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고 거친 허스키 보이스로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곡(曲)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18)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손석우 작사, 작곡, 한명숙 노래, 1961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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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평남 진남포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난 가수 한명숙은 6·25 전쟁 중 어머니와 함께 월남(越南)하였다고 한다. 월남 후 그 전에 남한으로 미리 내려온 아버지를 만나지 못해 몹시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남쪽으로 왔으나 남편을 만나지 못해 여러 어려움에 처한 그녀의 어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와 헤어진 주인공이 유명가수가 되어 극적으로 만난다는 <방랑의 가인>이라는 소설을 그녀에게 읽어주며 울었다고 한다.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며, 가수가 되기를 열망하던 그녀는 1952년 외삼촌의 평양음대 제자인 임원근의 추천으로 <태양악극단>에서 일하였으며, 6·25 전쟁 중에는 군예대(軍藝隊)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1953년부터 그녀는 미8군 쇼단체인 <럭키쇼단>, <세븐스타쇼>, <에이원쇼> 등에서 활약하였다. 이 때 북한에서 지내는 바람에 영어를 배우지 못한 그녀를 위해 후일 쎄시봉에서의 음악 진행과 방송인으로 이름을 날린 이백천 씨가 가사의 영어 발음에 우리말로 토를 달아주었다고 한다.
  
  그런던 중 그녀는 미8군 무대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던 최희준의 소개로 손석우 작곡가를 만났다고 한다. 이미 여러 계기를 통해 그녀의 음악적 역량을 확인한 손석우 작곡가는 그녀의 독특한 음색에 어울리는 노래의 악상(樂想)이 떠올랐을 때 이상하게 ‘노란 샤쓰’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 때 그는 마침 자신이 만든 뷔너스레코드사의 첫 작품으로 <노란 샤쓰입은 사나이>를 내었다고 한다. 처음 음반이 나왔을 때의 제목은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였으나 방송을 진행하던 임택근 아나운서가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로 잘못 소개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자꾸 그렇게 부르니까 제목이 바뀌었다고 한다.
  
  밝고 명랑한 가사에 빠르고 경쾌한 선율의 이 노래가 음반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나게 히트하였다. 이 때는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4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 박정희 의장이 조국 근대화 작업에 시동을 걸 때였다. 그래서 그들은 밝고 건전한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여러 가지 시책을 펴고 있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은 이 노래를 적극 장려하였다. 결과적으로 방송 등 대중매체에 많이 소개가 되면서 이 노래는 국민가요로 부상(浮上)하였다.
  
  국내에서의 인기는 물론 외국에서도 연달아 인기를 얻어 그녀는 동남아와 구미(歐美)에서 제 1호 한류가수가 되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그녀는 홍콩, 싱가포르, 태국, 미국 25개 주(州) 등에 순회공연을 하였다. 1963년에 내한공연을 하였던 프랑스 원로가수 이베트 지로는 한국어로 이 노래를 부르고, 레코드 취입도 하였다.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도 이 노래를 좋아하여 1970년 일본 가수 하마무라 미치코가 일본어로 불러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북한 등 공산국가에서도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러서 한국의 국가인 줄로 착각한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 온 기념으로 이 노래가 들어간 음반을 구매했다는 얘기가 떠돌 지경이었다.
  
  이 노래는 그녀의 어머니가 읽어준 <방랑의 가인>과 같은 일이 기적처럼 일어나는 데 기여하였다. 1962년 이 노래가 인기를 얻고 있을 때 그녀는 부산 삼일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이 공연 포스터를 보고 그동안 찾을 수가 없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인과 새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이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1962년 엄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한명숙, 신영균, 엄앵란을 캐스팅하여 영화로 만들었다. 그때 각종 신문에서는 그녀의 ‘연기력이 없는 것이 매력’이라는 평을 내어 놓았는데,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10만 관객을 동원하였다.
  
  이처럼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한명숙이 부른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는 192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대중가요의 중심에 서있던 정통 트로트의 위세를 뚫고 1960년대 초반 우뚝 섰던 노래이다. 밝고 명랑한 가사에 스윙재즈가 가미된 웨스턴 컨트리 뮤직스타일의 이 노래는 뽕짝 리듬에 슬픈 노랫말이 주류를 이루었던 당시의 가요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혁신적인 곡이다.
  
  더구나 굵고 거칠며 탁한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는 한명숙의 이 노래가 히트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가수 한명숙의 목소리가 이렇게 때문에 남성 4중창단 블루벨즈가 그녀를 두고 ‘왕대포’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 인기를 얻은 유행가를 보면 거의 대부분 가수들의 목소리가 몹시 곱고 아름답다.
  
  원래 가수 지망생인 임종수 작곡가는 이 노래를 듣고 남인수 스타일로 부르는 자신의 창법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미련 없이 가수가 되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1950년대 미8군 무대는 미국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경향의 음악을 익히는 통로였다. 아울러 대중적 빈곤에다 전쟁 등으로 살기가 힘든 우리 대중음악인들이 제대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곳이었다. 이 무대에 서려면 그만큼 기량이 뛰어나야 했으며, 매년 평가를 통해 기존 팀들을 걸러내고 새 팀을 영입하는 체제가 가동되어 늘 긴장하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하였다. 이곳에서 이렇게 기량을 갈고 닦은 음악인들이 1960년대가 되면 본격적으로 한국의 음반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렇게 한국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이 노래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 이후 한명숙은 <우리 마을>, <눈이 내리는데> 등 300여 곡을 취입하였다. 2010년 10월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백순진 회장)의 주관으로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발표 50년- 한명숙 헌정음악회가 열렸다.
  
  한편 작곡가 손석우는 1920년 전남 장흥 출신으로 <나 하나의 사랑>, <청실 홍실>, <나는 가야지>, <꿈은 사라지고>,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등 인기곡을 작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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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쏠려
  
  아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
  아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 2021-03-16, 16: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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