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조’의 저음(低音)으로 인기 끌어…박정희 前 대통령의 애창곡
김장실의 트로트 이야기(7)짝사랑(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 노래, 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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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합방 이후 20년이 지난 1930년대가 되면 이미 광복의 희망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일제(日帝)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만주국을 세운 이후 1937년 중국 본토까지 쳐들어가면서 한반도는 중국 침략을 위한 보급기지로 전락하였다.
  
  1936년부터 일제는 조선 사람에 대한 사상통제를 더욱 강화하여 1938년에는 무려 12만 명이나 체포하였다. 또한 창씨개명과 일본말 사용을 의무회하는 한편 가재도구를 헌납하고, 지역단위 보국대 가입을 강제하였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키 크고 마음씨 좋은 고복수는 1934년 <타향살이>를 시발로 1935년 <사막의 한>을 히트시켜 이난영과 함께 오케레코드사의 달러 박스로 부상(浮上)하였다. 이런 인기가도를 달리던 그는 1937년 1월 박영호가 작사하고 손목인이 작곡한 <짝사랑>을 발표하여 이름을 더욱 날리게 되었다. 이 노래는 ‘흐느끼듯 나직하게 내는 탄식조’의 저음(低音)이 특기인 고복수의 노래 중 가장 구슬픈 곡으로 식민 지배를 받는 조선 사람들의 한(恨)을 잘 대변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일제의 강압통치에 신음하는 조선 사람들의 한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이 노래의 가사가 더욱 듣는 이의 비감(悲感)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 노래 도입부에 등장하는 으악새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가요 연구가들 사이에 약간의 설왕설래가 있다. 어떤 이는 가을 들녘이나 산중턱에 피는 억새풀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으악새 군락(群落)이 바람을 맞으며 내는 소리를 마치 식민상태에 있는 조선인의 아우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으악새 혹은 악새는 박영호의 고향 원산 등 관서지방에서 사용하는 방언으로 왜가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시대 우리 나라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작사가인 박영호는 으악새, 뜸북새, 조각달, 들국화, 가을 단풍 등 우리 주변의 자연 소재들을 이용하여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정감(情感)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가사에 등장하는 이즈러진 조각달, 임자 없는 들국화, 서리 맞은 짝사랑은 식민통치 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비참한 신세를 상징하고 있다. 아울러 출렁출렁, 살랑살랑과 같은 말은 일제에 의해 억눌러진 우리 민족의 혼이 깨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돌아가신 박정희 전(前) 대통령이 이 노래를 아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요한 국사(國事)를 결단할 때 참모들과 고뇌하면서 술잔을 기울이곤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인기 정상의 위치에 오른 고복수가 만주와 조선, 일본 등에서 순회공연을 할 때 가사를 적은 메모지를 보며, 긴 팔을 관객 방향으로 내뻗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런 고복수의 가창 모습에 매료된 여성 팬들의 환호가 대단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숙소나 공연장에는 그를 만나보려는 기생들이 보낸 인력거가 항상 10여 대씩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는 3년의 열애 끝에 1939년 가수 황금심과 결혼하였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두 사람은 반도악극좌에서 활동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비극의 여왕 전옥이 만든 백조가극단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 노래를 작사한 박영호는 원산 출신으로 조명암과 함께 일제시대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작사가이다. 처녀림, 김다인의 필명을 사용하는 그는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초까지 조선연극사, 연극시장, 황금좌 등에서 극작가로 활동하였다. 태평레코드 문예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1932년부터 대중가요 가사를 쓰기 시작하여 <번지 없는 주막>, <짝사랑>, <낙화유수>, <오빠는 풍각쟁이>, <꿈꾸는 백마강>, <망향초 사랑>, <연락선은 떠난다> 등 여러 인기곡을 작사하였다.
  
  작곡가 손목인은 1913년 경남 진주 출신으로 본명은 손득렬이다. 중동학교와 도쿄고등음악학교를 다닌 그는 <목포의 눈물>, <타향살이>, <짝사랑>, <사막의 한>, <해조곡>, <바다의 교향시>, <아빠의 청춘>, <모녀기타> 등을 만든 인기 작곡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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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사랑>
  
  1.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2.
  아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잃어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 있는 임자 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맴을 돕니다.
  
  
  
  
[ 2021-02-23, 10: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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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산     2021-02-23 오전 11:58
저 가사만으로도 사람이 센치해 집니다
어떻게 가을을 저리 서럽도록 표현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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