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r왕》에 나타나는 허무주의
반공자유-교양영어(27): King Lear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Lear왕〉은 무의미한 세계에 대한 허무주의적 음울한 비전을 제시한다. 〈Lear王〉세계에는 정의와 질서와 가치가 무참하게 붕괴된다. 삶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되는대로 이고 폭력적이며 잔인하다. 우주도 자연도 폭력적이다. 神은 인간이 당하는 무의미한 죽음과 고통에 대해 무심한 것처럼 보인다. 죽음에 대한 선악의 기준도 없다. 무심하고 무의미하며 공허하고 파괴적인 세계에서 인물들은 분투하다가 허망하게 죽는다. 〈Lear왕〉의 우주에는 선악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善(선)에 대한 보상도 없고 惡(악)에 대한 징벌도 없다. 우주는 가치의 중립지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삶이 의미를 제공하거나 혹은 재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암시하는 곳은 〈Lear왕〉 어디에도 없다. 극의 비극적 결말은 어떠한 교훈도 제공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물들이 그들이 보아온 것에 대해 절망감을 표현할 뿐이다. 극의 결말은 허무주의의 음산한 餘韻(여운)만 남긴다. 


〈Lear왕〉의 악인들은 그들이 무자비한 야만성 때문에 특별한 혐오감을 불러 일어 킨다. 그들의 惡에는 善의 요소가 거의 섞여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소름끼치는 악령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들 악령들은 무서운 악을 다량으로 생산한다. 악의 인물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번창할 수 있다. 그들은 불행하지 않고 비참과 파멸을 사방으로 퍼뜨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Lear왕〉의 악은 단지 파멸적이다. 이 악은 아무것도 건설하지 않고 오로지 악의 반대자들이 이룩한 바탕 위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악은 또 자기 파괴적이다. 악은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인들도 원한과 증오의 대상으로 한다. 〈Lear왕〉의 악인들은 공동의 급박한 위험에 대항해서 거의 단합할 수가 없다. 위기가 지나가면 즉각 서로의 목에 비수를 들이댄다. 심지어 리어왕의 사악한 딸들은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서로를 죽인다. 마지막으로 이 악인들 5명(Goneirl, Regan, Edmund, Cornwall, Oswald)은 처음 나타난 후 몇 주 지나서 죽는다. 적어도 3명은 젊어서 죽는다. 그들 자신의 악의 폭발이 그들에게 치명적이 된다. 〈Lear왕〉의 사악한 인간들은 반대자들을 파멸로 몰아가면서 자신들도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악이 나타나는 세계는 적어도 악에게 우호적이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인상은 〈Lear왕〉세계의 동란은 사악한 인간들의 악 때문에, 또는 보다 선한 인물들의 결함이나 실수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에 의해서 확인된다. 선은 넓은 의미에서 세상의 생명과 건강의 원칙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악은 적어도 최악의 경우에는 독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악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악을 축출하려는 투쟁에서 스스로를 황폐하도록 내몰린다. 비극 〈Lear왕〉은 세상을 요동시키고 황폐화하는 악을 세계가 왜 생성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이 비극에서는 악이 세상을 요동치게 하고 세상은 악을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악인은 물론 악에 대항하는 선한 사람도 피를 흘리게 된다. 우주는 선악의 구분 없이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파리를 죽이듯이 사람들을 죽인다. 우주를 창조하고 운행하는 神은 세상이 요동을 치든 말든 구경할 뿐인 것처럼 보인다.

 


27-1-191

Ⅰ. Characters 

King Lear: The aging king of Britain and the protagonist of the play. Lear is used to enjoying absolute power and to being flattered, and he does not respond well to being contradicted or challenged. At the beginning of the play, his values are notably hollow—he prioritizes the appearance of love over actual devotion and wishes to maintain the power of a king while unburdening himself of the responsibility. Nevertheless, he inspires loyalty in subjects such as Gloucester, Kent, Cordelia, and Edgar, all of whom risk their lives for him.


Cordelia: Lear’s youngest daughter, disowned by her father for refusing to flatter him. Cordelia is held in extremely high regard by all of the good characters in the play—the king of France marries her for her virtue alone, overlooking her lack of dowry. She remains loyal to Lear despite his cruelty toward her, forgives him, and displays a mild and forbearing temperament even toward her evil sisters, Goneril and Regan. Despite her obvious virtues, Cordelia’s reticence makes her motivations difficult to read, as in her refusal to declare her love for her father at the beginning of the play. 


Goneril: Lear’s ruthless oldest daughter and the wife of the duke of Albany. Goneril is jealous, treacherous, and amoral. Shakespeare’s audience would have been particularly shocked at Goneril’s aggressiveness, a quality that it would not have expected in a female character. She challenges Lear’s authority, boldly initiates an affair with Edmund, and wrests military power away from her husband. 


Ⅰ. 등장인물

Lear王: 영국의 늙은 왕이고 극의 주인공. Lear는 절대권력을 즐기고 아부 받는 데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반박을 당하거나 도전을 받으면 대응을 잘 하지 못한다. 劇(극)의 초에 그의 가치관은 공허하다―그는 실질적, 헌신적 사랑(devotion)보다는 사랑의 겉모습을 우선시하고 책임(왕으로서의)은 내려놓으면서 왕권은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loucester, Kent, Cordelia, and Edgar같은 신하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켜서 이들 모두는 그를 위해 목숨을 건다. 


Cordelia: Lear의 가장 어린 딸이고 아버지에게 아첨하기를 거부한 것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義絶(의절)당한다. Cordelia는 극 중 모든 선한 인물들에 의해 지극히 높은 존경을 받는다―프랑스王은 그녀의 지참금의 缺如(결여)를 무시하고 그녀의 미덕만 생각해서 그녀와 결혼한다. 그녀는 그녀에 대한 Lear의 박대에도 불구하고 Lear에게 계속 충성하고 그를 용서하고 심지어 그녀의 사악한 언니들인 Goneril과 Regan에게도 그녀의 온화하고 관대한 기질을 보여준다. 그녀의 명백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Cordelia의 과묵함은 극의 초기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선언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그녀의 동기를 알아보기 어렵게 한다. 


Goneril: Lear의 무자비한 장녀이고 Albany公爵(공작)의 아내이다. Goneril은 질투가 많고 반역적이며 몰도덕적이다. Shakespeare의 관객들(당시의)은 Goneril의 공격성에 특별히 충격을 받았었을 것이며 이런 공격성은 여성등장인물(당시의)에게는 기대될 수 없었던 자질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Lear의 권위에 도전하고 Edward와의 情事(정사)를 대담하게 선도하고 남편으로부터 軍權(군권)을 빼앗는다. 



27-2-192

Regan: Lear’s middle daughter and the wife of the duke of Cornwall. Regan is as ruthless as Goneril and as aggressive in all the same ways. In fact, it is difficult to think of any quality that distinguishes her from her sister. When they are not egging each other on to further acts of cruelty, they jealously compete for the same man, Edmund. 


Gloucester: A nobleman loyal to King Lear whose rank, earl, is below that of duke. The first thing we learn about Gloucester is that he is an adulterer, having fathered a bastard son, Edmund. His fate is in many ways parallel to that of Lear: he misjudges which of his children to trust. He appears weak and ineffectual in the early acts, when he is unable to prevent Lear from being turned out of his own house, but he later demonstrates that he is also capable of great bravery. 


Edgar: Gloucester’s older, legitimate son. Edgar plays many different roles, starting out as a gullible fool easily tricked by his brother, then assuming a disguise as a mad beggar to evade his father’s men, then carrying his impersonation further to aid Lear and Gloucester, and finally appearing as an armored champion to avenge his brother’s treason. Edgar’s propensity for disguises and impersonations makes it difficult to characterize him effectively. 


Edmund: Gloucester’s younger, illegitimate son. Edmund resents his status as a bastard and schemes to usurp Gloucester’s title and possessions from Edgar. He is a formidable character, succeeding in almost all of his schemes and wreaking destruction upon virtually all of the other characters. 


Regan: Lear의 중간 딸이고 Cornwall 공작의 아내이다. Regan은 Goneril만큼 똑같이 잔인하고 모든 면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공격적이다. 사실 그녀를 언니와 구별시켜주는 어떤 자질도 생각하기 어렵다. 그들이 더 잔인한 행동을 서로서로 부추기지 않을 때는 같은 남자 Edmund를 차지하기 위해 질투하며 경쟁한다.


Gloucester: Lear왕에게 충성하는 귀족이며 그의 지위는 공작 아래인 伯爵(백작)이다. 우리가 Gloucester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는 것은 그가 姦夫(간부)로서 사생아 Edmund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의 운명은 많은 면에서 Lear와 운명과 비슷하다: 그는 자식들 중에서 어느 자식을 믿어야 할지를 오판한다. 그는 자신의 성(house)으로부터 Lear가 쫓겨나는 것을 막지 못하는 초기 부분[acts: 연극의 幕(막)] 행동에서는 연약하고 비능률적으로 보이지만 뒤에서는 그도 위대한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dgar: Gloucester의 장남이고 嫡子(적자)이다. Edgar는 많은 다양한 역을 하는데, 동생의 속임수에 쉽게 당하는 잘 속는(gullible) 바보로 출발하고, 그러고는 아버지의 부하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미친 거지로 위장을 하고, Lear와 Gloucester를 더욱더 도와주기 위해서 위장[impersonation: 擬人(의인)]을 계속 수행하고, 마지막으로 동생의 반역을 복수하기 위해 무장 투사로서 출현한다. Edgar의 위장과 擬人(의인)의 성향은 Edgar의 효과적인 성격 부여를 어렵게 한다. 


Edmund: Gloucester의 둘째 아들이고 庶子(서자)이다. Edmund는 사생아로서의 그의 지위에 분노하고 Edgar로부터 Gloucester의 지위와 재산을 찬탈할 계획을 한다. 그는 可恐(가공)할 인물이고 그의 모든 계획에서 성공하고 사실상 모든 다른 인물들에게 파멸을 가져온다(wreak).



27-3-193

Kent: A nobleman of the same rank as Gloucester who is loyal to King Lear. Kent spends most of the play disguised as a peasant, calling himself “Caius,” so that he can continue to serve Lear even after Lear banishes him. He is extremely loyal, but he gets himself into trouble throughout the play by being extremely blunt and outspoken. 


Albany: The husband of Lear’s daughter Goneril. Albany is good at heart, and he eventually denounces and opposes the cruelty of Goneril, Regan, and Cornwall. Yet he is indecisive and lacks foresight, realizing the evil of his allies quite late in the play. 


Cornwall: The husband of Lear’s daughter Regan. Unlike Albany, Cornwall is domineering, cruel, and violent, and he works with his wife and sister-in-law Goneril to persecute Lear and Gloucester. 


Fool: Lear’s jester, who uses double-talk and seemingly frivolous songs to give Lear important advice. 


Oswald: The steward, or chief servant, in Goneril’s house. Oswald obeys his mistress’s commands and helps her in her conspiracies. 


Kent: Lear왕에게 충성하는 Gloucester와 同級(동급)의 귀족이다. Kent는 자신을 “Caius”라고 칭하고 극의 대부분을 농부로 위장해서 보내며 그래서 심지어 Lear가 그를 추방한 후에도 왕을 계속 모실 수 있게 된다. 그는 지극히 충성스럽지만 지극히 무뚝뚝하고 직설적이어서 극 전체를 통해서 스스로 곤경에 처하게 된다. 


Albany: Goneril의 딸 Goneril의 남편. Albany는 심성이 선하여 결국에는 Goneril과 Regan과 Cornwall의 잔인한 행위를 비난하고 반대한다. 그러나 그는 優柔不斷(우유부단)하고 先見之明(선견지명)이 부족하여 극에서 그의 동맹자들의 악을 매우 늦게 깨닫게 된다. 


Cornwall: Lear의 딸 Regan의 남편. Albany와는 달리 Cornwall은 거만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그의 아내와 처형인 Goneril과 합세하여 Lear와 Gloucester를 처형한다. 


Fool: Lear의 광대. Lear에게 중요한 충고를 드리기 위하여 허튼 소리와 외견상으로는 경박한 노래를 이용한다. 


Oswald: Goneril家의 집사 혹은 청지기. Oswald는 그의 마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그녀의 음모를 도와준다. 



27-4-194

Ⅱ. Summery

Lear, the aging king of Britain, decides to step down from the throne and divide his kingdom evenly among his three daughters. First, however, he puts his daughters through a test, asking each to tell him how much she loves him. Goneril and Regan, Lear’s older daughters, give their father flattering answers. But Cordelia, Lear’s youngest and favorite daughter, remains silent, saying that she has no words to describe how much she loves her father. Lear flies into a rage and disowns Cordelia. The king of France, who has courted Cordelia, says that he still wants to marry her even without her land, and she accompanies him to France without her father’s blessing.


Lear quickly learns that he made a bad decision. Goneril and Regan swiftly begin to undermine the little authority that Lear still holds. Unable to believe that his beloved daughters are betraying him, Lear slowly goes insane. He flees his daughters’ houses to wander on a heath during a great thunderstorm, accompanied by his Fool and by Kent, a loyal nobleman in disguise.


Meanwhile, an elderly nobleman named Gloucester also experiences family problems. His illegitimate son, Edmund, tricks him into believing that his legitimate son, Edgar, is trying to kill him. Fleeing the manhunt that his father has set for him, Edgar disguises himself as a crazy beggar and calls himself “Poor Tom.” Like Lear, he heads out onto the heath.


When the loyal Gloucester realizes that Lear’s daughters have turned against their father, he decides to help Lear in spite of the danger. Regan and her husband, Cornwall, discover him helping Lear, accuse him of treason, blind him, and turn him out to wander the countryside. He ends up being led by his disguised son, Edgar, toward the city of Dover, where Lear has also been brought. 


영국의 노쇠한 왕인 Lear는 왕좌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왕국을 세 딸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첫째, 그는 딸들 각각에게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에게 말할 것을 요구하면서 딸들을 테스트한다. Lear의 큰 딸들인 Goneril와 Regan은 그들의 아버지에게 아첨하는 답을 한다. 그러나 Lear의 막내딸이고 Lear가 가장 寵愛(총애)하는 Cordelia는 그녀가 아버지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를 표현(describe)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침묵을 지킨다. Lear는 격노하여 Cordelia와의 자식의 인연을 끊어 버린다(disown:의절하다). Cordelia에게 구혼하였던 프랑스의 국왕은 그래도 땅이 없는 Cordelia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며 Cordelia는 아버지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프랑스왕을 따라 프랑스로 간다.


Lear는 그가 잘못된 결정을 했다는 것을 재빨리 알게 된다. Goneril과 Regan은 Lear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권위도 신속하게 붕괴시키기 시작한다. 자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Lear는 서서히 미쳐간다. 그는 딸들의 城(성:house)에서 도망쳐 나와서 그의 광대와 변장한 충성스러운 귀족 Kent의 시중을 받으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동안 히스(heath: 히스가 무성한 황야)에서 헤매고 다닌다.


그사이에 Gloucester라는 이름의 연로한 귀족도 가족문제를 경험한다. 그의 서자인 Edmund는 그를 속여서 그의 적자인 Edgar가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믿게 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잡기 위해 지시한 범인 수색을 피해서 도망가면서 Edgar는 자신을 미친 거지로 위장하고 자신을 “Poor Tom"이라고 부른다. Lear처럼 그도 히스황야로 향한다.


충성스런 Gloucester는 Lear의 딸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배신하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 위험에도 불구하고 Lear를 돕기로 결심한다. Regan과 그녀의 남편 Cornwall은 Gloucester가 Lear를 도와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반역죄로 기소하고 그를 눈멀게 하고 그를 추방해서 시골지역에서 헤매게 한다. 그는 마침내 변장한 아들 Edgar에게 이끌려서 Dover市를 향해서 가고 그곳에는 Lear도 이미 이끌려서 와 있었다.



27-5-195

In Dover, a French army lands as part of an invasion led by Cordelia in an effort to save her father. Edmund apparently becomes romantically entangled with both Regan and Goneril, whose husband, Albany, is increasingly sympathetic to Lear’s cause. Goneril and Edmund conspire to kill Albany.


The despairing Gloucester tries to commit suicide, but Edgar saves him by pulling the strange trick of leading him off an imaginary cliff. Meanwhile, the English troops reach Dover, and the English, led by Edmund, defeat the Cordelia-led French. Lear and Cordelia are captured. In the climactic scene, Edgar duels with and kills Edmund; we learn of the death of Gloucester; Goneril poisons Regan out of jealousy over Edmund and then kills herself when her treachery is revealed to Albany; Edmund’s betrayal of Cordelia leads to her needless execution in prison; and Lear finally dies out of grief at Cordelia’s passing. Albany, Edgar, and the elderly Kent are left to take care of the country under a cloud of sorrow and regret. 


Dover에서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한 노력에서 Cordelia가 지휘하는 침공군의 일부로서 프랑스軍(군)이 상륙한다. Edmund는 분명히 Regan과 Goneril 둘 다에게 사랑으로 얽히게 되며 Goneril의 남편 Albany는 Lear의 주장에 점점 더 동정하게 된다. Goneril과 Edmund는 Albany를 죽일 음모를 꾸민다. 절망에 빠진 Gloucester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Edgar는 架空(가공:imaginary)의 절벽으로 이끌어서 떨어지게 하는 이상한 속임수로서 아버지를 살린다. 그 사이에 영국군이 Dover에 도착하고 Edmond가 지휘하여 Cordelia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을 패배시킨다. Lear와 Cordelia는 포로가 된다(captured).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Edgar는 Edmond와 결투를 하여 그를 죽인다. 관객들은 Gloucester의 죽음의 소식을 듣는다. Goneril은 Edmond에 대한 질투심에서 Regan을 독살하고 그녀의 반역행위가 Albany에게 밝혀질 때에 자살한다; Cordelia에 대한 Edmond의 배신은 그녀의 감옥에서의 불필요한 처형으로 이끈다; Lear는 마침내 Cordelia의 죽음에 대한 슬픔 때문에 죽는다. Albany와 Edgar가와 初老(초로)의 Kent는 비애와 悔恨(회한)의 구름으로 덮인 나라를 추스르도록 남겨진다.



27-6-196

Ⅲ. Theme 

Justice

King Lear is a brutal play, filled with human cruelty and awful, seemingly meaningless disasters. The play’s succession of terrible events raises an obvious question for the characters—namely, whether there is any possibility of justice in the world, or whether the world is fundamentally indifferent or even hostile to humankind. Various characters offer their opinions: “As flies to wanton boys are we to the gods; / They kill us for their sport,” Gloucester muses, realizing it foolish for humankind to assume that the natural world works in parallel with socially or morally convenient notions of justice (4.1.37–38). Edgar, on the other hand, insists that “the gods are just,” believing that individuals get what they deserve (5.3.169). But, in the end, we are left with only a terrifying uncertainty—although the wicked die, the good die along with them, culminating in the awful image of Lear cradling Cordelia’s body in his arms. There is goodness in the world of the play, but there is also madness and death, and it is difficult to tell which triumphs in the end. 


Authority versus Chaos

“King Lear” is about political authority as much as it is about family dynamics. Lear is not only a father but also a king, and when he gives away his authority to the unworthy and evil Goneril and Regan, he delivers not only himself and his family but all of Britain into chaos and cruelty. As the two wicked sisters indulge their appetite for power and Edmund begins his own ascension, the kingdom descends into civil strife, and we realize that Lear has destroyed not only his own authority but all authority in Britain. The stable, hierarchal order that Lear initially represents falls apart and disorder engulfs the realm.


The failure of authority in the face of chaos recurs in Lear’s wanderings on the heath during the storm. Witnessing the powerful forces of the natural world, Lear comes to understand that he, like the rest of humankind, is insignificant in the world. This realization proves much more important than the realization of his loss of political control, as it compels him to re-prioritize his values and become humble and caring. With this newfound understanding of himself, Lear hopes to be able to confront the chaos in the political realm as well. 


Ⅲ. 주제

正義(정의)

“리어王”은 인간의 잔인함과 무시무시하며 외견으로는 무의미하고 재앙으로 가득 차있는 잔혹한 劇(극)이다. 극의 연속적인 가공할 사건들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명백한 의문을 제기한다―즉 세계에는 정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없는지 혹은 세계는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무심한지 혹은 심지어 적대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그들의 의견을 제공한다: Gloucester는 인간이 자연 세계가 정의에 대해서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편하고 좋은(convenient) 생각에 맞추어서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장난 심한 아이들이 파리를 취급하듯이 神들은 우리 인간을 취급해;/神들은 우리 인간을 장난으로 죽여.”라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반면에 Edgar는 개개인은 그들이 받을 만한 것(좋든 나쁘든)을 받게 된다고 믿으면서 “神들은 정의롭습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가공할만한 불확실성뿐이다―비록 악한 사람들이 죽지만 선한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죽으며 이런 상황은 Lear가 Cordelia의 屍身(시신)을 양팔에 안고 있는 가공할 이미지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극의 세계에서는 선도 있지만 그곳에는 광기와 죽음도 있으며 결국 어느 쪽(선과 악)이 승리하는지를 말하기가 어렵다.


권력 對 혼돈

“리어王”은 정치적 권력에 관한 것만큼 또한 가족역학에 관한 것이다. Lear는 아버지일 뿐 아니라 또한 왕이다. 그가 비열하고(unworthy) 사악한 Goneril과 Regan에게 왕권을 移讓(이양)할 때 그는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영국 전체를 잔혹함에 넘겨준다. 두 사악한 자매가 권력의 욕망에 탐닉하고 Edmond가 자신의 지위 상승을 시작하면서 왕국은 내란으로 떨어지게 되고(descend) 우리는 Lear는 자신의 권위뿐 아니라 영국의 모든 권위를 파괴해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Lear가 최초에 대표하던 안정적이고 계급적인 질서는 추락하여 깨어져 버리고 무질서가 왕국을 삼켜버린다.


혼돈에 직면한 권위의 실패는 폭풍의 히스 황야에서의 Lear의 방황에서 반복된다. 자연계의 강력한 힘을 목격하면서 Lear는 자신이 인류의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우주(world) 안에서는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깨달음(realization)은 그로 하여금 가치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게 하고 겸손하고 봉사적이 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정치적 지배권(control)의 상실에 대한 깨달음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판명된다. 새로이 발견된 자신에 대한 이해와 함께 Lear는 정치적 영역에 있는 혼돈도 또한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7-7-197

Reconciliation

Darkness and unhappiness pervade “King Lear”, and the devastating Act 5 represents one of the most tragic endings in all of literature. Nevertheless, the play presents the central relationship—that between Lear and Cordelia—as a dramatic embodiment of true, self-sacrificing love. Rather than despising Lear for banishing her, Cordelia remains devoted, even from afar, and eventually brings an army from a foreign country to rescue him from his tormentors. Lear, meanwhile, learns a tremendously cruel lesson in humility and eventually reaches the point where he can reunite joyfully with Cordelia and experience the balm of her forgiving love. Lear’s recognition of the error of his ways is an ingredient vital to reconciliation with Cordelia, not because Cordelia feels wronged by him but because he has understood the sincerity and depth of her love for him. His maturation enables him to bring Cordelia back into his good graces, a testament to love’s ability to flourish, even if only fleetingly, amid the horror and chaos that engulf the rest of the play.


Nihilism

“King Lear” presents a bleak vision of a world without meaning. Lear begins the play valuing justice, the social order, and the value of kingship, but his values are undermined by his experiences. Lear ends up believing that justice, order and kingship are just flattering names for raw, brutal power. Cornwall confirms Lear’s view when he admits that even though punishing Gloucester without a trial is unjust, his power gives him the freedom to act as he wants: “our power / Shall do a courtesy to our wrath” (III.vii). Gloucester, too, comes to see life as random, violent and cruel, claiming the gods treat people with the same level of care as schoolboys with flies. Nowhere does “King Lear” suggest life offers meaning or the possibility of redemption. The play’s tragic ending offers no lesson. Cordelia dies for no reason; the order for her execution has been reversed. The few characters left alive express despair at what they have seen.


화해

암흑과 불행이 “리어王”에 膨滿(팽만)해 있고 파멸적인 5幕(막)은 모든 문학에서 가장 비극적인 결말 중의 하나를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은 진실하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극적인 具現(구현)으로서 중심적인 관계를―Lear와 Cordelia의 관계(that)―제시한다. Cordelia는 그녀를 추방한 것에 대해서 Lear를 嫌惡(혐오:despise)하기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계속 헌신적이고 고난으로부터 Lear를 구출하기 위하여 외국으로부터 군대를 들여온다. 그사이에 Lear는 겸손에 있어서 엄청나게 잔인한 학습을 하게 되고 마침내 Cordelia와 즐겁게 재회하여 그녀의 용서하는 사랑의 향기를 경험할 수 있는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자신의 방법의 오류에 대한 Lear의 인식은 Cordelia가 그에 의해서 부당하게 취급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고 그가 그에 대한 그녀 사랑의 진실함과 깊이를 (드디어)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Cordelia와의 화해에 결정적인 성분이 된다. 그의 정신적 성숙(maturation)은 그로 하여금 그의 선한 恩寵(은총) 속으로 Cordelia를 받아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이것은 비록 극의 나머지 부분을 집어삼키는 공포와 혼돈 가운데서도,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피어나는 사랑의 능력에 대한 증거가 된다.


허무주의

“Lear王”은 무의미한 세계에 대한 음울한 비전을 제시한다. Lear는 정의와 사회질서와 왕권을 높이 평가하면서 극을 시작하지만 그의 가치는 그의 경험에 의해서 붕괴된다. Lear는 정의와 질서와 왕권은 粗惡(조악: raw)하고 잔인한 권력에 대한 비위 맞추는 이름에 불과하다고 믿으면서 끝난다. Cornwall이 재판 없이 Gloucester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 할지라도 그의 권력이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자유를 허용한다고 확인할 때 그는 Lear의 관점을 확인하게 된다: “나의 권력이/나의 분노에 예의를 갖추게 한다,” Gloucester도 神들은 학교아이들이 파리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인간을 취급한다고 주장하면서 삶을 아무런 목적이 없는 되는대로 (random)이고 폭력적이며 잔인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삶이 의미를 제공하거나 혹은 재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암시하는 곳은 “Lear王” 어디에도 없다. 극의 비극적 결말은 어떠한 교훈도 제공하지 않는다. Cordelia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는다: 그녀의 처형에 대한 명령은 파기 되었었다.(그런데도 명령의 제대로 전달이 안 되어 처형되었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물이 그들이 보아온 것에 대해 절망감을 표현한다.



27-8-198

Self-knowledge

“King Lear” shows that a lack of self-knowledge can cause chaos and tragedy, but the play also suggests that self-knowledge is painful, and perhaps not worth the effort it takes to achieve it. Lear’s tragic flaw is a lack of self-knowledge. His daughter Regan identifies this flaw in the play’s opening scene: “he hath ever but slenderly known himself.” (I.i.). Lear achieves self-knowledge, but at the cost of his wealth, power and sanity. What he learns about himself is not a pleasant discovery: “I am a very foolish, fond old man” (IV.vii.). Achieving self-knowledge does not allow Lear to escape his tragic fate. In fact, self-knowledge makes his suffering worse. He realizes that his daughter Cordelia loves him after all, which only makes her death more painful. Edmund’s story also suggests that self-knowledge is of limited value. Unlike Lear, Edmund sees himself clearly from the beginning of the play, but his self-knowledge doesn’t do him much good: he dies


Ⅳ. Symbols 

The Storm

As Lear wanders about a desolate heath in Act 3, a terrible storm, strongly but ambiguously symbolic, rages overhead. In part, the storm echoes Lear’s inner turmoil and mounting madness: it is a physical, turbulent natural reflection of Lear’s internal confusion. At the same time, the storm embodies the awesome power of nature, which forces the powerless king to recognize his own mortality and human frailty and to cultivate a sense of humility for the first time. The storm may also symbolize some kind of divine justice, as if nature itself is angry about the events in the play. Finally, the meteorological chaos also symbolizes the political disarray that has engulfed Lear’s Britain. 


자기인식

“Lear王”은 자기인식의 부족이 혼돈과 비극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극은 또한 자기인식은 고통스럽고 아마도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만한 가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Lear의 비극적 결함(tragic flaw)은 자기인식의 부족이다. 그의 딸 Regan은 극의 개막장면에서 이 결함을 확인한다: “아버지는 자신을 아주 조금만(slenderly) 아시는 것 같다.”(별로 잘 모르는 것 같다). Lear는 자기인식을 성취하지만 부와 권력과 온전한 제정신을 희생하고 성취한다. 그가 자신에 대해서 배우게 된 것은 유쾌한 것은 아니다: “나는 매우 멍청하고 어리석은(fond) 노인이다.” 자기인식을 성취하는 것이 Lear가 비극적 운명을 피하도록 해 주지는 않는다. 사실은 자기인식이 그의 고난을 더욱더 악화시킨다. 그는 그의 딸 Cordelia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결국 알지만 이것이 그녀의 죽음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한다. Edmund의 이야기도 자기인식은 한정된 가치만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Lear와는 다르게 Edmund는 극의 처음부터 자기 자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만 그의 자기인식은 그에게 큰 이득을 주지 못한다: 그는 죽게 된다.


Ⅳ. 상징

폭풍

3幕(막)에서 Lear가 황량한 히스 황무지를 헤매고 있을 때, 강하지만 모호하게 상징적인 무서운 폭풍이 하늘 높이(overhead) 광란한다. 부분적으로 폭풍은 Lear의 내면의 혼란과 高潮(고조)되고 있는 광기를 反響(반향)한다: 그것은 Lear의 내적 혼란에 대한 물리적이고 거친 자연의 反射(반사)이다. 동시에 폭풍은 자연의 장엄한 힘을 化身(화신)하고 있으며 이것은 힘이 없는 왕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자신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mortality)과 인간의 약함을 인식하고 처음으로 겸손의 의미를 배양하도록 강요한다. 폭풍은 또한 마치 자연 자신이 극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어떤 종류의 神의 정의를 상징하는 것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상학적인 혼돈은 또한 Lear의 영국을 집어삼킨 정치적 혼란을 상징하고 있다.

 


27-9-199

Blindness

Gloucester’s physical blindness symbolizes the metaphorical blindness that grips both Gloucester and the play’s other father figure, Lear. The parallels between the two men are clear: both have loyal children and disloyal children, both are blind to the truth, and both end up banishing the loyal children and making the wicked one(s) their heir(s). Only when Gloucester has lost the use of his eyes and Lear has gone mad does each realize his tremendous error. It is appropriate that the play brings them together near Dover in Act 4 to commiserate about how their blindness to the truth about their children has cost them dearly.


Ⅴ. Motifs

Madness

Insanity occupies a central place in the play and is associated with both disorder and hidden wisdom. The Fool, who offers Lear insight in the early sections of the play, offers his counsel in a seemingly mad babble. Later, when Lear himself goes mad, the turmoil in his mind mirrors the chaos that has descended upon his kingdom. At the same time, however, it also provides him with important wisdom by reducing him to his bare humanity, stripped of all royal pretensions. Lear thus learns humility. He is joined in his real madness by Edgar’s feigned insanity, which also contains nuggets of wisdom for the king to mine. Meanwhile, Edgar’s time as a supposedly insane beggar hardens him and prepares him to defeat Edmund at the close of the play.


Betrayal

Betrayals play a critical role in the play and show the workings of wickedness in both the familial and political realms—here, brothers betray brothers and children betray fathers. Goneril and Regan’s betrayal of Lear raises them to power in Britain, where Edmund, who has betrayed both Edgar and Gloucester, joins them. However, the play suggests that betrayers inevitably turn on one another, showing how Goneril and Regan fall out when they both become attracted to Edmund, and how their jealousies of one another ultimately lead to mutual destruction. Additionally,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the entire play is set in motion by Lear’s blind, foolish betrayal of Cordelia’s love for him, which reinforces that at the heart of every betrayal lies a skewed set of values.


盲目(맹목)

Gloucester의 신체적 失明(실명)은 Gloucester와 극의 또 다른 아버지像(상)인 Lear 둘 다를 사로잡고 있는 은유적 맹목을 상징한다. 두 남자사이의 비교는 분명하다: 둘 다 충성하는 자식이 있고 불충하는 자식이 있다: 둘 다 진실에 눈이 멀어 있고 둘 다 충성하는 자식은 추방하고 사악한 자식을 후계자로 삼는 결과를 낳는다. Gloucester가 눈의 용도를 상실하고 Lear가 미치게 되었을 때에만 각자는 자신의 엄청난 과오를 깨닫게 된다. 극이 4幕에서 그들을 Dover부근에 오게 하여 자식에 대한 진실에 눈이 먼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가에 대해서 동정하게 한다.


Ⅴ. 모티프

광기

광기는 극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무질서와 숨겨진 지혜 둘 다와 연관된다. 극의 초기 부분에서 Lear에게 洞察(통찰)을 제공하는 광대는 외견상으로는 미친 헛소리로 그의 助言(조언)(counsel)을 제공한다. 후에 Lear자신이 미치게 될 때 그의 마음속에 이는 혼란은 그의 왕국에 다가온 혼돈을 反射(반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그를 왕의 모든 권력(pretensions)을 벗겨서 벌거벗은 인간으로 축소시킴에 의해서 그에게 중요한 지혜를 제공한다. Lear는 이렇게 해서 겸손을 배운다. 그는 실제로 미친 상태에서 Edgar의 假裝(가장)된 광기와 연합하게 되며, 이것은 또한 왕이 캐낼 수 있는 지혜의 금덩어리를 함유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아마도 미친 거지로 보낸 Edgar의 시간은 그를 강하게 하고 그를 극의 끝에 가서 Edmond를 패배시키도록 준비시킨다.


배신

배신행위는 극에서 결정적인(critical) 역할을 하고 가족과 정치 양 영역에서 사악함의 활동을 보여준다―여기에서는 형제가 형제를 배신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배신한다. Lear에 대한 Goneril과 Regan의 배신은 영국의 권좌로 그들을 상승시키고, Edgar와 Gloucester를 배신한 Edmond가 그들에게 합류한다. 그러나 극은 배신자들은 불가피하게 서로를 공격(turn on)하게 된다고 암시하며 Goneril과 Regan이 둘 다 Edmond에게 끌리면서 어떻게 사이가 틀어지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에 대한 그들의 질투행위가 궁극적으로 상호파멸로 이끄는지를 보여준다. 덧붙여 말해서, 극 전체는 그에 대한 Cordelia의 사랑(그에 대한)에 대한 Lear의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배신에 의해서 작동이 되고 이것은 모든 배신의 심장부에는 왜곡된 가치의 집합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27-10-200

Ⅵ. Plot Analysis

“King Lear” is a play about blindness – blindness to others’ motivations, blindness to one’s own true nature, blindness to the emptiness of power and privilege, and blindness to the importance of selfless love. Lear’s only desire is to enjoy a comfortable, carefree old age, but he fails to see the role his absolute power has played in shaping his relationship with his daughters, whom he expects to take care of him. Once he loses his power Lear gains insight into his own nature and realizes his shortcomings, admitting “mine eyes are not ‘o th’ best.” (V.iii) Tragically, this self-knowledge comes too late, at a point when Lear has forfeited the power that might have enabled him to change his fate. He finally sees the world as it really is, but is powerless to do anything about it. He dies after saying the final words, “look there, look there,” (V.iii) a literal command that the others look at Cordelia, but also a symbolic plea that the survivors see themselves, and the world, more accurately.


The play opens with a glimpse of the subplot that mirrors the main action, as Gloucester explains that he has two sons, one legitimate and one illegitimate, but he tries to love them equally. They discuss Lear’s plans to divide his kingdom, suggesting that he has already decided to share equally among his daughters, and his love test will be just a show, and actually won’t decide anything. Lear then announces his intention to divide his kingdom, admitting that Cordelia is his favorite. He clearly expects all three daughters to try to outdo each other with declarations of their love, for which he will reward them with portions of land. But Cordelia refuses to flatter him, and humiliates him publicly with her disobedience. Enraged by Cordelia’s stubbornness, Lear disowns her, and divides the kingdom between the remaining two daughters. Lear’s inability to understand that despite Cordelia’s reluctance to publicly flatter her father she actually loves him best is the tragic mistake that incites the action of the rest of the play.


Ⅵ. 줄거리 분석

“Lear王”은 맹목에 관한 극이다―타인의 動機(동기)에 대한 맹목, 자기 자신의 진짜 본성에 대한 맹목, 권력과 특권의 공허함에 대한 맹목, 無慾(무욕)의 사랑에 대한 맹목이다. Lear의 유일한 욕망은 안락하고 근심 없는(carefree) 노년을 즐기는 것이지만 자기를 돌보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딸들과의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그의 절대 권력이 해온 역할을 인식하지 못한다. 권력을 상실했을 때 Lear는 자신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획득하게 되고 그의 결함을 깨닫게 되고 “내 눈은 아주 좋지 못해.”라고 인정한다. 비극적이게도, 이 자기인식은 Lear가 그의 운명을 바꾸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도 있었을 권력을 상실한 시점에 너무 늦게 온다. 그는 마침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지만 그것에 대해서 뭐라도 하기에는 권력이 없다. 그는 그의 마지막 말 “저곳을 보라, 저곳을 보라.”을 한 후에 죽는데,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Cordelia를 바라보라라는 엄밀한 명령이지만 또한 살아남은 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그리고 세계를 더 정확하게 바라보라는 상징적 호소이다.


극은 Gloucester가 적자와 서자 아들 둘이 있지만 그들을 동등하게 사랑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하면서 극의 주된 행위(main action)를 반영하는 부차적 줄거리에 대한 一見(일견)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Lear가 이미 세 딸에게 (국토를) 공평하게 분배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그의 사랑시험(love test)은 단지 쇼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어떤 것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암시하면서 Lear의 왕국분단 계획을 논의한다. 그러고 나서 Lear는 Cordelia가 그가 가장 사랑하는 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왕국분단 의사를 발표한다. 그는 분명히 세 딸 모두가 그들의 사랑의 선언에 있어서 서로 능가하려고 노력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서 그는 국토의 일부로써 보상할 것이다. 그러나 Cordelia는 그에게 아부하기를 거부하고 불복종을 가지고 공중 앞에서 그를 모욕하게 된다. Cordelia의 고집에 격노한 Lear는 그녀를 義絶(의절)하고 왕국을 나머지 두 딸에게 배분한다. Cordelia가 아버지에게 대중 앞에서 아첨하기를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아버지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Lear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극의 나머지 행위를 일으키는 비극적 실수이다.



27-11-201

The audience understands that Lear’s other two daughters, the deceitful Goneril and Reagan, are the antagonists to Lear’s desire to hold onto his power, and the rising action of the play see these two characters actively thwarting their father and hastening his downfall. After dividing his kingdom between Goneril and Reagan Lear continues to demand that his daughters care for him, expecting to retain the privileges of the crown without the responsibilities. Lear has never recognised the role power plays in his family, so he expects his daughters to treat him exactly as they did when he was their king. Instead, Regan and Goneril treat Lear according to his new status as a powerless old man. Lear is deprived not only of the loving care he expected from his daughters, but also of his attendant knights, and finally even the shelter of their roofs. Meanwhile, the subplot reverses the structure of the main plot: while Lear mistakenly believes that power plays no role in his family, Edmund is all too aware of the role power plays in his. Angry that his illegitimate status makes him powerless, Edmund schemes to banish Edgar and take his place as Gloucester’s heir.


In keeping with its mirrored plot and subplot, “King Lear” has two simultaneous climaxes where a protagonist comes in direct conflict with an antagonist. For Lear, this moment comes when he is denied shelter by his daughters and forced to wander in the storm, a reversal of fortune that drives him mad. He tries to make the storm obey him, and the result is that he is deprived of the few comforts he has left.


관중은 Lear의 다른 기만적인 두 딸 Goneril과 Reagan이 Lear의 권력유지 욕망에 反(반)하는 적대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극에서 일어나는 행위는 이 두 인물이 그들의 아버지를 좌절시키고 전락을 재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왕국을 Goneril과 Reagan에게 분배한 후에 Lear는 책임지는 일 없이 帝王(제왕:crown)의 특권을 계속 유지하기를 기대하면서 딸들이 그를 돌보아 주기를 계속 요구한다. Lear는 권력이 가정 안에서 하는 역할을 결코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에 딸들이 그가 그들의 왕이었을 때 그들이 하였던 것과 똑같이 그를 대우 해 줄 것을 기대한다. Regan과 Goneril은 그의 새로운 지위에 따라 권력이 없는 노인으로서 그를 대우한다. Lear는 딸들로부터 기대하였던 사랑의 보살핌을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그를 수행하는 騎士(기사)들과 결국에는 비바람을 가려줄(of roofs) 거처마저도 박탈당한다. 동시에 부차 줄거리는 本(본) 줄거리의 구조를 역전시킨다: Lear는 권력이 그의 가족 내에서 아무런 역할도 가지지 않는다고 잘못 믿는 반면에 Edmond는 그의 가족 내에서 권력이 하는 역할을 너무나 많이 알아차리고 있다. 그의 서자의 지위가 그를 힘이 없도록 만드는 데 화가 난 Edmond는 Edgar를 쫓아내고 Gloucester의 후계자로서의 Edgar의 지위를 빼앗을 음모를 꾸민다.


“Lear王”은 반사(mirrored) 줄거리와 부차 줄거리를 계속 유지함에 있어서 한 주인공이 적대자와 직접 충돌(conflict)하게 되는 두 개의 동시 클라이맥스를 가진다. Lear에게는 딸들에 의해서 거처가 거절당하고 쫓겨나서(denied) 폭풍 속에서 헤매야 하는 이런 순간이 오고 이것은 그를 미치게 하는 운명의 역전이다. 그는 폭풍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려고 시도하며 그 결과는 그가 그에게 남아 있는 소수의 안락함도 빼앗긴다는 것이다.



27-12-202

Lear spends much of the storm talking with Edgar, who is disguised as a mad beggar called “Poor Tom,” and helps Lear see that as king he failed to care enough for the poor and downtrodden “wretches” of his kingdom. Meanwhile, Edmund triggers the climax of the subplot when he reveals to Cornwall that Gloucester has tried to help Lear. As a result, Gloucester is blinded, stripped of his title and banished from his home. The climax of the subplot confirms the vision of the main plot: raw, violent power is a greater force than even the love of families. Edmund has achieved his goal because he understands this truth and is prepared to act on it.


In his madness and suffering, Lear learns how fragile and temporary his former power was, and in the play’s falling action this insight allows him to be reconciled with Cordelia. He no longer demands that his daughter treat him like a king. He is happy to be treated as a “foolish, fond old man” (IV.vii) so long as Cordelia loves him. He imagines that in prison he and Cordelia will be sustained not by power but by their mutual love for one another: “We two alone will sing like birds i’the cage” (V.iii). Edgar, still disguised as Poor Tom, meets his blinded father, Gloucester, who intends to commit suicide: both men are so damaged by the political power that has crushed them—Edgar forced to hide, Gloucester suicidal and unable to see—that father and son are unable to be truly reconciled. Edgar does not reveal his true identity to Gloucester, and he has to trick his father into surviving his suicide attempt. 


Lear는 폭풍의 많은 부분을 Edgar와 이야기 하면서 보내며 Edgar는 “Poor Tom,”(가련한 톰)이라고 불리는 미친 거지로 위장하고 Lear가 국왕으로서 왕국의 가난하고 학대받는 “비참한 사람들”을 충분히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그 사이 Edmond는 Gloucester가 Lear를 도와주려고 노력해왔다는 것을 Cornwall에게 폭로할 때에 그는 부차 줄거리의 클라이맥스를 촉발한다. 그 결과 Gloucester는 눈알이 뽑히고(blinded) 지위를 박탈당하고 그의 城(성:home)으로부터 쫓겨난다. 부차 줄거리의 클라이맥스는 本(본) 줄거리의 비전을 확인한다: 조악하고 폭력적인 권력(힘)은 심지어 가족의 사랑보다도 더 큰 힘이다. Edmond는 이 진리를 이해하고 그 진리에 의거하여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목적을 성취하였다.


광기와 고난 속에서 Lear는 그의 권력이 얼마나 취약하고 덧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극의 하강부분(falling action)에서 이 통찰은 그로 하여금 Cordelia와 화해하도록 허용한다. 그는 Cordelia가 그를 왕처럼 대우해 줄 것을 더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Cordelia가 그를 사랑하는 한 “바보 같고 어리석은 노인”으로 취급되는 것을 기뻐한다. 그는 감옥에서 그와 Cordelia는 권력이 아니고 서로에 대한 상호사랑에 의해서 유지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우리 둘이서만 새장 안의 새처럼 노래할 것이야.” Edgar는 여전히 Poor Tom으로 위장하고 눈먼 아버지 Gloucester를 만나며 Gloucester는 자살을 하려고 한다: 두 사람은 그들을 분쇄한 정치권력에 의해서 너무나 손상을 많이 업어서―Edgar는 도피를 해야 했고 Gloucester는 자살적이 되고 볼 수도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진정으로 화해를 할 수가 없다. Edgar는 그의 정체를 아버지에게 밝히지 않고 그래서 아버지를 속여서 자살시도에서 살아남도록 해야만 한다.



27-13-203

Edgar’s deception suggests that true reconciliation is impossible for families torn apart by power, which undermines Lear’s reconciliation with Cordelia, and foreshadows the terrible denouement of the play, in which both families will be destroyed. 


The play’s denouement involves the deaths of many of the characters, most of them violent. Edgar kills his brother Edmund. Edgar also unintentionally kills his father, who is overcome by the discovery that his son has survived and forgives him. Edgar is restored to power, as the new Duke of Gloucester, but like Edmund he has had to destroy his family to do it. Lear’s family is also destroyed. Regan, Goneril, Cordelia and finally Lear himself all die. The center of the denouement is Cordelia’s death. Even though Edmund reverses his orders to have Cordelia and Lear killed, his decision comes too late. This truth echoes the fatalism of the entire play – a mistake, once made, can’t be undone, just as Lear can’t undo his fatal mistake of giving the wrong daughters his kingdom. In the play’s final scene Lear carries Cordelia’s body onstage, howling with grief. Lear has finally learned to love his daughter without asking for anything in return, only to have her taken from him. All Lear’s suffering has been for nothing. 


Edgar의 속임은 권력에 의해서 해체된 가족에게는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이것은 Lear와 Cordelia의 화해를 붕괴시키고 극의 가공할 결말을 전조하고 이 결말에서 두 가족은 파괴될 것이다.


극의 결말은 많은 인물의 죽음을 포함하고 그 죽음의 대부분은 난폭하다. Edgar는 그의 동생 Edmond를 죽인다. Edgar는 또한 본의 아니게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이 살아남았고 아버지를 용서하고 있다는 발견에 의해서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Edgar는 新(신)Gloucester 공작으로 권력에 복귀하지만 Edmond처럼 그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족을 파괴해야만 했다. Goneril과 Cordelia와 마지막으로 Lear 자신도 모두 죽는다. 그 대단원의 중심은 Cordelia의 죽음이다. 비록 Edmond가 Cordelia와 Lear를 죽이라는 그의 명령서를 번복하지만 그의 명령은 너무 늦게 도착한다. 이 진실은 극의 숙명관을 반향하고 있다―한번 저질러진 실수는, Lear가 나쁜 딸에게 왕국을 나누어주는 운명적인 실수를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 극의 마지막 장에서 Lear는 슬픔에 울부짖으면서 Cordelia의 시신을 안고 무대에 나타난다. Lear는 마침내 보답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딸을 사랑하는 것을 배웠지만 결과는 딸을 빼앗기게 될(have〜taken) 뿐이다. Lear의 모든 고난은 아무런 보답도 없는 것이다.

 


27-14-204

Ⅶ. Foreshadowing

Many of the tragic events of “King Lear” are foreshadowed from the beginning of the play, which creates a sense that the characters’ suffering is inevitable, and reflects Lear’s blindness to the consequences of his actions by helping the audience to foresee events which Lear himself cannot. Just as significant are the events which are not foreshadowed. The death of Cordelia is the play’s most terrible event, but to the audience it comes as a surprise: in the world of “King Lear”, the reality of suffering exceeds our worst expectations.


Gloucester’s Blinding

Gloucester’s blinding is foreshadowed from the play’s opening scene. Goneril declares that her father’s love is “dearer than eyesight,” (I.i) a turn of phrase which asks us to think about how terrible it would be to lose the power of sight. Kent underlines the foreshadowing later in the scene when he begs Lear to “let me still be the true blank of thine eye” (I.i). A “blank” is the centre of a target, so Kent’s metaphor invites us to picture a weapon aimed at an eye. Immediately before his blinding, Gloucester himself tells Regan: “I would not see your cruel nails/Pluck out [Lear’s] poor old eyes” (III.vii). The heavy foreshadowing of Gloucester’s blinding underlines the central theme of blindness in “King Lear”.


Ⅶ. 前兆(전조)

“리어王”의 비극적 사건 중 많은 것은 극의 처음부터 전조가 되는데, 이것은 인물들의 고난은 불가피하다는 느낌을 창조하고 Lear 자신은 예상할 수 없는 일(events)을 관중들이 예견할 수 있도록 도와줌에 의하여 행위의 결과에 대한 Lear의 무지(blindness)를 반영하게 된다. 전조되지 않는 사건도 똑같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Cordelia의 죽음은 극의 가장 가공할 사건이지만 관중에게는 그것은 의외의 놀라운 일로 다가온다. “리어王”의 세계에서는 고난의 實狀(실상)은 우리가 예상하는 최악을 능가한다.


Gloucester의 失明(실명)

Gloucester의 실명은 극의 서막에서 전조된다. Goneril은 아버지의 사랑은 “시각보다도 더 귀중하다,”라고 선언하는데(I.i), 이것은 시력을 상실하면 얼마나 가공할 것이냐에 대해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표현방법(turn of phrase)이 된다. Kent는 후에 그가 Lear에게 “제가 폐하의 눈의 중심표적이 되게 하소서.”라고 간청하는 장면에서 그 전조(실명할 것이라는)를 분명히 나타낸다(underline). “blank”는 표적의 복판이다. 그래서 Kent의 隱喩(은유)는 하나의 눈을 조준하고 있는 무기를 상상하도록 한다. 그의 실명 직전에 Gloucester자신이 Regan에게 말한다: “저는 공주님의 잔인한 손톱이 [Lear의] 가련한 늙은 눈알을 뽑아내는 것을 결코 보지 않겠습니다.” Gloucester의 실명에 대한 음산한(heavy) 전조는 “리어王”에 나타나는 실명의 중심적인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27-15-205

Lear’s Downfall

In an instance of especially cruel ironic foreshadowing, Lear predicts the results of dividing his kingdom will bring him peace and happiness, not understanding he is creating the exact opposite effect by making his daughters declare their love. “‘tis our fast intent/ To shake all cares and business from our age/… while we/ Unburdened crawl toward death,” (I.i) he says, in revealing his plans, adding that he’s dividing the kingdom so “that future strife/ May be prevented now.” The early establishment of Lear’s expectations for his actions make the actual outcome ironic, as we are aware of the stark disparity between the serenity he hoped to foster and the havoc he created. Lear’s decision to divide his kingdom incites everything he is trying to prevent – his daughters are divided by strife and all end up dead, and the last days of his life are heavily burdened by care and unhappiness.


Lear의 轉落(전락)

특별히 잔인하고 아이러닉한 前兆(전조)에서, Lear는 딸들로 하여금 그들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선언하게 함으로써 정확히 逆(역)의 효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왕국의 분할의 결과는 그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짐이/ 홀가분한 몸으로(unburdened) 죽음을 향해 갈 동안에/ 이 늙은 몸(our age: royal we)에서 모든 근심과 國事(국사)를 다 털어내는 것이/짐의 단단한 뜻이요”라고 말하고 그의 계획을 밝히는 중에 “미래의 분쟁을/지금 예방하기 위해서.” 왕국을 분단할 것이라고 添言(첨언)한다. 그의 행위에 대한 Lear의 기대가 早期(조기)에 달성되는 것(establishment)은 그가 조성하기(foster)를 희망하였던 평온함과 그가 실제 만들어낸 大파괴 사이의 적나라한 불일치를 우리가 의식함에 따라 실제 나타난 결과를 反語的(반어적)으로 만든다. Lear의 왕국 분단결정은 그가 예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일어나도록 자극한다―그의 딸들은 싸움에 의해서 갈라져서 모두 죽음으로 끝나고 그의 마지막 날들은 근심과 불행으로 무겁게 짐 지워진다.



27-16-206

Lear’s Madness

The Fool tells Lear that “thou wouldst make a good fool” (I.v) and to “take my coxcomb” (I.iv) (a “coxcomb” is the hat worn by a professional fool). These jokes point out that Lear has behaved foolishly in giving his kingdom away, but they also foreshadow that Lear will take the Fool’s place by losing his wits. Lear himself suspects that he might go mad: “O let me not be mad, not mad, sweet heaven!” (I.v), and shortly before his madness begins he foresees it: “I shall go mad” (II.ii). His daughters also suspect he is not well: Goneril says they should look out for “the unruly waywardness that infirm and choleric years bring with them.” (I.i) The foreshadowing of Lear’s madness increases the tension of the scenes in which Lear confronts his daughters. As Lear gets angrier, we anticipate that at any moment he will crack and lose his mind altogether. This foreshadowing also increases our sense of Lear’s vulnerability, which helps us to pity him and to side with him against his daughters.


Lear’s Homelessness

The Fool warns Lear that his decision to give his kingdom to his daughters will end in his being left without a home: “I can tell why a snail has a house…to put’s head in, not to give it away to his daughters” (I.v). Lear himself fails to foresee his homelessness, even though it is foreshadowed in some of his own lines. He advises the banished Kent to gather “Provision/To shield thee from disasters of the world” (I.i), a line which invites the audience to imagine everything that might happen to someone left without a home. The audience learns in the play’s opening scene that Goneril and Regan are plotting against their father—“We must do something, and i’the heat” (I.i)—so we are not surprised when they shut the gates on Lear. The fact that Lear cannot see what Goneril and Regan are going to do, even though the audience can, emphasises Lear’s blindness to the truth about his daughters.


Lear의 발광

광대는 Lear에게 “당신은 훌륭한 광대가 될 거야.” 그래서 “내 광대 모자를 가져.”라고 말한다(“coxcomb”은 전문광대가 쓰는 모자이다). 이런 농담은 Lear가 왕국을 거저 주어버림에 있어서 어리석게 행동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또한 그것들(농담)은 미쳐버림에 의해서 Lear가 Fool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조하고 있다. Lear 자신도 자기가 미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는다: “오, 사랑하는 하늘이여 나를 미치지 않게, 미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의 발광 직전에 그것을 예견한다.: “내가 미칠 거야.” 그의 딸들도 그가 건강하지 않다고 짐작한다: Goneril은 “몸이 약하고(infirm) 성질을 부리는(choleric) 세월이 함께 가져온 걷잡을 수 없는 망령”을 그들이 경계해야 된다고 말한다. Lear의 발광의 전조는 Lear가 딸들과 대결하게 되는 장면의 긴장감을 증가시킨다. Lear가 점점 더 분노하게 됨에 따라 그가 어느 순간에라도 정신이 망가져서 정신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게 된다. 이러한 전조는 또한 Lear의 취약성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증가시키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를 불쌍히 여기게 하고 그의 딸들에 대항해서 그의 편을 들게 한다.


Lear의 집 없음

광대는 Lear에게 왕국을 딸들에게 주려는 그의 결정은 Lear가 집이 없이 남게 되는 결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달팽이가 왜 집을 가지고 있는지는 나는 알지… 딸들에게 그것을 주지 않고 제 머리를 감추려고 그러는 것이지.” Lear 자신은 비록 자신의 臺詞(대사) 몇 군데서 그의 집 없음이 前兆(전조)가 되지만 자신의 집 없게 되는 것을 예견하지 못한다. 그는 추방된 Kent에게 “세상의 재난으로부터 자네를 막아줄 양식을 모아라.”라고 권고하며 이것은 관중들이 집 없이 남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대사이다. 관중은 극의 서막에서 Goneril과 Regan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반역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우리는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도 빨리.”―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Lear에게 문을 닫아버릴 때에 놀라지 않는다. Goneril과 Regan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관중들도 알고 있는 것을 Lear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그의 딸들에 관한 진실에 Lear가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27-17-207 

Ⅷ. Tone

The tone of “King Lear” is bitter and hopeless, reflecting the pessimistic outlook of the play and the relentlessly tragic ending in which innocent characters die needlessly. While there are moments of hope when Lear and Cordelia are reunited at the end and Lear repents of his past mistakes, this hope is not rewarded. Cordelia dies despite Lear’s attempts to save her, and Lear dies essentially of grief. Violence and cruelty are everywhere in “King Lear”, and they are taken for granted by the characters, which creates a tone of resignation to the worst aspects of life. Characters make violent threats against one another: Lear tells Kent that “the bow is drawn, make from the shaft” (I.i). Kent is put in the stocks. Oswald is beaten up twice. The blinding of Gloucester is the most shockingly violent scene in any of Shakespeare’s plays. Violence happens even when the characters try to avoid it: Cordelia dies after Edmund repeals the order to kill her, implying that human attempts to avoid suffering are pointless. Gloucester captures this aspect of the play’s mood: “As flies to wanton boys are we to the gods,/They kill us for their sport.” (IV.i).


After a courtly and dignified opening, the tone of “King Lear” becomes progressively less controlled as the action progresses, underscoring the illusory nature of Lear’s perception of power. Kent begins the play as a senior courtier, giving Lear wise advice. When he returns in disguise from his banishment, Kent hurls insults and makes rude jokes. In the play’s opening scene, Lear’s anger is impressive and regal—“Come not between the dragon and his wrath” (I.i)—but as he begins losing power, Lear’s outbursts become more like desperate tantrums: “I will do such things—/What they are I know not, but they shall be/The terrors of the earth!” (II.ii). While the first half of the play takes place in palaces and noblemen’s homes, the second half of the play takes place in rough settings like a heath, a shack, a tent and the fields near Dover. This shift in tone creates the sense that the dignity and order of the play’s opening scenes is a temporary illusion. The power and authority Lear is desperate to hold onto are essentially meaningless. The one bright aspect of this overwhelmingly bleak play is Cordelia’s enduring love for her father, a natural emotion underscored by the tone’s shift away from civilization toward nature.


Ⅷ. 音調(음조)

“Lear王”의 음조는 극의 비관적인 관점과 아무 잘못도 없는 인물들이 불필요하게 죽는 무자비한 비극적 결말을 반영하면서 비통하고 절망적이다. 극의 끝에 가서 Lear와 Cordelia가 재결합하고 Lear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칠 때에 희망의 순간들이 있는 반면에, 이 희망에는 보답이 없다. Cordelia는 그녀를 구하려는 Lear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죽는다. 그래서 Lear는 근본적으로 슬픔 때문에 죽는다. “Lear王”에는 폭력과 잔인함이 어디에나 있으며 이것들은 인물들에 의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런 현상은 인생의 최악의 樣相(양상)에 대해 체념의 음조를 창출한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폭력적인 위협을 실행한다: Lear는 Kent에게 "활을 굽혀 당겼으니, 쏘는 살(shaft)로부터 피하시오(make)"라고 말한다. Kent는 형틀에 갇힌다. Oswald는 두 번 구타를 당한다. Gloucester의 실명은 Shakespeare의 모든 극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게 폭력적이다. 폭력은 심지어 인물들이 폭력을 피하려고 할 때도 일어난다: Cordelia는 Edmond가 그녀를 죽이라는 명령을 철회한 후에 죽음을 당하는데, 이것은 고난을 피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Gloucester는 극의 분위기의 이런 양상을 捕捉(포착)하고 있다: “神들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파리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인간을 취급하며, 우리를 장난삼아 죽인다.”


우아하고 위엄 있는 시작 후에, “Lear王”의 음조는 행위가 진행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통제가 약화되고 Lear의 권력에 대한 인식의 虛構(허구)적인 성격(nature)을 강조한다. Kent는 Lear에게 현명한 조언을 하며 고위 朝臣(조신)으로 극을 시작한다. 그가 추방에서 변장을 하고 돌아 올 때 Kent는 모욕적인 말을 던지고 야비한 농담을 한다. 극의 서막 장면에서 Lear의 분노는 인상적이고 당당하다―“용과 용의 분노 사이에 들어오지 마라.”―그러나 그가 권력을 상실하기 시작할 때에 Lear의 폭발은 더욱더 절망적인 분노처럼 된다: “나는 이런 일을 하겠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그것들은 세상의 공포가 될 것이다!” 극의 전반부는 왕궁과 귀족의 집에서 일어나지만 극의 후반은 히스 황야와 오두막집과 텐트와 Dover 근처 평야와 같은 거친 장소에서 일어난다. 이런 음조의 변화는 극의 개막장면에서의 위엄과 질서는 일시적인 환상이라는 느낌을 창조한다. Lear가 필사적으로 집착하는 권력과 권위는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이 압도적으로 음울한 극의 한 가지 밝은 면은 Cordelia의 아버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고 이 사랑은 문명세계로부터 자연으로 향하는 음조의 변화에 의해서 강조되는 천부적인 감정이다.

 

출처 : A. C. Bradley, Shakespearean Tragedy
[ 2021-01-06, 09: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