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상은 평화, 역사는 폭력
반공자유-교양영어(18): Hunter-gatherers, noble or savage?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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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인간의 이상은 평화, 역사는 폭력

톨스토이는 그의 걸작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인간을 모두 戰士(전사)로 그리고 있다. 전쟁터의 군인이든 夜會(야회)의 신사 숙녀이든 모두 전투하고 있는 전사라는 것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항상 싸우고 있는 존재라는 사상(idea)이 소설의 핵심적 주제이다.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다양한 시각에서 전사로서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라는 두 단어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일선의 전쟁터뿐 아니라 평화스러워 보이는 후방의 사회도 전쟁터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평화도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전쟁하는 존재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두 상시 전쟁상태에서 살아간다. 생존의 조건이 그렇게 사는 것을 운명으로 하였다. 그래서인지 고대 그리스의 어느 비관주의 철학자는 악마가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하였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전쟁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의 이상은 평화적이지만 인간의 역사는 항상 폭력적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8. Hunter-gatherers, noble or savage?
-The era of the hunter-gatherer was not the social and environmental Eden that some suggest

18-1-104
Human beings have spent most of their time on the planet as hunter-gatherers. From at least 85,000 years ago to the birth of agriculture around 73,000 years later, they combined hunted meat with gathered veg. Some people, such as those on North Sentinel Island in the Andaman Sea, still do. The Sentinelese are the only hunter-gatherers who still resist contact with the outside world. Fine-looking specimens-strong, slim, fit, black and stark naked except for a small plant-fibre belt round the waist- they are the very model of the noble savage. Genetics suggests that indigenous Andaman islanders have been isolated since the very first expansion out of Africa more than 60,000 years ago.

About 12,000 years ago people embarked on an experiment called agriculture and some say that they, and their planet, have never recovered. Farming brought a population explosion, protein and vitamin deficiency, new diseases and deforestation. Human height actually shrank by nearly six inches after the first adoption of crops in the Near East. So was agriculture 'the worst mistake in the history of the human race', as Jared Diamond, evolutionary biologist and professor of geography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once called it?

Take a snapshot of the old world 15,000 years ago. Except for bits of Siberia, it was full of a new and clever kind of people who had originated in Africa and had colonised first their own continent, then Asia, Australia and Europe, and were on the brink of populating the Americas. They had spear throwers, boats, needles, adzes, nets. They painted pictures, decorated their bodies and believed in spirits. They traded foods, shells, raw materials and ideas. They sang songs, told stories and prepared herbal medicines.

 
18. 수렵채취인들, 고귀하였던가 아니면 야만적이었던가?
-수렵채취인 시대는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에덴이 아니었다.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수렵-채취인으로 인류역사의 대부분을 보냈었다. 적어도 8만 5천 년 전부터 7만 3천 년 후 농업이 시작될 때까지 인류는 사냥한 고기와 함께 채취한 식물을 먹고 살았다. 태국 서부의 North Sentinel 섬 주민처럼 아직도 수렵채취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섬의 주민들은 아직도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거부하는 유일한 수렵-채취인들이다. 튼튼하고 날씬하며 균형 잡힌 몸매에 식물 실로 짠 작은 허리띠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나체인 이들 건장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고귀한 야만인(루소의 용어)의 전형이다. 유전학적 조사에 의하면 Andaman 섬의 원주민들은 인류가 6만 년 전에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하여 살아온 것으로 판명되었다.

약 1만 2천 년 전에 인류는 농업이라는 실험에 착수하였고 인류와 지구는 이후로 다시는 이전의 모습을 되찾지는 못하였다. 농업은 인구폭발, 단백질과 비타민 결핍, 새로운 질병과 산림의 황폐를 가져왔다. 近東(근동)에서 처음으로 농산물을 수확한 이후로 인간의 신장은 6인치나 줄어들었다. 그래서 농업은 캘리포니아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겸 지리학 교수인 다이아몬드가 전에 주장한 것처럼 인류역사에 있어서 최악의 실수였던가?

1만 5천 년 전의 세계 사진을 찍어 보자. 시베리아 일부를 제외하고 아프리카에서 탄생하여 아프리카 대륙을 먼저 식민지화하고 아시아와 호주와 유럽에까지 퍼져나간 후 아메리카 대륙에 막 거주하기 시작한 영리한 새 인간으로 지구는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投槍(투창), 배, 바늘, 손도끼, 그물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채색화를 그리고 몸을 장식하였으며 혼령의 존재를 믿었다. 그들은 식량과 조개껍질과 원료와 아이디어를 교역하였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하였으며 약초를 이용하였다.


18-2-105
They were “hunter-gatherers”. On the whole the men hunted and the women gathered: a sexual division of labour is still universal among non-farming people and was probably not shared by their Homo erectus predecessors. This enabled them to eat both meat and veg, a clever trick because it combines quality with reliability.

Why change? In the late 1970s Mark Cohen, an archaeologist, first suggested that agriculture was born of desperation, rather than inspiration. Evidence from the Fertile Crescent seems to support him. Rising human population density, combined perhaps with a cooling, drying climate, left the Natufian hunter-gatherers of the region short of acorns, gazelles and wild grass seeds. Somebody started trying to preserve and enhance a field of chickpeas or wheat-grass and soon planting, weeding, reaping and threshing were born.

Quite independently, people took the same step in at least six other parts of the world over the next few thousand years: the Yangzi valley, the central valley of New Guinea, Mexico, the Andes, West Africa and the Amazon basin. And it seems that Eden came to an end. Not only had hunter-gatherers enjoyed plenty of protein, not much fat and ample vitamins in their diet, but it also seems they did not have to work very hard. The Hadza of Tanzania “work” about 14 hours a week, the !Kung of Botswana not much more.

그들은 수렵채취인이었다. 대체로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는 채취하였다. 오늘날에도 농업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남녀분업이 보편적이 현상이다. 현생 인류 이전의 사람들인 호모이렉투스는 남녀분업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녀분업은 그들로 하여금 고기와 채소 둘 다를 먹는 것을 가능케 하였는데 분업은 식량의 질과 식량 공급의 안정성을 결합해 주기 때문에 영리한 방책이다.

왜 변화가 일어났는가? 1970년대 말경에 고고학자인 Mark Cohen은 농업은 영감에서가 아니고 절박감에서 탄생하였다고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비옥한 초승달”(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이락 등 중동지역)이 그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증가하는 인구밀도는 차갑고 건조해지고 있는 기후와 결합하여 그 지역의 Natufian 수렵채취인들에게 도토리와 가젤과 잡초의 씨앗이 부족하게 하였다. 누군가가 이집트 콩이나 개밀 밭을 보존하고 강화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곧 씨앗을 심고 김을 매고 수확하고 탈곡하는 것이 생겨났다.

매우 독립적으로, 그 다음 수천 년에 걸쳐서 적어도 세계의 여섯 지역에서 사람들은 같은 단계를 취하였다. 즉 양자강 지역, New Guinea의 중앙부, Mexico와 Andes 산맥지역, West Africa와 Amazon강 盆地(분지)였다. 그리고 에덴은 끝났던 것처럼 보인다. 수렵채취인들은 그들의 식사에서 많은 단백질뿐 아니라 많은 지방과 충분한(ample) 비타민도 즐겼고 그들은 또한 매우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날 Tanzania의 Hadza族(족)은 1주에 약 14시간 “일하고 있고” Botswana의 !Kung족도 더 많이 일하지는 않는다.


18-3-106
The first farmers were less healthy than the hunter-gatherers had been in their heyday. Aside from their shorter stature, they had more skeletal wear and tear from the hard work, their teeth rotted more, they were short of protein and vitamins and they caught diseases from domesticated animals: measles from cattle, flu from ducks, plague from rats and worms from using their own excrement as fertiliser.

They also got a bad attack of inequality for the first time. Hunter-gatherers' dependence on sharing each other's hunting and gathering luck makes them remarkably egalitarian. A successful farmer, however, can afford to buy the labour of others, and that makes him more successful still, until eventually—especially in an irrigated river valley, where he controls the water—he can become an emperor imposing his despotic whim upon subjects. Friedrich Engels was probably right to identify agriculture with a loss of political innocence.

Agriculture also stands accused of exacerbating sexual inequality. In many peasant farming communities, men make women do much of the hard work. Among hunter-gathering folk, men usually bring fewer calories than women, and have a tiresome tendency to prefer catching big and infrequent prey so they can show off, rather than small and frequent catches that do not rot before they are eaten. But the men do at least contribute.

최초의 농부들은 전성기 때의 수렵채취인들보다 더 건강하지는 못하였다. 보다 작은 키는 제외하고라도 중노동으로 인한 더 마모된 골격과 더 많이 썩은 이빨을 가진 그들은 단백질과 비타민이 결핍되어 있었고 길들여진 동물(가축)로부터 전염된(from) 질병에 걸렸었다. 소로부터는 홍역, 오리로부터는 독감, 쥐로부터는 역병(페스트) 그리고 그들 자신의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함으로써 회충 (같은 질병에 걸리게 되었었다.)

그들은 또 처음으로 불평등이라는 나쁜 병(attack)을 얻게 되었다. 수렵채취인들이 채취와 사냥의 물품(luck)의 공동분배(sharing)에 의존하는 것은 그들을 대단히 평등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공한 농부는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구입할 수 있고 그것이 그를 더욱더 성공적으로 만들고 마침내(until) 결국에는―灌漑(관개)가 되는 江지대에는 그렇고 그런 곳에서는(where) 그는 물을 지배하게 된다―그는 그의 전제적 생각(변덕스러운)을 신민들에게 강요하는 황제가 될 수 있다. Friedrich Engels가 농업을 정치적 순수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마도 옳다고 하겠다.

농업은 또 性(성)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비난 받는다. 많은 소규모 영농공동체에서는 남자들이 힘든 일의 많은 부분을 여자가 하도록 시킨다. 수렵채취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남자들은 대체로 여자보다도 더 적은 식량(calories)을 가져오고 먹기 전에 상하지 않는 조그마하고 자주 잡히는 포획물보다는 자기들(남자들의 위신)을 과시할 수 있기 위해서 흔하지 않고 덩치가 큰 먹잇감을 잡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따분한)을 가지고 있다.
 

18-4-107
Recently, though, anthropologists have subtly revised the view that the invention of agriculture was a fall from grace. They have found the serpent in hunter-gatherer Eden, the savage in the noble savage. Maybe it was not an 80,000-year camping holiday after all.

In 2006 two Indian fishermen, in a drunken sleep aboard their little boat, drifted over the reef and fetched up on the shore of North Sentinel Island. They were promptly killed by the inhabitants. Their bodies are still there: the helicopter that went to collect them was driven away by a hail of arrows and spears. The Sentinelese do not welcome trespassers. Only very occasionally have they been lured down to the beach of their tiny island home by gifts of coconuts and only once or twice have they taken these gifts without sending a shower of arrows in return.

Several archaeologists and anthropologists now argue that violence was much more pervasive in hunter-gatherer society than in more recent eras. From the !Kung in the Kalahari to the Inuit in the Arctic and the aborigines in Australia, two-thirds of modern hunter-gatherers are in a state of almost constant tribal warfare, and nearly 90% go to war at least once a year. War is a big word for dawn raids, skirmishes and lots of posturing, but death rates are high—usually around 25-30% of adult males die from homicide. The warfare death rate of 0.5% of the population per year that Lawrence Keeley of the University of Illinois calculates as typical of hunter-gatherer societies would equate to 2 billion people dying during the 20th century.

그러나 최근에 인류학자들은 농업이 (神의) 은총으로부터의 전락이라는 견해에 미묘한 수정을 가한다. 그들은 고귀한 야만인 속에 있는 야만성인 수렵채취인의 에덴에 내재하는 뱀을 발견한 것이다. 아마도 결국 그것은 8만 년의 캠핑휴가는 아니었을 것이다.

2006년에 2명의 인도인 어부가 그들의 작은 배에서 술에 취하여 잠이 든 상태로 산호초 위로 표류하다가 North Sentinel Island의 해안에 닿았다. 그들은 즉시 주민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 시신을 수집하러 갔던 헬리콥터는 빗발치듯 쏟아지는 창과 화살에 의해서 쫓겨났다. Sentinel 사람들은 불법침입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매우 드물게 그들은 그들의 작은 고향 섬 해안으로 코코넛 선물에 의해 유인되고 겨우 한두 번씩만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소낙비 같은 화살을 쏘지 않고 이 선물들을 받아갔다.

이제 일부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취사회에서는 폭력이 최근 시대보다도 훨씬 더 많이 만연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Kalahari사막의 !Kung족으로 부터 북극지방의 Inuit족과 호주의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현대 수렵채취인의 2/3는 거의 常時(상시)적 부족전쟁 상태에 있으며 그리고 거의 90%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전쟁에 나간다. 전쟁은 새벽 기습과 소규모 전투와 다수의 시위 작전이지만 사망률은 높다. 대체로 성인남자의 20~30%는 살해행위로 죽는다. Illinois대학의 Lawrence Keeley 교수가 수렵채취 사회의 전형으로 계산한 연간 인구의 0.5% 전쟁사망률은 20세기 100년 동안 20억이 죽는 것과 동일하다.
 

18-5-108
At first, anthropologists were inclined to think this a modern pathology. But it is increasingly looking as if it is the natural state. Richard Wrangham of Harvard University says that chimpanzees and human beings are the only animals in which males engage in co-operative and systematic homicidal raids. The death rate is similar in the two species. Steven LeBlanc, also of Harvard, says Rousseauian wishful thinking has led academics to overlook evidence of constant violence.

Not so many women as men die in warfare, it is true. But that is because they are often the object of the fighting. To be abducted as a sexual prize was almost certainly a common female fate in hunter-gatherer society. Forget the Garden of Eden; think Mad Max.

Constant warfare was necessary to keep population density down to one person per square mile. Farmers can live at 100 times that density. Hunter-gatherers may have been so lithe and healthy because the weak were dead. The invention of agriculture and the advent of settled society merely swapped high mortality for high morbidity, allowing people some relief from chronic warfare so they could at least grind out an existence, rather than being ground out of existence altogether.

처음에 인류학자들은 이것(전쟁)을 현대의 병리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점점 더 자연현상인 것처럼 보이고 있다. Harvard 대학의 Richard Wrangham 교수는 인간과 침팬지는 남성이 협동적이고 조직적인 살해 습격에 참여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하였다. 두 種(종)에서 사망률은 비슷하다. 역시 Harvard 대학 교수인 Steven LeBlanc은 Rousseau적인 희망적인 생각이 학자들로 하여금 상시 폭력의 증거를 간과하도록 하였다.

전쟁에서 여자들이 남자만큼 많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자들은 종종 전투의 목적물이기 때문이다. 성적 전리품으로서 납치되는 것은 수렵채취 사회에서는 거의 확실히 여성의 공통운명이었다. 에덴동산은 잊어라. Mad Max(反유토피아적 영화)를 생각하라.

인구밀도를 1평방마일 당 1명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시적인 전쟁이 필요하였다. 농부는 그 밀도에서 100배나 더 많이 살 수 있다. 허약한 자는 다 죽었기 때문에 수렵채취인들은 신체가 대단히 유연하고 건강하였을 것이다. 농업의 발명과 定住(정주) 사회의 도래는 높은 사망률(전쟁으로 인한)과 허약체질을 맞바꾸게 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만성적 전쟁에서 벗어나게(relief) 하였고 그래서 사람들이 적어도 힘들지만 생존을 이어갈 수 있게 하였다.
 

18-6-109
Notice a close parallel with the industrial revolution. When rural peasants swapped their hovels for the textile mills of Lancashire, did it feel like an improvement? The Dickensian view is that factories replaced a rural idyll with urban misery, poverty, pollution and illness. Factories were indeed miserable and the urban poor were overworked and underfed. But they had flocked to take the jobs in factories often to get away from the cold, muddy, starving rural hell of their birth.

Eighteenth-century rural England was a place where people starved each spring as the winter stores ran out, where in bad years and poor districts long hours of agricultural labour—if it could be got—barely paid enough to keep body and soul together, and a place where the “putting-out” system of textile manufacture at home drove workers harder for lower pay than even the factories would. (Ask Zambians today why they take ill-paid jobs in Chinese-managed mines, or Vietnamese why they sew shirts in multinational-owned factories.) The industrial revolution caused a population explosion because it enabled more babies to survive—malnourished, perhaps, but at least alive.

Returning to hunter-gatherers, Mr LeBlanc argues (in his book “Constant Battles”) that all was not well in ecological terms, either. Homo sapiens wrought havoc on many ecosystems as Homo erectus had not. There is no longer much doubt that people were the cause of the extinction of the megafauna in North America 11,000 years ago and Australia 30,000 years before that.

산업혁명과의 밀접한 평행관계를 주목해보자. 농촌의 빈농들이 그들의 오두막을 버리고 Lancashire의 직물공장에 취직하였을 때 그것은 그것이 생활의 개선으로 느껴졌을까? Dickens적인 관점은 공장은 시골의 牧歌(목가)적 전원생활을 도시의 곤궁과 가난과 오염과 질병과 맞바꿨다는 것이다. 공장은 정말로 비참했었고 도시빈민들은 과로하였고 영양이 부족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태어난 곳(농촌)의 춥고 진흙탕이고 굶어 죽는 지옥에서 탈출해서 공장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

18세기 England의 농촌은 매년 봄 겨울의 비축식량이 바닥이 나면 사람들이 굶주렸고 흉년이 들고 가난한 지역에서는 장시간의 농업노동을 해도―그런 일자리라도 있다면―임금은 목숨을 부지하기에 거의 충분하지 못하였던 곳이었고 직물제조업이 가정에서 실행하는 하도급제(putting out system)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공장보다도 더 낮은 임금으로 더 심하게 밀어붙이는 곳이었다. (Zambia인들에게 왜 그들이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광산의 저임금 일자리를 가지는지를 또 Vietnam인들이 다국적 기업 소유 공장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라.) 산업혁명은 더 많은 아기들이 살아남도록 하였기 때문에―아마도 영양은 부족하였겠지만 그래도 살 수는 있었기 때문에―인구폭발의 원인이 되었었다.

다시 수렵채취인들에게로 돌아가서, Mr LeBlanc은 (그의 저서 “상시 전투”에서) 생태학적 입장에서도 모든 것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Homo sapiens(현생인류)는 Homo erectus[直立猿人(직립원인)]와는 달리 많은 생태계에 재앙을 일으켰었다. 인간들이 11,000년 전의 북미와 그 이전 30,000년 전 호주에 살던 거대 동물들의 멸종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더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18-7-110
The mammoths and giant kangaroos never stood a chance against co-ordinated ambush with stone-tipped spears and relentless pursuit by endurance runners.

This was also true in Eurasia. The earliest of the great cave painters, working at Chauvet in southern France, 32,000 years ago, was obsessed with rhinoceroses. A later artist, working at Lascaux 15,000 years later, depicted mostly bison, bulls and horses—rhinoceroses must have been driven close to extinction by then. At first, modern human beings around the Mediterranean relied almost entirely on large mammals for meat. They ate small game only if it was slow moving—tortoises and limpets were popular. Then, gradually and inexorably, starting in the Middle East, they switched their attention to smaller animals, and especially to warm-blooded, fast-breeding species, such as rabbits, hares, partridges and smaller gazelles. The archaeological record tells this same story at sites in Israel, Turkey and Italy.

The reason for this shift, say Mary Stiner and Steven Kuhn of the University of Arizona, was that human population densities were growing too high for the slower-reproducing prey such as tortoises, horses and rhinos. Only the fast-breeding rabbits, hares and partridges, and for a while gazelles, could cope with such hunting pressure.

매머드와 거대 캥거루는 석촉 창을 가진 인간들의 협동적 매복과 꾸준히 쫓아오는 인간들(endurance runners)의 무자비한 추격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이것은 Eurasia에도 해당되었다. 32,000년전 프랑스의 Chauvet에서 작업하고 있던 최초의 위대한 동굴화가들은 코뿔소 그리는 데에 강박적으로 전념하였다. 15,000년 뒤 Lascaux에서 작업하고 있던 후기의 어느 화가는 주로 들소와 황소와 말들을 그렸었다―그때쯤에는 코뿔소는 거의 멸종으로 몰렸음에 틀림없다. 처음에는 지중해 주변의 현대인들은 거의 대형동물의 고기에 의존했었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인다면 작은 사냥감을 먹었다―그들은 거북이와 삿삿조개 무리를 먹었다. 그 다음에는 동아시아에서 시작해서 그들은 점차적으로 그리고 무자비하게 보다 작은 동물들에게, 특히 집토끼와 산토끼, 자고새와 보다 작은 가젤 같은 온혈이고 증식이 빠른 種(종)에게 관심을 돌렸다. 고고학적 기록은 이스라엘과 터키와 이탈리아의 유적(sites)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말해준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거북이와 말과 코뿔소 같은 그런 생식이 느린 사냥감(prey)이 감당하기에는(for) 인구밀도가 너무 높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Arizona대학의 Mary Stiner교수와 Steven Kuhn교수는 말한다. 증식이 빠른 집토끼와 산토끼와 자고새만이 그리고 얼마간은 가젤만이 그런 사냥압력(사냥 요구량)에 대처할 수 있었다.
 

18-8-111
This trend accelerated about 15,000 years ago as large game and tortoises disappeared from the Mediterranean diet altogether—driven to the brink of extinction by human predation.

In times of prey scarcity, Homo erectus, like other predators, had simply suffered local extinction; these new people could innovate their way out of trouble—they could shift their niche. In response to demographic pressure, they developed better weapons which enabled them to catch smaller, faster prey, which in turn enabled them to survive at high densities, though at the expense of extinguishing many larger and slower-breeding prey. Under this theory, the atlatl or spear-throwing stick was invented 18,000 years ago as a response to a Malthusian crisis, not just because it seemed like a good idea.

What's more, the famously “affluent society” of hunter-gatherers, with plenty of time to gossip by the fire between hunts and gathers, turns out to be a bit of a myth, or at least an artefact of modern life. The measurements of time spent getting food by the !Kung omitted food-processing time and travel time, partly because the anthropologists gave their subjects lifts in their vehicles and lent them metal knives to process food.

큰 사냥감과 거북이가 15,000년 전에 지중해 연안 사람들의 식단에서 ―인간의 약탈에 의해서 거의 멸종상태로 몰려서―사라지게 되자 이런 추세가 더욱 강화되었다.

약탈먹이(prey)의 결핍시대에 Homo erectus(以前의)는 다른 약탈자(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거주 지역의 사냥감 멸종에 순응하였다(had suffered). 그러나 이들 新 인간들(Homo sapiens)은 혁신적인 방법으로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들은 그들의 입지에 유리한 물품(niche)을 변경할 수 있었다. 인구압박에 대응해서 그들은 그들로 하여금 보다 작고 보다 빠른 먹이를 잡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더 좋은 무기를 개발하였고 그 결과 (in turn) 이것이 비록 더 크고 증식이 느린 많은 사냥감(prey)들을 멸종시키는 대가를 지불하였지만 높은 인구밀도에도 그들이 살아남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 학설에 의하면 창을 발사하는 장치인 atlatl은 단지 하나의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였기 때문이 아니고 Malthus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18,000년 전에 발명되었다.

더욱이 사냥하고 채집하는 사이에 모닥불(fire)가에 앉아 장시간 가십을 하는 시간을 가졌던 그 유명하게도 “풍요한 사회” 하나의 신화이거나 현대생활의 창작물(artefact)인 것으로 판명된다. !Kung족에 의한 식량 획득에 들어간 시간의 측정은 식품처리과정 시간과 여행시간(사냥하기 위해 가고 오고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빠져있는데 이것은 부분적으로 인류학자들이 그들의 백성(!Kung족 주민)들을 차에 태워주고 그들이 음식을 만들 때에 금속제 칼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18-9-112
Agriculture was presumably just another response to demographic pressure. A new threat of starvation—probably during the millennium-long dry, cold “snap” known as the Younger Dryas about 13,000 years ago—prompted some hunter-gatherers in the Levant to turn much more vegetarian. Soon collecting wild grass seeds evolved into planting and reaping crops, which reduced people's intake of proteins and vitamins, but brought ample calories, survival and fertility.

The fact that something similar happened six more times in human history over the next few thousand years—in Asia, New Guinea, at least three places in the Americas and one in Africa—supports the notion of invention as a response to demographic pressure. In each case the early farmers, though they might be short, sick and subjugated, could at least survive and breed, enabling them eventually to overwhelm the remaining hunter-gatherers of their respective continents.

It is irrelevant to ask whether we would have been better off to stay as hunter-gatherers. Being a niche-shifting species, we could not help moving on. Willingly or not, humanity had embarked 50,000 years ago on the road called “progress” with constant change in habits driven by invention mothered by necessity. Even 40,000 years ago, technology and lifestyle were in a state of continuous change, especially in western Eurasia.

농업은 아마도 인구압박에 대한 단지 또 하나의 대응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餓死(아사)의 위협―아마도 약 13,000년 전 Younger Dryas(다시 빙하기 추위로 회귀하는 것)로 알려진 1000년간의 건조하고 추운 “snap'(기후급변) 동안에―Levant(지중해 동부지역)의 일부 수렵채취인들이 더욱더 채식에 의존하도록(vegetarian) 촉진하였을 것이다. 곧 야생 잡초 씨앗을 채취하는 것이 곡식을 파종하고 수확하는 것으로 진화하였고 이것은 사람들의 단백질과 비타민의 섭취를 감소시켰지만 풍부한 칼로리와 생존과 多産(다산)을 가져왔다. 인류역사에서 그 다음 수천 년에 걸쳐 유사한 일이 6번 더 일어났다― 아시아와 New Guinea와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적어도 세 곳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한 곳―는 사실은 인구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발명이라는 개념(notion)을 뒷받침한다. 각각의 경우에 초기의 농부들은 비록 키가 작고 병약하고 종속적(토지와 집단에)이었을 것이지만 적어도 생존을 하고 번식은 할 수 있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그들 각각의 대륙에서 잔존 수렵채취인들을 압도할 수 있게 되었다.

수렵채취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좋았었을지를 물어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조건에 맞는 물건(niche) 변경하는 種(종)인 인류(we)는 계속 이동해 갈 수밖에 없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인류는 50,000년 전에 필요가 낳은 발명이 추진하는 항시적 변화(관습의)를 가진 “진보”라는 길 위에 들어서게 되었었다(launched).


18-10-113
By 34,000 years ago people were making bone points for spears, and by 26,000 years ago they were making needles. Harpoons and other fishing tackle appear at 18,000 years ago, as do bone spear throwers, or atlatls. String was almost certainly in use then—how do you catch rabbits except in nets and snares?

Nor was this virtuosity confined to practicalities. A horse, carved from mammoth-ivory and worn smooth by being used as a pendant, dates from 32,000 years ago in Germany. By the time of Sungir, an open-air settlement from 28,000 years ago at a spot near the city of Vladimir, north-east of Moscow, people were being buried with thousands of laboriously carved ivory beads and even little wheel-shaped bone ornaments.

Incessant innovation is a characteristic of human beings. Agriculture, the domestication of animals and plants, must be seen in the context of this progressive change. It was just another step: hunter-gatherers may have been using fire to encourage the growth of root plants in southern Africa 80,000 years ago.

34,000년 전 경에 사람들은 창의 골촉을 만들고 있었고 26,000년 전 경에는 그들은 바늘을 만들고 있었다. 작살과 다른 고기잡이 索具(삭구)들은 骨槍(골창) 투척기인 atlatls처럼 18,000전에 나타난다. 그때 끈도 거의 확실히 사용되었었다―그물과 덫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토끼를 잡을 수 있겠는가?

이런 妙技(묘기)는 실용적 도구에만 한정되지 않았었다. 매머드 상아로부터 조각되고 매달린 장식품(pendant)으로 착용되어 매끄럽게 된 닳아진 말 조각품은 32,000년 전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28,000년 전 Moscow 동북방의 Vladimir시의 한 지점에 있는 露天(노천) 정착지인 Sungir의 시대쯤에는 사람들은 수천 개의 힘들게 조각된 상아구슬 목걸이와 심지어 바퀴모양의 작은 뼈 장식품과 함께 매장되고 있었다.

끊임없는 혁신은 인간존재의 특징이다. 농업과 동식물의 길들이기는 이런 진보적 변화의 맥락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그것(농업)은 또 하나의 조치였다: 수렵채취인들은 80,000년 전에 남부 아프리카에서 球根(구근)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하여 불을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8-11-114
At 15,000 years ago people first domesticated another species—the wolf (though it was probably the wolves that took the initiative). After 12,000 years ago came crops. The internet and the mobile phone were in some vague sense almost predestined 50,000 years ago to appear eventually.

There is a modern moral in this story. We have been creating ecological crises for ourselves and our habitats for tens of thousands of years. We have been solving them, too. Pessimists will point out that each solution only brings us face to face with the next crisis, optimists that no crisis has proved insoluble yet. Just as we rebounded from the extinction of the megafauna and became even more numerous by eating first rabbits then grass seeds, so in the early 20th century we faced starvation for lack of fertiliser when the population was a billion people, but can now look forward with confidence to feeding 10 billion on less land using synthetic nitrogen, genetically high-yield crops and tractors. When we eventually reverse the build-up in carbon dioxide, there will be another issue waiting for us.

15,000년 전에 사람들은 처음으로 또 다른 種(종)인 늑대를 처음으로 길들였다(선수를 취한 것은 아마도 늑대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후(after) 지금부터 12,000년 전에 곡식(농업시대)이 왔다. 인터넷과 휴대폰은 결국 나타날 것이라고 막연한 의미에서 50,000년 전에 거의 예정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에는 현대적 도덕이 있다. 우리는 수만 년 동안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서식지에 대해 생태 위기를 창조해오고 있다. 또한 우리는 그런 위기를 해결해오고 있다. 비관주의자들은 각각의 해결은 단지 우리로 하여금 그 다음의 위기에 직면하게 한다고 지적하고 낙관주의자들은 어떤 위기도 해결될 수 없다고 지금까지 증명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 인류가 거대동물의 멸종으로부터 재도약하여 처음에는 토끼를 먹고 그 다음에는 잡초 씨앗을 먹음에 의해서 더욱 더 수가 많아졌듯이 또한 우리는 20세기 초에 인구가 10억이 되었을 때 비료의 부족으로 餓死(아사)에 직면했었지만 우리는 합성 질소비료와 유전자 변형으로(genetically) 생산성이 높아진 곡물과 트랙터를 이용해서 前보다도 적어진 토지에서 100억을 먹여 살리는 것을 자신 있게 전망할 수 있다. 우리가 이산화탄소의 축적을 결국 역전시킬 때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이슈가 있을 것이다.

출처 : The Economist, Dec 22nd 2007: Christmas Specials
[ 2020-11-03, 11: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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