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서 악령으로: 청와대에 득실대는 광신자들
반공자유-교양영어(37): The anarch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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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인간에서 악령으로

19세기 후반기에 주로 유럽을 휩쓸었던 무정부주의자들(anarchists)은 법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하였다. 그들의 첫 위대한 이론가인 프랑스의 Pierre-Joseph Proudhon은 중앙정부를 전적으로 폐지하기를 원하였다. 정부를 없애도 혼돈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반대로 국가는 법 대신에 계약과 상호이익으로 응집된 자치집단과 공동체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에 조화로운 질서의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무정부의 세계에서도 정의가 사회를 다스리는 “중앙의 별”이 될 것이라고 Proudhon은 주장하였다.


Proudhon은 비록 “재산은 도둑질 한 것”이라 선언하였지만 실제로는 사람은 집과 토지와 토지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었다. 이것도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Mikhail Bakunin에게는 과분한 것이었다. Bakunin은 사유재산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고 생산수단의 집단소유를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파괴에 대한 열정은 창조적 충동”이라며 무장투쟁을 선동하였다. 무정부주의자들은 帝國(제국)과 종교를 파괴하면 그 잿더미에서 찬란한 자유세계가 흥기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876년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Errico Malatesta는 “사회주의자의 원칙을 행동으로 승인하게 되는 폭력적 행위는 가장 효율적인 선전 수단이다”이라며 폭력을 권장하였다. 러시아의 公爵(공작) 출신인 무정부주의 사상가 Peter Kropotkin는 Malatesta의 “행동에 의한 선전”이론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는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의 급진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축배의 대상이 되었었다. 무정부주의 행동가들은 Kropotkin과 Malatesta의 지침에 따라 행동에 나섰다. 이들 무정부주의자들은 정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혁명정신을 고양하기 위하여 정부의 최고 권력자를 죽여야 한다고 믿었다.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들은 1881년 개혁가이고 농노 해방자인 AlexanderⅡ를 살해함으로써 이러한 신념을 실행하였다. 1894년에는 프랑스 대통령 Peter Kropotkin, 1897년에 스페인 수상 Antonio Canovas del Castillo, 1898년에 오스트리아 황후 Elizabeth, 1900년에 이탈리아 국왕 Umberto, 1901년에 미국 대통령 William Mckinley와 스페인 수상 Jose Canalejas Mendez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무차별적 폭력을 즐겼던 무정부주의자들은 “기존질서에 만족하는 사람은 모두 有産者이고 국가의 공모자이고 고용원이다. …결백한 부르주아는 한 명도 없다”라며 자신들의 폭력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이러한 의견은 Conrad의 “비밀첩자”나 Dostoevsky의 “악령”의 등장인물들을 연상시킨다. 19세기 무정부주의 지식인들과 테러에 영감을 받아서 Conrad와 Dostoevsky는 자폐증처럼 감정이입이 부족하고 왜곡된 도덕의식을 가진 인물들을 묘사하였다. 교수라는 별명을 가진 Conrad의 주인공에게는 세상의 도덕성은 인위적이고 부패하며 不敬(불경)한 것이었다. 교수는 분노 자체에서 파괴의 죄를 사면해 주는 명분을 찾았다. 준법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파괴하는 것이 그의 공식이 되었다. 기존사회질서의 구조는 어떤 형태의 집단적 개인적 폭력이 없이는 분쇄될 수 없다는 것이 교수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이러한 신념이 그에게 힘과 권위를 주었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종교이든 이념이든 철학이든 모든 이상주의는 이념에 유혈을 결합시키기 쉽다. 폭정과 빈곤과 착취에 직면하지 않아도 이상주의는 자신의 피는 물론 타인의 피도 흘릴 각오가 되어 있는 광신자를 끌어들인다. 존재론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神의 영역인 이상을 현실에 강요하면 잔혹한 살인 사이코가 되기 쉽다. Dostoevsky는 이런 자들을 악령이라고 하였다. 악령은 어느 시대에나 나타나지만 지금 한국에 많은 것 같다. 청와대에도 득실거리고 있는 것 같다.

 


37. The anarchists

37-1-302

BOMBS, beards and backpacks: these are the distinguishing marks, at least in the popular imagination, of the terror-mongers who either incite or carry out the explosions that periodically rock the cities of the western world. A century or so ago it was not so different: bombs, beards and fizzing fuses. The worries generated by the two waves of terror, the responses to them and some of their other characteristics are also similar. The spasm of anarchist violence that was at its most convulsive in the 1880s and 1890s was felt, if indirectly, in every continent. It claimed hundreds of lives, including those of several heads of government, aroused widespread fear and prompted quantities of new laws and restrictions. But it passed. Jihadism is certainly not a lineal descendant of anarchism: far from it. Even so, the parallels between the anarchist bombings of the 19th century and the Islamist ones of today may be instructive.


Islamists, or at least those of the Osama bin Laden stripe, have several aims. Some—such as the desire “to regain Palestine”, to avenge the killing of “our nation's sons” and to expel all “infidel armies” from “the land of Muhammad”—could be those of any conventional national-liberation movement. Others are more millenarian: to bring everyone to Islam, which, says Mr bin Laden, “is the religion of showing kindness to others, establishing justice between them, granting them their rights, and defending the oppressed and persecuted.” All this will come to pass once everyone is living in an Islamic state, a caliphate governed by sharia law. Hence “the martyrdom operations against the enemy” and the promise of paradise for those who carry them out.


37. 무정부주의자들

폭탄과 턱수염과 배낭-이것들은 주기적으로 서방세계의 도시들을 뒤흔드는 폭탄테러를 선동하거나 자행하는 테러분자들을 구별 짓는 특징들이다. 적어도 대중의 상상 속에는 그렇다. 백 년전에도 이와 비슷하였다: 폭탄과 턱수염과 슈욱 하고 소리가 나는 퓨즈. 두 차례의 테러물결(백 년전과 오늘날의 테러물결)이 일으키는 불안과 테러에 대한 반응과 타른 특징들도 유사하다. 1880년대에 최고조에 달하였던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폭력의 波蘭(파란)은 간접적일지라도 모든 대륙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폭력은 몇몇 나라의 정부수반을 포함한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아 갔고 공포를 확산시켰고 수많은 새로운 법과 규제의 제정을 촉진하였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들의 폭력은 지나가 버렸다. 회교폭력주의(jihadism)는 분명히 혈통적으로 무정부주의의 후손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렇더라도 19세기 무정부주의자들의 폭탄투척과 오늘날의 회교도 폭탄테러를 비교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될 수도 있다.


회교주의자들은, 적어도 Osama bin Laden 유형의 회교주의자들은 몇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어떤 목표들은―“팔레스타인을 수복하고”, “우리 민족의 자식들”을 죽인 것에 대해 복수하고, “Muhammad의 땅으로부터 모든 이교도 군대를 쫓아내려는” 욕망 같은 것들―모든 민족해방운동의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목표들은 종교적 지상낙원을 꿈꾸는 것, 즉 모든 사람들에게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것이다. bin Laden은 “이슬람교는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타인들 사이에 정의를 확립하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억압되고 압박받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회교율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회교통치국가에 살게 되면 이 모든 것은 이루어 질 것이다. 그래서 적에 대한 순교작전과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천국의 약속이 있는 것이다.



37-2-303

Anarchists have always believed in the antithesis of a Muslim state. They want a world without rule. Their first great theoretician, Pierre-Joseph Proudhon, wanted to abolish centralised government altogether. This, though, would not bring the chaos with which the word anarchy is often considered synonymous. On the contrary, a sort of harmonious order would ensue, the state being replaced by a system of autonomous groups and communities, glued together by contract and mutual interest in place of laws. Justice, argued this essentially non-violent man, was the “central star” governing society.


Though Proudhon is remembered for the dictum, “Property is theft!” he actually believed that a man had the right to possess a house, some land and the tools to work it. This was too much for Mikhail Bakunin, a revolutionary nationalist turned anarchist who believed in collective ownership of the means of production. He believed, too, that “the passion for destruction is also a creative urge,” which was not a description of the regenerative workings of capitalism but a call to the barricades. Regeneration, however, was very much an anarchist theme, just as it is a jihadist one. As one of anarchism's leading interpreters, George Woodcock, has put it, “It is through the wrecks of empires and faiths that the anarchists have always seen the glittering towers of their free world arising.”


What prompts the leap from idealistic thought to violent action is largely a matter for conjecture. Every religion and almost every philosophy has drawn adherents ready to shed blood, their own included, and in the face of tyranny, poverty and exploitation, a willingness to resort to force is not hard to understand. Both anarchism and jihadism, though, have incorporated bloodshed into their ideologies, or at least some of their zealots have. And both have been ready to justify the killing not just of soldiers, policemen and other agents of the state, but also of civilians. 


무정부주의자들은 항상 회교국가와는 정반대의 것을 믿었다. 그들은 법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하였다. 그들의 첫 위대한 이론가인 Pierre-Joseph Proudhon은 중앙정부를 거의 전적으로 폐지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무정부라는 단어와 同義語(동의어)가 되는 혼돈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국가는 법 대신에 계약과 상호이익으로 응집된 자치집단과 공동체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에 조화로운 질서의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근본에 있어서 비폭력적인 Pierre-Joseph Proudhon은 정의가 사회를 다스리는 “중앙의 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Proudhon은 비록 그가 말한 “재산은 도둑질 한 것”이라는 선언으로 기억되지만 그는 실제로는 사람은 집과 토지와 토지를 경작할 도구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었다. 이것도 혁명적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주의자로 변신한 Mikhail Bakunin에게는 過分(과분)한 것이었다. Bakunin은 생산수단의 집단소유를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파괴에 대한 열정은 창조적 충동”이라고 믿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의 재생적 작용에 대한 설명이 아니고 무장투쟁을 부추기는 소리였다. 그러나 재생은 jihadist의 그것처럼 무정부주의자들에게는 중요한 주제였다. 무정부주의에 관한 중요한 해설가인 George Woodcock의 말처럼 “무정부주의자들이, 떠오르는 그들의 빛나는 자유세계가 흥기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제국과 종교가 파괴되고 남긴 잔해를 통해서이다”.


무엇이 이상주의적 사상이 폭력적인 행동으로 건너뛰게 하였는지는 대체로 추측의 문제일 뿐이다. 모든 종교와 거의 모든 철학은 자신의 피를 포함해서 타인의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있는 신봉자를 끌어 들여왔다. 폭정과 빈곤과 착취에 직면하여 폭력에 의지하려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와 jihadism은 이념에 流血(유혈)을 결합시켰다. 아니면 적어도 일부 광신자들은 그렇다. 그리고 兩者(양자)는 모두 군인과 경찰과 국가 기관원뿐 아니라 민간인의 살해도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37-3-304

The heads roll

For anarchists, the crucial theory was the one that developed in Italy, where in 1876 Errico Malatesta put it thus: "The insurrectionary deed, destined to affirm socialist principles by acts, is the most efficacious means of propaganda." This theory of "propaganda by deed" was cheerfully promoted by another great anarchist thinker, Peter Kropotkin, a Russian prince who became the toast of radical-chic circles in Europe and America. Whether the theory truly tipped non-violent musers into killers, or whether it merely gave a pretext to psychopaths, simpletons and romantics to commit murders, is unclear. The murders, however, are not in doubt. In deadly sequence, anarchists claimed the lives of President Sadi Carnot of France (1894), Antonio Canovas del Castillo, the prime minister of Spain (1897), Empress Elizabeth of Austria (1898), King Umberto of Italy (1900), President William Mckinley of the United States (1901) and Jose Canalejas Mendez, another Spanish prime minister.


Such assassinations, it may be argued, were less similar to al-Qaeda's than to those of the Narodniki, the members of the Russian Party of the People's Will, who believed in "destroying the most powerful person in government" to undermine its prestige and arise the revolutionary spirit. This they had undoubtedly done in 1881 by murdering Tsar AlexanderⅡ, even though he had been a reformer and, indeed, a liberator of the serfs. In truth, the practice of assassination is as old as hills, though it got its name in the 11th-13th centuries when it was followed by the Nizari Ismailiyun, a Shia sect that considered the murder of its enemies-conducted under the influence of hashish (hence assassin)-to be a religious duty.


사람의 머리가 굴러다니다

무정부주의자들을 위한 결정적인 이론은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다. 1876년 이탈리아의 Errico Malatesta는 그 이론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사회주의자의 원칙을 행동으로 승인하게 되는 폭력적 행위는 가장 효율적인 선전 수단이다.” 또 한 명의 위대한 무정부주의 사상가인 Peter Kropotkin은 이 “행동에 의한 선전”이론을 크게 증진시켰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급진주의자들 사이에서 축배의 대상이 된 러시아 公爵(공작) 출신이었다. 이 이론이 비폭력적인 ‘생각이 많은 사람’을 살인자로 기울게 하였는지 또는 그것이 단지 정신병자와 얼간이와 낭만주의자들에게 살인을 저지르는 구실을 주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살인임에는 틀림없다. 연속적인 살해에 의해 무정부주의자들은 1894년에는 프랑스 대통령 Peter Kropotkin, 1897년에 스페인 수상 Antonio Canovas del Castillo, 1898년에 오스트리아 황후 Elizabeth, 1900년에 이탈리아 국왕 Umberto, 1901년에 미국 대통령 William Mckinley 와 스페인 수상 Jose Canalejas Mendez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이러한 암살행위는 al-Qaeda보다는 ‘러시아 인민의 의지 당’ 당원들의 암살행위와 더 유사하다. 이들 당원들은 정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혁명정신을 고양하기 위하여 정부의 최고권력자를 죽여야 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개혁가이고 農奴(농노)의 해방자인 AlexanderⅡ 황제를 1881년에 살해함으로써 이러한 신념을 실행하였다. 적을 죽이는 것이-hashish(대마초)에 취해서 행동하였다(그래서 assassin이라는 단어가 생김)- 종교적 의무라고 생각한 Shia파의 한 종파인 Nizari Ismailiyun가 암살을 자행하였을 때인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암살이라는 명칭은 생겼지만 암살행위 자체는 山(자연)만큼이나 오래 된 것이다.



37-4-305

France, too, had its ‘dynamitards’. One of their bombs blew up the Restaurant Very in Paris in 1892. Another, some months later, which was destined for a mining company‘s offices, killed six policemen and set off a flurry of wild rumours: acid had been placed in the city’s water supply, it was said, churches had been mined, and anarchists lurked round every corner. A year later a young anarchist, unable to earn enough to feed himself, his lover and his daughter, decided to take his own life-and at the same time make a protest. Ready to bomb but unwilling to kill, he packed some nails and a small charge of explosive into a saucepan and lobbed it from the public gallery into the Chamber of Deputies. Though it caused no deaths, he was executed-and then avenged with another bomb, this one in the Terminus cafe at the Gare St-Lazare which killed one customer and injured 19. The perpetrator of this outrage, designed to “waken the masses”, regretted only that it had not claimed more victims. A popular street song boasted: 


It will come, it will come,

Every bourgeois will have his bomb. 


And many were inclined to agree. Four more bombs went off in Paris in the next two months.


Other countries were hardly more peaceful. A bomb was lobbed into a monarchist parade in Florence in 1878, another into a crowd in Pisa two days later. In 1893, two bombs were thrown into the Teatro Liceo in Barcelona, killing 22 opera-goers on the first night of the season. A year later a French anarchist blew himself up by accident in Greenich Park in London, presumably on his way to the observatory there. Two years later, at least six people taking part in a religious procession in Barcelona were blown to bits by an anarchist bomb. Countless attempts were also made on the lives of bigger names, such as King Alfonso Ⅻ of Spain (1878), Kaiser Wilhelm Ⅰof Germany (May and June 1878), Andrew Carnegie‘s business partner, Henry Clay Frick (Pittsburgh, 1892), a Serbian minister (Paris, 1893) and King Alfonso ⅩⅢ and his English bride (Madrid, on their wedding day, 1906). In the last incident alone 20 bystanders died.


프랑스에도 다이너마이트 혁명가들이 있었다. 1892년 이들이 던진 폭탄 하나가 파리에 있는 Very라는 레스토랑을 날려버렸다. 몇 개월 후에 탄광회사 사무실을 겨냥한 또 하나의 폭탄이 6명의 경찰관을 살해하고 질풍 같이 빠른 소문을 사방에 퍼뜨렸다. 즉 파리市(시)의 상수도에는 酸(산)이 투입되었고 모든 교회에는 폭약이 매설되어 있고 무정부주의자들이 거리 모퉁이마다 잠복해 있다는 것이었다. 1년 뒤에 아내와 딸을 제대로 먹일 수 없다는 한 젊은 무정부주의자는 자살을 하여 사회에 항의하기로 결심하였다. 폭탄은 폭발시키지만 사람을 죽일 뜻은 없어서 그는 못 조각과 폭약을 기다란 냄비에 넣어 가지고 그것을 국회방청석에서 회의장으로 높이 던졌다.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그는 처형되었다―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또 다른 폭탄으로 복수하였다. 이번에는 Gare St-Lazare의 Terminus 카페의 손님 한 명을 죽이고 19명을 다치게 하였다. 범인은 이것은 “대중을 각성시키기 위해” 계획된 것이라며 더 많은 희생자를 내지 못한 것을 후회할 뿐이었다. 거리에서 인기 있는 노래가 있었다:


그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올 것이다,

모든 부르주아가 폭탄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였다. 그 다음 2개월 동안 4개의 더 많은 폭탄이 파리에서 폭발하였다.


다른 나라들도 평화롭지는 않았다. 1878년 Florence에서 있은 군주주의자 행진에 폭탄이 투척되었고 이틀 뒤에 Pisa의 군중들에게 또 폭탄이 투척되었다. 1893년 스페인 Barcelona의 Teatro Liceo 극장에서 2개의 폭탄이 폭발하여 오페라시즌의 첫 번째 공연을 보러온 관객 22명을 살해하였다. 1년 뒤에 Greenich 천문대로 가는 도중으로 추정되는 한 프랑스인 무정부주의자는 런던의 Greenich 공원에서 사고로 자폭하였다. 2년 뒤에 Barcelona의 종교행렬에 참가중인 여섯 명이 무정부주의자폭탄에 의하여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스페인 국왕 Alfonso 7세(1878년 5월), 독일 황제 Wilhelm Ⅰ세(1878년 6월), Andrew Carnegie의 동업자 Henry Clay Frick(1892년 미국 Pittsburgh), 세르비아의 어느 장관(1893년 파리), 스페인 국왕 Alfonso 8세와 그의 영국인 신부(1906년 그들의 결혼일, 마드리드)와 같은 저명인사들에 대한 무수한 암살시도가 있었고 마지막 사건에서만도 20여 명의 참석자들이 죽었다.



37-5-306

Then, as now, alarm and consternation broke out. Admittedly, violent attacks on prominent figures: one American president had been assassinated in 1865 (Lincoln) and another in 1881 (Garfield), and seven attempts were made on Queen Victoria's life before her reign ended in 1901, none of them by anarchists. Even so, governments could hardly do nothing. The response of some was repression and retribution, which often provoked further terrorist violence. Germany arrested 500 people after the second attack on the kaiser, many for "approving" of the attempts on his life. Spain was particularly prone to round up the usual suspects and torture them, though it also passed new laws. After the Liceo bombing, it brought in courts-martial for all crimes committed with explosives, and only military officers were allowed to be present during the trial of the supposed bombers.


France, too, resorted to unusual measures. After the bombing of the French Chamber of Deputies, 2,000 warrants were issued, anarchist clubs and cafes were raided, papers were closed down and August Vaillant, the bomber, was tried, found guilty and sentenced to death in a day. An apologist who declared that not a single man in France would grieve for the president if he confirmed the sentence (as he did), was jailed for two years for incitement to murder. The French parliament made it a crime not just to incite sedition but also to justify it. Criminal "associations of malefactors" were defined by intent rather than by action, and all acts of anarchist propaganda were banned.


Similarly, in Britain soon after last month's bombings, the prime minister, Tony Blair announced that "condoning or glorifying terrorism anywhere, not just in the United Kingdom, would become a crime. Places of worship used as centres for "fermenting extremism" are to be closed down. Measures will be taken to deport foreigners "fostering hatred, advocating violence to further a person's beliefs, or justifying or validating such violence." Naturalised Britons engaged in "extremism" will be stripped of their citizenship.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경악과 경고가 터져 나왔다. 지금 말한 바와 같이 저명한 사람들에 대한 격렬한 공격이 이어졌다. 1865년에 한 명의 미국 대통령(링컨)이 암살되었고 1881년에 또 한 명의 미국 대통령(Garfield)이 암살되었다.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가 끝날 때까지 7번의 암살시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각 국의 정부는 거의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몇몇 정부의 반응은 억압과 보복이었지만 이것은 더 많은 테러리스트 공격을 부추겼을 뿐이다. 독일은 황제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이 있은 후에 암살시도를 “찬성하는” 500명을 체포하였다.


스페인은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지만 통상적인 의미의 용의자를 체포하여 고문하였다.


Liceo 극장 폭탄사건 이후 스페인은 폭약으로 범한 모든 범죄에 대해서는 군법회의에서 취급하였고 폭탄투척용의자의 재판 중에는 군 장교만 입회가 허용되었다.


프랑스도 특별조치에 의지하였다. 프랑스국회 폭탄투척 이후 2000명에 대한 영장이 發付(발부)되었고 무정부주의자 클럽과 카페가 습격을 받았으며 신문들은 폐간 당하고 폭탄투척 범인 August Vaillant는 하루 안에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에 선고되었다. 만약 대통령이 이 선고를 확인한다면 (대통령은 확인하였다), 프랑스의 단 한 사람도 대통령을 위해 슬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어떤 옹호자〈August Vaillant의 행위를 비호하는 자〉는 살인 敎唆(교사) 죄로 2년 징역형을 받았다. 프랑스의회는 폭동을 선동하는 것은 물론 폭동을 정당화하는 것도 범죄로 간주하였다. 범죄자와의 연루는 행동이 아니라 의도만으로도 입증이 가능하게 되었고 무정부주의자의 모든 선전활동은 금지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지난 달의 폭탄테러 이후에 영국의 Tony Blair 수상은 “영국만 아니고 어디에서도 테러리즘을 눈감아 주거나 찬양하는 것은 범죄가 될 것이다. ‘극단주의’를 부채질하는 중심기관으로 이용되는 예배장소는 폐쇄되어야 할 것이다. 증오심을 함양하고 어떤 한 사람의 신념을 심화시키기 위하여 폭력을 옹호하거나 이런 폭력을 정당화하는 외국인을 추방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 질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극단주의”활동에 참여하는 귀화 영국은 시민권을 박탈당할 것이다.

 


37-6-307

Jihadists, of course, cross borders, and many are presumed to be indoctrinated by foreigners, even if they commit their deeds at home. So it was too with the anarchists, even though they often plotted and acted alone. Many of the ideas came from Russia. Besides Bakunin, Russia also produced Kropotkin, "an uncompromising apostle of the necessity of violence", according to Barbara Tuchman in Proud Tower.


Italy, by contrast, produced many of the assassins: for example, those who killed Carnot, Canovas, Empress Elizabeth and King Umberto. It also exported utopians who founded anarchist settlements like Cecilia colony in Brazil. Germany, too, had its share of fanatics, including Johann Most, the editor of an incendiary New York newspaper, Freiheit, and many of the Jewish anarchists who congregated in London's East End. France also sent 'anachors' abroad: a prominent theorist, Elissee Reclus, taught in Brussels. The man who shot McKinley was the child of Polish immigrants to America. And Switzerland, like England, played host to exiles who came and went with considerable freedom.


No wonder, then, that anti-foreigner feeling ran high in many places. In the United States, President Theodore Roosevelt asked Congress to exclude anyone who believed in "anarchistic principles" and, by treaty, to make the advocacy of killing an offence against international law. Congress duly obliged with an act that kept out anyone "teaching disbelief in or opposition to all organised government".


By then an international conference had been held (in 1898) at the behest of Italy to seek help in fighting anarchism. The Italians did not get all they wanted: Belgium, Britain and Switzerland refused to abandon the right of asylum or to extradite suspected anarchists. But in 1893, just after the Liceo bombings, Britain had reluctantly banned open meetings of anarchists after the Liberal Home secretary, H. H. Asquith, had come under attack for allowing an anarchist meeting to commemorate the Chicago Haymarket martyrs.


물론 Jihadist들은 국경을 건너간다. 그리고 많은 Jihadist들은 국내에서 테러행위를 저지를지라도 외국인에 의해 주입교육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정부주의자들도 종종 단독으로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였지만 외국인들의 교화를 받았다. 무정부주의 사상의 많은 부분은 러시아에서 왔다. 러시아는 Bakunin 외에도 “자랑스런 탑”의 저자 Barbara Tuchman에 의하면 “비타협적 폭력의 사도” Kropotkin을 배출하였다.


이에 비해서 이탈리아는 암살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예를 들면 Carnot와 Canovas그리고 Elizabeth 황후와 Umberto 국왕의 암살자들이다. 이탈리아는 또한 브라질의 Cecilia 식민지 같은 무정부주의자 정착지를 세운 몽상가들을 수출하였다. 독일에도 뉴욕의 선동적인 신문 Freiheit의 편집장인 Johann Most를 포함한 광신자들과 런던의 East End에 모여들었던 유대인 무정부주의자들이 많이 있었다. 프랑스는 또한 많은 무정부주의자들을 해외로 보냈다. 탁월한 이론가인 Elissee Reclus은 Brussels에서 가르쳤다. McKinley 대통령을 쏜 남자는 폴란드이민의 아들이었다. 스위스는 영국처럼 상당히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망명자들에게 宿主(숙주)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反외국인 정서가 고조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의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은 “무정부주의 원칙”을 믿는 사람은 누구라도 쫓아내고 조약에 의하여 살해를 지지하는 것을 국제법에 위배는 범죄로 만들어 달라고 의회에 요구하였다. 의회는 “조직된 모든 통치를 불신하거나 반대하도록 가르치는” 자는 모두 배제하는 법률로서 화답하였다.


그때에 이르러 이탈리아의 요청으로 무정부주의와 싸우는 데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국제회의가 열렸다(1898). 이탈리아는 원하는 것을 다 얻지는 못하였다. 벨기에와 영국과 스위스가 망명자에 대한 은신처 제공권의 포기와 무정부주의 용의자의 인도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Liceo 폭탄테러 직후인 1893년에 영국은 자유주의자인 H. H. Asquith 내무부장관이 Chicago의 Haymarket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집회를 허용하였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은 후에 영국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옥외집회를 마지못한 듯이 금지하였다.



37-7-308

The vast majority of anarchists, like the vast majority of Islamists, were not violent, and some of those who once believed in bloodshed, notably Kropotkin, were to turn against it in time. But those who relished indiscriminate violence used an argument with striking similarities to that used by Mr bin Laden. Thus Emile Henry, who had left the bomb in the café at the Gare St-Lazare, was to justify his act by saying that those in the café were all “satisfied with the established order, all the accomplices and employees of Property and the State...There are no innocent bourgeois.” For his part, Mr bin Laden, in his “Letter to America” of November 2002, justifies the “aggression against civilians for crimes they did not commit” with a slightly more sophisticated variant. They deserved to die, he said, because, as American citizens, they had chosen “their government by way of their own free will, a choice which stems from their agreement to its policies.”


Such sentiments recall the characters of Conrad's “The Secret Agent” and Fyodor Dostoevsky's “Devils”. Inspired by 19th-century anarchist intellectuals and events, they describe men of almost autistic lack of empathy and contorted moral sense.


For Conrad's protagonist, nicknamed the Professor, the world's morality was artificial, corrupt and blasphemous. The way of even the most justifiable revolutions is prepared by personal impulses disguised into creeds. The Professor's indignation found in itself a final cause that absolved him from the sin of turning to destruction as the agent of his ambition. To destroy public faith in legality was the imperfect formula of his pedantic fanaticism; but the subconscious conviction that the framework of an established social order cannot be effectually shattered except by some form of collective or individual violence was precise and correct.


대다수의 무정부주의자들은 대다수의 회교도들처럼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Kropotkin처럼 유혈이 옳다고 생각하였던 무정부주의자들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혈에 반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차별적 폭력을 즐겼던 무정부주의자들은 bin Laden의 것과 놀랍도록 유사한 논법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파리의 Gare St-Lazare에 있는 한 카페에 폭탄을 던진 Emile Henry는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존질서에 만족하고 모두가 다 有産者(유산자)와 국가의 공모자이고 고용원이다. …결백한 부르주아는 한 명도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bin Laden은 2002년 11월 “미국에게 주는 편지”에서 Emile Henry보다는 약간 더 정교하게 변형된 논리로 죄를 범하지 않은 시민들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는 미국시민들은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로 미국정부를 선택하였고 이것은 미국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죽어서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의견은 Conrad의 “비밀첩자”나 Dostoevsky의 “악령”의 등장인물들을 연상시킨다. 19세기 무정부주의 지식인들과 사건에 영감을 받아서 Conrad와 Dostoevsky는 자폐증처럼 감정이입이 부족하고 왜곡된 도덕의식을 가진 인물들을 묘사하였다.


교수라는 별명을 가진 Conrad의 주인공에게는 세상의 도덕성은 인위적이고 부패하며 불경한 것이었다. 가장 정의로운 혁명의 길도 신념으로 위장된 개인적 충동에 의해서 마련된다. 그 교수는 분노 자체에서 야망의 실현 도구인 파괴의 죄를 사면해 주는 명분을 찾았다. 준법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파괴하는 것이 그의 현학적인 광신의 불완전한 공식이 되었다. 그러나 기존사회질서의 구조는 어떤 형태의 집단적 개인적 폭력이 없이는 분쇄될 수 없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만은 정확한 것이었다.



37-8-309

He was a moral agent—that was settled in his mind. By exercising his agency with ruthless defiance he procured for himself the appearances of power and personal prestige. That was undeniable to his vengeful bitterness. It pacified its unrest; and in their own way the most ardent of revolutionaries are perhaps doing no more but seeking for peace in common with the rest of mankind—the peace of soothed vanity, of satisfied appetites, or perhaps of appeased conscience.


Anarchists like the Professor, a quiet man who went round with a bomb in his pocket that he could detonate with the squeeze of a rubber ball should he be arrested, were difficult to detect and impossible to deter. So why did their wave of terror pass? Not, it seems, because of the measures taken to deter them. The main reason, rather, was that the world became consumed with the first world war, the Russian revolution, the fight against fascism and the struggles against colonialism. Another was that, after a while, the more rational anarchists realised that terrorism seldom achieves the ends desired of it—as the IRA has recently acknowledged.


But in truth the wave did not entirely pass; it merely changed. The anarchist terrorists of 1880-1910 were replaced by other terrorists—Fenians, Serb nationalists (one killed the Archduke Franz Ferdinand and thus sparked the first world war), Bolsheviks, Dashnaks (revolutionary Armenians), Poles, Macedonians, Hindu nationalists (among them the killers of Mahatma Gandhi), fascists, Zionists, Maoists, Guevarists, Black Panthers, Red Brigades, Red Army Fractions, Palestinians and even al-Qaeda's jihadists. Few of these shared the anarchists' explicit aims; all borrowed at least some of their tactics and ideas.


And the world went on. It probably would even if yesterday's dynamitards become today's plutoniumards. But terrorism is unlikely to be expunged. As long as there are men like Conrad's Professor, there will be causes to excite them, and therefore deeds to terrify their fellow citizens.


그는 도덕의 실행자였다. 이런 신념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무자비한 반항심을 가지고 자신의 임무를 실행함으로써 그는 힘과 권위가 있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것(힘과 권위의 획득)은 그의 복수심으로 가득한 비통함에 더 없이 좋은 것이다. 그것은 그의 불안한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아마도 가장 극렬한 혁명분자들은 그들 나름의 방법대로 인류의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충족된 허영심과 만족되는 욕구와 달래지는 양심이 주는 평화를 추구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붙잡히게 되면 고무공을 압착하여 폭파할 수 있는 폭탄을 포켓에 넣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조용한 사람인 그 교수와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은 탐지하기도 힘들고 이들의 행동을 저지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일으킨 공포의 물결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주된 이유는 오히려 세계가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파시즘과의 싸움 그리고 식민주의와의 투쟁에 열중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보다 더 합리적인 무정부주의자들이 테러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아일랜드 공화군처럼―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무정부주의 물결이 완전히 지나간 것은 아니다. 단지 물결의 모양이 변했을 뿐이다. 1880~1990년간의 무정부주의 테러분자들이 다른 테러분자들로 대체되었다. 이들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인 Fenians[이들 중의 한 명이 오스트리아의 Franz Ferdinand 大公(대공)을 죽여서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다], Bolsheviks(러시아 공산당원), Dashnaks(아르메니아 혁명가), 폴란드인들, 마케도니아인들, 힌두 민족주의자(이들 중에는 간디 암살범들이 포함된다), 파시스트, 시온주의자, 모택동 추종자, 체 게바라 추종자, Black Panthers(검은 표범), Red Brigades(붉은 여단), Red Army Factions(붉은 군대 당파), 팔레스타인 사람, al-Qaeda's jihadists 등이다. 이들 중 무정부주의자들의 목적을 공유하는 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전술과 사상의 일부를 차용하였다.


그리고 세상은 계속 흘러갔다. 어제의 다이너마이트 테러범들이 오늘의 核(핵) 테러범으로 바뀌더라도 세상은 그대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테러범은 말살될 것 같지는 않다. Conrad의 교수와 같은 인간들이 있는 한 이들을 격분시킬 명분은 있을 것이고 그래서 같은 인간들에게 테러를 하는 행동도 있을 것이다.

 

 

출처 : The Economist, August. 20th, 2005
[ 2021-03-17, 16: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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