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 쏟아지던 날의 법정 풍경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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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경보가 있고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변호하러 갔다가 후덥지근한 법정에서 본 광경이다. 사이비 언론으로 고발된 기자가 재판을 받고 있었다.
  
  “저는 사회의 목탁의 사명을 받고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공익을 위해 진실을 보도해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판사가 되물었다.
  “그러시면 왜 촌지를 받고 다니고 광고를 강요하고 다니고 했습니까? 그건 어떤 사명이었고 어떤 공익이었습니까?”
  
  재판을 받는 그는 판사의 질문을 피해 언론의 사명을 녹음테이프를 틀어놓듯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들어가고 다음에는 민주화 투사라는 사람이 재판을 받으러 나왔다. 방청석에는 어느새 그를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이 이십여 명 몰려와 기세를 높이고 있었다.
  
  “저는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 말에 판사가 되물었다.
  “민주법치국가에서 민중의 생존권은 꼭 그렇게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어야 하는 건가요?”
  
  “민주국가는 다른 의견도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입니다. 저는 폭력 혁명밖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그는 몇권의 공산주의 서적에서 읽은 전문용어를 앵무새 같이 달달 외웠다.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졌고 그의 눈빛은 영웅 같았다. 다음 재판을 받을 피고인이 나왔다. 머리가 철사줄 같이 빳빳하게 치솟은 남자였다. 판사가 그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반성문을 그만 좀 써내세요. 어떻게 된 게 매일 하나씩이야?”
  판사가 짜증이 섞인 어조로 내뱉었다. 순간 그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고쳤다.
  
  “제가 말하는 뜻은 판사가 수백 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그 기록을 읽는데 피고인이 보낸 반성문만 읽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연도 읽어야 하는데 허구헌날 써서 올리니 그러는 겁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기록과 편지가 수복한 판사의 책상이 떠올랐다. 다음은 변호사석에서 법정 풍경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던 나의 차례였다. 노숙자 센터의 목사가 무료변호를 부탁한 간단한 절도 사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도둑질하는 습관이 뼈까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양심의 가책 없이 남의 물건을 가져간 것 같았다. 만원을 훔쳤다고 징역을 몇 달 살기도 했다. 오만 원을 훔치고 징역 일년을 살기도 했다. 남의 주민등록증을 슬쩍 가지고 가서 육개월 구치소에 있기도 했다. 그렇게 조각조각 징역형을 산 게 이십 년이 넘었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훔친 금액은 전부해서 백만 원 정도였다. 그녀는 파출부로 나가 일하면서 한달에 그 이상의 돈을 벌었다. 교회에 헌금도 몇백만 원씩 했다. 그런데도 좀도둑질은 계속되고 또 현장에서 계속 걸려들고 있었다. 불쌍한 인생이었다. 변호할 게 별로 없었다. 그 비슷한 도둑질을 해서 삼십 년이 넘게 감옥에 있던 한 절도범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바깥 세상보다 감옥 안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용하지, 때가 되면 밥을 주지, 운동시간이 되면 운동하지, 골치아픈 세상보다 난 감옥이 훨씬 편하다니까.”
  
  오랫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보아온 법정 풍경이었다. 영혼이 죽어버린 듯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이따금 성경 속의 몇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탈출시켜 광야로 이끈 하나님은 그들을 거의 다 죽여 버렸다. 불평불만하고 덤비고 다른 짓을 하는 그들을 용납하기 힘드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덮어 모든 존재를 죽여버리기도 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이라고 하지 않고 살덩어리라고 표현을 하기도 했다. 소돔과 고모라도 불바다를 만들어 버렸다.
  
  법정만 아니라 이 도시가 영혼이 없는 좀비들로 꽉 차 가는 느낌이다. 음란하고 서로 고발하고 삿대질하고 자신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증오의 정치적 구호들을 공간에 쏟아내고 있다. 어떤 때는 그런 인간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하나님이 코로나라는 병균의 홍수를 일으키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패악한 인간들로 가득차면 그 다음은 어떤 불벼락을 준비하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님의 영(靈)이 홍수같이 쏟아져 인간의 영혼 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을 구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 2021-02-26, 14: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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