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시절 통학길과 어머니의 추억을 엮은 ‘추석 애창곡’ 1위
김장실의 트로트 이야기(6)고향역(임종수 작사·작곡, 나훈아 노래, 1972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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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사회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하는 본격적인 근대화 작업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 첫 번째 현상이 이촌향도(離村向都)였다. 그 당시 먹고 살기 힘든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기회의 땅이라 생각되는 도시를 향해 엄청나게 이동하였다. 1958년 우리나라 도시 인구는 전체 인구의 26%에 불과했으나 1968년에는 41.7%, 1978년에는 63.4%나 되어 아주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성공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이렇게 대규모로 도시로 온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다시 말해 계층상승 이동을 하여 지위의 상향적 변화가 주는 성취감과 자기 만족감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도시는 별다른 자격이나 실력이 없더라도 어떻게 잘 풀리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온 사람들이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더구나 도시에서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모두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급격한 변화의 물줄기를 운(運) 좋게 혹은 현명하게 잘 탄 사람들은 성공했으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공장근로자, 버스차장, 식모 등으로 일하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좌절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돈을 좀더 쉽게 잘 번다는 주변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약취(掠取)나 유인 등의 사슬에 넘어가 술집 등 유흥가로 빠지는 수가 종종 있었다.
  
  도시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노점, 행상, 영세사업자 등 도시빈민 혹은 주변부 노동자로 살아가야 했다. 그들은 화장실과 수도 등 생활편의 시설이 되어 있지 않는 무허가 불량주택에서 늘 철거 위협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다. 더구나 영양공급이 불충분한 음식을 먹으며 건강상태가 좋지 않는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즈음에 문학계는 이처럼 도시빈민과 주변부 노동자의 힘든 삶을 조명한 문학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황석영의 <객지>,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등이 이 시대 도시 주변부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험난한 삶의 여정을 묘사한 문학작품이다.
  
  도시의 삶이 이처럼 힘들지만 명절이 되면 농촌 출신들은 대체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 고향을 간다. 그러나 그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지가 좋지 못한 사람들은 자격지심 때문에 고향을 가지 못한다. 이럴 땐 차가운 자취방에서 술이나 먹고, TV를 보면서 어릴 적 뛰놀았던 고향의 행복한 추억을 상상하면서 홀로 눈물을 짓는 것이 보통이다.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발이 10년이 지나 경제기적이 일어났다고 국내외적으로 칭찬이 자자하던 시절인 1970년대 초반 그런 성공열차에 동승하지 못한 도시에 온 시골 출신들이 오로지 상상 속에서 아름답게 그리는 고향 노래가 많이 나왔다. 남상규의 <고향의 강>,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과 <고향역>, 김상진의 <고향 아줌마>와 <고향이 좋아>가 그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이런 노래들 중에서 나훈아의 <고향역>은 가장 폭넓게 인기를 누린 곡이다.
  
  전북 순창 출신의 작곡가 임종수는 처음 가수로 출발했으나 곧 정리하고 작곡가로 전환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히트를 하려면 일류가수인 나훈아에게 곡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오아시스레코드 사장실 앞에서 3개월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1970년 3월 어렵게 <차장에 어린 모습>과 <그 사람을 버린 죄> 2곡을 주었다. 그러나 타이틀곡이 아니어서 히트도 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지나친 비탄조로 방송불가 판정까지 받았다. 1972년 12월 나훈아는 임종수 작곡가에게 <차장에 어린 모습>의 곡이 너무 좋다며, 가사를 건전하게 고치고, 리듬도 고고트로트로 바꾸어주면 재취입하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고심 끝에 그는 익산군 황등역에서 이리역으로 통학하면서 이리 남성중을 다닐 때 본 기차길 옆의 코스모스 풍경과 고향에 계신 어머님 생각 등 연관된 추억을 소환하여 제목을 <고향역>으로 빠꾸고 가사를 전면 개편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972년 2월 오아시스레코드사는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을 이번에도 타이틀곡이 아닌 세 번째 곡으로 출시했으나 대중의 반응은 별로였다. 그 와중에 나훈아가 지구레코드사로 이적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가장 잘 나가는 인기가수를 라이벌 회사에 뺏기는 바람에 크게 위기의식을 느낀 오아시스레코드사는 방송국 PD들에게 나훈아 앨범 중 타이틀곡이 아니 것 중 베스트 10을 선정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조사에서 <고향역>이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하여 레코드를 발매하였는데 1972년 9월 추석 무렵부터 엄청나게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 나훈아는 이 노래로 1972년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었고, 그 이후에도 인기는 여전하다. 이 곡은 추석 명절을 전후하여 국민이 부르는 애창곡 1위에 항상 오르고 있다.
  
  작곡가 임종수는 이 노래를 시발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대동강 편지>, <옥경이>, <부초>, <남자라는 이유로> 등 여러 인기곡을 만든 역량 있는 음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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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역>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 주겠지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 잡고 고개마루 넘어서 갈 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 2021-02-22, 09: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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