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이 내란선동으로 재판받을 줄 상상이라도 했나!
<조갑제TV 녹취> 권력자의 선동은 폭민(暴民)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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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TV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1년 2월10일 오후 3시 반입니다.

어제부터 미국 상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시작했습니다. 첫째 의제가 내란선동혐의로 탄핵소추된 트럼프에 대한 상원의 탄핵 재판이 과연 미국 헌법에 합치하느냐를 두고 투표가 이뤄졌습니다. 56대44로 ‘합헌이다’ 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 상원 의석분포는 공화당 민주당이 50대50인데 공화당 의원 6명이 합헌에 동조했습니다. 그중에 한 분은 유타주 상원의원 출신 밋 롬니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탄핵심판이 계속 이어지는데 현재로서는 탄핵이 가결되기가 좀 어려운 상황입니다. 공화당 17명 의원이 합세해야됩니다. 그리고 공화당 17명의 이탈이 상당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다만 이번 탄핵심판절차를 통해서 트럼프의 정치생명을 완전히 끊어놓겠다고 하는 것이 민주당의 계산입니다. 


어제도 민주당 측 탄핵소추 위원이 13분 동안 미 의사당 점거 난동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걸 보면 ‘이런 사람을 탄핵하지 않으면 헌법에서 아예 탄핵이라는 조항을 없애버리자’ 하는 이야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낸시 펠로시가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인데 그게 아주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이번에 탄핵이 가결되면 영구적으로 트럼프는 공직에 취임할 수가 없게 되고요, 그래서 2024년 출마는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탄핵이 가결되어야 그 조항이 효과를 봅니다. 만약 부결되면 민주당은 별도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재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내란선동 혐의로 탄핵 소추가 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습니까? 이게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뭐 때문이냐? 바로 선동 때문입니다. 군중 선동, 선동된 국민이 얼마나 민주주의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느냐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겁니다. 이번 미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바로 선동이 정치를 흔들고 있는 한국에 하나의 교과서가 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선동, 그리고 선동된 폭민, 몹(mob)이라고 그러죠? 몹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2300년 전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 플라톤도 ‘폭민 때문에 대중(大衆)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인(哲人) 즉 철학자 같은 엘리트들이 집권해야 한다’ 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 주장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민중의 변덕스러움에 환멸을 느낀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적은 물보다는 큰물에서 오염이 덜 일어난다.’ 이것도 아주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소수의 엘리트가 부패하는 것보다는 다중이 부패하기가 좀 어렵다. 그러니까 참아보자’ 해서 일종의 요사이 말로 하면 중산층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담은 사람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연설을 하면서 첫 문장이 “우리는 민주주의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민주주의가 문제해결에 다소 더디기는 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선이 악을 이긴다고 믿고 민주주의를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취지의 연설을 합니다. 이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철학, 또는 토마스 제퍼슨의 정치 철학과 비슷한데 여기에 전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국민을 제대로 교육해서 폭민이 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 국민이 선동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된다 이거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선동가로 나타나니까 미국 정치가 흔들려버리고 미국 국민이 상당수가 폭민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2400년 전 플라톤이 고민했던 그 사건이 바로 미국에서 일어날 줄이야 누군들 상상했겠습니까? 그만큼 선동, 특히 권력자에 의한 선동이 얼마나 위험하느냐? 권력자에 의한 선동이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이른바 SNS를 탈 때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다고 평가되어있는 미국사람들의 30%가 ‘지난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라고 속아 넘어갔습니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60~70%가 아직도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완전히 속은 거죠. 


이렇게 되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단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한국과 다른 게 있습니다. 한국은 선동에 의해서 정권이 세 차례 등장했습니다. 아직도 선동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선동을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여깁니다.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기피를 했다는 선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2년에도 똑같은 선동이 김대업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2017년 문재인 정권의 탄생은 탄핵사태 때 있었던 선동과 무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역시 미국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이번 선동을 자체 힘으로 진압했습니다. 한국은 선동을 자체진압한 역사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사태에서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겁니다. 미국은 어떻게 하여 대통령의 선동을 진압할 수 있었느냐는 겁니다. 우선 미국에는 민주당이라는 강력한 야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류언론이 있었습니다. 주류언론이 팩트체킹을 통해서 트럼프의 거짓말을 하나하나 반박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집계에 의하면 트럼프는 4년 동안 3만 건 이상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역시 미국의 건전한 지식인들, 건전한 백인층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거를 통해서 선동을 진압했습니다. 


여기에 거역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었죠. 트럼프는 투표과정에서부터 사전투표, 사전우편투표는 부정선거가 예상된다고 예상해서 그때부터 선동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개표에서 지는 순간부터 ‘부정개표다. 개표기 조작이 있었다’ 하는 선동을 하면서 70여 일간 선거불복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미국에서 이번에 선동이 진압된 큰 힘은 어디서 나왔느냐? 검사, 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이 한국과 다른 점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연방검사들은 부정이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판사들은 트럼프 측에서 제기하는 수십 건의 선거관련 소송을 모조리 기각 또는 패소시켰습니다. 검사, 판사, 기자들, 야당이 결국 진압부대 역할을 했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트럼프는 결국 폭민을 동원했습니다. 폭도를 동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1월6일 바이든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상하원합동회의가 공식적으로 열리고 있을 때 폭도를 선동해서 난입시켜서 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5명이 죽는, 이게 바로 트럼프의 막장 드라마 결정판이 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생생하게 동영상을 통해서 알려짐으로써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네 번째로 탄핵소추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우크라이나 정권에 압박을 해서 바이든 아들을 수사해달라는 행위를 했다 해서 탄핵소추되었다가 나중에 결국 기각되면서 정치생명은 유지했는데, 임기 중에 두 번 탄핵된 유일한 대통령으로 이름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정치는 바이든 등장 이후에 탄핵사태를 통해서 미국의 내란선동을 진압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공정한 선거를 부정한 선거라고 해서 정권교체를 거부하는 것은 후진국 특히 미얀마 같은 데서나 일어나지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가, 한국이 여기서 얻는 교훈은 뭘까요? 선동을 어떻게 하면 진압할 거냐? 그게 바로 미국이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엉뚱하게도 트럼프 편을 들어서 ‘트럼프가 부정선거로 진 게 맞다. 미국에서도 역시 개표부정이 있었다. 그 개표기는 중국 베네수엘라 이런 데서 개입해 개표과정을 조작할 수 있었다’ 하는 황당무계, 혹세무민, 기상천외의 트럼프 측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한국에서도 상당수의 트럼프 지지자들이-트럼프 광신자들이라고 해야 되겠군요- 광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요사이에는 좀 잠잠했지만. 이 사람들이 또 우파를 자칭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선동이 좌익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 좌익의 전유물인 선동을 우파가 따라간다? 이게 바로 괴물과 싸울 때는 괴물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경구를 생각하게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등장한 이후에 대한반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북한인권문제를 제대로 재기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한반도, 북핵문제를 다룰 진용을 짰는데 아주 올스타급입니다. 더이상 바랄 수 없을 환상의 팀을 만들었습니다. 북한인권문제를 특히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팀이 트럼프의 기존 정채과는 완전히 다른 문재인 김정은에 대한 압박 정책을 펼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바이든을 저주했던 이른바 ‘대깨트’라고 불리는 사람들, ‘대깨문’과 비슷한 대깨트라 불리는 사람들. 요사이 좀 창피해서 사회생활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 왜 한국이 이렇게 잘 속는 사람들이 되었느냐에 대해서 우리는 이런 반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승만, 박정희라는 세계적 인물을 배출한 한국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이재명, 문재인과 같은 인물을 (경기도)지사로 뽑고 대통령으로 뽑았느냐, 그러면 문재인 씨가 말하는 구시대의 국민들이 훨씬 더 영민하지 않았느냐 하는 화두를 던지게 됩니다.


토마스 칼라일이 말했던 바 “가난을 이기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도 안된다” 풍요를 즐기게 되니까 분별력이 약해졌다 하는 역사의 교훈을 확인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사람들이 왜 이렇게 잘 속게 되었느냐,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이 아니라는 사람이 지금도 아마 30%가 될 것 같은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아니라고 하는 사람, 즉 학력이 높을수록 잘 속고, 학력이 낮을수록 오히려 덜 속는 이런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냐? 저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전쟁의 경험, 전후의 그 어려운 기억을 이제 갖지 못한 세대에서는 자주국방 의지를 포기했습니다. 자주국방 의지를 포기한 국민이 못할 짓은 없습니다. 자기의 생존을 미국에 맡겨놓고 오로지 잘먹고 잘사는 데만 전념하는 그런 국민은 수치심을 모르게 됩니다. 적과 동지를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한자 포기입니다. 한자를 지난 40년 동안 포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분별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국어는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한국어 70%는 암호화되고 말았습니다. 암호 생활을 하게 되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고 애매모호한 정보, 추측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개가 결합이 되니까 분별력이 흔들려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재명, 문재인을 탄생시킨 겁니다. 우리 국민들도 선동가가 나타나면, 특히 정권이 선동하기 시작하면 정권이 선동가로 돌변해버리면 미국과 같은 일이 벌어질 텐데, 미국에서는 30%가 선동에 넘어 갔지만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선동가로 돌변하면 30%가 아니라 40%, 50%가 속게 된다. 여기에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아주 달콤한 아편을 섞어버리면 70%도 될 수 있다.


플라톤이 고민했던 폭민, 폭도화된 이 선동정치의 악몽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어떻게 우리 국민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냐 하는 것은 엄청난 문제인데 아까 제가 지적했던 두 가지 자주국방 포기문제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 교육으로는 안 될 겁니다. 어마어마한 안보 상황의 위기가 터져 가지고 죽느냐 사느냐 경지에까지 몰려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 한자 포기 문제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느냐, 이걸 바로잡는 데 한 100년 걸린다 보고 지금부터라도 어린아이부터 한자교육을 제대로 하고 신문사에 전화해서 “제발 고유명사 정도는, 지명과 인명은 한자를 써주세요”라고 호소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감사합니다.

[ 2021-02-10, 16: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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