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對국민 사과 “핵확산에 정부 개입은 없었다. 나의 잘못이다”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25) / ‘核의 아버지’의 몰락…모든 책임을 칸에게 떠넘기는 무샤라프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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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의 아버지’를 향하는 수사망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체포된 다음날인 2003년 12월 14일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에 대한 암살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번에는 정말 천운(天運)이 그를 도왔다. 무샤라프 대통령 일행이 지나던 다리에 장착돼 있던 원격 조정 고성능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551파운드(약 250kg)에 달했다. 이 폭탄은 무샤라프 일행이 다리를 통과한 후에 터져 모두 무사했다. 조사 결과 군부의 극단세력이 이를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동조하고 칸 박사를 탄압한 것에 대한 불만이 범행 동기였다. 그는 2003년 12월 25에도 테러 위협을 받았다. 두 명의 자살폭탄 테러범이 각각 트럭을 타고 무샤라프가 타고 있던 리무진으로 돌진했다. 트럭이 무샤라프의 차량을 빗겨가 무샤라프는 무사했다. 테러범을 비롯한 16명이 이 테러로 숨졌다.

14일 목숨을 건졌던 무샤라프는 다음날인 15일 칸 박사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파키스탄 정보당국(ISI)은 칸 박사의 집으로 찾아가 수사했다. 언론과 지지자들이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의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7일 후인 12월 22일 첫 번째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마수드 칸 외무부 대변인은 “칸은 체포되거나 구금된 것이 아니다”라며 “그에 대한 어떤 제한 조치도 내려진 것이 없다”고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사안과 관련해 칸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뿐이라고 했다.

칸의 딸 디나는 아버지가 사전에 작성해놓은 서류를 갖고 있었다. 칸은 이 서류를 부인 헨리에게 맡겨놨다고 한다.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공개하라는 취지였다. 군부의 지시에 따라 핵기술을 수출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렸을 때부터 칸을 동경하며 가까이에서 지내왔던 샤히크 박사는 칸이 12쪽 분량의 서류를 작성해 놓았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알려줬었다고 했다. 디나는 이 서류를 들고 영국 런던에 갔다. 그는 영국 정보당국에 이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즉각 성명을 내고 디나가 국가기밀을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무샤라프는 디나가 이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칸 박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정확한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칸 박사를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디나는 아버지의 신변을 걱정해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는 영국 언론을 만나 “진실은 언제나 그랬듯,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라고 했다.

무샤라프 대통령도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이었다. 서방세계는 핵확산에 대한 추가 자료를 요구하며 압박했다. 군부 강경파는 그의 親美주의적 정책에 반발하고 있었다. ‘핵폭탄의 아버지’ 지지 세력은 분노로 가득 찼다. 무샤라프는 자신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그는 대변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지시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민감한 핵기술 이전을 허가하거나 이를 직접 시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파키스탄 정부는 절대 핵확산을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파키스탄은 IAEA에 필요한 모든 협조를 하고 있다. 대통령은 파키스탄이 이런 약속을 저버릴 일은 없을 것을 400% 확신한다고 말했다. 극소수의 개개인만이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무샤라프가 꺼내든 전략은 또 한 번 ‘개개인’과 정부 사이의 선을 긋는 것이었다. 정부나 군대의 지휘체계를 따른 것이 아닌, 개인의 일탈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모든 책임을 칸에게 떠넘기는 무샤라프

칸 연구소(KRL) 고위 관계자들이 파키스탄 정보당국(ISI)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가족들은 이들이 어디에서 조사를 받는지도 몰랐다. 정부는 이들로부터 ‘보고’를 받는 중이지 체포하거나 구금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칸 박사의 집으로도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샤히크 박사에게 쪽지를 건넸다. 칸 박사는 “왜 과거 핵거래 계획을 승인했던 전현직 장군들을 조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1990년 당시 참모총장으로 이란과의 거래를 승인했던 베그 장군과, 북한과 미사일-우라늄 농축 기술을 맞바꾸는 거래를 추진한 카라맛 장군을 조사하지 않느냐고 했다. 카라맛은 미국 대사를 지내고 있었다. 칸은 “참여했던 장군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놓고 조사하지 않는 이상 결론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샤히크 박사는 이런 쪽지 내용을 책 ‘디셉션’ 저자에게 보여줬다.

2004년 1월 23일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했다. 무샤라프는 ‘반역자’, ‘범죄자’ 등의 표현을 사용해가며 이들이 사익(私益)을 추구하기 위해 핵기밀을 팔았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했다. 그는 정부나 군대가 이에 개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CNN 기자는 ‘소총에 들어가는 작은 볼트 하나가 분실되는 것도 정부는 다 파악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핵기술이 빠져나가는 것을 정부가 모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샤라프는 “관련 기술은 컴퓨터나 문서, 그리고 사람들 머리속에 있기 때문에 더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다”라고 했다. 국제사회는 파키스탄이 남아공의 한 회사로부터 5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구입하려던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심분리기 하나는 세탁기 하나 정도의 크기다. 또한 미국과 영국은 이탈리아 항구에 도착한 BBC 차이나호(號)에서 다섯 개 컨테이너 상당의 핵 관련 자료 및 장비를 압수한 적이 있다. 더 끔찍한 것은 파키스탄이 고농축 우라늄을 보관해놓은 캐니스터 40개가 분실된 사실도 있다는 점이었다. 캐니스터는 작은 자동차 하나 크기다. 무샤라프는 이런 지적이 나오자, “파키스탄 혼자서 이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유럽 국가와 회사들도 개입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파키스탄 국적자들이 이 일을 혼자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앞서의 그의 주장에서 한 발 물러서는 동시에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었다.

사흘 뒤인 1월 26일, 무샤라프는 책임을 A. Q. 칸 박사에게 돌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칸 박사를 가택 연금 조치에 취한다고 밝혔다. 칸 박사의 집 근처를 서성거리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도 금지했다.

정부의 전략기획실을 총괄하고 있는 칼리드 키드웨이 장군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칸 박사가 12쪽 분량의 자술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칸 박사가 자술서를 통해 이란과 리비아, 북한에 핵 관련 부품 및 기술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했다. 칸이 불법 밀수출 네트워크의 총책임자였다고 했다. 비밀리에 외국 고객들에게 핵기술을 팔았다고 했다. 칸이 핵기술을 판매한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슬람 국가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궁금한 게 많았다. 이란과 리비아는 그렇다고 쳐도 북한은 이슬람 국가가 아니었다. 키드웨이 장군은 질문을 받지 않았다.

얼마 후 칸 박사는 무샤라프 대통령과 독대(獨對)했다. 무샤라프는 회고록에서 칸에게 증거를 제시하니 그는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칸은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고 했다. 무샤라프는 “칸은 나에게 정식적인 사면(赦免)을 요구했다”고 했다. 무샤라프는 “사과는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해야 하며 사면 요구 역시 그들에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샤라프는 TV를 통해 사과의 뜻을 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칸 측근의 증언은 엇갈린다. 이 측근이 훗날 언론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인 쪽은 무샤라프였다. 무샤라프는 거래를 하자고 했다고 한다. 칸이 TV를 통해 사과를 하면 모든 것을 묻어두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측근에 따르면 무샤라프는 칸에게 “당신은 여전히 나의 영웅이다”라고 했다.

칸의 對국민 사과문

2월 4일, 파키스탄 정부는 칸 박사가 TV에서 발표할 사과문을 사전에 검토했다. 정부는 사과문을 검토한 뒤 칸 박사를 국영방송 스튜디오로 불렀다. 미국을 의식한 무샤라프는 칸에게 영어로 발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영어가 훨씬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방송을 얼마 앞두고 칸 박사는 프롬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이 적어온 노트를 토대로 읽겠다고 했다. 이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무샤라프는 생방송 형식으로 진행하되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방송하도록 했다. 칸이 예상하지 못한 발언을 할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새로운 사실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전문(全文)을 번역해 소개한다.

<신사 숙녀 여러분,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두 달간 있었던 매우 불행한 일들로 사람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준 것을 속죄하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에 대해 매우 비통하고 괴로우며 후회스럽습니다.

저는 파키스탄의 핵프로그램이 우리 조국의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들 가슴 속에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감동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국가 안보에 어떤 뜻밖의 일이나 사고, 위협이 발생하게 된다면 국가의 정신을 크게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과, 이에 따른 여파로 파키스탄에 발생하게 된 좋지 않은 일들이 우리 국가를 매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파키스탄 정부가 지시한 수사는 일부 국가와 국제기구가 지난 20년간 특정 파키스탄 국적자와 외국인이 행한 핵확산 행위에 대한 의혹과 관련한 불편한 자료와 증거들에 따른 것입니다.

수사 결과, 의혹으로 제기된 많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이 일들이 제 명령에 따라 이뤄진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이 문제를 담당하던 정부 관계자들은 저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증거와 각종 조사 결과물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대부분이 진실이고 정확하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제 일생의 성과가…이런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는…사실을 알게 돼 너무 괴롭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충격에 빠진 조국에 무한한 유감과 사죄를 표하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서게 됐습니다. 제가 국가 안보를 위해 일해온 공직생활 동안 여러분이 많은 존경과 사랑, 그리고 애정을 보내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모든 상(賞)과 명예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일생의 성과는 흔들림 없는 국가 안보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선의(善意)에 기초했지만 허가를 받지 않은 확산 행위와 관련해 잘못된 선택을 내려 이런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게 됐다는 사실에 고통스럽습니다.

제 부하로 일하며 이런 일에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 모두 저처럼 선의에서 이런 일을 했고 제 지시를 받아 했다는 점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이런 활동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어떤 허가도 없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제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여러분의 용서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활동이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약속드립니다.

최선의 국익을 위해 파키스탄 국민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이와 같은 안보에 매우 밀접한 사안에 있어 계속 추측을 하거나 정치화하지 말아주십시오.

알라가 파키스탄을 항상 안전하게 보호해주길. 파키스탄이여 영원하라.>

파월 국무장관 “세계 최악의 핵확산범은 이제 사라졌다”

칸의 사과문 발표의 파장은 대단했다. 이 소식은 국내외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칸의 지지자들은 칸이 한 표현 중 ‘선의에서’라는 문구에 주목했다. 이들은 검열을 받은 칸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없었지만 ‘선의에서’라는 표현을 넣음으로써 지지자들에게 무언가 암시를 했다고 봤다. 즉, 그는 항상 정부의 명령에 따라, 그리고 애국심에 따라 행동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에 대한 진실은 칸 본인만 알 것이다. 칸 지지자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들은 “칸은 죄수가 아니다 대통령이 돼야 한다”, “칸은 국민영웅이다” 등을 외쳤다. 이들은 정부가 칸을 고문하기로 협박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무샤라프의 퇴진을 요구했다.

무샤라프는 다음날 칸을 사면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국제사회도 그의 죄를 용서해줄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게 맡겨라. 내가 칸 박사와 국제사회 사이에서 중재를 하겠다. 그에겐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2006년 발표된 그의 회고록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무샤라프는 회고록에서 “칸은 그냥 한 명의 금속공학자였으며 복잡한 핵개발이라는 과정에서 한 부분만을 담당한 사람이었다는 게 진실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나 로버트 오펜하이머(注: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것처럼 포장했다”고 했다. 무샤라프와 칸의 진실 공방, 비방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언론은 칸 박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내 여론의 상당수도 무샤라프보다 칸 박사를 지지하고 믿었다. 기자들은 무샤라프를 만날 때마다 정말 정부가 개입한 사실이 없었냐고 물었다. 이런 질문에 화가 난 무샤라프는 “만에 하나 정부나 군대가 이런 활동에 개입했다고 해보자.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를 사실 그대로 떠벌리는 것이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했다. 그는 “만약 그렇게 하게 되면 파키스탄은 불량국가로 지명될 것이고 물리적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한 외신 기자는 계속해서 물고늘어졌다. 그는 칸 박사와 관련된 자료와 증거를 제시하라고 했다. 독립적인 조사기관을 통해 다시 조사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화가 난 무샤라프는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해라, 파키스탄은 주권국가이고 핵프로그램 관련 내용은 미국이 됐든 다른 나라가 됐든 어느 곳에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정부는 칸 박사에 대한 파키스탄 정부의 대응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무부 대변인실은 “파키스탄 수사의 진정성에 대해 감탄했다”고 했다. 파키스탄이 관련 자료를 모두 국제사회에 제출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콜린 파월 국무부장관은 “최악의 핵확산범이 이제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A. Q. 칸과 그의 네트워크가 핵을 확산하는 것을 더 이상 우려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도 며칠 후 연설을 통해 파키스탄을 치켜세웠다. 그는 “A. Q. 칸은 범죄 사실을 실토했다. 그의 측근들도 사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은 ‘탐욕스럽고 광신도적인 핵 상인들이 여전히 불량국가에서 고객을 찾고 있다’고 했다. ‘수백만 달러에 관련 기술을 팔아 이들의 핵개발을 돕고 있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당신들을 찾아낼 것이고 당신들이 멈출 때까지 우리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IAEA와 UN은 칸의 사과문 발표 이후 이를 환영한다면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칸 박사가 ‘빙산의 일각’이라며 ‘혼자서 그런 일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역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조금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란과 리비아, 북한에 핵기술을 판매한 사람에게 사면을 내린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훗날 이와 관련한 여론이 집중되자 “국가영웅을 상대해야 하는 무샤라프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라며 파키스탄을 더 이상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복수를 다짐하는 칸

칸 박사의 집은 정보당국이 통제했다. 직계가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그의 집을 드나들 수 있었던 사람은 샤히크 박사였다. 그는 칸 박사가 고혈압 증세를 보이고 있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전화는 차단됐다. 신문 배달도 금지됐다. 그는 TV도 볼 수 없었다. 소파에 앉아 혼잣말을 하거나 코란을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요가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샤히크에 따르면 당시 칸 박사는 정신적으로 크게 힘들어했다. 칸 박사는 부시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이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십자군 전쟁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또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칸은 군부, ISI,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그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속으로 복수를 다짐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전략은 칸과 칸의 측근들의 입을 막아 이 문제가 잊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정부 공식 발표로는 총 9명의 KRL 관계자들이 체포됐다. 더 이상의 수사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도 파키스탄으로부터 핵확산 과정에 대한 추가 정보를 들을 수 없었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IAEA와 미국이 파키스탄의 수사 처리 방식에 만족하고 있다”며 “이 사건은 이렇게 종료됐다는 사실을 밝힌다”고 했다.

칸 박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뉴스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1차 핵실험을 했다. 이란의 핵시설 사찰 과정에서 계속 의문스러운 핵활동이 감지됐다. 미국과 서방세계 입장에선 파키스탄의 핵무기는 이미 오래 전 일이고, 파키스탄의 핵확산도 일단락된 사안이었다. 전세계 언론 역시 북한과 이란의 핵활동을 더 큰 위험요소로 보고 크게 다뤘다. 정작 이들 국가에 핵기술을 전달한 파키스탄 네트워크에 대한 실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사라져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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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2, 05: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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