교전략을 또 한 번 엿볼 수 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속이고, 숨겨주고, 모른 척을 하며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진짜 북한 정권 변명가’

미국과 파키스탄은 북한의 핵활동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파키스탄과의 협력 내용에 있어서는 선을 그었다. 신기한 것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가장 분노해야 하는 한국 측 인사들은 파키스탄과 북한의 관계는 차치하고 아예 우라늄 농축이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햇볕 정책’의 실무 책임자이던 임동원 씨는 회고록에서 “미국이 핵 의혹을 조작, 제네바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정권의 자백이 제네바 합의 파기로 이어진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 것이다. 켈리 팀은 평양에서 서울로 와서 한국 측에 방북(訪北) 결과를 설명했다. 존 볼튼의 회고록 ‘항복은 선택이 아니다’에 따르면, 임동원은 이들의 설명을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북한 사람들의 과장되고 격앙된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왜 우린들 핵무기를 가질 수 없느냐’는 식의 표현이 고농축 우라늄 계획을 시인하는 것인지, 핵무기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북한은 최고당국자와의 회담을 통하여 일괄타결을 바라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임 씨는 “미국의 네오콘 강경파들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 첩보를 과장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북한 측이 명백하게 우라늄 농축 추진 사실을 인정했는데도 그는 미국을 의심하고 김정일 정권을 감쌌다. 이런 임동원 씨에 대하여 존 볼튼은 회고록에서 ‘진짜 북한 정권 변명가’(real DPRK apologist)라는 경멸적 표현을 하기도 했다. ‘apologist’는 변명을 대신해주는 이를 가리킨다. ‘변호’와 ‘변명’은 어감(語感)이 다르다. 변호는 억울한 사람을 지키기 위하여 설명하는 것이고, 변명은 잘못에 대하여 구실을 대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후인 2007년까지도 북한의 우라늄 농축 사실을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와 한 2007년 4월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난 제임스 켈리의 발언 내용에 매우 놀랐다. 그의 대화 상대였던 북한 대표들은, 실제로 가동되고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들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시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북한에 실제로 가동되고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존재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칸이 유럽에서 훔친 원심분리기 기술, 이란에서도 발견

2003년 3월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이라크와 전쟁에 돌입했다. 이라크 전쟁을 놓고 여러 주장이 있다. 미국의 전쟁 목적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였지만 전쟁 후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의회와 유엔에 거짓보고를 하고 전쟁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전쟁 결정이 충동적으로 일어난 것은 사실이 아니다. 공식적인 유엔의 절차를 밟아 전쟁에 돌입하게 됐다. 유엔은 여러 차례의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이라크를 압박했다. 2002년 11월 통과된 결의안은 30일 이내에 대량살상무기 관련 모든 자료를 국제사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러시아와 중국, 시리아조차도 이 결의안에 동의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는 2020년 6월 ‘권력의 행사(Exercise of Power)’라는 제목의 신간을 냈다. 이라크 전쟁 비판론자들에 대한 그의 반론을 짧게 소개한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 논란이 많다. 너무 많은 사람들은 유엔 결의안이 통과된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 결의안이 통과된 이유는 거의 모든 정부의 정보기관이 미국의 정보당국과 같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든지, 아니면 이를 보유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사담 후세인은 자국민과 주변국가들에 자랑을 떠벌리고 다녔다. 이런 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이다. 이 역시 결의안 통과를 도와주는 꼴이 됐다. 부시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은 완전히 말도 안된다. 미국과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은 그냥 오판을 한 것이고 이에 따른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던 미국은 이란 핵개발 의혹이 계속 확산되자 이를 묵인할 수 없었다. 미국의 사찰팀은 2003년 2월 21일 이란의 나탄즈 핵시설을 방문했다. 이란이 미국에 보여준 것은 정식 핵시설이 아니라 시범운영 중이던 시설이다. 이 시설은 2003년 6월에 정식 가동될 계획이었다. 당시 사찰팀은 약 100개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된 상태였다고 보고했다. 2005년이 되면 이 시설에 약 5만 개의 원심분리기가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당시 사찰팀에 포함된 사람 중 한 명은 영국인 트레버 에드워드였다. 그는 1970년초 URENCO에서 근무했던 금속공학자다. 그가 근무했던 시기는 칸 박사가 근무했을 때와 겹친다. 에드워드는 이란의 원심분리기는 1975년 칸이 훔쳐간 원심분리기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란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진전을 이뤄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URENCO에서 근무할 때 봤던 모델과 똑같은 원심분리기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세세한 것 하나까지도 똑같았다”고 했다.

미국과 영국은 파키스탄의 핵확산과 관련한 또 하나의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은 칸 연구소가 중국과 더 많은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부간 계약을 맺고 중국의 M-11 미사일이 파키스탄으로 들어갔다. 이는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이었다.

파키스탄은 북한의 핵기술 조달회사인 창광신용회사와도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파키스탄 국기(國旗)가 꽂힌 배가 평양 인근에 정박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 배에서는 스커드미사일 10기가 내려지고 있었다. 2003년 4월 3일 독일 정보당국은 수에즈운하 인근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배 한 척을 나포했다. 이 배에는 알루미늄 배관이 실려 있었다. 이는 P-2 원심분리기의 외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품이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기로 했다. 그는 창광신용회사와 칸 연구소를 제재 대상에 올리겠다고 했다. 파키스탄 정부의 잘못을 묻는 대신 개인 기업에 대한 제재만 부과하겠다고 했다. 이는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계속돼 온 미국의 방침이었다. 파키스탄 정부가 개입하지 않은 ‘개인적인 조달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에도 파키스탄에 경고를 주는 선에서 멈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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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9, 05: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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