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의 효시(嚆矢)…‘눈물로 된 이 세상이/나 죽으면 고만일까’
동초(垌岧) 김장실의 트로트 이야기(4)사(死)의 찬미(윤심덕 작사, 이바노비치 작곡, 윤심덕 노래,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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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평양 출신인 윤심덕(尹心悳)은 경성여고보를 졸업한 후 원주에서 소학교 교원을 한 후 관비(官費)유학생으로 일본 우에노 음악학교 성악과에서 공부하였다. 1923년 6월 귀국하여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진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였다. 그녀는 각종 음악회, 토월회 등 연극단체의 주역 배우로 인기를 끌었으나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생계를 위해 세미클래식은 물론 대중가요도 불렀다.
  
  1921년 동우회 등 순회악극단에 윤심덕이 참여하면서 친교를 맺게 된 김우진(金祐鎭)은 1887년 전남 장성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쌀 2만 섬에 녹두 800 섬을 거두며 100칸 규모의 대저택에 사는 부잣집 아들인 김우진은 집안의 중매로 다른 여성과 일찍 결혼하여 1남 1녀를 둔 유부남이었다. 그는 1920년에 극예술협회를 조직하고, 1921년 동우회 순회연극단을 조직하여 순회공연을 하였다. 아울러 48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 편의 평론을 쓴 상당히 역량 있는 문화예술인이었다.
  
  동갑내기인데다 1918년 같은 해에 동경 유학을 떠난 그들은 윤심덕이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기 위해 부호 이용문과 만난 것이 스캔들이 되어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자 김우진이 도움을 주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1926년 7월 그녀는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여동생 윤성덕과 함께 일본 오사카의 닛교레코드에 음반 취입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릿교레코드사와 약속한 음반을 모두 취입하고 난 후 8월 1일 윤심덕은 요시프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곡에 자신이 한글로 번안한 <사(死)의 찬미(讚美)>라는 노래를 취입하고 싶다고 음반사 사장에게 요청하였다. 동생 윤심덕의 반주로 허무한 인생사를 그린 윤심덕의 이 노래를 들은 녹음실 사람들이 울었다고 한다.
  
  한편 윤심덕은 도쿄에 있는 김우진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전보를 보냈다. 만약 그가 오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내용도 그녀는 그 전보에 덧붙였다. 동생 윤성덕은 미국을 가기 위해 요코하마로 가고, 그렇게 만난 그들은 동년 8월 3일 오후 11시에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김수산, 윤수선 등 가명으로 부산행 여객선 도쿠주마루 1등실에 승선하였다. 그리고 8월 4일 새벽 4시경 쓰시마섬을 지나던 중 현해탄의 차가운 물에 몸을 날려 정사(情死)를 하였다. 그들이 사라진 배에는 윤심덕은 현금 140원을, 김우진은 현금 20원과 금시계, 그리고 본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유품으로 남겼다.
  
  동아일보는 동년 8월 5일 자 “현해탄의 격랑 속에 청춘남녀의 정사-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윤심덕”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사회면 3면의 반을 할애하여 크게 보도하였다. 또한 8월 6일부터 4회에 걸쳐 ‘김윤(金尹) 양인 정사하기까지’라는 기획물을 연재하였다. 조선일보도 8월 7일부터 ‘악단의 여왕 윤심덕의 반생(半生)’이라는 타이틀로 5회에 걸쳐 보도하였다. 주요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이들의 정사는 물론 윤심덕이 부른 노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갔다.
  
  이 시절은 일제의 가혹한 통치로 인한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 아래서 좌절, 실의 등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잠재된 허무주의적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1920년대와 30년대는 소위 양풍(洋風)을 추구하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중심으로 서구에서 유행하던 자유연애사상 혹은 낭만적 사랑을 적극 받아들인 유부남과 처녀 커플이 제법 생기고 있었다. 부유층 출신에 고등교육을 받은 남자는 부모의 뜻에 따라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과 일찍 결혼했으나 그 결혼생활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와 만나 동거를 하거나 결혼을 하면 불륜으로 비난을 받으며, 그들의 연인관계는 불행하게 끝났다. 우리는 일본 미술전문학교 출신 화가 나혜석(羅蕙錫)과 천도교 교령 최린(崔麟)의 파탄에 직면한 사랑, 일본인과 사랑을 한 김일엽(金一葉)의 수덕사 출가 등에서 그 일탈된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당시 대중은 이렇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정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언론의 대대적 보도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윤심덕의 정사사건이 나온 이후 <사의 찬미>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謳歌)하였다. 이 노래를 담은 레코드가 무려 10만 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노래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한국 대중가요의 효시(嚆矢)로도 여겨지기도 한다.
  
  그 이후에도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윤심덕과 그녀의 노래 <사의 찬미>에 대해 꾸준하게 관심을 보여 왔다. 1991년 김호선 감독이 장미희, 임성민, 이경영 등을 캐스팅하여 영화로 만들었고, 이 영화는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13년에는 네오프로덕션에서 뮤지컬로도 만들었으며, 2018년에는 SBS가 신혜선, 이종석, 이지훈 등을 출연시켜 드라마 3부작으로 제작한 바 있다.
  
  <사의 찬미>
  황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건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건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건 허무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85U_kfB984
[ 2021-02-18, 09: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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