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변 여관서 들려온 여인의 울음소리에서 악상(樂想) 떠올라…발매 25년 뒤에야 히트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14)눈물 젖은 두만강(한명천·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박시춘 편곡, 김정구 노래,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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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은 일제 시대에 살 길을 찾아 만주로 유랑 길에 오른 수많은 조선의 민중들과 애국지사들이 건너간 민족의 한(恨)을 담은 강입니다. 얼마간의 옷과 미숫가루나 보리쌀 몇 됫박이 든 보따리를 짊어진 그들은 고국에 돌아올 기약도 없이 이곳을 건너갔습니다. 193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이미 한일합방이 된 지 20년이 넘어 조국 독립의 희망이 거의 사라진 절망적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소수의 독립투사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1936년 늦가을 순회악극단 예원좌는 북조선과 남만주 일대를 다니며 공연을 하다 두만강 유역 길림성 도문에 있는 한 여관에 머물렀습니다. 이 악극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가수 겸 연주자 이시우는 야밤에 우는 여인의 서글픈 울음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일어나 여관 주인에게 그 여인의 울음소리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녀는 독립군의 아내이며, 남편이 일본군에 붙잡혀 사형을 당했는데 마침 그들이 여관에 든 날이 남편의 생일이라 여관 주인이 생일상을 차려주었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그는 밤의 어둠을 뚫고 조선의 남양시가 보이는 도문의 두만강으로 나가 강변 여기저기를 걸으며 나라 잃은 민족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갑자기 떠오른 악상(樂想)을 가다듬었습니다. 곡이 완성되자 그는 한명천에게 이 얘기를 해주며 작사를 부탁하였습니다. 가사가 완성되자 그날 밤 도문공연에서 이시우는 장성월이라는 소녀가수에게 이 곡을 부르게 했습니다. 이 노래를 들은 관중들의 앙코르가 이어지면서 연주회장은 관객의 눈물과 열기에 휩싸여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하는 대목에서 관중들은 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문에서의 대성공으로 고무된 이시우는 서울로 와서 뉴코리아레코드사에 소속된 가수 김정구를 만나 레코드 제작 문제를 상의했습니다. 이 곡이 무명작가의 작품이므로 김정구는 이미 조선 전역에서 작곡가로 유명한 박시춘에게 악보를 보이고, 주선을 부탁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이 노래의 가사가 1절밖에 없으므로 C. M. C의 트롬본 주자이며, 작사를 하던 김용호에게 2절과 3절의 작사를 부탁했습니다. 가사가 완성되자 박시춘이 이 노래를 정성스럽게 편곡했습니다.
  
  1938년 1월 오케레코드사에서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황금심의 <왜 못오시나요>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김정구가 같은 달 발표한 <왕서방 연서>는 인기를 많이 얻었으나 이 노래의 반응은 기대만큼 크게 히트하지 못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43년 일제는 이 노래가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며 음반의 발매를 금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 노래는 일제 시대 마지막 몇 해와 해방 후 몇 년간은 어둠 속에 완전히 묻혀 있었습니다.
  
  6·25 전쟁이 나면서부터 이 노래를 김정구가 무대공연 등을 통해 다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그가 불렀던 노래에는 월북작가의 작품이 많아 사실상 그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63년 민경식 감독이 연출하고 이민자, 최남현, 박암 등이 주연으로 참여한 동명(同名)의 영화가 개봉되어 이 노래가 재조명되면서 도미도레코드사가 <눈물 젖은 두만강> OST LP 음반을 발매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일에 걸쳐 이 노래를 대중에게 알리려는 여러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 4월 KBS 라디오 인기 반공드라마 프로그램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이 노래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중가요사에서 이 노래가 발표된 지 무려 25년 후에 크게 히트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1981년 MBC 창사 20주년 기념 전국 1만 명 가요 선호도 조사에서 이 노래는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아울러 1985년 KBS 트로트 가요 시대별 베스트 10에서도 1925년~1960년 사이에 발표된 노래 중에서 1위를 차지하여 그 인기를 실감하였습니다.
  
  이 노래를 부른 김정구는 1916년 함남 원산 명사십리 출신으로 원산기독교학원을 수학하였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른 그는 작곡가 겸 가수인 형 용환, 성악가인 누이 안라, 피아니스트인 동생 정현이 음악의 길을 가는 집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항구의 선술집>, <바다의 교향시>, <총각 진정서>, <왕서방 연서>, <앵화폭풍>, <낙화 삼천> 등 700여 곡을 취입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왕서방 연서>, <총각 진정서>, <앵화 폭풍> 등에서 특기를 발휘하여 인기를 모은 만요의 1인자였습니다.
  
  본명이 이만두인 작곡가 이시우는 1913년 경남 거제 출신입니다. 1930년대 중반 예원좌에서 가수 겸 연주자로 활동하다 <눈물 젖은 두만강>, <눈물의 국경>, <타향의 술집>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해방 이후 경찰에 투신하여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 있다가 1955년부터 다시 <인생 역마차>, <영도다리 비가> 등을 작곡하였으나 큰 반응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후 가요교실과 레코드회사를 경영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는 등 불우한 편이었습니다. 1970년 한국가요반세기작가동지회 부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한편 그의 고향 거제에서 그를 기리는 <이시우 가요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대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쉬니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 2021-03-09, 11: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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