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반공자유-교양영어(9): The Brothers Karamaz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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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others Karamazov (criticism)


*해설: 도스토예프스키와 그리스도와 공산주의

〈Even if it were proved to me that Christ was outside the truth, and it was really so that the truth were outside of Christ, then I would still prefer to stay with Christ rather than with truth.(Dostoevsky)
그리스도가 진리를 벗어난 것으로 증명되더라도, 그래서 진리가 진실로 그리스도 밖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래도 그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겠다. -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공병사관학교 생도시절 독서광이었다. 그는 푸시킨(Pushkin)이나 고골(Gogol) 등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과 서부 유럽의 고전들―셰익스피어, 괴테, 라시느, 발자크, 빅토르 위고, 쉴러 등―을 涉獵(섭렵)하였다. 그리고 월터 스콧의 모험소설과 호프만의 판타지 등 낭만주의적 소설에도 심취하였다. 낭만주의는 일생을 두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20대 전반이 지나갈 쯤 그는 작품의 주제와 인물들을 현실 세계에서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현실(reality) 자체보다도 더 환상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병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복무하던 1846년 도스토예프스키는 첫 번째 자연주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러시아 문학계를 요동시키며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명하게 되었다. 특히 당대 러시아 문단에서 가장 유명한 비평가였던 벨린스키(Belinsky)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문학적 천재라고 극찬하였다. 벨린스키는 문학을 러시아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위한 투쟁에 사용될 선전도구로 간주하였다. 그는 문학은 사회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벨린스키의 이러한 要件(요건)을 많이 갖추고 있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벨린스키의 이런 功利主義(공리주의)적 예술관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당장 뭔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리고 서구의 이상주의적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면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는 실천적 기독교의 한 형태라고도 간주하게 되었지만 벨린스키의 과격한 유물론과 혁명사상은 결코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벨린스키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는 다른 문학의 길을 가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49년 그가 회원으로 있던 문학토론 클럽에 침투한 직업혁명가의 정부전복 음모에 공범으로 오인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총살집행 직전에 극적으로 減刑(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8년―수용소 4년과 이등병으로서 군복무 4년―동안 流刑囚(유형수)로 있으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고 또 유럽지역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기간 중에 러시아 민중의 실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동정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 受刑(수형) 생활의 경험을 통해 그는 범죄 심리(criminal mind)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위대한 소설 대부분이 범죄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범죄자들과 특히 일부 극악의 흉악범들과 매일 가깝게 접촉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以前(이전)의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에 대한 믿음 및 인간은 본질적으로 善(선)하다는 믿음은 둘 다 잘못된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는 성경을 다시 읽으면서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인간惡(악)의 제거가 필수적인데 종교(기독교)만이 인간의 존재론적 사악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이후 그의 소설의 중심적 주제는 이러한 것―신앙을 통한 인간惡의 극복―이었다. 시베리아의 감옥과 추방생활은 그로 하여금 인간의 영혼이 罪(죄)로부터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한 어떠한 정치적 변화도, 체제를 아무리 변혁하여도, 아무런 효용이 없다는 신념을 확고히 갖게 되었다. 그는 신앙만이 러시아를 인간악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神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거나 독선과 독단에 빠져 스스로를 神보다 더 높은 존재로 간주하게 되면 인간은 악마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통찰하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 소설들은―〈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家 형제들〉―唯我獨尊(유아독존)적 무신론자들이 神[여호와]보다는 자신들의 사상이나 이념을 偶像(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하며 악의 제거에 나서게 되면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악마로 전락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코르니코프도 그런 인물이다.

라스코르니코프는 비범한 지적능력과 높은 정의감과 도덕성을 겸비한 지식인(intelligentsia)이지만 자신의 이성과 논리를 과신, 독선에 빠져 냉혹한 살인자가 된다. 그는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이유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양심에 따라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한다. 그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수사관들에게 “법적으로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현실적 장애를 무시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며 ‘특별한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타인의 피를 흘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라스코르니코프처럼 ‘특별한 사람’이 恣意的(자의적) 기준에 따라 正義(정의)를 독점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면 악마가 되는 것이다. 악마는 善(선)과 정의의 절대자인 神의 권위에 도전하며 神의 지위를 찬탈하려다가 천국에서 쫓겨난 타락 천사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스로를 超人(초인)으로 생각하고 神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정의를 독점하는 者는 필연적으로 악마로 전락한다고 보았다. 정의를 독점하는 초인은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악마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악마적 초인이 권력을 잡고 가치를 독점하면 大災殃(대재앙)이 일어난다. 초인의 이름으로, 미래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혁명의 이름으로, 무제한의 평등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것이 합법적이 되고 고상한 목적이나 위대한 이상의 실현을 위해 모든 인간을 수단으로 변형시키는 일이 자행되기 때문이다. 초인이 무제한의 자유를 추구하거나 모든 사람이 무제한의 평등 곧 극단적인 집단주의를 추구할 때는 그 초인이나 집단의 이름으로 모든 행동이 허용된다. 대량학살 같은 극악의 蠻行(만행)도 당연시 된다.

라스코르니코프는 급진좌파의 선구자이다. 그는 비록 마르크스를 읽지 않았고 나폴레옹을 숭배하고 자신을 선악을 초월하는 초인으로 간주하였지만 그에게는 인민위원의 싹이 보인다. 사회정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 이념에 대한 병적인 집착, 융통성이 없는 경직된 행동, 가치의 독점―이런 것들은 공산주의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라스코르니코프가 고리대금업자를 죽이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를 숙청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고리대금업자(부르주아)를 제거하고 전진하자. 고리대금업자를 처치한 후에 계급도 없고 착취도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의 창조를 위해서는 고리대금업자를 죽이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비록 인류의 이익을 위한 것일지라도 살인은 옳지 않다. 그리스도는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다”라며 공산주의자들의 ‘善을 위한 살인’을 강렬하게 반대하였다. 공산주의자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차이는 惡(악)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고리대금업자, 즉 부르주아는 惡이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惡은 고리대금업자이기 보다는 고리대금업자를 제거하기 위해 라스코르니코프가 채택하는 수단, 즉 폭력이다. 더구나 라스코르니코프는 고리대금업 노파를 죽일 뿐 아니라, 증인을 없애기 위해 죄도 없으며 신앙심 깊은 리자베타(노파의 자매)도 무참하게 살해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善의 이름으로 살인의 도끼를 휘두르는 라스코르니코프를 정의의 사도가 아닌 악마의 화신으로 간주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민중혁명에 반대하였다. 그는 혁명은 인간성에 내재하는 악령이 善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라며 민중혁명의 악마적인 속성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경고는 당대의 러시아를 사로잡았던 사회주의혁명의 도도한 물결에 휩쓸려 무시되었다. 그리하여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러시아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神[러시아 정교]을 버리고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우상을 神으로 모시게 된 죽음의 나라가 되었다. 라스코르니코프의 도끼는 레닌과 스탈린의 손을 거치면서 3500만 명의 리자베타(무고한 인민)를 학살하였다. 러시아에서 뿐 아니라 라스코르니코프의 도끼는 지난 100년 동안 중국, 북한, 동유럽, 캄보디아, 베트남, 쿠바 등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1억의 무고한 인민을 학살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충고 “인간악은 신앙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래서 공산주의라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9-1-52
Major characters
::Fyodor Pavlovich Karamazov::
Fyodor Pavlovich, a 55-year-old 'sponger' and buffoon, is the father of three sons—Dmitri, Ivan and Alexei—from two marriages. He is rumored to have also fathered an illegitimate son, Pavel Fyodorovich Smerdyakov, whom he employs as his servant. Fyodor Pavlovich takes no interest in any of his sons, who are, as a result, raised apart from each other and their father. The relationship between Fyodor and his adult sons drives much of the plot in the novel.

::Dmitri Fyodorovich Karamazov::
Dmitri Fyodorovich (a.k.a. Mitya, Mitka, Mitenka, Mitri) is Fyodor Karamazov's eldest son and the only offspring of his first marriage, with Adelaida Ivanovna Miusov. Dmitri is considered to be a sensualist, like his father, and regularly indulges in nights of champagne-drinking and whatever entertainment and stimulation money can buy. Dmitri is brought into contact with his family when he finds himself in need of his inheritance, which he believes is being withheld by his father. He was engaged to be married to Katerina Ivanovna, but breaks that off after falling in love with Grushenka. Dmitri's relationship with his father is the most volatile of the brothers, escalating to violence as he and his father begin fighting over his inheritance and Grushenka. While he maintains a relationship with Ivan, he is closest to his younger brother Alyosha, referring to him as his 'cherub'.

주요 등장인물
::Ivan Fyodorovich Karamazov​::
“기생충 같은 인간”이고 어릿광대인 55세의 Fyodor Pavlovich는 두 번 결혼해서 낳은 세 아들 Dmitri와 Ivan과 Alexei의 아버지이다. 그는 하인으로 쓰고 있는 사생아 Pavel Fyodorovich Smerdyakov의 아버지라는 소문도 있다. Fyodor Pavlovich는 그의 아들 누구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고 그 결과 아들들은 서로 서로 그리고 아버지와도 떨어져서 양육되었다. Fyodor와 성인이 된 아들들 사이의 관계가 소설의 플롯의 많은 부분을 끌고 간다.

::Dmitri Fyodorovich Karamazov::
Dmitri Fyodorovich(a.k.a. Mitya, Mitka, Mitenka, Mitri)는 Fyodor Karamazov의 장남이고 Fyodor가 Adelaida Ivanovna Miusov와의 첫 번째 결혼에서 나온 유일한 所産(소산)이다. Dmitri는 아버지처럼 육감주의자로 간주되고 정기적으로 밤에 샴페인 퍼마시는 데 빠져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술판과 자극에 몰두해 있다. Dmitri는 그가 받을 유산(어머니가 남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족과 접촉하게 되고 그는 그 유산을 아버지가 쥐고 있다고 믿는다. Katerina Ivanovna와 결혼하기 위해서 약혼하였지만 Grushenka와 사랑에 빠져 파혼해 버린다. 형제들 중에서 Dmitri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장 불안정해서 그와 그의 아버지가 유산문제와 Grushenka를 놓고 싸울 때에 폭력으로 飛火(비화)된다. 그는 Ivan(첫째 동생)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Alyosha(막내동생)와 가장 가까워지고 그를 천사라고 지칭한다.


9-2-53
::Ivan Fyodorovich::
Ivan Fyodorovich (a.k.a. Vanya, Vanka, Vanechka) is the 24-year-old middle son, and the first from Fyodor Pavlovich's second marriage. Ivan is sullen and isolated, but also intellectually brilliant. He is disturbed by the unspeakable cruelty and senseless suffering in the world. In the chapter 'Rebellion' (Bk. 5, Ch. 4), he says to Alyosha: 'It's not God that I don't accept, Alyosha, only I most respectfully return him the ticket.' Ivan's relationship with his father and brothers is rather superficial in the beginning. He finds his father repulsive, and has no positive affection towards Dmitri. While he doesn't dislike Alexei, he seems not to have any deep affection for him either. Ivan falls in love with Katerina Ivanovna, who was Dmitri's betrothed, but she doesn't start to return his feelings until the end. Fyodor Pavlovich tells Alyosha that he fears Ivan more than he fears Dmitri. Some of the most memorable and acclaimed passages of the novel involve Ivan, including the chapter 'Rebellion', his 'poem' 'The Grand Inquisitor' immediately following, the three conversations with Smerdyakov, and his nightmare of the devil (Bk. 11, Ch. 9).

::Ivan Fyodorovich::
24세의 Ivan Fyodorovich는 중간 아들이고 Fyodor Pavlovich의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첫 번째이다. Ivan은 침울하고(sullen) 고립적이지만 知的(지적)으로 대단히 뛰어난다. 그는 세상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잔인함고 무의미한 고통 때문에 마음이 산란한 상태에 있다. “반역, Rebellion”이라는 章(장, chapter)에서 그는 Alyosha에게 말한다: “Alyosha야,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神이 아니야, 단지 나는 매우 정중하게 그에게 차표를 돌려줄 뿐이다.” 소설의 시작부분에서는 Ivan의 아버지와 형제들과의 관계는 다소 피상적이다. 그는 아버지가 혐오감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고 Dmitri에 대해서는 뚜렷한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Alexei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Alexei에게 어떠한 깊은 情(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Ivan은 Dmitri의 약혼녀인 Katerina Ivanovna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소설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not...until) 그의 사랑의 감정에 응답을 한다. Fyodor Pavlovich는 Alyosha(Alexei)에게 Dmitri보다는 Ivan을 더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소설에서 가장 기억할만하고 가장 찬탄을 받는 節(절)중에서 몇몇은 '반역'章(장)과 이것 바로 다음에 오는 그의 “詩”인 “大심문관”과 Smerdyakov와 나누는 세편의 대화와 그의 악마에 대한 악몽 등을 포함한다.


9-3-54
::Alexei Fyodorovich Karamazov::
Alexei Fyodorovich Karamazov (a.k.a. Alyosha, Alyoshka, Alyoshenka, Alyoshechka, Alexeichik, Lyosha, Lyoshenka) at age 20 is the youngest of the Karamazov brothers, the youngest child by Karamazov's second wife and thus Ivan's full brother. The narrator identifies him as the hero of the novel in the opening chapter, as does the author in the preface. He is described as immensely likable. At the outset of the events, Alyosha is a novice in the local Russian Orthodox monastery. His faith is in contrast to his brother Ivan's atheism. His Elder, Father Zosima, sends him into the world, where he becomes involved in the sordid affairs of his family. In a secondary plotline, Alyosha befriends a group of school boys, whose fate adds a hopeful message to the conclusion of the novel.

::Pavel Fyodorovich Smerdyakov::
Pavel Fyodorovich Smerdyakov is the son of 'Stinking Lizaveta', a mute woman of the street who died in childbirth. His name, Smerdyakov, means 'son of the 'reeking one''. He is rumored to be the illegitimate son of Fyodor Pavlovich. He was brought up by Fyodor Pavlovich's trusted servant Grigory Vasilievich Kutuzov and his wife Marfa. Smerdyakov becomes part of the Karamazov household as a servant, working as Fyodor Pavlovich's lackey and cook. He is morose and sullen, and suffers from epilepsy. The narrator notes that as a child, Smerdyakov collected stray cats in order to hang and bury them. Generally aloof, Smerdyakov admires Ivan and shares his atheism.
::Alexei Fyodorovich Karamazov::
Alexei Fyodorovich Karamazov(Alyosha)는 Karamazov 형제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고 Karamazov의 둘째 아내가 낳은 가장 나이가 적은 아이이고 그래서 Ivan과 부모가 같은 완전형제(full brother)이다. 내레이터는 著者(저자)가 서문에서 확인한 것처럼 첫 번째 章(장)에서 그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는 엄청나게 호감이가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사건(소설)의 시초에 그는 러시아 正敎(정교)의 지방 수도원의 수련 修士(수사)이다. 그의 신앙은 그의 형 Ivan의 무신론과 대비된다. 그를 지도하는 장로인 Zosima 신부는 그를 세상 속으로 보내는데 그곳에서 그는 가족의 지저분한 사건과 얽히게 된다. 소설의 副次(부차) 이야기(secondary plotline)에서 Alyosha는 한 무리의 학교 아이들과 친하게 되는데 그 아이들의 운명은 소설의 결론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탠다.

::Pavel Fyodorovich Smerdyakov::
Pavel Fyodorovich Smerdyakov는 “악취 나는 Lizaveta”의 아들이고 Lizaveta는 출산하다가 죽은 거리의 벙어리 여인이었다. 그의 이름 Smerdyakov는 “악취 풍기는 사람의 아들”을 의미한다. 그는 Fyodor Pavlovich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있다. 그는 Fyodor Pavlovich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하인인 Grigory Vasilievich Kutuzov 와 그의 아내 Marfa에 의해서 양육되었다. Smerdyakov는 하인으로서 Karamazov家(가)의 일부가 되어 Fyodor Pavlovich의 하인 겸 요리사로서 일한다. 그는 침울하고 늘 화가 난 상태에 있으며 간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내레이터는 Smerdyakov는 아이였을 때 버려져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絞殺(교살)하여 매장하기 위하여 고양이를 수집하였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연해 하면서, Smerdyakov는 Ivan을 숭배하면서 그와 무신론을 공유한다.
 

9-4-55
::Agrafena Alexandrovna Svetlova::
Agrafena Alexandrovna Svetlova (a.k.a. Grushenka, Grusha, Grushka), is a beautiful and fiery 22-year-old woman with an uncanny charm for men. In her youth she was jilted by a Polish officer and subsequently came under the protection of a tyrannical miser. The episode leaves Grushenka with an urge for independence and control of her life. Grushenka inspires complete admiration and lust in both Fyodor and Dmitri Karamazov. Their rivalry for her affection is one of the most damaging factors in their relationship. Grushenka seeks to torment and deride both Dmitri and Fyodor as an amusement, a way to inflict upon others the pain she has felt at the hands of her 'former and indisputable one'. However, as a result of her growing friendship with Alyosha, she begins to tread a path of spiritual redemption, and hidden qualities of gentleness and generosity emerge, though her fiery temper and pride are ever present.

::Katerina Ivanovna Verkhovtseva::
Katerina Ivanovna Verkhovtseva (a.k.a. Katya, Katka, Katenka) is Dmitri's beautiful fiancée, despite his open forays with Grushenka. Her engagement to Dmitri is chiefly a matter of pride on both their parts, Dmitri having bailed her father out of a debt. Katerina is extremely proud and seeks to act as a noble martyr, suffering as a stark reminder of everyone's guilt. Because of this, she cannot bring herself to act on her love for Ivan, and constantly creates moral barriers between him and herself. By the end of the novel, she too, begins a real and sincere spiritual redemption, as seen in the epilogue, when she asks Mitya and Grushenka to forgive her.

::Agrafena Alexandrovna Svetlova::
Agrafena Alexandrovna Svetlova(Grushenka)는 남자들에게 무시무시한 매력을 가진 아름답고 불같은 성격의 22세의 여성이다. 젊을 때 그녀는 어떤 폴란드출신 장교에게 버림받았고 그 후에 폭군 같은 수전노의 보호를 받았다. 이 에피소드는 Grushenka로 하여금 그녀의 삶에서 독립과 통제에 대한 강열한 욕망(urge)을 가지도록 하였다. Grushenka는 Fyodor와 Dmitri 둘 다에게 완벽한 찬탄과 情慾(정욕)을 불어 넣는다. 그녀의 애정에 대한 그들의 경쟁은 그들(父子)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파멸적인 요인 중의 하나이다. Grushenka는 Fyodor와 Dmitri를 재미삼아서 고문하고 조롱하는 것을 추구하는데 이는 “이전의 명백한 고통”의 손아귀에서 그녀가 느꼈던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Alyosha와의 자라나는 우정의 결과로 그녀는 재생의 길을 밟게 되고 비록 그녀의 불같은 성질과 자존심은 그대로 존속하지만 숨겨져 있던(그녀의 내면에) 부드러움과 관용의 자질이 나타난다.
 
::Katerina Ivanovna Verkhovtseva::
Katerina Ivanovna Verkhovtseva는 Dmitri의 Grushenka와의 공개적인 外道(외도,forays)에도 불구하고 Dmitri의 미모의 약혼녀이다. Dmitri가 자기의 돈으로 Katerina의 아버지가 부채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그녀가 Dmitri와 약혼한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주로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Katerina는 자존심이 지극히 강하여 모든 사람들의 죄를 상기시켜주는 사람(reminder)으로서, 고통당하는 고상한 순교자처럼 행동하기를 원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Ivan에 대한 사랑을 실천에 옮길 수 없고 그래서 Ivan과 자신사이에 도덕적 장애물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소설의 끝에, epilogue(끝말)에서 보이듯이, 그녀가 Mitya(Dmitri)와 Grushenka에게 용서를 구할 때에 그녀도 실질적이고 진지한 정신적 재생을 시작한다.

 
9-5-56
::Father Zosima, the Elder::
Father Zosima is an Elder and spiritual advisor (starets) in the town monastery and Alyosha's teacher. He is something of a celebrity among the townspeople for his reputed prophetic and healing abilities. His spiritual status inspires both admiration and jealousy among his fellow monks. Zosima provides a refutation to Ivan's atheistic arguments and helps to explain Alyosha's character. Zosima's teachings shape the way Alyosha deals with the young boys he meets in the Ilyusha storyline.

::Ilyusha​::
Ilyusha (a.k.a. Ilyushechka, or simply Ilusha in some translations) is one of the local schoolboys, and the central figure of a crucial subplot in the novel. His father, Captain Snegiryov, is an impoverished officer who is insulted by Dmitri after Fyodor Pavlovich hires him to threaten the latter over his debts, and the Snegiryov family is brought to shame as a result. The reader is led to believe that it is partly because of this that Ilyusha falls ill, possibly to illustrate the theme that even minor actions can touch heavily on the lives of others, and that we are 'all responsible for one another'.

::Father Zosima, the Elder::
Zosima 원장은 수도원의 장로이고 정신적 조언자이고 Alyosha의 스승이다. 그는 그의 유명한 예언능력과 치유능력 때문에 그 지역사람들(townspeople)에게는 저명인사가 되어 있다. 그의 정신적 지위는 동료 수도사들에게 경탄과 질투를 자아내고 있다. Zosima는 Ivan의 무신론 주장에 반론을 제시하고 Alyosha의 인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Zosima의 가르침은 Alyosha가 Ilyusha 이야기에서 만나는 어린 소년들을 다루는 방법을 형성(shape)해 준다.

::Ilyusha​::
Ilyusha는 지역의 남학생 중의 하나이고 소설의 중요한 부차적 줄거리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Snegiryov 대위는 가난에 찌든 장교(퇴역)이고 Fyodor Pavlovich가 Dmitri의 부채에 대해서 그를 협박하기 위해 고용한 후에 Dmitri로부터 모욕을 당하게 되고 그 결과로 Snegiryov 가족은 모욕을 당하게 된다. 독자는 이 일 때문에 Ilyusha가 병이 나게 되었다는 것을, 또 아마도 심지어 작은 행동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믿도록 이끌려 진다.
 

9-6-57
The Conflict Between Faith and Doubt
The central philosophical conflict of The Brothers Karamazov is the conflict between religious faith and doubt. The main characters illustrate the different kinds of behavior that these two positions generate. Faith in the novel refers to the positive, assenting belief in God practiced by Zosima and Alyosha, which lends itself to an active love of mankind, kindness, forgiveness, and a devotion to goodness. Doubt refers to the kind of logical skepticism that Ivan Karamazov practices, which, in pursuing the truth through the logical examination of evidence, lends itself to the rejection of God, the rejection of conventional notions of morality, a coldness toward mankind, and a crippling inner despair. Dostoevsky does not present these positions neutrally. He actively takes the side of faith, and illustrates through innumerable examples how a life of faith is happier than a life of doubt. Doubt, as we see in Smerdyakov’s murder of Fyodor Pavlovich and in Ivan’s breakdown, leads only to chaos and unhappiness. But the novel nevertheless examines the psychology of doubt with great objectivity and rigor. Through the character of Ivan, in chapters such as “The Grand Inquisitor,” Dostoevsky presents an incisive case against religion, the Church, and God, suggesting that the choice to embrace religious faith can only be made at great philosophical risk, and for reasons that defy a fully logical explanation.

신앙과 믿음사이에 있는 갈등
“The Brothers Karamazov(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중요한 철학적 갈등은 종교적 믿음과 의심사이의 갈등(conflict)이다. 주요 인물들은 이 두 입장(positions)이 생성해 내는 상이한 종류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다. 소설에서 믿음은 Zosima와 Alyosha가 실천하고 있는, 神에 대한 명확하고(positive) 찬성적인 신앙을 지칭하고 이 신앙은 적극적인 인류애와 친절과 용서와 善(선)에 대한 獻身(헌신)에 이바지한다(lend itself to). 의심은 Ivan Karamazov가 실행하고 있는 논리적 懷疑(회의)를 지칭하는데 이것은 증거에 대한 논리적 검증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神에 대한 배척, 전통적 도덕관 배척, 인류에 대한 냉담, 파멸적인(crippling) 내적 절망에 이바지한다. Dostoevsky는 이러한 입장을 중립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적극적으로 믿음의 편을 들고, 많은 사례(examples)를 통해서 믿음의 삶이 의심의 삶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Smerdyakov의 Fyodor Pavlovich 살해와 Ivan의 發狂(발광)에서 보듯이 의심은 혼돈과 불행으로 이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의심의 심리상태를 매우 객관적이고 엄밀(rigor)하게 점검하고 있다. Ivan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대심문관”과 그런 章(장)에서, Dostoevsky는 종교와 교회와 神을 반대하는 예리한 이유(case)를 제시하고, 종교적 믿음을 수용하는 것은 큰 철학적 모험을 무릅쓰는 것이고 또 충분한 논리적 설명을 거부하는 이유 때문에 가능하다고 암시한다.


9-7-58
The Burden of Free Will
The novel argues forcefully that people have free will, whether they wish to or not. That is, every individual is free to choose whether to believe or disbelieve in God, whether to accept or reject morality, and whether to pursue good or evil. The condition of free will may seem to be a blessing, guaranteeing the spiritual independence of each individual and ensuring that no outside force can control the individual’s choices with regard to faith. But throughout The Brothers Karamazov, Dostoevsky portrays free will as a curse, one that particularly plagues those characters who have chosen to doubt God’s existence. Free will can be seen as a curse because it places a crippling burden on humanity to voluntarily reject the securities, comforts, and protections of the world in favor of the uncertainties and hardships of religious belief. Most people are too weak to make this choice, Ivan argues, and most people are doomed to unhappy lives that end in eternal damnation. The Grand Inquisitor story in Book V explores Christ’s biblical rejection of the temptations offered to him by Satan and concludes that Christ was wrong to have rejected them, since his rejection won free will for humanity, but took away security. Nevertheless, the condition of free will is finally shown to be a necessary component of the simple and satisfying faith practiced by Alyosha and Zosima, and the novel’s optimistic conclusion suggests that perhaps people are not as weak as Ivan believes them to be.

자유의지의 부담
소설은 인간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즉 모든 개인은 神을 믿든 안 믿든, 도덕을 수용하든 거부하든, 선을 추구하든 악을 추구하든, 선택할 자유가 있다. 자유의지의 조건은 축복처럼 보이는데 이는 각 개인의 정신적 독립을 보장하고 어떤 외부의 힘도 개인의 신앙에 관해서 통제를 할 수 없도록 보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라마조프 형제들” 전체를 통해서 Dostoevsky는 자유의지를 하나의 저주로 그리고 있으며 神의 존재를 의심하기로 선택한 그런 인물들에게 특히 재앙을 가져오는 저주(로 그리고 있다). 자유의지는, 그것이 인간에게 종교적 신앙의 불확실성과 困苦(곤고)를 선호하여, 세상이 주는 안전과 안락과 보호를 자발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매우 손해를 보는(crippling)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저주로 보여 질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너무 약해서 이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으며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은 영원한 저주로 끝나는 불행한 삶의 운명에 처해진다고 Ivan은 주장한다. 卷(권) ⅴ의 대심문관 이야기는 Christ가 악마에 의해서 그에게 제안된 시험(temptations, 유혹)을 거부하는 것(성서에 나오는 이야기, biblical)을 탐색하고, 예수의 거부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지만(won) 인간으로부터 안전한 삶(security)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에 Christ가 틀렸다고 결론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의 조건은 결국 Alyosha와 Zosima가 실천하고 있는 단순하고 만족스러운 믿음의 필수적인 구성요소(component)인 것으로 제시되며 소설의 낙관주의적인 결론은 아마도 인간은 Ivan이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약하지는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9-8-59
The Pervasiveness of Moral Responsibility
One of the central lessons of the novel is that people should not judge one another, should forgive one another’s sins, and should pray for the redemption of criminals rather than their punishment. Zosima explains that this loving forgiveness is necessary because the chain of human causation is so interwoven that everyone bears some responsibility for the sins of everyone else. That is, one person’s actions have so many complicated effects on the actions of so many other people that it is impossible to trace all the consequences of any single action. Everything we do is influenced by innumerable actions of those around us, and as a result, no one can be held singly responsible for a crime or for a sin. This idea of shared responsibility is abhorrent to characters in the novel who doubt God and Christianity, especially Ivan, who repeatedly insists that he is not responsible for the actions of anyone but himself. Ivan’s arguments counter a belief in mutual responsibility, since he believes that without God or an afterlife, there is no moral law. In a world in which the absence of God makes moral distinctions meaningless, people are logically justified in simply acting out their desires. Additionally, Ivan’s deep distrust of human nature makes him inclined to keep the rest of humanity at a chilly distance, and the idea that the things he does affect other people makes him emotionally uncomfortable.
 
도덕적 책임의 확산성
소설의 중심적 교훈 중의 하나는 인간은 서로를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서로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고 범죄자들의 형벌보다는 재생을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이다. Zosima는 인간적 因果(인과)의 連鎖(연쇄)는 너무나 서로 얽혀있어서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랑의 용서는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즉 한 사람의 행위는 너무나 많은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너무나 복잡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모든(any) 단독 행위의 모든 결과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무수한 행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며, 그리고 그 결과로서 하나의 범죄나 하나의 죄에 대해서 단독으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이 공동(shared)책임 사상은, 神과 기독교를 의심하는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는, 특히 Ivan에게는, 질색이 되는데, 그는 자신 외의 누구의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Ivan은 神이나 來世(내세)가 없다면 어떠한 도덕률도 있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상호책임에 대한 믿음에 반대가 된다. 神의 不在가 도덕적 특성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세계에서는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논리적으로 정당화 된다. 게다가 인간성에 대한 Ivan의 깊은 불신은 그로 하여금 나머지 다른 인간(자신 외의)과는 차갑게 거리를 두는 경향을 갖게 하고 그가 행하는 일이 타인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그를 정서적으로 불편하게 만든다.
 

9-9-60
When Smerdyakov explains to Ivan how Ivan’s amoral philosophical beliefs have made it possible for Smerdyakov to kill Fyodor Pavlovich, Ivan is suddenly forced to accept the harshest consequences of his relentless skepticism: not only has his doubt paved the way for murder, but he has no choice but to admit his own complicity in the execution of that murder. Ivan suddenly understands the nature of moral responsibility as it has been explained by Zosima, and the sudden comprehension is so overwhelming that it leads to a nervous breakdown—Dostoevsky’s final depiction of the consequences of doubt.

Crime and Justice
In the context of the novel’s larger exploration of sin, redemption, and justice, a major motif in the novel is the idea of crime and criminal justice. The crimes portrayed in the novel are also sins, or crimes against God, and the novel presents them in such a way as to suggest that human beings are not capable of passing judgment on one another. The only true judge, as we see in the aftermath of Dmitri’s wrongful conviction, is the conscience. Images of criminal justice in the novel occur most prominently in the debate between Ivan and the monks about ecclesiastical courts, in the story of the Grand Inquisitor, and in Dmitri’s arrest, imprisonment, and trial.

Smerdyakov가 Ivan에게 Ivan의 몰도덕적 철학적 신념이 Smerdyakov로 하여금 Fyodor Pavlovich를 살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설명할 때 Ivan은 그의 냉혹한(relentless) 懷疑主義(회의주의: 신을 믿을 수 없는 것)의 가혹한 결과를 갑자기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의 의심(신의 존재에 대한)은 살인의 길을 닦았을 뿐 아니라 그 살해의 실행에 있어서 자신의 共謀(공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Ivan은 Zosima가 설명해온 도덕적 책임의 본질(nature)을 갑자기 이해하게 되고 그 갑작스런 이해(comprehension)는 하도 압도적이어서 그를 신경쇠약으로 이끈다—(이것은)의심의 결과에 대한 Dostoevsky의 최종적인 묘사(설명이다).

범죄와 정의
죄와 재생과 정의에 대한 더 큰 탐구의 맥락에서 보면 소설에서 주된 모티프는 범죄와 범죄적 정의에 대한 생각(idea)이다. 소설에서 묘사된 범죄는 또한 神에 대한 죄이거나 범죄이며 소설은 인간은 서로서로에게 심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그런 방법으로 그것들(죄와 범죄)을 표출하고 있다. Dmitri에 대한 잘못된 유죄판결(conviction)의 餘波(여파)에서 볼 수 있듯이 유일하고 진정한 판사는 양심이다. 소설에서 범죄적 정의(정의의 실행이 결과적으로 죄가 되는 정의)의 이미지는 대심문관 이야기에 나오는 Ivan과, 수도승들 사이의 교회재판소에 관한 논쟁과, Dmitri의 체포와 투옥과 재판에서, 가장 선명하게(prominently) 나타난다.
 

9-10-61
Redemption Through Suffering
A central part of Dostoevsky’s exploration of spiritual redemption is the idea that self-knowledge is necessary for a person to be redeemed. As Zosima explains in Book I, only when a man knows himself and faces himself honestly can he come to love others and love God. The principal way to arrive at that self-knowledge is through suffering. Suffering can occur either through the grief and guilt of sin, or, as in the case of Grushenka and Ivan, through the agony of illnesses that are metaphors for spiritual conditions. Apart from the sufferings of Grushenka and Ivan, the other major embodiment of this motif in the novel is Dmitri, who suffers through the misery of realizing his own evil before he can embrace his goodness. When Lise willfully slams her fingers in the door, she provides another, bitterly ironic instance of the motif. Lise wants to punish herself for being wicked, but her idea of suffering is so shallow, vain, and ridiculous that it is not really a serious attempt at redemption.

고통을 통한 구원
Dostoevsky의 정신적 구원의 탐구의 핵심은 인간(person)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기인식이 필수적이라는 사상이다. Book I에서 Zosima가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할 때만이 타인을 사랑하게 되고 神도 사랑하게 된다. 그러한 자기인식에 도달하는 주된 방법은 고통을 통해서이다. 고통은 슬픔과 죄의식(guilt of sin)을 통해서, 혹은 Grushenka와 Ivan의 경우처럼, 정신상태에 대한 隱喩(은유)인, 질병의 심한 고통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 소설에서 Grushenka와 Ivan의 고통 외에도 이 모티프의 다른 중요한 化身(화신)은 Dmitri인데 그는 그의 善(자신 속에 있는)을 받아들일 수 있기 전에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되는 고통(misery)을 통해서 고난을 당하기 때문이다. Lise가 문을 쾅 닫으며 손가락을 고의적으로 다치게 할 때, 그녀는 또 하나의 모티프의 비통한 反語(반어)적인 例(예)를 제공한다. Lise는 그녀의 사악함에 대해서 벌주기를 원하지만 그녀의 고통에 대한 생각은 너무 천박하고 허영에 차있고 터무니없어서 그것은 구원을 향한 진실로 진지한 시도라고는 할 수 없다.
 

9-11-62
Although The Brothers Karamazov is fundamentally an exploration of religious faith, the novel supports the idea that the choice to believe in God cannot be fully explained in rational terms. Profound, inexplicable gestures often take the place of argumentative dialogue. These gestures defy explanation, but convey a poetic sense of the qualities that make faith necessary and satisfying for the human soul. Examples of these profound, enigmatic gestures include Zosima kneeling before Dmitri in Book I, Christ kissing the Grand Inquisitor in Book V, Alyosha kissing Ivan in the same book, Zosima embracing the Earth just before he dies in Book VI, and Alyosha kissing the ground after his dream in Book VII. Each of these gestures can only be partially explained. Zosima, for example, kneels before Dmitri to acknowledge the suffering Dmitri will face. But none of these gestures can be fully explained, and their ambiguity is a way of challenging the rational paradigm that Ivan embraces.

Characters as Symbols
Because The Brothers Karamazov is both a realistic novel and a philosophical novel, Dostoevsky’s characterizations tend to yield fully drawn, believable individuals who also represent certain qualities and ideas bearing on the larger philosophical argument. The drama acted out between the characters becomes the drama of the larger ideas in conflict with one another.

“카라마조프家의 형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적 신앙의 탐구이지만 神에 대한 신앙의 선택은 이성적인 입장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상을 지지한다. 종종 심오하고 설명이 불가능한 행동(gestures)이 논쟁적인 대화를 대신한다. 이들 행동들은 설명에 저항하지만(설명하기가 힘들지만) 인간 영혼을 위해서는 신앙을 필요로 하고 신앙을 만족스럽게 만드는 資質(자질, features)에 대한 시적인 느낌(sense)을 전달한다. 이들 심오하고 不可思議(불가사의)한 행동의 예는 Book I에서 Zosima가 Dmitri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 Book V에서 Christ가 대심문관에게 키스하는 것, 같은 책(Book V)에서 Alyosha가 Ivan에게 키스하는 것, Book VI에서 Zosima가 죽기 전에 땅을 끌어 않는 것, 그리고 Book VII에서 Alyosha가 꿈을 꾼 후에 땅에 키스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행동들의 각각은 부분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Zosima는 Dmitri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고통을 인정해주기 위해서 Dmitri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충분히 설명될 수는 없으며 이 행동들의 모호성은 Ivan이 품고 있는(embrace) 이성적 사고체계(paradigm)에 도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〱세상은 이성적 논리로만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하다.〉
 
상징으로서의 인물
“카라마조프家의 형제”는 사실적 소설이면서도 철학적 소설이기 때문에 Dostoevsky의 성격묘사(characterizations)는, 보다 더 큰 철학적 論據(논거, argument)와 관련된 특정 자질과 사상을 나타내는, 충분히 묘사되고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인물들 간에 연출되는 드라마는 서로 상충(conflict)되고 있는 보다 더 큰 사상의 드라마가 된다.
 

9-12-63
Most of the important symbols in the novel, then, are characters. Almost every major character in the novel embodies a concept: Alyosha represents faith, Ivan represents doubt, and Fyodor Pavlovich represents selfishness and physical appetite. Some characters have more specific designations. Smerdyakov, for instance, works primarily as a living symbol of Fyodor Pavlovich’s wickedness.

Zosima’s Corpse
The monks, including Alyosha, all expect Zosima’s death to be followed by a great miracle that will commemorate his extraordinary wisdom and virtue in life. They even expect that he will prove to be a saint. In monastic lore, one of the ways in which a saint can be detected after death is that his corpse, rather than emitting the stench of decay, is instead suffused with a pleasant smell. After Zosima’s death, however, no miracle occurs. Moreover, Zosima’s corpse begins to stink very quickly, exuding a particularly strong and putrid odor, which is taken by his enemies in the monastery as proof of his inner corruption. For Alyosha, who craves a miracle, the indignity visited upon Zosima’s corpse exemplifies the lack of validation with which the world often rewards religious faith. The fate of Zosima’s corpse suggests that faith is not justified by miracles. Rather, the person who chooses faith must do so in defiance of the many reasons to doubt.

그래서 소설에 나오는 중요한 상징들의 대부분은 인물들이다. 소설의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은 하나의 개념을 化身(화신)한다. Alyosha는 믿음을 나타내고 Ivan은 懷疑(회의)를, Fyodor Pavlovich는 이기심과 육체적 욕망을 나타낸다. 어떤 인물들은 특별히 지명된 이름(designations)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Smerdyakov는 Fyodor Pavlovich의 사악함의 살아있는 상징으로서 주로 작용한다.

Zosima의 屍身(시신)
Alyosha를 포함해서 수도승들은 모두 Zosima의 죽음 뒤에 그가 生前(생전)에 이룩한(in life) 그의 특별한 지혜와 미덕을 기념해줄 위대한 기적이 뒤따라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들은 심지어 Zosima는 성자인 것으로 판명될 것을 기대한다. 수도원의 傳承(전승)지식에서는 성자가 死後(사후)에 발견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그의 시신이 부패의 악취를 발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상쾌한 향기로 뒤덮이는 것이다. 그러나 Zosima의 죽음 후에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Zosima의 시신은 특별히 강력하고 부패한 냄새(odor)를 발산하면서 매우 빨리 악취를 풍기기 시작하며 이것은 수도원 안에 있는 그의 적들에 의해서 內的(내적) 부패의 증거라고 여겨진다. 기적을 갈망하고 있는 Alyosha에게는 Zosima의 시신에 닥쳐온 모욕적인 대우(indignity)는 세상이 종종 종교적 신앙에 부여하는 批准(비준, validation)에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예시한다. Zosima 시신의 운명은 믿음은 기적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오히려 믿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믿음을 의심하게 하는 많은 이유에 저항해서 그렇게(믿음을 선택) 해야 한다.

 

[ 2020-09-01, 16: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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