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배회하는 때늦은 공산주의 붉은 악령
반공자유-교양영어(35): ‘Intellectuals’: Karl Marks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해설: Karl Marks의 악령이 배회하고 있다!

 

Marx는 간단히 말해서 종말론의 작가였다. 종말론적 개념은 항상 Marx의 마음속에 있었고 정치경제학자로서 그는 요한계시록 최후의 심판에서처럼 자본주의가 하늘의 징벌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하였다. 이런 예언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자료에 의하지 않고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열망과 詩的(시적)인 상상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자본론”은 사실의 검증과 과학적 추론의 결과가 아니고 순전히 마르크스 자신의 비뚤어진 예언의 산물이다.


Marx는 (1) 강력한 자본가의 수가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2) 이에 상응하여 빈곤과 압제와 노예화와 퇴락과 착취의 양의 증가와 (3) 노동자 계급의 분노의 지속적인 강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3개의 힘은 함께 작용하면서 종말론적 대재앙의 정치-경제적 파탄을 가져올 것이다. 생산수단의 집중화와 노동의 사회화는 필연적으로 그들을 싸고 있는 자본주의 껍질과는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껍질은 폭발하여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자본주의 사유재산권의 弔鐘(조종)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재산을 착취하는 자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게 된다. 부르주아계급을 소멸시키는 혁명이 올 것이다. 혁명은 인류의 완전한 재생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회가 해체되고 프롤레타리아가 탄생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역사가 없으며, 역사의 법칙에 굴종하지도 않고 궁극적으로는 역사를 종식시키는 재생의 세력이라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메시아가 되고 구세주가 될 것이다. 이것은 피를 끓게 하는 종말론적 예언이고 사회주의 열광자들의 혼을 미치게 하는 것이고, 자본주의의 사망과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믿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환상을 주었다. Marx는 추론하고 계산하기 보다는 환상과 직관으로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하였다는 점에서 점성가이고 악령 들린 시인이었다고 하겠다.


Marx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 유령(the specter of Communist)이 전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머지않아서 유럽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豪言(호언)하는 것이었다. 지식인이 엘리트로서 장군이 되고 노동자는 보병을 형성하여 프롤레타리아 천국을 향해 진군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난 100년 동안 공산주의 악령은 1억 이상의 인민을 인민의 이름으로 학살하였다. 많은 나라를 지옥의 집단수용소로 만들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때늦게 공산주의 붉은 악령이 방방곡곡에서 배회하고 있다.

 



35. ‘Intellectuals’: Karl Marks

Karl Marks: ‘Howling Gigantic Curses’


35-1-293

p.55

Marx, in short, is an eschatological writer from the start. It is notable, for instance, that in the original draft of The German Ideology (1845-46) he included a passage strongly reminiscent of his poems, dealing with 'the Day of Judgement', 'when the reflections of burning cities are seen in the heavens . . . and when the "celestial harmonies" consist of the melodies of the Marseillaise and the Carmagnole, to the accompaniment of thundering cannon, while the guillotine beats time and the inflamed masses scream Ca ira, ca ira, and self-consciousness is hanged on the lamppost.' Then again, there are echoes of Oulanen in the Communist Manifesto, with the proletariat taking on the hero's mantle. The apocalyptic note of the poems again erupts in his horror-speech of 14 April 1856: 'History is the judge, its executioner the proletariat' ―the terror, the houses marked with the red cross, catastrophic metaphors, earthquakes, lava boiling up as the earth's crust cracks. The point is that Marx's concept of a Doomsday, whether in its lurid version or its eventually economic one, is an artistic not a scientific vision. It was always in Marx's mind, and as a political economist he worked backwards from it, seeking the evidence that made it inevitable, rather than forward to it, from objectively examined data. And of course it is the poetic element which gives Marx's historical projection its drama and its fascination to radical readers, who want to believe that the death and judgement of capitalism is coming. The poetic gift manifests itself intermittently in Marx's pages, producing some memorable passages. In the sense that he intuited rather than reasoned or calculated, Marx remained a poet to the end. 


35. “지식인”: 카를 마르크스

Karl Marks: ‘악을 쓰는 거대한 저주들’ by 폴 존슨


Marx는 간단히 말해서 애초부터 종말론의 작가였다. 예를 들어서, 그는 ‘독일 관념론’의 原(원)초본에서 ‘최후의 심판’을 다루고 있는 그의 詩(시)를 강하게 상기시키는 구절을 포함시켰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때는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면 ) 불타는 도시들의 불빛(reflections)이 하늘에서 보여질 것이고… 그리고 그때는 단두대가 박자를 맞추고 불같이 흥분한 군중들이 Ca ira, ca ira(프랑스 혁명가 후렴)라고 함성을 지르고 자의식(self-consciousness)을 가로등 위에 걸어 놓을 (전체 속에 자신의 생각은 완전히 버린 채) 동안에 천둥 같은 대포 소리에 맞추며 “천상의 화음”은 Marseillaise(프랑스 국가)와 Carmagnole(프랑스 혁명가)로 편성될 것이다.’ 그 다음에 다시 <공산당 선언>에도 프롤레타리아가 영웅의 망토를 걸치고 있는 Oulanen(Marx가 쓴 드라마)의 反響(반향)이 있다. 그의 詩의 啓示錄(계시록; apocalyptic)적 곡조는 1856년 4월14일의 그의 공포의 연설에서도 다시 분출해 나온다: ‘역사는 심판관이다, 그리고 역사의 집행자는 프롤레타리아이다.’―공포, 붉은 십자가로 표시된 집들, 파멸적인 隱喩(은유), 지진, 지구의 껍질이 깨어질 때 끓어오르는 용암. Marx의 최후심판일 개념은 그것이 불타듯이 붉은 버전(요한계시록 그대로)이든 아니면 경제적 버전이든 예술적 비전이지 과학적 비전은 아니라는 것이 요점이다. 그 개념은 항상 Marx의 마음속에 있었고 정치경제학자로서 그는 그것(최후의 심판에서처럼 자본주의가 하늘의 징벌을 받는 것)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증거를 찾으면서 객관적으로 검증된 자료에 의하여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뒤로 가면서 일을 하였다. <그가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검증하면서 자본주의 멸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더라면 그는 자본주의 최후심판의 이념이 오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Marx의 역사에 대한 예측(projection)에 드라마를 주고 자본주의의 사망과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믿기를 바라는 독자에게 환상을 주는 것은 바로 그것(자본주의 종말론)의 詩的(시적) 요소이다. 詩的 재능은 Marx의 글에 간헐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몇몇 기억할만한 語句(어구)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推論(추론)하고 계산하기 보다는 직관을 하였다는 점에서 Marx는 죽을 때까지 시인으로 남아 있었다.



35-2-294

p.58

Thus far Marx's explanation of what was wrong with the world was a combination of student­cafe anti­Semitism and Rousseau. He broadened it into his mature philosophy over the next three years,1844-46, during which he decided that the evil element in society, the agents of the usurious money­power from which he revolted, were not just the Jews but the bourgeois class as a whole. To do this he made elaborate use of Hegel's dialectic. On the one hand, there was the money­power, wealth, capital, the instrument of the bourgeois class. On the other, there was the new redemptive force, the proletariat. The argument is expressed in strict Hegelian terms, using all the considerable resources of German philosophical jargon at its academic worst, though the underlying impulse is clearly moral and the ultimate vision (the apocalyptic crisis) is still poetic. Thus: the revolution is coming, which in Germany will be philosophic: 'A sphere which cannot emancipate itself without emancipating itself from all the other spheres, which is in short a total loss of humanity capable of redeeming itself only by a total redemption of humanity. This dissolution of society, as a particular class, is the proletariat. ' What Marx seems to be saying is that the proletariat, the class which is not a class, the dissolvent of class and classes, is a redemptive force which has no history, is not subject to historical laws and ultimately ends history - in itself, curiously enough, a very Jewish concept, the proletariat being the Messiah or redeemer. The revolution consists of two elements: 'the head of the emancipation is philosophy, its heart is the proletariat.' Thus the intellectuals would form the elite, the generals, the workers the foot-soldiers.


지금까지 세상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Marx의 설명(해답)은 학생카페에서 떠도는 반유대주의와 Rousseau의 결합이었다. 그 다음 1844~1846 3년간 그는 반유대주의를 성숙한 철학으로 확대하였으며 그 기간동안 그는 사회의 사악한 요소 즉 그가 반발한, 高利(고리)의 이자를 받는(usurious: 고리대금업의) 金權(금권)의 행위자들(agents)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부르주아계급이라고 판정하였다. 이것을 하기 위하여 그는 Hegel의 변증법을 정교하게 이용하였다. 한쪽 편에는 금권과 재산과 부르주아계급의 도구인 자본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새로운 구원의 (redemptive: 속죄하는, 구원의, 재생의) 세력인 프롤레타리아가 있었다. 비록 기저에 있는 마음의 충동은 분명히 도덕적이고 궁극적 비전(종말론적 위기)은 여전히 詩的이지만, 독일철학의 학문적 隱語(은어:jargon)의 상당한 자원을 학문적 최악의 상태로 이용하면서 그 주장은 엄격한 Hegel적 입장에서 표현된다. 그래서: 혁명이 오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철학적이 될 것이다:‘다른 천체로부터 자신을 해방하지 않고는 자신을 해방할 수 없는 천체,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인류의 완전한 재생에 의해서만이 자신을 재생할 수 있는 인류의 전체적 사망’이라는 것이다. 이 사회의 분해가 특별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이다. Marx가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계급이 아니고 계급과 계급들을 녹이는 溶劑(용제)인 프롤레타리아는 역사가 없으며, 역사의 법칙에 굴종하지도 않고 궁극적으로는 역사를 종식시키는 재생의 세력이라는 것이다―그 자체로서는, 매우 기묘하게도(curiously), 프롤레타리아가 메시아가 되고 구세주가 되기 때문에 매우 유대교적인 개념이다. 혁명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해방의 머리는 철학이고 해방의 심장은 프롤레타리아다.’ 이렇게 해서 지식인들은 엘리트로서 장군이 되고 노동자는 보병을 형성할 것이다.



35-3-295

p.62-63

Marx, then, was unwilling either to investigate working conditions in industry himself or to learn from intelligent working men who had experienced them. Why should he? In all essentials, using the Hegelian dialectic, he had reached his conclusions about the fate of humanity by the late 1840s. All that remained was to find the facts to substantiate them, and these could be garnered from newspaper reports, government blue books and evidence collected by earlier writers, and all this material could be found in libraries. Why look further? The problem, as it appeared to Marx, was to find the right kind of facts: the facts that fitted. His method has been well summarized by the philosopher Karl Jaspers:


The style of Marx's writings is not that of the investigator. . . he does not quote examples or adduce facts which run counter to his own theory but only those which clearly support or confirm that which he considers the ultimate truth. The whole approach is one of vindication, not investigation, but it is a vindication of something proclaimed as the perfect truth with the conviction not of the scientist but of the believer.


In this sense, then, the 'facts' are not central to Marx's work; they are ancillary, buttressing conclusions already reached independently of them. Capital, the monument around which his life as a scholar revolved, should be seen, then, not as a scientific investigation of the nature of philosophy, a tract comparable to those of Carlyle or Ruskin. It is a huge and often incoherent sermon, an attack on the industrial process and the principle of ownership by a man who had conceived a powerful but essential irrational hatred for them.


그때 Marx는 산업에 있어서 노동조건을 자신이 직접 조사하거나 그런 노동조건을 경험한 똑똑한 노동자들로부터 배울 뜻이 없었다. 그가 왜 그렇게 해야 하나? 모든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 Hegel의 변증법을 이용하여 1840년대 말경에 그는 이미 인류의 운명에 관해서 결론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모두 그 결론을 구체화할 사실들을 발견하는 것이었고, 이 사실들은 신문보도와 정부보고서(blue books: 청서)와 이전의 저자들에 의해 수집된 증거로부터 획득될 수 있었으며, 그리고 이 모든 재료는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왜 더이상 찾아볼 것인가? Marx에게도 그렇게 보였던 같은데, 문제는 올바른 종류의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딱 들어맞는 사실(을 찾는 것이었다). 그의 방법은 철학자 Karl Jaspers에 의해서 잘 요약되었다: 


〈Marx의 글 쓰는 방법은 연구자의 방법(that)이 아니었다. …그는 사례를 인용하지 않았고 그의 이론에 반대가 되는 사실은 例證(예증)하지 않고 그가 궁극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분명히 지지하거나 확인하는 사실만 예증하였다. 전체적인 방법(approach)은 옹호이지 조사가 아니었고 그것은 과학자가 아닌 신앙인의 확신을 가지고 완벽한 진리라고 선포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다.〉


게다가(then), 이런 의미에서 ‘사실들’은 Marx의 연구에 중심적이지 않았다; 사실들은 그것들과는 관계없이(independently of) 이미 내린 결론을 떠받쳐주는 부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일생동안 그 주위를 빙빙 돌았던 기념탑인 “Capital”(자본론)은 철학의 본질에 관한 과학적 연구(investigation)로, Carlyle 혹은 Ruskin의 연구(investigation)와 비교할 수 있는 연구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거대하고 가끔 비논리적인 설교이며 산업적 과정(process)과 소유권의 원칙에 대해, 강력하지만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인 증오심을 잉태한, 한 사내의 공격이다.

 


35-4-296

p.63-64

Of Volume One, which was his work, only two chapters really matter, Chapter Eight, 'The Working Day', and Chapter Twenty-Four, towards the end of the second volume, 'Primary Accumulation', which includes the famous Section 7, 'Historical Tendency of Capitalist Accumulation'. This is not a scientific analysis in any sense but a simple prophecy. There will be, Marx says, (1) 'a progressive diminution in the number of the capitalist magnets; (2) 'a corresponding increase in the mass of poverty, oppression, enslavement, degeneration and exploitation'; (3) 'a steady intensification of the wrath of the working class'. These three forces, working together, produce Hegelian crisis, or the politico-economic version of the poetic catastrophe he had imagined as a teenager: 'the centralization of the means of production and the socialization of labour reach a point where they prove incompatible with their capitalist husk. This bursts asunder. The knell of capitalist private property sounds. The expropriators are expropriated.' This is very exciting and has delighted generations of socialist zealots. It has no more claim to be a scientific projection than a astrologer's almanac.


그의 작품인 1권중에서… 8장 ‘일하는 날’과 2권의 끝에 있는, 유명한 7절 ‘자본가 축적의 역사적 경향’이 들어 있는 ‘1차 축적’의 24장, 이 두 장만이 실제로 중요하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과학적 분석이 아니고 단순한 예언이다. Marx는 (1) 강력한 자본가의 수에 있어서 점진적 감소와 (2) 이에 상응하여 빈곤과 압제와 노예화와 퇴락과 착취의 양에 있어서 증가와 (3) ‘노동자 계급의 분노의 지속적인 강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3개의 힘은 함께 작용하면서 Hegel적인 위기 혹은 그가 10대였을 때에 상상하였던 詩的인 대재앙의 정치-경제적 버전이 될 것이다: 생산수단의 집중화와 노동의 사회화는 그들을 싸고 있는 자본주의 껍질과는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껍질은 폭발하여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자본주의 사유재산권의 弔鐘(조종)의 소리가 들린다. 재산을 몰수하는 자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게 된다.’ 이것은 피를 끓이는 것이고 사회주의 열광자들의 세대를 기쁘게 하였다. 그것은 과학적 예언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점성가의 달력이었다.



35-5-297

p.64

Chapter Eight(of Capital), 'The Working Day', does, by contrast, present itself as a factual analysis of the impact of capitalism on the lives of the British Proletariat; indeed it is the only part of Marx's work which actually deals with the workers, the ostensible subjects of his entire philosophy. It is therefore worth examining for its 'scientific' value. Since, as we have already noted, Marx only really looked for facts which fitted his preconceptions, and since this militates against all 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ethod, the chapter has a radical weakness from the start. But did Marx, in addition to a tendentious selection of facts, also misrepresent or falsify them? That we must now consider.


What the chapter seeks to argue, and it is the core of Marx's moral case, is that capitalism by its very nature, involves the progressive and increasing exploitation of the workers; thus the more capital employed, the more the workers will be exploited, and it is the great moral evil which produces the final crisis. In order to justify this thesis scientifically, he has to prove that , (1) bad as conditions in pre-capitalist workshops were, they have become far worse under industrial capitalism; (2) granted the impersonal, implacable nature of capital, exploitation of workers rises to a crescendo in the most highly capitalized industries. Marx does not even attempt to do (1).*


이와 대조적으로 8장 ‘일하는 날’은 영국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자본주의의 강력한 영향(impact)을 사실에 입각해서 분석한 것이다. 진실로 그것은 그의 전체 철학의 표면상의(ostensible)의 주제인 노동자들을 실제로 취급하는 Marx의 작품(work)의 유일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것의 ‘과학적’ 가치를 위해서 검증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이미 주목했던 바와 같이 Marx는 그의 선입견에 적합한 사실만을 찾았고, 이것은 모든 과학적 방법을 저해하는(militates: 방해하다) 것이기 때문에, 그 章(장)은 처음부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Marx는 사실을 편향적으로 선택했을 뿐 아니라 사실을 잘못 전달하거나 조작하였을까? 그 점을 우리는 지금 고려해야 한다.


그 장(8장)이 주장하려고 추구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은 그의 도덕적 내용(case; 물건을 담는 상자)의 핵심이 되는데, 자본주의는 바로 그것의 성격에 의해서 노동자들을 점진적으로 더 많이(increasing) 수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이 더 많이 사용될수록, 노동자들은 수탈을 더 많이 당하게 되고, 그래서 최종적 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런 도덕적 악이다.〈자본주의라는 악이 위기를 생산한다〉 이 명제를 과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는 (1) 자본가 이전의 일터의 근로조건은 열악하였지만 산업자본주의下에서는 훨씬 더 열악하게 되었다는 것; 자본의 비인간적이고 냉혹한(implacable) 본질을 가정한다면(granted=granted that=If it were granted that) 가장 高度(고도)로 자본주의화 된 산업국가에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수탈이 점점 더 상승할 것이라는 것을 (to the crescendo)를 증명해야 한다. Marx는 (1)조차도 증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35-6-298

p.67-68

The truth is, even the most superficial inquiry into Marx's use of evidence forces one to treat with scepticism everything he wrote which relies on factual data. He can never be trusted. The whole of the key Chapter Eight of Capital is a deliberate and systematic falsification to prove a thesis which an objective examination of the facts showed was untenable. His crimes against the truth fall under four heads. First, he uses out­of­date material because up­to­date material does not support his case. Second he selects certain industries, where conditions were particularly bad, as typical of capitalism. This cheat was particularly important to Marx because without it he would not really have had Chapter Eight at all. His thesis was that capitalism produces ever­worsen­ing conditions; the more capital employed, the more badly the workers had to be treated to secure adequate returns. The evidence he quotes at length to justify it comes almost entirely from small, inefficient, under­capitalized firms in archaic industries which in most cases were pre­capitalist - pottery, dressmaking, blacksmiths, baking, matches, wall paper, lace, for instance. In many of the specific cases he cites (e.g., baking) conditions were bad precisely because the firm had not been able to afford to introduce machinery, since it lacked capital. In effect, Marx is dealing with pre-capitalist conditions, and ignoring the truth which stared him in the face: the more capital, the less suffering. Where he does treat a modern highly-capitalized industry, he finds a dearth of evidence; thus, dealing with steel, he has to fall back on interpolated comments ('What cynical frankness!' 'What mealy­mouthed phraseology!'), and with railways he is driven to use yellowing clippings of old accidents ('fresh railway catastrophes'): it was necessary to his thesis that the accident rate per passenger mile travelled should be rising, whereas it was falling dramatically and by the time Capital was published railways were already becoming the safest mode of mass travel in world history.


진실은 Marx의 증거이용에 대한 가장 피상적인 조사(inquiry)만 해도 사실적 자료에 의존해서 그가 집필한 모든 것을 의심을 가지고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믿을 수 없다. ‘자본론’의 핵심인 8장은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만 하면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명제(thesis)를 증명하기 위한 고의적이고 체계적인 捏造(날조)이다. 진실에 反하는 그의 범죄는 4개의 標題(표제)로 분류된다. 첫째 그는 최신의 자료가 그의 論據(논거: case)를 지지해 주지 않기 때문에 시대에 뒤진 자료를 사용한다. 둘째 그는 근로조건이 특별히 열악한 특정 산업을 자본주의의 전형인 것으로 선택한다. 이 속임수는 Marx에게 특별히 중요하였는데 이 속임 수 없이는 8장을 전혀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명제는 자본주의는 항상 악화되는 노동조건을 생산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자본이 더 많이 사용될수록,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더 나쁘게 대우해야 한다. 이 명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가 길게 인용하는 증거는 거의 전적으로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있었던 古風(고풍)의 산업에 속하는, 거의 전적으로 작고 비능률적이고 자본이 충분하지 못한 회사에서 가져왔다-예를 들자면 도자기, 양재(dressmaking), 대장간, 제빵, 성냥, 레이스 (같은 공장이었다). 그가 인용하는 (예를 들어 제빵) 많은 특정한 사례에서는 정확히 말해서 그 회사들이 자본이 부족해서 기계를 도입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근로조건이 열악하였다. 실제로, Marx는 자본주의 이전의 근로조건을 다루고 있고 그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진리를 무시하고 있다: 자본이 많을수록 고통은 더 적다. 그가 현대의 고도록 자본화된 산업을 취급하는 곳에는 그는 증거의 부족을 발견한다: 그래서 철강을 취급할 때는 삽입구 논평에 의존해야 (‘얼마나 냉소적 솔직함인가!’ 얼마나 말주변이 좋은 말씨인가!)하고 철도에 대해서는 그는 케케묵은(yellowing) 철도사고 신문보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is driven to use): 그의 명제를 위해서는 주행 여객거리당 사고비율이 올라가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지만, 반대로 사고율은 극적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자본론”이 출판되었을 즈음에는 철도는 이미 세계 역사상 가장 안전한 형태의 대중여행이 되고 있었다.



35-7-299

p.68-69

Thirdly using reports of the factory inspectorate, Marx quotes examples of bad conditions and ill­treatment of workers as though they were the inevitable norm of the system; in fact these were the responsibility of what the inspectors themselves call 'the fraudulent mill-owner', whom they were appointed to detect and prosecute and who was thus in the process of being eliminated. Fourthly the fact that Marx's main evidence came from this source, the inspectorate, betrays his biggest cheat of all. It was his thesis that capitalism was, by its nature, incorrigible and, further, that in the miseries it inflicted on the workers, the bourgeois State was its associate since the State, he wrote, 'is an executive committee for managing the affairs of the governing class as a whole'. But if that were true Parliament would never have passed the Factory Acts, nor the State enforced them. Virtually all Marx's facts, selectively deployed (and sometimes falsified) as they were, came from the efforts of the State (inspectors, courts, Justices of the Peace) to improve conditions, which necessarily involved exposing and punishing those responsible for bad ones. If the system had not been in the process of reforming itself, which by Marx's reasoning was impossible, Capital could not have been written. As he was unwilling to do any on­the­spot investigating himself, he was forced to rely precisely on the evidence of those, whom he designated 'the governing class', who were trying to put things right and to an increasing extent succeeding. Thus Marx had to distort his main source of evidence, or abandon his thesis. The book was, and is, structurally dishonest. 


셋째 공장 감사관들의 보고서를 이용하면서, Marx는 열악한 근로조건과 노동자 학대에 대한 사례들을 그것들이 마치 제도(자본주의)의 불가피한 일반수준(norm)인 것처럼 인용하였다. 사실은 이것들은 감사관들이 스스로 지칭한 ‘사기꾼 공장주’의 책임이었으며 이런 공장주를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 감사관들이 임명되었었고, 그래서 이런 악덕 업주는 제거되고 있는 과정에 있었다. 넷째, Marx의 중요한 증거는 이 원천 즉 감사관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그의 가장 큰 속임수를 폭로(betray:배반하다, 누설하다)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교정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비참함에 있어서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주의(its)의 친구라는 것이 그의 명제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지배계급의 일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집행위원’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썼었다. 그러나 그것이 참이라면 의회는 공장법을 결코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정부도 그 법들을 집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상 Marx의 모든 사실(자료)들은, 선별적으로 배치되었지만 (때로는 조작되기도 했다),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국가[수사관, 법정, 평화의 판사 (작은 사건을 심판하는 판사)]의 노력으로부터 온 것이며 이런 노력은 필연적으로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자들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을 포함하였다. 만약 제도(자본주의)가 스스로를 개혁하려는 과정에 있지 않았더라면, Marx의 견해로는 이것은 불가능하였지만, ‘자본론’은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어떠한 현장조사도 할 뜻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통치계급’이라고 지명한 사람들의 증거에 정밀하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들은 일들을(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올바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점증하는 정도로 성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Marx는 그의 증거의 주된 원천을 왜곡시켜야만 했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명제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 책(자본론)은 구조적으로 정직하지 못하였고 지금도 그렇다.

 

[ 2021-03-03, 14: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