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포된 ‘BBC 차이나호(號)’에 실린 원심분리기 부품…드러나는 칸과 리비아의 핵거래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23) / 확실한 증거 들이민 미국…“파키스탄 대통령 일생을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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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D 포기 뜻을 밝히는 리비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던 2003년 3월. 한 팔레스타인 국적자가 영국의 정보기관 MI6에 연락했다. 그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해 영국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했다. 카다피는 자신의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을 특사로 보냈다. 이라크로 전쟁이 확전(擴戰)되는 것을 본 카다피는 자신이 미국의 다음 타깃이 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였다.

리비아는 1979년과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의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 여러 폭탄 테러에 가담한 혐의 때문이었다. 사이프 카다피는 영국 런던에서 유학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서방세계를 경험한 인물이었다.

사이프는 런던 인근의 메이페어에서 MI6 요원들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영국과 미국과 함께 중동을 개혁하는 일에 나서고 싶다고 했다. 요원들은 그의 말을 자른 뒤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했다. 사이프는 메시지를 전달할 뿐이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영국 정부는 리비아 정부 측과 직접 대화를 나누겠다고 했다.

영국 정보당국은 리비아 해외정보국 수장(首長)인 무사 쿠사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 무사 쿠사는 강경파 출신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수배명단에 오른 사람이었다. 영국은 리비아의 무기 현황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의 과거를 묻어두기로 했다. 영국은 ‘리비아의 모든 핵시설을 사찰하고,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가담했던 모든 과학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추가적인 외교 합의는 없다고 했다. 영국은 리비아와의 이런 협상 내용을 미국에 알렸다. 무사 쿠사는 모든 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몇 차례 약속을 어겼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시간이 부족했다’는 식의 핑계를 댔다. 영국은 리비아가 아직 무엇을 내놔야 할지, 정확히 말해서는 미국과 영국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으로 봤다.

2003년 6월 말,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영국과 미국을 연이어 방문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파키스탄이 연합국의 중요한 동맹이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려줬다. 무샤라프의 방미(訪美) 한 달 전 부시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위에서 ‘미국과 동맹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했다. 그는 “임무 완성”이라고 했다. 무샤라프가 방문했을 때 부시는 기분이 고조돼 있는 상황이었다.

부시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 파키스탄이 큰 도움을 줬다고 했다. 파키스탄이 2001년 9월 이후 500명 이상의 알 카에다 및 탈레반 소속 테러리스트를 체포했다고 했다. 미국은 답례로 파키스탄이 갖고 있던 10억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주겠다고 했다. 또한 30억 달러 규모의 군사 및 경제 원조 패키지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는 무샤라프도 함께 있었다. 파키스탄의 핵무기에 대한 질문은 질의응답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나왔다. 파키스탄 출신 기자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당황한 무샤라프는 “파키스탄은 최소한의 억제력을 유지하자는 전략을 따르고 있다”며 “군비 확장 경쟁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고 했다.

영국의 선박 나포 작전

이때 미국과 파키스탄의 우호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영국 정보당국은 칸의 조달책인 타히르가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생산한 알루미늄 부품을 배에 싣고 두바이로 보낸 것을 확인했다. 이 화물은 독일 선적(船籍)인 ‘BBC 차이나호(號)’로 옮겨 실린 뒤 리비아로 향했다. P-1 및 P-2 원심분리기를 운영할 수 있는 회전자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품은 파키스탄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했다. 이 선박을 나포할 수만 있다면 리비아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벽한 물증을 구하게 되는 것이었다.

영국의 MI6가 관련 사실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조금 늦은 상황이었다. BBC 차이나는 두바이를 떠나 항해(航海)하는 중이었다. 영국은 이 배가 수에즈운하를 지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리비아와 파키스탄에는 관련 사실을 숨기면서도 이 배를 중간에 나포하는 데 협조해줄 국가를 찾아야 했다. 영국은 우선 BBC 차이나의 선적이 독일인 관계로 독일 정부에 연락을 했다. 독일 정부가 조사해본 결과 이 배의 선주(船主)는 함부르크에 있었다. 선주는 이 배에 실린 화물과 도착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2003년 9월 영국은 이탈리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BBC 차이나가 이탈리아 동남부의 주요 항구인 타란토에 정박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영국은 화물을 수색하는 데는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협조를 요구했고 이탈리아는 이를 받아들였다.

영국은 이런 사전 준비가 완료된 뒤에 미국에 정보를 알려줬다. 부시 대통령은 무샤라프 대통령과 그해 9월 뉴욕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9월 23일 부시와 무샤라프의 회담에 참석했던 한 고위 백악관 관리는 “부시 대통령은 핵확산이 만연하다며 당장 멈춰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조지 테닛 CIA 국장은 다음날 무샤라프 대통령과 따로 만났다. 무샤라프를 보좌했던 한 인사는 “파키스탄 대통령 일생을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했다.

무샤라프는 당황했다. 핵확산 사실을 미국이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이 자신에게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테닛 국장은 파키스탄의 P-1 원심분리기의 세부 설계도를 꺼내 들었다. 그는 세부 부품의 시리얼 넘버와 제조 일자 등까지도 알고 있었다. 무샤라프는 훗날 인터뷰에서 “나는 그가 보여준 것이 우리의 원심분리기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러나 이는 칸 박사가 지휘한 핵프로그램 초창기 때 사용하던 것이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했다. 테닛 국장은 칸 박사의 여행 기록과 은행 계좌 내역, 칸 연구소가 작성한 계약서 등도 보여줬다. 이 계약서에는 칸 연구소가 특정 국가에 어떤 부품을 팔려고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증거를 들이민 미국, 발뺌하는 파키스탄

테닛 국장은 회고록 ‘폭풍의 한복판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무샤라프가 UN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으로 오게 되어 나는 2003년 9월 24일 단독면담을 요청했다. 우리는 그의 호텔 방에서 만났다. 그것은 우리 정보기관들이 ‘포 아이즈(4개의 눈)’라고 부르는 두 사람만의 회담이었다. 수행원도 없었고, 기록자도 없었다.
 
나는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에서 그가 용기 있게 지원해 준 데 감사하는 말로 시작하면서 몇 가지 나쁜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A. Q. 칸이 각하의 조국을 배반하고 있습니다. 그는 귀국(貴國)의 가장 민감한 비밀을 훔쳐내서 최고 입찰자에게 팔았습니다. 칸은 핵무기 비밀을 훔쳤습니다. 우리는 관련 자료들을 그에게서 훔쳤기 때문에 전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서류가방에서 칸이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훔친 핵폭탄 설계도의 청사진과 도표를 꺼냈다. 나는 핵물리학자는 아니었고, 무샤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지만, 나의 팀으로부터 충분한 브리핑을 받았기 때문에 그 도표에 그려 놓은 표지를 지적하면서 그 설계도가 뉴욕의 호텔방이 아니라 이슬라마바드의 금고 속에 있어야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나는 파키스탄의 P1원심분리기 설계도 청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그가 그것을 이란에 팔았다고 말했다. 나는 차세대 P2 원심분리기 설계도를 보여주고 그것도 몇 나라에 팔았다고 말했다. 나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또 한 장의 문서를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보여주면서 칸이 리비아에 판 우라늄 처리공장의 설계도라고 말했다. 문제의 규모나 범위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무샤라프는 모른 척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내 머리속에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해야 우리 조국이 해(害)를 당하지 않을까’였다”고 했다.  “그 다음에 든 생각은 A. Q. 칸에 대한 분노였다. 그가 파키스탄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지아 대통령 시절부터 파키스탄은 군부의 지휘 하에 ‘프로젝트 A/B’라는 이름으로 핵기술을 수출해왔다. 미국은 무샤라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파키스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시 회의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샤라프는 2006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에서도 자신은 무관하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파키스탄의 기술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이 칸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며 “그러나 테닛은 칸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칸에 대한 나의 의심은 점점 더 커져갔다”고 했다. 무샤라프는 핵확산이라는 범죄의 주동자가 파키스탄의 군부가 아니라 부도덕한 과학자 몇 명의 일탈로 몰아가려 했다.

테닛 국장은 이날 회담을 끝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 각하, 만약 리비아나 이란 같은 나라, 또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알 카에다 같은 조직이 실제로 작동하는 핵장치를 입수하게 된다면, 그리고 세계가 그것이 당신의 나라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파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닛에 따르면 무샤라프는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고맙다고 하며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발각되는 칸의 조달책

 2003년 10월 4일 BBC 차이나는 이탈리아 타란토에 정박했다. MI6와 CIA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이 화물 수색을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약 200개의 40피트(약 12m) 길이의 화물 컨테이너 중에서 의심 가는 물건이 실린 컨테이너 다섯 개를 찾아내야 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에 물건을 납품하던 유럽 납품업체를 통해 시리얼 넘버를 구했다. 요원들은 시리얼 넘버를 통해 의심 컨테이너를 찾아냈다. 이 컨테이너 안에는 ‘SCOPE’라고 쓰여 있는 나무 상자들이 가득했다. SCOPE는 타히르가 말레이시아에서 운영하던 제조공장의 이름이었다. 요원들은 알루미늄 부품과 펌프 등을 찾아냈다. 원심분리기 조립에 사용되는 다른 부품들도 여럿 나왔다.

이런 사실은 A. Q. 칸과 타히르에 귀에 곧바로 들어갔다. 영국 외교부의 실수 중 하나였다. 영국 외교부는 MI6와 상의를 하지 않은 채 바로 리비아의 정보 수장인 무사 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비아로 향하는 배에서 핵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이 적발됐는데 해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약 1000개의 원심분리기를 조립할 수 있다고 했다. 무사 쿠사는 바로 타히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타히르는 이 사실을 파키스탄 정부에도 알렸다. 영국 정부는 또 한 번 무사 쿠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쿠사는 이 화물을 영국과 미국에 전달할 계획이었다고 했다. 카다피가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선의(善意)를 보이기 위해 화물을 받아내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쿠사는 미국과 영국이 리비아의 기밀 핵시설을 사찰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다.

2003년 10월, 미국과 영국의 정보요원들과 사찰팀은 리비아를 방문했다. 무사 쿠사 정보국장은 사찰팀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리비아의 핵개발 책임자는 마토구 모하메드 마토구 과학기술위원회 장관이었다. 이름 이니셜을 따 ‘트리플 M’이라고 불렸다. 트리플 M은 자신이 사찰팀을 직접 만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는 대신 젊은 과학자를 가이드로 붙여주겠다고 했다.

사찰팀은 이 젊은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리비아의 타주라 원자력연구센터로 향했다. 1980년대에 소련은 리비아에 실험용 10mw 원자로를 지어줬다. 사찰팀을 동행한 리비아 과학자는 리비아에는 우라늄을 농축할 정도의 기술도, 필요한 재료도 없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에 들어 독일 과학자가 리비아의 우라늄 농축을 도와줬다고 했다. 이 독일인은 원심분리기 설계도를 가지고 와 연구를 도왔다고 했다.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원료인 육불화우라늄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기술적 문제가 생겨 우라늄 농축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리비아 정부는 이 독일인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이 독일인이 1992년부터 리비아와 관계를 끊었다고 말해줬다. 미국과 영국의 사찰팀은 사실상 빈손으로 떠났다.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은 BBC 차이나에 실렸던 화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화물은 말레이시아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2003년 11월 10일, CIA와 MI6는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경찰 책임자를 만나 조사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협조를 약속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자체 조사를 진행하던 중 곤란한 사실을 발견했다. 타히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물건이 보내진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 공장의 공동 소유자가 카말 압둘라였다. 그는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먼저 이 같은 사실을 총리실에 전달했다. 총리실은 이틀 간 관련 내용을 검토한 뒤 경찰에 협조해도 좋다는 답변을 보냈다.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은 샤 알람에 있는 타히르의 공장을 방문했다. 공장은 거의 다 치워진 상태였다. ‘SCOPE’라는 회사로고도 떼어져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타히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타히르는 장인(丈人)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는 경찰의 조사에 순순히 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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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31, 05: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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