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공개된 또 하나의 문건 ‘파키스탄 정보국의 2004년 칸 수사 보고서’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27) / “이란∙리비아에 핵기술 이전 사실 인정…칸이 직접 돈을 받지는 않았다”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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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개발 모토 ‘구걸하고 빌리고 훔쳐오라’

2011년 폭스뉴스는 헨더슨 기자로부터 또 하나의 서류를 입수해 보도했다. 이는 ‘파키스탄 정보당국(ISI)의 A. Q. 칸 수사 보고서’라는 이름의 문서다. ISI가 칸 박사의 對국민 사과 방송 전에 진행된 수사에서 확인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문서는 파키스탄 핵개발의 간략한 역사부터 확산까지의 일련의 상황을 담고 있다. 파키스탄 핵개발의 모토는 ‘구걸하고 빌리고 훔쳐오라’였다고 했다. 파키스탄 핵개발 과정을 세 단어로 요약, 핵심을 짚은 표현이다.

이 문서는 서방 정보당국에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칸 박사를 직접 조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이미 조사가 완벽히 끝났다는 이유를 들며 칸에 대한 조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칸에 대한 추가 조사는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문서가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는 ‘수사 보고서’라고 보기 어렵다. 또 중요한 것은 중국으로부터 받은 기술 도움과 북한으로의 핵확산 과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리비아와 이란 등에 대한 핵확산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중국으로부터의 도움, 북한에 대한 기술 전달은 칸이 주동적으로 움직였다. 칸은 이런 사실을 ISI에 제출한 10쪽 분량의 진술서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다. ISI의 수사 보고서는 칸의 조달책들이 이란과 리비아로부터 돈을 받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술 일부’를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란과 리비아에 핵기술이 전달됐다는 사실, 이에 대한 대가로 칸의 네트워크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칸의 진술서와 ISI의 수사 보고서에는 자파르 니아지라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리비아와 이란의 핵확산에 대한 돈을 전달받은 것은 니아지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베나지르 부토 총리의 측근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2004년 칸을 수사할 당시 그의 전화를 도청했다. 칸은 이란 측에 “파키스탄과 이란의 핵협력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만 대라”고 했다. 파키스탄 전문가인 하산 아바스 교수는 칸이 니아지라는 엉뚱한 사람의 이름을 집어넣어 수사를 어렵게 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칸 박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돈을 받은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앞서 파키스탄 정부는 칸 박사를 가택 연금하면서 그가 ‘불법 밀수출 네트워크의 총책임자였다’고 했다. 비밀리에 외국에 핵기술을 팔았는데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이슬람 국가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보고서 역시 이란과 리비아와의 우호관계 유지를 위해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적고 있다.

이 문서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몇 개 더 있다. 우선 이란과 리비아로부터 받은 돈 대부분은 칸의 조달책으로 활동한 사업가들이 사용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가 칸 박사가 파키스탄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기부금 형식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또한 이들 조달책은 칸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핵 관련 기술을 외국에 보낸 것으로 묘사돼 있다. 칸이 모르는 사이에 기술이 외국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보고서는 말미에 흥미로운 내용을 담기도 했다. 일부 기술이 확산됐을 수는 있지만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한 ‘서방의 납품회사가 가장 위험한 기술을 파는 대규모 암시장 네트워크’라는 것에 대해 전세계가 경각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핵개발에 필요한 부품 및 장비의 설계도는 칸의 조달책으로부터 유출됐을 수 있지만 결국 이 설계도를 전달받아 물건을 납품하는 것은 서방세계의 회사들이었다는 주장이다. 만에 하나 확산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이는 칸과 연계된 조달책뿐만 아니라 실제 물건을 만들어 납품한 회사들 잘못도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ISI는 국제사회가 칸을 조사할 경우 생길 파장을 우려해 칸의 책임을 최소화하려 한 것 같다. 파키스탄 정부의 개입은 없었다고 한 상황에서 칸이 입을 열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ISI의 수사 보고서를 全文 번역해 소개한다.

파키스탄 정보당국(ISI)의 A. Q. 칸 수사 보고서

<이란과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한다고 밝힌 이후 여러 언론의 비판적 보도와 여러 소식통을 인용한 정보들을 접하게 됐다. 파키스탄 정부는 전세계 신문과 언론의 다양한 주장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원심분리기 부품과 장비의 생산∙조립∙실험에 참여한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 그리고 이를 수입하고 수출하는 데 가담한 책임자들에 대한 강도 높고 집중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안보 국장과 감독 담당 국장도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지난 4년간 해외에 있었던 설계부서의 책임 엔지니어도 얼마 전 귀국해 구금됐다. 육불화우라늄(UF6)에 대한 관리 기록을 책임졌던 공정 관리국장, 천연가스와 우라늄 등의 수출입(輸出入) 과정을 책임졌던 보건물리국 국장도 구금됐다. 칸 연구소(KRL)의 설립자인 A. Q. 칸 박사도 ISI 국장 등의 조사를 받았다. 조사는 세 차례 이뤄졌고 오랫동안 진행됐다.

조사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확인됐다.

1. 이 기관(KRL)은 1976년 중순에 설립됐다. 프로젝트 담당 국장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조달하는 데 있어 모든 방법을 동원할 수 있는 전권(全權)을 위임받았다. 1971년 국가 분리(注: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분리),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파키스탄의 안보와 존속은 직접적이고 급박한 위협을 받게 됐다.

2. 지아 울 하크 장군은 ‘구걸하고 빌리고 훔쳐오라(beg, borrow, or steal)’를 당대(當代)의 정책으로 선포했다. 파키스탄이 핵 관련 부품과 장비를 사오는 것이 강력한 수출 금지와 규제로 막힌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3. 후진국이었던 파키스탄은 산업기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모든 부품과 기기를 해외 시장에서 사와야 했다. 파키스탄 국내에 위장회사 네트워크를 만들어 수출 금지 조치를 회피해 필요한 물건을 구해와야 했다. 이런 회사는 쿠웨이트와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싱가포르, 영국, 독일,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에서도 운영됐다.

4. 국내에 산업기반 시설이 없었던 관계로 원심분리기 장비 부품을 생산하는 설계도가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으로 보내졌다. 작업 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해 필요한 수천 개의 부품과 장비를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5. 세관과 금융의 규제가 없었던 두바이가 핵심 작전 기지로 사용됐다. 모든 해외 납품회사들(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터키, 벨기에, 스위스, 독일 등)은 주기적으로 두바이로 와 주문과 견적 내용 등을 논의했다. ‘벤 벨리아 엔터프라이스(BBE)’라는 이름의 회사는 아랍계 경찰관이 소유한 곳이었다. 그는 영국 국적자인 A. 살람 씨가 소개했다. BBE는 파룩이라는 이름의 스리랑카 국적의 매니저를 고용하고 있었다. 살람과 파룩은 모두 스리랑카 출신으로 좋은 친구 관계로 지내고 있었다. 우리 측의 전문가들과 해외 납품회사들은 주기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설계도는 두바이에 보관됐다. 부품 주문 목적으로만 사용됐고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도록 했다.

6. 파키스탄 국민들은 종교 및 이념적 연관성으로 인해 이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아슬람 베그 전 육군참모총장은 파키스탄의 국방비에 쓸 수 있는 재정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이란으로부터 받았다. 그는 이에 따른 대가로 이란과 핵 분야에 있어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베나지르 부토 정부는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데 큰 압박을 받았다. KRL은 총리의 국방자문인 이미티아즈 장군의 결정과 승인, 지시에 따라 이란의 연구개발 작업에 필요한 일부 설계도와 부품을 이란에 보냈다. 이때 전달된 정보는 매우 부족했고 이란은 이를 사용해 작은 시험용 시설도 만들 수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원심분리기 시설을 만들거나 핵무기를 생산하는 것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이란은 유럽의 납품회사들과 이미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두바이(파룩)를 통해 부품과 장비를 수입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파룩을 통해 어느 정도 기간 동안 긴밀한 협력 관계가 유지됐다. 이란은 파룩에게 밸브와 인버터, 제어장치, 캐스캐이드 등에 대한 설계도를 요구했다. 이란은 파룩에게 500만 달러를 전달했고 이에 대한 정보를 구해달라고 했다. 파룩은 이 돈 중 일부를 니아지 박사(注: 부토 총리의 측근)에게 전달했다. 니아지는 파룩과 이란인들의 만남을 처음 주선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달받은 금액 일부를 그의 개인 계좌에 넣었다. 돈의 일부는 하이더 자만이라는 가상의 인물 계좌에 이체됐다. 이는 파룩, 파룩의 조카인 타히르, A. Q. 칸 박사가 차례로 운용하게 됐다. 이 계좌는 파룩이 직접 개설했다. 타히르는 이 계좌에 입금된 돈을 사업 자금으로 썼다. 일부는 칸 박사가 파키스탄에서 운영하는 사회, 교육, 복지 프로젝트에 기부금 형식으로 들어갔다.

7. 이란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구식 모델인) P-1 원심분리기 부품을 원했다. 이란은 타히르를 통해 KRL의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파룩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注: 해외 조달 업무를 담당하던 파룩은 두바이에서 활동한 사람이며 지금 언급되는 파룩은 파키스탄 핵시설에서 근무한 사람이다). KRL의 파룩을 통해 부품을 전달받으려 했다. 이는 오래된 부품으로 KRL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작은 시험용 시설을 건설하거나 핵무기를 만들기에는 충분하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8. 이란의 시설에서는 우라늄이 발견된 정황이 있다고 한다.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KRL에서 보내진 부품에 실수로 UF6 기체가 묻은 것일 수 있다. 이란에 보내지기 전 제대로 이를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9. 스리랑카인 파룩은 리비아와 접촉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니아지 박사를 통해 리비아와 접촉했다. 파룩은 납품회사에 접촉해 설계도의 복사본 등을 건넸다. 이는 칸 박사가 두바이에 보관해둔 것이다. 칸 박사가 영국과 스위스로부터 주문하려 한 부품의 설계도도 포함돼 있었다. 칸 박사가 작성해놓은 노트도 필요할 때 사용되기 위해 두바이에 보관됐다. 파룩과 타히르는 이 시설을 직접 관리했기 때문에 이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들이 이 서류들을 복사해 리비아인들에게 보낸 것이 확실하다. 리비아는 파룩과 타히르에게 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중 일부는 니아지 박사에게 전달됐다. 일부는 인도와 싱가포르 등으로 보내졌다. 일부는 가상 인물인 하이더 자만의 계좌로 입급됐다. 타히르는 돈의 일부를 납품회사와의 거래비용으로 썼다. 일부는 칸 박사가 파키스탄에서 운영하는 사회, 교육, 복지 관련 프로젝트에 기부됐다.

10. 이란 문제는 옛날에 모두 끝났다. 그러나 리비아는 두바이를 통해 부품과 장비를 구하려고 했다. 리비아는 타히르를 통하거나 유럽의 납품회사에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를 구하려 했다.

11. 이들에게 지원을 한 이유는 이들 국가와 파키스탄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국가들은 과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매우 뒤떨어지는 국가였다. 우리의 지원을 통해 이들 국가가 시험용 시설을 구축하거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2. 과거의 특이한 상황, 그리고 느슨하게 관리되던 규정들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과거 정권이 이들 국가에 개인적으로 약속을 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제는 국가통제위원회의 감시하에 매우 엄격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외부로 유출되거나 시설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다행히도 이 문제가 무기 통제와 관련해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대규모 암시장 네트워크의 위험성을 깨닫게 됐다. 서방의 납품회사가 가장 민감하고 위험한 기술을 판매하는 네트워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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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4, 06: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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