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이고 차분한 소화력이 인상적이던 데뷔 초기의 히트곡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13)낙엽이 가는 길(심형섭 작사·작곡, 나훈아 노래, 1969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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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면서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나무에서 하나 둘씩 떨어진 낙엽이 지천(至賤)으로 쌓여 있습니다. 공원에는 젊은 연인들이 그 낙엽을 밟으며 웃으며 손잡고 걷고 있습니다.
  
  이처럼 쓸쓸한 가을정취가 물씬 풍기는 날 낭만적 상상의 길을 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납니다. 이렇게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에 부르고 싶은 노래가 바로 나훈아의 <낙엽이 가는 길>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절망적 상황에서 봄이 오면 다시 새 싹으로 태어날 희망을 ‘내일 다시 오리라. 웃고 가리라’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꽉 막혀 있는 현실에 수없이 좌절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詩人)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위기가 오면 좌절할 것이 아니라 기회로 여겨 다시 도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합니다.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심형섭은 한때 한동훈 작곡가 사무실에서 지도교사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서라벌예술고교 2학생인 나훈아가 친구와 함께 그곳에 놀러갔다가 가끔씩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나훈아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의 탁월한 자질을 알아본 심형섭은 그후 미아리에 사무실 겸 음악학원을 차려놓고 나훈아, 작사가 박진하, 작곡가 심형섭 3인이 심형섭의 형님 집에서 같이 기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심형섭은 나훈아를 오아시스레코드사 손진석 사장에게 “어린애가 하나 있는데 이게 아주 쥑인다. 물건이 될 것 같다”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심형섭과 손진석 사장은 나훈아의 노래 실력을 은밀히 테스트했는데, 손 사장은 그의 노래를 듣고 시쳇말로 ‘뺑 돌아버렸다’고 합니다. 그 후 나훈아는 오아시스레코드사 소속 가수로 있으면서 남국인 작사, 김영광 작곡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8년)을 불러 엄청나게 히트합니다. 곧이어 심형섭이 작곡한 <님 그리워>, <낙엽이 가는 길>도 연속으로 히트했습니다.
  
  데뷔 초기 나훈아의 서정적이고, 차분한 소화력이 인상적인 이 노래는 <석양>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가 가사를 조금 변화시킨 후에 1969년 5월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낙엽이 가는 길>로 다시 발표했는데 대중의 인기를 크게 얻었습니다.
  
  나훈아는 선천적으로 노래를 잘했다고 합니다. 그의 고교 동기인 서양화가 이목일의 증언에 의하면 우이동 계곡에 소풍을 가서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불렀는데 그 당시 그곳에 소풍을 왔던 동덕여고 학생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200장의 앨범에 2600여 곡을 취입했으며,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히트곡이 120여 곡이나 되어 노래방 책에 가장 많이 올라간 가수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를 넘어서 대중가요의 작사와 작곡에 뛰어난 천재 예인(藝人)입니다. 그가 부르거나 남이 부른 자작곡이 800여 곡이나 될 정도로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그는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새벽녘에 차 안에서 주로 곡을 쓴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비운 이 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음감(音感)과 시상(詩想)이 떠오르며, 이를 붙잡아 가사와 곡을 쓴다고 합니다. <무시로>, <사랑>, <영영>, <테스형> 등은 그가 작사·작곡해서 그 자신이 불러서 인기를 얻은 곡들입니다. 이외에도 심수봉의 <여자이니까>, 조미미의 <사랑은 장난이 아니랍니다>, 이자연의 <당신의 의미>, 강진의 <땡벌>은 그가 작사·작곡해서 다른 가수에게 주어 히트한 노래들입니다.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음과 특유의 간드러진 꺾기가 어우러진 고음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노래와 그의 뛰어난 무대 장악력으로 인해 ‘가황(歌皇)’ 혹은 ‘어르신 BTS’로 명명(命名)되고 있습니다. 어떤 노래든 그가 부르면 바로 명곡이 되고, 그의 공연장은 환호하는 관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2020년 추석 15년 만에 선보인 KBS 2020 한가위 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는 그가 왜 ‘가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지를 또 다시 증명하는 무대였습니다. 부리부리한 눈빛과 살짝 웃는 미소를 머금은 그가 넉살 좋고 재치 있게 말하며, 야생마처럼 파워 넘치는 공연을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가 공연할 때마다 티켓이 삽시간에 모두 판매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단순히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대중예술인을 뛰어넘어, 시대정신을 포착하여 이를 알기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민중철학자이자 음유시인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공>, <남자의 일생>, <테스형> 등의 노래에서 보인 가사는 어느 철학자의 서사보다도 시대적 공명이 큽니다. 이런 모습은 1960년대 김석야가 작사하고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대중적 울림이 있는 철학적 노래를 우리는 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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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이 가는 길>
  
  내 몸이 떨어져서 어디로 가나
  지나온 긴 여름이 아쉬웁지만
  바람이 나를 몰고 멀리 가면
  가지에 맺은 정이 식어만 가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면
  내일 다시 오리라 웃고 가리라​
  
  울어도 울어봐도 소용이 없네
  이제는 떠나야지 정든 가지를
  저 멀리 아주 멀리 나는 가지만
  가지에 맺은 정이 식어만 가네
  겨울이 찾아와서 가지를 울려도
  또다시 찾아오리 정든 가지를
  
  
[ 2021-03-08, 09: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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