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가는 비결은 용기
반공자유-교양영어(22): Twentieth-century 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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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자유로 가는 비결은 용기

〱The secret to happiness is freedom… and the secrete to freedom is courage.〉
―Thucydides

<행복으로 가는 비결은 자유이다… 그리고 자유로 가는 비결은 용기이다.〉
 ―투키디데스

자유주의의 아버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모든 자유주의자들처럼 개인이 가진 독특한 생각이나 사상(idea)을 얽어매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사회적으로 진리나 사실로 공인되어온 어떠한 사상이나 관행도 가능한 한 많은 도전에 노출되어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검증되지 않는 진리(unexamined truth)는 믿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이것은 개인이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밀은 또 참이든 거짓이든 한 개인이 가진 생각(opinion)의 표현을 침묵시키는 것은 특별한 악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 자산을 강탈하는 것이다. 밀은 “만약 그 생각이 옳다면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거짓을 진실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고, 만약 그것이 틀린 것이라면 인류는 거짓이 참과 충돌할 때 생산되는 참에 대한 보다 더 선명한 자각과 인상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 심지어 지속적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권리, 높은 사람들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 특히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확신하고 있을 때라도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즉 표현의 자유는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표현의 자유가 개인과 사회가 진정한 행복과 발전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밀은 “害(해)의 원칙(harm principle)”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그는 “국가가 어느 개인에게라도 정당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그 개인이 타인들에게 害를 끼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쉽게 말해서 타인에게 害를 끼치지 않는 한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反독재-反전체주의 작가 조지 오웰은 “자유는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Twentieth-century fox
-Albert Murray was a bard of America’s racial complexity
-In his essays and criticism, he insisted that black and white Americans shared a common culture


22-1-155

THE ORIGINAL sins of American race relations are as stark as they were horrific. For over two centuries, black people were enslaved. For decades afterwards they endured legal and de facto segregation, and, in the South—where Albert Murray grew up—forced labour and peonage imposed through convict-leasing and sharecropping. These brute facts bequeathed pain and injustice. But they also left a complex cultural legacy. Murray probed that complexity as deeply, seriously and joyously as any American writer.

He was a poet and novelist and—most lastingly—an essayist and critic. He wrote elegantly about art, music, literature, travel and people. He was, in Isaiah Berlin’s taxonomy, one hundred percent fox, viewing the world through many lenses (as opposed to the single perspective of the hedgehog). His life was an American hero’s journey—and his work is as urgent now as when it was first published.

Born in 1916 to an unmarried 16-year-old in Nokomis, Alabama, Murray was brought up by adoptive parents near Mobile, among survivors of the Clotilda, the last ship to bring enslaved Africans to America. He came to know—or at least know of—Cudjo Lewis, a Clotilda survivor whom Murray turned into Unka Jo Jo in his first novel, “Train Whistle Guitar” (published in 1974). He died 97 years later in Harlem, having helped create the jazz programme at New York’s Lincoln Centre, been elected to 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and of Arts and Sciences), and lived a life of the mind that should make today’s writers weep into their Twitter feeds.

20세기 여우
-Albert Murray는 미국의 인종적 복잡성의 음유시인이었다
-그는 수필과 평론에서 흑인과 백인 미국인들은 공동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인종관계의 원죄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던 것만큼 또한 단단하다. 200년 이상 동안 흑인들은 노예로 사로잡혀 있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합법적이며 사실상의 차별대우를 당하였으며 그리고 남부에서는―Albert Murray가 자라난 곳―죄수대여와 物納(물납)소작을 통해서 강요된 강제노동과 채무노역을 당했다. 이 잔인한 사실이 후세에 고통과 不義(불의)를 유산으로 남겼다.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복잡한 문화적 유산을 남겼다. Murray는 그 복잡성을 어느 미국 작가 못지않게 깊게, 진지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탐구하였다.

그는 시인이고 소설가였으며 그리고―매우 지속적으로―수필가였고 비평가였다. 그는 미술, 음악, 문학, 여행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 우아하게 글을 썼다. 그는 Isaiah Berlin의 分類法(분류법)에 의하면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100% 여우였다(고슴도치의 단일 시각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그의 일생은 한 미국인 주인공으로서의 旅路(여로)였다―그리고 그의 작품은 그것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와 똑같이 지금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1906년 Alabama州의 Nokomis에서 16세의 미혼모에게 태어난 Murray는 養父母(양부모)에 의해 입양이 되어 Mobile 부근에서 아프리카 노예들을 America로 싣고 온 마지막 노예선 Clotilda호의 생존자들 가운데서 자라났다. 그는 Cudjo Lewis를 알게 되었고―적어도 그에 관해서 알게 되었다―Cudjo Lewis는 Murray가 그의 첫 소설 “기적소리 기타”(1974년 출판)에서 Unka Jo Jo로 바꾼 Clotilda호 생존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Murray) 97년 후에 Harlem에서 별세하였고, 뉴욕 Lincoln 센터에서 재즈프로그램을 창조하는 것을 도왔고, 미국 미술-문학원과 기술-과학원에 선출되었고 오늘의 작가들이 그들의 Twitter 내용에다 눈물로 쏟아 넣을 정신의 삶을 살았다.

 
22-2-156

At the heart of his work was a belief in the heroism of artistic struggle and expression—not as a route to fame, riches or influence, nor to express political views, but as a means to make sense of the world and an individual’s place in it. As he wrote in “Stomping the Blues” (1976), an extended explication of jazz and blues, America’s greatest native art forms, artists confront “the complexities inherent in the human situation”. For Murray, “human existence is almost always a matter of endeavour and hence also a matter of heroic action.”

At the Tuskegee Institute in Alabama he met Ralph Ellison, who, Murray noticed, had taken out many of the same books that he had. They were intellectual comrades for much of their lives, both preoccupied with the range of the American experience and the central role of black people in it. As Ellison put it, “Whatever else the true American is, he is also somehow black.” But they took inverse paths as writers. Ellison published just one novel in his lifetime, “Invisible Man”, one of America’s greatest, in 1952.

By contrast, Murray did not publish his first book, “The Omni-Americans”, until 1970, after a career in the air force that had begun during the second world war. His last, a series of interviews with Papa Jo Jones, a mercurial drummer, came out when he was 95. Both he and Ellison viewed improvisational jazz and blues musicians, able to conduct conversations without words, as the supreme artists.

그의 작품의 중심에는 예술적 투쟁과 표현의 영웅주의에 대한 믿음이 있다―명예와 富(부)와 영향력으로 가는 길로서가 아니고 혹은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과 그 속에 존재하는 개인의 의미를 깨닫기(make a sense of) 위한 수단으로서(예술적 투쟁과 표현의 영웅주의를 믿었다). 그가 미국의 가장 위대한 토착 예술형식인 재즈와 블루스를 확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소설인 “블루스를 추면서”(1976)에서 썼던 것처럼 예술가는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 내재하는 복잡성”과 대결한다. Murray에게는 “인간존재는 항상 분투의 문제이고 그래서 또한 영웅적 행동의 문제이다.”

Alabama의 Tuskegee 연구소에서 그는 Ralph Ellison을 만났는데, 그는 Ellison이 Murray 자신이(he)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많은 책을 끄집어내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들은 미국적 경험의 범위와 그 범위 안에서 흑인의 중심적 역할에 몰입하면서 그들 생애의 많은 기간 동안 知的(지적)인 동지로 지냈다. Ellison이 언급한 것처럼 “진정한 미국인이 무엇이든 그는 또한 어느 정도 흑인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작가로서 상반되는 길을 취하였다. Ellison은 일생동안 미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의 하나인 “보이지 않는 인간” 한 권만 1952년에 출간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Murray는 제2차 세계전쟁 중에 시작된 공군 복무 경력이 끝난 후인 1970년까지는 그의 첫 번째 저서 “合乘(합승) 미국인들”을 출판하지 않았다. 발랄한 鼓手(고수)인 Papa Jo Jones와의 인터뷰 시리즈인 그의 마지막 책은 그가 95세일 때 나왔다. 그와 Ellison 둘 다 재즈와 블루스 즉흥연주 음악가들을 말(words)없이 대화를 연주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가로 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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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mimicked their back and forth on the page: among the most joyful passages in his memoir, “South to a Very Old Place” (1971), is his perfect orchestration of a barbershop chat about race relations that he overheard during a return visit to Mobile.

This late start meant that Murray’s voice emerged fully formed. It is learned and didactic, yet playful and nuanced—and above all, highly attuned to multiplicity, and suspicious of generalisation. He rejected the claim, common among white southerners during segregation, that black and white Americans had two separate cultures. “American culture,” he wrote in “The Omni-Americans”, “even in its most rigidly segregated precincts, is patently and irrevocably composite…the so-called black and so-called whit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resemble nobody else in the world so much as they resemble each other.”

Murray had an aversion to social scientists who portrayed black Americans as uniformly downtrodden. In his view, “the background experience of US Negroes includes all of the negative things that go with racism and segregation; but it also includes all of the challenging circumstances that make for ambition, integrity and transcendent achievement.” For him, the liberal tendency to find black people pitiable was a moral and aesthetic failing, which often stopped whites seeing African-American life in its full splendour and variety.

그는 그들을 페이지 위에서 그들의 동작의 모든 것을 흉내내었다; 그의 회상록 “매우 오래된 곳 남쪽으로”(1971)의 가장 유쾌한 句節(구절) 중에는 그의 Mobile 귀향 방문 중에 우연히 들은 인종 관계에 대한 이발소 잡담을 관현악으로 만든 것(orchestration)이 있다.

이 늦은 시작은 Murray의 목소리는 충분히 형성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博識(박식)하고 교훈적이며 그런데도 쾌활하고 뉘앙스가 많은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성에 고도로 일치하고 일반화에 회의적이다. 그는 흑백차별(segregation) 동안에 남부 백인들 사이에 공통적이었던 흑인과 백인 미국인들은 두 개의 분리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거부하였다. 그는 “합승 미국인들”에서 “미국문화는 심지어 엄격하게 분리된 지역에서도 분명히 그리고 변경할 수 없을 정도로 혼합되어 있다. …미국의 소위 흑인과 소위 백인은 세계 누구보다도 서로서로 더 많이 닮았다.

Murray는 미국 흑인들을 모두 똑같이 학대받는 것으로 묘사하는 미국 사회과학자들에게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미국 흑인들의 배경 경험은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에 동반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야망과 성실과 탁월한 성취에 이바지하는(make for) 모든 도전적인 환경을 내포하고 있다. 그에게는 흑인들을 가련하게 간주하는 자유주의적 경향은 도덕적 그리고 미학적 실패였으며 이것이 백인들로 하여금 종종 충분한 光輝(광휘)와 다양성 속에서 흑인들의 삶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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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ilarly, he had little patience for black separatism, which he viewed as shallow escapism: “So far as white people are concerned, the most revolutionary, radical and devastating action any US Negro can engage in is to compete with other Americans for status, employment, total social equality and basic political power.” He regarded black Americans not as displaced Africans but as wholly and irreducibly American—not merely partakers of American culture but its creators and, as much as anyone else, its proprietors.

The literary corollary of that stance was a dislike of protest fiction. Murray approvingly quoted James Baldwin’s assessment of “Uncle Tom’s Cabin”: a book “not intended to do anything more than prove that slavery was wrong; was, in fact, perfectly horrible. This makes material for a pamphlet but it is hardly enough for a novel.” But Murray castigated Baldwin himself for failing to fulfil his promise, and for writing about Harlem’s woes without its wonders. “Sometimes he writes as if he had never heard the comedians at the Apollo Theatre,” Murray teased, chiding Baldwin for leaving material untapped. “Life in Harlem is the very stuff of romance and fiction, even as was life in Chaucer’s England, Cervantes’ Spain, Rabelais’ France.”

He seemed to esteem Thomas Mann and James Joyce highest among novelists, and, like some of theirs, his four novels are in essence coming-of-age tales—beautifully written, replete with memory and detail, but lacking his essays’ spark and thrust. Like his poems, in their richness they make an implicit argument against what he called “the folklore of white supremacy and the fakelore of black pathology”.

비슷하게, 그는 흑인 분리주의에 대해서 참아주지 못했는데 흑인 분리주의를 경박한 도피주의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백인이 관계되는 한, 어떤 미국 흑인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이고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은, 지위와 고용과 전체적 사회적 평등과 정치권력을 위해 다른 미국인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흑인을 離散(이산)된 아프리카인이 아니고 총체적이고 축소할 수 없는 미국인으로 간주하였다―겨우 미국문화의 일부가 아니고 창조자이며 누구 못지않은 소유주(로 간주하였다).

그런 자세의 문학적 당연한 결과(corollary)는 저항문학에 대한 혐오였다. Murray는 James Baldwin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인용하였다: “노예제도는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이상으로 무어라도 하려는 의도는 없는 소설이고 사실상 완전히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사용 소책자를 위한 자료는 되지만 소설로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Murray는 Baldwin 자신은 그의 약속을 실행하지 못하고 Harlem(뉴욕 흑인거주 구역)의 驚異(경이)는 없이 그것의 비애에 관해서만 글을 쓴다면서 Baldwin을 혹평하였다. Murray는 “때때로 그는 Apollo Theatre(뉴욕 음악회관) 희극배우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라고 집적거리면서 Baldwin을 소재를 이용하지 않고 방치한다고 꾸짖었다. “Harlem의 삶은 심지어 Chaucer의 잉글랜드, Cervantes의 스페인, Rabelais의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romance[抒情的(서정적) 小曲(소곡)]와 소설의 아주 좋은(very) 소재이다.”

그는 Thomas Mann과 James Joyce를 소설가 중에서 최고로 평가하는 것 같고 그들의 소설 중의 (theirs) 몇 권처럼 그의 네 개의 소설은 본질적으로 성장소설이다―추억과 세부묘사로 가득 찬, 아름답게 쓰여졌지만 그의 에세이의 활기와 날카로운 비판(thrust)은 결여되어 있는(소설이다). 그의 詩처럼, 풍부한 내용(richness) 속에서 그 소설들은 그가 말한 “백인 우월주의의 민간傳承(전승)이고 흑인 병의 가짜전승”에 반대하는 암시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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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se last four words are more important than they may seem. The “fakelore” is not that some black people are disadvantaged; it is that they are responsible for that disadvantage, and defined by it. Murray did not downplay whites’ role in black Americans’ plight. As he averred in “The Omni-Americans”: “The deliberate debasement of the black image has been so viciously systematic…that the scope of white malevolence is hard to exaggerate.” But he did not end in outrage or despair. The glory of the blues man, Murray wrote, is his gift for eliciting beauty from sorrow and struggle, thus becoming “an agent of affirmation and continuity in the face of adversity”.

Reading Murray now is exhilarating, as great writing always is. It is also poignant. Today America is less racially stratified than during his formative years in the early 20th century, but it remains much more so than it ought to be. Fixing that is the work of policy, which did not seem to interest Murray much as a writer. What concerned him was a proper reverence for self-definition: for judging people first as individuals, rather than members of a group.

The novels of William Faulkner were his lodestar. Faulkner’s fiction took in the struggles of African-Americans, even making them heroic. But his underlying point, for Murray, was not “that the meek shall inherit the Earth. His point was that no man could inherit the Earth, that the only thing worth inheriting is humanity.”

그 마지막 네 단어는 겉으로 보기보다는 더 중요하다. “fakelore”는 일부 흑인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불이익에 대해 책임이 있고 그 불이익에 의해 특정지어 진다. Murray는 미국 흑인의 곤궁에 있어서 백인의 역할을 경시하지는 않았다. 그가 “합승 미국인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흑인 이미지에 대한 고의적인 卑下(비하)는 너무나 악랄하게 조직적이어서… 백인들의 악의의 정도는 과장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는 폭력이나 절망으로 끝을 맺지는 않았다. “블루스 가수의 영광은 비애와 분투로부터 美(미)를 이끌어내 역경에 처해서 긍정과 연속성(삶의)의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재능이다.”라고 Murray는 썼다.

Murray를 읽는 것은 위대한 글이 항상 그런 것처럼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신랄하다. 오늘날의 미국은 20세기 초 그의 인격의 형성기 때(formative years) 보다 인종적으로 보다 덜 계층적이지만 당연한 것보다는 더 계층적이다.(법으로 정해놓은 것 보다 더 차별적이다.) 그것을 고치는 것은 정치의 일이고 정치는 작가로서 Murray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다.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자아정의에 대한 적절한 존중이다. 즉 사람을 집단의 한 일원으로보다는 먼저 개인으로 사람을 판정하는 것(이다).

William Faulkner의 소설이 그의 길잡이 별(북극성)이었다. Faulkner의 소설은, 심지어 흑인들을 영웅적으로 만들면서, 미국 흑인들을 다루었었다. 그러나 그의 근원적인 요점은, Murray에게는, “온유한 자가 세상을 물려받을 것이다”는 아니었다. 그의 중점은 어떤 인간도 세상을 물려받을 수 없다는 것, 물려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인간성이다“라는 것이었다.

출처 : The Economist, Aug 22nd 2020
[ 2020-12-01, 11: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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