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비핵화 모델’의 전말(顚末)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24) / 핵시설을 통째로 수입하려 한 리비아, 1억 4000만 달러를 제시하다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리비아, “1억 4000만 달러 지불하겠다”

타히르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수사관들이 증거를 들이밀자 자백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타히르는 리비아와 사업을 한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이런 거래가 1997년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칸 박사와 함께 터키 이스탄불에서 리비아 관계자들과 만났다. 당시 리비아 측에선 ‘트리플 M’과 ‘카림’이라는 사람이 참석했다. 이 회동이 끝난 후 칸 박사는 타히르에게 리비아 핵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원심분리기를 보내도록 지시했다. 중고 P-1 원심분리기 20개와 약 200개의 원심분리기를 만들 수 있는 부품을 보냈다. 이 거래를 통해 리비아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 타히르는 “날로 먹은 돈이었다”고 조사과정에서 밝혔다. P-1은 어차피 사용하지도 않는 구식 원심분리기인데 이를 팔아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타히르와 칸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리비아 관계자들과 다시 한 번 만났다. ‘트리플 M’은 칸에게 P-1 원심분리기를 보내준 것에 감사하고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 핵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했다. 리비아는 당시 제재 대상이었기 때문에 과학자를 외국으로 보내 관련 기술을 배우고 오게 할 수 없었다. 리비아는 파키스탄이 P-1보다 뛰어난 원심분리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칸 박사가 자신들에게 뒤떨어지는 기술을 판매한 것을 알았다.

‘트리플 M’은 카다피에게는 현금이 많다며 P-2를 원한다고 했다. P-2 원심분리기 1만 개를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통째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타히르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물건을 조달하고 건물을 짓는 등 모든 것을 해달라는 요구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아무리 칸의 네트워크를 사용한다고 해도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트리플 M’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만들어주는 대가로 1억 400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엄청난 액수였다. 칸은 타히르에게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모든 일을 멈추고 리비아 사업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1만 개의 원심분리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만 개의 부품이 필요했다. IAEA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해야 하기도 했다. 타히르는 여러 국가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두바이로 보낸 다음 리비아의 트리폴리로 보낼 계획을 짰다. 영국 정부가 나중에 확인한 타히르의 계약서 등 서류에 따르면 2002년 12월 기준 타히르는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12개 나라에 있는 30개 회사와 거래를 했다. 리비아가 필요로 한 부품 중 일부는 타히르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도 생산할 수 있었다. 타히르가 일부 품목은 직접 생산해 제공하겠다고 하자 리비아는 이에 대한 대가로 340만 달러를 건네줬다.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물질 직접 전달받았다”

타히르의 장인(丈人) 집안은 타히르를 압박해 모든 것을 털어놓도록 했다. 전세계를 위협한 핵확산의 주범(主犯)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타히르는 오랫동안 칸과 함께 일해온 유럽 조달책들의 명단을 불었다. 타히르는 리비아가 원심분리기는 물론 육불화우라늄 역시 원했다고 했다. 리비아가 1999년 20톤 상당의 육불화우라늄을 구입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원심분리기에 주입,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물질이다. 파키스탄은 육불화우라늄은 물론 농축 우라늄까지도 리비아에 전달하기로 했다. 타히르는 2001년 아니면 2002년에 이 우라늄 물질을 파키스탄으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타히르는 이 우라늄 물질이 파키스탄을 떠난 민간항공기에 실려 두바이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이 우라늄을 차에 싣고 이동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리비아로 전달되기까지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타히르는 리비아가 원심분리기 부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 역시 요구했다고 했다. 알루미늄 튜브를 원심분리기에 들어가는 회전자로 만드는 ‘플로-포밍(flow-forming)’ 기기를 원했다고 했다.

칸의 영국인 조달책 피터 그리핀은 책 ‘디셉션’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리비아와의 거래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1994년이었다고 했다. 리비아의 국영석유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기를 납품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1997년 타히르가 찾아와 새로운 요청을 했다고 했다. 타히르는 다시 리비아와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계약비용으로 얼마가 필요하냐고 했다. 그리핀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에 커미션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했다. 타히르는 리비아 계약 금액은 1000만 달러가 넘는다며 그리핀에게도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리핀은 1997년 두바이로 아예 이주해 ‘GTI’라는 회사를 차렸다.

타히르는 GTI 회사계좌에 200만 달러를 이체했다. 필요한 기기를 구입하기 위한 돈이라고 했다. 타히르는 이후 여러 차례 그리핀에게 전화를 해 돈을 다른 곳들로 보내줄 수 있느냐고 했다. 돈은 칸 박사의 사위를 비롯한 칸의 유럽 조달책들에게 전달됐다. 그리핀은 이 돈이 리비아 국영석유회사로부터 들어오는 것임을 알게 됐다. 타히르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리비아의 핵프로그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리핀은 이 때 제대로 영수증을 작성해놓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는 “타히르는 좋은 친구였고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나는 타히르가 어린애일 때부터 알았는데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그리핀의 회사가 일종의 돈세탁 용도로 사용된 것이었다.

1999년 타히르는 그리핀에게 스페인으로부터 ‘플로 포밍’ 기기 두 개를 구해달라고 했다. 이번에도 리비아 국영석유회사에 전달할 물건이라고 했다. 이 기기 하나의 무게는 15.6톤이였고 거실 크기만할 정도로 컸다. 하나당 가격은 35만 달러였다. 그리핀은 이 물건을 2000년 여름에 타히르가 있는 두바이로 보냈다. 타히르는 말레이시아 당국과의 수사과정에서 이 모든 것들은 리비아의 핵개발에 필요한 물건들이었다고 털어놨다.

칸 조달책들 사이의 불화

그리핀은 두 개의 기기 중 하나가 리비아로 직접 가지 않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간 것을 파악했다. 때는 2000년 11월이었다. 이 기기는 남아공의 금속기기 회사인 ‘트레이드핀 엔지니어링’으로 보내졌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기기는 13개월 동안 남아공에 머문 뒤 두바이로 돌아갔다. 남아공의 기술자들이 기기 개선을 위해 개조작업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12월 이 기기는 두바이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말레이시아로 다시 수출됐다. 당시 수출 비용과 운송비를 지불한 사람의 이름은 그리핀이 일하는 GTI 회사 직원 후세인이었다. 그리핀은 후세인이라는 이름의 직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류에 적힌 발송인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보니 타히르가 운영하는 회사로 연결됐다. 

그리핀은 타히르에게 속은 것을 알게 돼 두바이 사업을 정리하고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떠나기 얼마 전 타히르가 그리핀에게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GTI의 이름을 사용해 무역을 계속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리핀은 적법한 사업이라면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그리핀은 유럽으로 돌아간 얼마 뒤 두바이에 있는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GTI 이름으로 알루미늄 튜브 수입이 이뤄졌는데 이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핀은 바로 타히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타히르는 “내 물건이 맞다. 괜찮지?”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핀은 “당연히 안 괜찮다. 또 한 번 이런 일을 하면 두바이 법원으로 끌고 가겠다”고 했다. 그리핀은 이 때까지도 자신의 회사가 리비아 핵프로그램 조달에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여유로운 칸 박사

타히르의 폭로로 유럽과 파키스탄에 폭풍이 덮쳤다. 칸과 오랫동안 일해온 유럽의 조달책들이 속속 체포됐다. 칸 연구소의 책임자는 물론 고위 관계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파키스탄 정보당국에 끌려갔다.

카후타 핵시설 건설을 담당했던 사자왈 사령관의 아들인 샤히크 박사는 오랫동안 칸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잡혀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책 ‘디셉션’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서운 느낌도 없었다. 잡혀간 사람들은 모두 고위직이었다. 우리야말로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기겠는가? 우리는 파키스탄의 영웅들이고 군부의 지원을 받아 수십 년째 이 일을 해왔을 뿐이었다. 칸 박사가 한 모든 일들은 조국을 위한 것이었고 명령을 따른 것이었다. 겁쟁이만이 자신의 친구와 동지를 팔아 넘긴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칸 박사도 여유로웠다. 그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바니갈라 호수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이 호수는 이슬라마바드 주민들의 식수(食水)로 쓰였다. 인근 지역은 그린벨트로 지정돼 있었다. 물을 오염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건물은 물론, 어떤 형태의 개발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칸은 주말에 쉴 수 있는 별장을 이곳에 지었다. 그의 별장에서 나온 하수는 바니갈라 호수로 흘러 들어갔다.

2003년 1월, 미국과 영국의 사찰팀은 다시 한 번 리비아에 들어갔다. 타히르의 폭로로 코너에 몰린 리비아는 전에 보여주지 않은 다른 시설들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미국과 영국은 1997년 이스탄불에서 칸을 만나 계약을 맺은 ‘트리플 M’을 만나겠다고 했다. 리비아는 이번에도 그와의 만남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리비아는 핵개발 계획을 순순히 털어놨다. 1997년 이스탄불 합의를 통해 파키스탄으로부터 P-1 원심분리기 20개와, 원심분리기 200개에 들어가는 부품을 샀다고 했다. 그러나 리비아에서 운영되는 핵시설 수준으로는 우라늄을 농축할 수 없었다고 했다. P-2라는 더 좋은 원심분리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를 수입하게 됐다고 했다. 이는 이슬라마바드에서 두바이로 민간항공기에 실려 옮겨졌으며 이후 트리폴리로 왔다고 했다.

미국과 영국은 2002년 5월 무샤라프 대통령이 리비아를 방문할 때 원심분리기가 파키스탄 세관을 함께 통과했을 것으로 봤다. 무샤라프를 호위하던 군인들이 P-2 원심분리기가 들어있는 화물을 세관을 거치지 않고 통과시켰고 5개월 뒤 민간항공기에 실었다는 것이다. 이 원심분리기가 두바이를 거쳐 트리폴리로 갔다는 것이 미국과 영국의 판단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리비아를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주요 수출 거점 기지로 사용됐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타히르는 두바이에서 리비아의 주문 물량을 모두 채우는 것이 버거워 유럽 인맥이 남아공으로부터 물건을 구입하도록 했다.

전달 과정에서 계속 사라지는 핵기술

리비아는 파키스탄으로 받은 1.7톤 상당의 육불화우라늄을 보여줬다. 파키스탄이 우라늄 농축 시설 완공을 축하하는 의미로 전달했다고 했다. 미국과 영국은 파키스탄이 수출한 물건 중 일부가 도중에 분실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원심분리기 부품과 원심분리기 작동에 필요한 알루미늄이 실린 컨테이너가 두바이에서 리비아로 오는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 전혀 찾아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수차례 리비아를 방문하며 무기 프로그램의 현황을 파악했다. 어떨 때에는 조사에 호의적이었다가 어떨 때에는 무언가를 숨기는 모습을 보였다. 테닛 국장은 리비아 프로그램 사찰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느리긴 했지만 진전은 있었다. 리비아인들은 미국과 영국의 요원들에게 다양한 무기계획이 어디까지 진전되어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르고 여러 차례 무기계획의 일부를 숨기려고 시도했다. 그들이 스커드 B 미사일을 보여주면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스커드 C는 어디 있습니까?” 


고도의 독성을 가진 화학물질 저장시설에 안내되었을 때 우리 검사요원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비아가 치명적 화학물질을 보유한 것에 놀란 게 아니라, 그 물질을 커다란 플라스틱 병에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비아인들의 유일한 안전대책은 그 시설에 들어갈 때 코를 잡는 것이었다. 검사요원들은 재빨리 뒷걸음쳐 나와서 완벽한 화학방호복을 착용한 뒤 창고에 다시 들어갔다.
 
다양한 계획의 在庫(재고)조사를 하는 작업은 몇 달이나 걸렸다. 리비아인들은 핵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비협조적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계획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2003년 11월 말, 스티브와 그의 영국인 동료는 무사 쿠사를 한 모임에 초청했다. 그들은 무사 쿠사에게 리비아가 원심분리기 시설을 구입한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는 이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계획에 대해서 털어놓기 시작했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우리는 칸의 조직망에 대한 작전 덕택으로 그들의 계획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상대방의 카드를 알면서 돈이 많이 걸린 포커를 하는 것과 같았다. 이 경우 그 상금은 카다피에게 궁극적으로 핵무기 능력을 줄 수 있었던 핵개발 계획을 완전히 그리고 평화적으로 해체하는 것이었다.>

‘리비아 비핵화 모델’

2003년 12월 12일 미국과 영국의 사찰팀은 다시 한 번 리비아를 찾았다. 리비아 관계자들은 이들이 도착하자마자 갈색 봉투에 담긴 서류뭉치를 건넸다. 핵무기 설계도면과 각종 기기의 조립 방법 등이 적힌 서류였다. 문서에는 영어와 중국어가 섞여 있었다. 다음날은 공교롭게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고향인 티크리트의 농장에 숨어있다 미군(美軍)에 의해 체포된 날이었다. 후세인 때문인지 리비아는 모든 사실을 미국과 영국에 털어놓게 됐다. 미국과 영국, 리비아 정부 관계자들은 나흘 뒤 만나 리비아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미국과 영국은 카다피가 성명을 통해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포기하겠다고 발표하라고 했다. 카다피가 못하겠다면 정부관계자가 카다피의 성명을 대신 읽는 식으로 진행하라고 했다. 리비아에게 옵션은 없었다.

리비아는 12월 18일 미국과 영국의 뜻대로 성명을 발표했다. 카다피의 외교장관이 TV에 나와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카다피는 발표 직후 성명문을 통해 같은 입장을 내놨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곧바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키스탄에 대한 언급은 이번에도 없었다.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회수를 누가 담당해야 하는지를 놓고 약간의 논쟁이 오갔다. 국제사회의 핵문제를 전담하는 IAEA가 맡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미국 일각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국가가 관련 기술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미국이 이를 관리하게 됐다.  2004년 1월 미군 수송기가 리비아에 도착해 핵 기술과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2만5000톤 분량의 서류와 장비를 싣고 미국으로 가져왔다. 리비아의 자료들은 미국 테네시주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 보관됐다. 원심분리기 용기 등 핵무기 관련 장비는 물론, 탄도미사일에 대한 자료들이 모두 옮겨졌다.

이것이 이른바 ‘리비아 비핵화 모델’의 전말이다. 이는 미국과 북한이 2018년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존 볼튼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 비핵화 과정이 ‘리비아 모델’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크게 반발하며 미국 당국자들을 욕하는 험담을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취소시키기도 했다. 아무튼 리비아의 카다피는 2003년 핵기술을 포기했다. 카다피는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도피 생활을 하다 시민군에 붙잡혀 죽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테네시주 오크리지를 직접 방문, 리비아에서 도착한 기기들을 둘러보는 기념 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는 2004년 7월 12일 오크리지에서 “이 시대의 위험을 극복해내기 위해 미국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며 “우리는 새로운 위협에 맞서는 데 전념할 것이다. 이를 무시하거나 미래에 생길 재앙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도 파키스탄은 언급되지 않았다.

(계속)

관련기사

[ 2020-09-01, 06: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