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원 판결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
[新刊]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의 ‘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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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논의는 해롭다. 어떠한 이득도 없다. 이것이 이 책 전체의 결론이다.”


현재 한일갈등 최대 이슈인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 애한파(愛韓派)를 자처하는 한 일본인이 쓴, 일본 측의 솔직한 입장과 논거를 담은 책이 한국에 출간됐다.


‘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 원제가 ‘날조된 징용공 문제(でっちあげの徴用工問題)’인 이 책은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모라로지연구소 및 레이타쿠대학 교수가 집필했다. 번역은 징용 문제 관련 국내 최고 전문가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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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 주류 언론은 징용공 문제와 관련 늘 한국의 일방적 입장, 논거만을 전달하기에 바빴다. 설사 한국의 입장, 논거가 전적으로 정당하다손 치더라도 이는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외교는 어떻건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대해서도 일단 북한의 입장, 논거는 들어보고 있는 현실에서 아무리 식민지 아픈 역사가 있다 하더라도 일본의 입장, 논거는 인내심을 갖고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인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일본인으로서) 상대(한국)를 대등한 인격자로 존중한다면, 상대가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할 때는 반론하고 논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책은 서두부터 징용공 문제로 통념을 따라온 한국인이 듣기에는 중대한 ‘불편한 진실’을 하나 얘기한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소위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알려진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정작 해당 재판에서 원고 4명 중에서 실제 징용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니시오카 교수는 한국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 내 사법 판결 내용로써, 한국의 기관이나 기업이 아닌, 아예 다른 법질서를 적용받는 국가인 일본의 기관과 기업에 이를 강제를 한다는 데 있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이는 일본 입장에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청구권 협정’(이하 한일협정)을 깨고서 한일국교파기를 요구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를 아베 정권, 스가 정권 등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일본에게는 이것이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다. 이런 현실부터 한국인이 인식해야 한다고 니시오카 교수는 말한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법리상으로도 치명적 문제를 갖고 있다. 원고가 징용노동자가 아니었다는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한국 대법원은 일제시대 전체를 아예 불법화해버리는 무리수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법리는 필연적으로 징용공뿐만이 아니라 당시 일제하 조선반도 출신 사람들 모두로 하여금 일본에 배상을 요구할 공식적인 권리를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됐을 경우 일본이 과연 그 막대한 배상을 감내할 수 있을까. 식민지 배상이라는 것 자체가 국제법상 전례가 없기도 하지만, 한국은 공식화를 해버린 자신들의 시책을 일본에게 관철시키려면 남는 대안은 결국 무력뿐이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처사인가.


니시오카 교수는 일본인으로서 일제시대가 한국인(조선인)에게 불행한 시대로 기억되는 점에 유감을 표한다. 하지만 이제와 한국인이 정색하고 그 시대 전체를 불법화하는 일은 현명치 못하다고 호소한다. 한일 양국은 어떻든 일찍이 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리를 조건으로 국교를 정상화했었다.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한일 양국은 중대한 현안을 같이 해결해야 한다. (1) 당장에 한국과 일본은 북조선과 중공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고, (2)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라는 공통의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3) 무역이나 투자로서도 강한 상호결속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가. 과거사 문제는 서로의 역사인식의 “불일치는 인정해주면서(agree to disagree)” 각국이 스스로 정리를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저자는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인의 통념인 ‘강제연행’, ‘노예노동’도 전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외교나 법률 이전에, 한일관계에 있어 장단기적으로 역사적 실태를 중심으로 징용공 문제를 풀자고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고 한편으로는 큰 논쟁을 부를 수도 있는 지점이다. 


일제시대, 조선반도에서는 일본열도로의 노동력 이동의 대규모 흐름이 있었다. 한일병합 이후 비교적 고임금을 누릴 수 있었던 일본열도의 상황을 보고 수많은 조선인 이주 노동자가 생겨났다. 1945년 8월 종전 당시 재일조선인 200만 명 중에서 80%인 160만 명이 순수 자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이었을 정도다. 이 통계만 하더라도 ‘조선인 강제연행’설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전시 노무동원 노동자는 종전 당시 재일조선인 비중의 20%에 불과했으며, 이중에서도 실은 법적 강제력이 있는 ‘징용’의 경우는 또 일부에 불과했다. ‘징용’은 1944년 9월에야 실시되었으며 실질적으로는 6개월도 진행되지 못했다. 외견상 전시 노무동원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자발적 이주 정책인 ‘모집’, ‘관알선’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이가 ‘징용’의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전시 노무동원 정책을 실시하는 와중에도 수만 여 명에 달하는 부정 도항자를 막기에 급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을 노예사냥하듯 끌고와 일본에서 일을 시켰다는 것이 말이 될까. 


‘노예노동’도 말이 안 된다. ‘모집’, ‘관알선’, ‘징용’을 포함하여 조선인 노동자들은 모두 고임금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간 임금차별도 없었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관련해 ‘징용’ 조선인 노동자 수기 두 개를 공개한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처음 알려지는 내용이다. 먼저 히로시마 도요공업에 징용됐던 정충해 씨의 경우다. 그는 회사 기숙사에서 1인 당 2첩의 큰 방에다가 신형 침구를 제공받았다. 삼시 세끼를 보장받고, 140엔의 급료를 받았다(당시 순사 초임이 45엔, 병사가 10엔). 잔치와 도박에, 전쟁미망인과 밀회도 즐긴다.


요됴시카단듀테츠 공장에 징용됐던 가네마야 쇼엔 씨(창씨개명)의 경우도 보자. 가네야마 씨는 원 작업현장에서 탈주하는데, 탈주 이유가 동료와의 말다툼이다. 가혹한 노동 상황 때문이 아니다. 가네야마 씨는 탈주 이후 자유노동자가 되는데, 일본내 이런저런 작업현장에서 고액의 임금을 받고 또 고가의 물건을 구입한다. 담배, 막걸리도 쉽게 구하며,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5일마다 소고기를 먹었다는 고백도 한다. 이것이 어떻게 한국인들이 인식하는 ‘노예노동’의 모습인가.


지난 28일에 정식 출간된 ‘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는 미디어워치 ‘세계 자유 보수의 소리 총서’로서 기획됐다. 출판사는 징용공 문제에 이어 다음 책에서는 한일갈등 이슈 중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인 위안부 문제를 다루겠다고 예고했다.

 

 

[ 2020-12-31, 11: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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