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지진으로 만신창이가 된 핵시설…무샤라프의 복구 도움 요청을 거절한 칸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핵확산, 그리고 A. Q. 칸 박사 (28) / 독일 정보당국 ‘칸은 떠났으나 핵확산은 계속됐다’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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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샤라프와 칸의 갈등

2006년에 들어 파키스탄의 핵확산 문제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칸 박사에 대해 나오는 소식은 그의 건강과 관련된 내용 정도였다. 2006년 여름, 그는 전립선암을 앓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많은 이슬람 사원(寺院)들이 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9월 7일 칸의 가족은 일시적으로 가택 연금에서 해제됐다. 칸과 가족은 정부가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카라치 지역으로 갔다.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칸이 움직이자 언론과 여론도 같이 움직였다. 그는 또 한 번 국가영웅으로 불리며 환영을 받았다. 일부 언론은 칸에게 인사를 하러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역 정치인을 오만하다고 비판했다. 칸은 9월 16일 병원에서 퇴원했다. 정부는 그가 카라치에 있는 누이의 집에서 몇 주간 더 지낼 수 있게 해줬다. 무샤라프의 측근들은 훗날 인터뷰에서 무샤라프가 이렇게 한 이유는 칸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점수를 따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무샤라프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약 11개월 전인 2005년 10월 카슈미르 지역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칸 연구소(KRL)에도 큰 피해를 줬다. 정부 최고위급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는 비밀로 유지됐다. 계속 KRL에서 근무하던 칸의 측근들에 따르면 전체 원심분리기의 3분의 1이 파괴됐다. 콘크리트벽이 무너지면서 생긴 일이었다. 원심분리기 부품은 산산조각이 났다. 당시 KRL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책 ‘디셉션’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1983년에도 지진이 한 차례 발생해 지반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엄청난 지진이 발생하자 완전히 부서져버린 것이다”라고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원심분리기로 육불화우라늄 기체가 흐르는 주입구와 배출구가 파열된 것이었다. 육불화우라늄은 물론 일부 농축 우라늄이 환풍구를 타고 건물에 퍼지게 됐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낼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칸의 측근들에 따르면 KRL은 사고 후 바로 폐쇄됐다. 어떤 정보도 밖으로 새나갈 수 없었고 이에 대해 얘기를 할 수도 없었다. 이 사고와 관련해서 증언한 사람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KRL 직원은 “문제는 지금부터 뭐를 해야 할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A. Q. 칸 박사 정도뿐이었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도와줄 기분이 아니었다. 무샤라프에 의해 누명이 씌워졌고 전국민이 보는 TV에서 굴욕을 당했으며 ISI의 통제를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KRL의 원년 멤버 중 한 명은 샤히크 박사의 아버지인 사자왈 사령관이었다. 그 역시도 2004년 초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그는 KRL의 시설 설비를 총괄했던 사람이다. 무샤라프는 KRL에서 근무하던 칸의 측근들을 대부분 숙청했다. 남아있는 KRL 직원 중 원년 멤버는 매우 드물고 KRL 시설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칸과 사자왈 정도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무샤라프는 칸에게 연락을 했다. 무샤라프는 칸 박사에게 간단한 설명을 한 뒤 그가 믿을 수 있는 과학자들과 함께 KRL에 와달라고 했다. 칸은 가택 연금 조치를 몇 주 더 풀어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무샤라프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칸은 무샤라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샤라프는 또 한 번 칸에게 분노했다. 그는 칸의 딸 아예샤가 칸의 집을 방문할 수 없도록 했다. 아예샤는 칸의 집 바로 근처에 살고 있었다. 아예샤와 아예샤의 딸을 보는 것이 칸에겐 거의 유일한 낙이었을 때였다.

칸의 측근 증언에 따르면 KRL을 고치기 위해 온 사람들은 핵시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방사능 유출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화상 등 각종 부상을 당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이들이 KRL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이 측근은 무샤라프가 끝까지 칸에게 도와달라며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라고 주장했다. 하나는 核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칸 박사가 이미 엄청난 양의 고농축 우라늄을 비축해놨기 때문에 급하게 시설을 재가동할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칸의 도움이 필요했던 무샤라프

무샤라프와 칸의 갈등은 계속 이어졌다. 2006년 3월 부시 대통령은 파키스탄을 방문했다. 부시 대통령은 파키스탄의 지진 피해를 위로했다. 그러나 부시는 인도와 최근 맺은 합의 내용을 설명했다. 인도가 미국의 민간용 핵기술을 수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인도는 국제사회의 반대에 무릅쓰고 핵무기를 개발했다. 1998년 핵실험 이후 제재 대상에 올랐다. 미국이 인도와 맺은 이 합의 내용을 두고 여러 서방 국가가 우려했다. 국제사회의 법을 어겨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이 합의에 동의하는 측은 1974년부터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한 인도는 주변국(파키스탄)과는 달리 핵확산 활동에 나서지도 않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했다. 부시는 파키스탄에 도착한 뒤 애매한 발언을 했다. 그는 “파키스탄과 인도는 다른 요구와 다른 역사를 갖고 있는 다른 국가다”라고 했다.

무샤라프는 이런 움직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나 부시 대통령이 이를 강행한다는 얘기를 해주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9∙11 테러 이후 국내 반대세력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가능한 한 최선의 협조를 해줬다고 생각했다. 파키스탄은 지난 30년간 국제사회의 수많은 탄압과 감시, 규제를 뚫어가며 핵기술을 사들였다. 그렇게 해 핵무기를 만들었고 핵 관련 분야에서 더 앞서나가려 했으나 숙적 인도는 단번에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최고의 기술을 구할 수 있게 됐다. 부시가 南아시아 지역에서 파키스탄을 버리고 새로운 동맹을 찾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부시 대통령의 방문 얼마 전부터 칸 박사에게 연락을 해 조언을 구했다. 지금 파키스탄에 정확히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미국-인도와의 합의 내용만큼은 아니어도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칸의 측근 증언에 따르면 칸은 무샤라프에게 “난 당신을 도와줄 수 없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부시의 성기나 빨아라”라고 말했다.

결국 무샤라프는 부시에게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었다. 무엇을 요구할지도 몰랐다. 무샤라프는 칸에 대한 복수를 남아있는 KRL 직원들에게 했다. 무샤라프는 칸의 뒤를 이어 KRL을 맡아온 자비드 미르자를 해고했다. 그리고는 훨씬 서열이 낮은 모하메드 카림이라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다. 2001년 칸의 퇴직 이후 시작된 KRL에 대한 숙청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 KRL 고위직 중 칸의 측근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파키스탄의 ‘프로젝트 A/B’, 핵기술 수출은 계속됐다.

독일 정보당국 ‘칸은 떠났으나 핵확산은 계속됐다’

독일 정보당국은 2006년 1월 55쪽 분량의 기밀보고서를 만들었다. 파키스탄의 핵확산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는 IAEA에 전달됐다. 영국의 가디언誌는 관련 보고서를 입수해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과 중국, 이란, 시리아, 이집트, 수단 등의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핵확산 문제를 지적했다. ‘파키스탄이 여전히 핵무기 관련 기술을 비밀리에 구입하고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방대한 규모의 조달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했다. 보고서는 파키스탄이 사들이고 있는 규모는 국내용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다고 했다. 사들인 물건을 해외에 판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RL은 칸 박사가 떠난 뒤에도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각지에 구축해놓은 구매대행회사 네트워크를 가동하고 있었다. 리비아가 주문했던 원심분리기용 알루미늄 튜브가 여전히 리비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카다피는 2003년에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제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다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리비아에 있는 다른 조직이 이를 구입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리비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나포됐던 BBC 차이나호(號)에 실렸던 컨테이너 하나가 2004년 3월 리비아에 도착했다. 이 컨테이너에는 P-2 원심분리기 부품이 실려 있었다. 카다피는 이런 사실을 미국과 IAEA에 알렸다. 당시 리비아 측은 ‘사전에 주문했던 물건들이 리비아에 다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조금씩 도착할 수 있다’고 알렸다. 리비아의 주장대로 과거에 주문한 물건이 오랜 시간 뒤 도착했을 가능성, 아니면 새로운 거래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가능성 모두 배제할 수 없었다. 새로운 거래라면 카다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고객이 생긴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파키스탄과 북한의 거래도 계속 이어졌다. 독일 정보기관의 보고서는 북한의 무기 수출이 정부수입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무기의 가장 큰 구매자는 파키스탄과 이집트, 이란, 시리아라고 지적했다. 북한 무기 거래에 가담한 북한 측 유령회사 30곳 이상이 적발됐다. 파키스탄은 자신들이 과거에 사용했던 유럽의 조달망을 북한에 알려줬다. 북한은 칸의 조달책인 타히르의 도움을 받아 일부 원심분리기 기술을 중국의 국영 회사에 납품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2005년 12월 이 회사들 6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란에 군수품을 수출한 것이 제재 사유였다.

배송 도중 사라진 핵기술

보고서에 담긴 가장 충격적인 내용 중 하나는 핵 관련 부품이 사라진 사실이 적발된 것이었다. 칸 박사는 아프리카 여러 국가를 통해 물건을 조달했다.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여러 국가를 경유해 물건을 이동시켰다. 그런데 칸이 KRL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나게 됐고 인수인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화물이 오랫동안 잊혔다가 나중에 이를 찾아내는 일도 생겼다. 1998년에서 2001년 사이 약 3억 2000 파운드(약 4억 2000만 달러) 상당의 이중용도 장비가 수단으로 옮겨졌다. 이 장비들은 독일 회사들로부터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화물은 리비아로 향할 예정이었다. 칸 박사는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당시 수단에 화물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파키스탄의 한 회사가 이 장비를 저장창고에서 찾아 다른 곳으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장비는 리비아로 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수단에도 없고 리비아에도 없었다. 각국 정보당국은 이 화물을 찾아간 것은 KRL 측이었다고 봤다. KRL이 수단에 있는 장비를 찾아 이란으로 넘어갔다고 봤다. 무샤라프 정권 하에서도 파키스탄과 이란 사이의 거래가 계속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칸의 은퇴와 카다피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으로 갈 곳을 잃었다가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화물은 계속 적발됐다. 한 예는 두 개의 컨테이너가 사라진 사건이었다. 한 컨테이너에는 원심분리기 부품과 엄청난 양의 고강도 알루미늄이 실려 있었다. 다른 컨테이너에는 원심부리기 가동에 필요한 각종 장비가 실려 있었다. 이 컨테이너들은 리비아로 향할 계획이었으나 카다피의 발표 이후 이동이 중단됐다. IAEA는 이 컨테이너가 마지막으로 포착된 것은 터키와 말레이시아였다고 했다.

올리 하이노넨 IAEA 사무처장은 오랫동안 핵 문제를 담당해온 IAEA의 사찰 전문가였다. 그는 2005년 독일 법정에 출석해 증언을 했다. 당시 독일은 칸의 물품 조달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이노넨은 P-2 원심분리기에 들어가는 회전자 7개가 사라진 것이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이 물건들은 2000년 초 파키스탄을 떠나 그해 6월 두바이에 도착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총 9개의 회전자를 화물에 실었다. 이중 2개는 리비아에 도착한 것이 확인됐으나 나머지는 추적이 되지 않았다. 칸의 조달책이던 타히르는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에 본인이 이 화물 운송을 담당했었다고 했다. 그는 나머지 7개는 모두 파괴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이노넨은 이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원심분리기에 중요한 이 부품이 다른 구매자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파키스탄이 2002년에 핵기술 이전에 나선 사실도 발각됐다. 이는 칸 박사가 은퇴한 1년 뒤의 일이다. 후마윤 칸이라는 사람은 파키스탄에서 ‘파크랜드’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파키스탄 군대에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였다. 파크랜드는 남아프리카에 있는 ‘톱 케이프 테크놀로지’라는 회사에 사업을 제안했다. 톱 케이프는 애셔 카니라는 사업가가 운영하는 회사였다. 그는 미국에서 전자기기를 수입해 남아프리카에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파크랜드는 미국으로부터 36개의 ‘오실로스코프’를 구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오실로스코프는 전압의 변화를 화면을 통해 관찰하는 장비다. 이는 폭발 강도 측정 등 핵무기 개발에도 필요한 장비다. 가격은 모두 합쳐서 130만 달러였다. 파키스탄은 과거에도 해외에서 오실로스코프를 구입하려다 적발된 적이 있다. 이는 수출규제 품목이다. 파키스탄은 핵무기가 없고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남아공이라면 오실로스코프를 수입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남아공 통해 美製 ‘이중용도’ 품목 수입하다 적발된 파키스탄 군수회사

후마윤 칸은 오실로스코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2003년 다시 한 번 카니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스파크 갭’ 200개를 추가로 구해달라고 했다. 이는 작은 사이즈의 장비로 전기충격을 가하는 부품이었다. 병원에서는 신장결석 치료를 위해 이런 스파크 갭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장비 역시 핵무기 기폭장치에 사용되는 부품이었다. 파키스탄은 이런 이유로 스파크 갭을 정식으로 수입할 수 없었다. 후마윤 칸은 6월 4일 카니에게 이메일을 보내 비밀 유지를 요구했다. 그는 “최종 도착지를 절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2003년 6월 17일 카니는 후마윤 칸에게 연락을 했다. 수출 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한 회사로부터 스파크 갭을 구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칸은 약 한 시간 뒤 답장을 보냈다. 그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6월 24일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이 만남이 있기 사흘 전인 21일, 남아공의 카니는 후마윤 칸에게 연락을 해 미국 회사로부터 스파크 갭을 구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하나당 가격은 950달러라고 했다. 파키스탄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8월 24일 미국에서 만들어진 오실로스코프 두 대는 물류회사 DHL을 통해 남아공에서 파키스탄으로 보내졌다. 검사가 까다롭지 않은 두바이를 거쳐서 배송됐다. 9월 15일 후마윤 칸은 카니에게 연락을 해 스파크 갭의 도착 예정일을 물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당시 부시 대통령 및 테닛 국장을 만나 파키스탄의 핵거래는 모두 중단됐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테닛은 여러 정황 증거를 제시했으나 무샤라프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10월 6일, 스파크 갭 66개가 먼저 미국을 떠나 남아공에 도착했다. 66개의 스파크 갭은 10월 21일 파키스탄에 도착했다.

이때 미국 세관당국은 ‘남아공의 존’이라는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세관당국은 남아공으로 보내지기로 한 스파크 갭을 찾아냈다. 이들은 이 화물 안에 있던 스파크 갭을 빼고 다른 부품으로 채워 넣었다. 구매자가 찾으러 오기를 기다렸다. 2004년 1월 1일, 남아공에서 활동하던 카니는 덴버국제공항에서 체포됐다. 미국의 수출법 위반 혐의였다. 당시 현장에 있던 카니의 부인은 자신의 남편은 파키스탄에 의학관련 장비를 팔았을 뿐이라고 소리쳤다. 당시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며 그중 한 분야로 의료를 꼽은 바 있다.

카니는 2005년 3월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팀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국무부는 수사팀이 파키스탄을 방문해 후마윤 칸을 수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후마윤 칸은 미국 재판에 넘겨지면 최장 35년형을 받을 정도의 혐의를 받고 있었다. 후마윤 칸을 수사하면 파키스탄 군부가 핵거래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 미국 법원은 2005년 9월 카니의 재판 기록을 모두 봉인했다. 1980년대부터 있었던 일들이 정권이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복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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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5, 04: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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