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내몰린 북간도(北間島) 조선 처녀들의 아픔을 담다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21)찔레꽃(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난아 노래, 1942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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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 나온 1942년경에는 일제가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세계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1937년부터 중일(中日)전쟁을 하고 있는 일제로서는 힘에 버거운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본토에서는 물론 식민지인 조선에도 국가총동원령을 발동하여 최후의 1인까지 옥쇄하겠다며 단말마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처음 동남아 전선에서 승전고를 울리던 일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전황이 불리해지자 식민지 조선 전역에 강제 징병, 징용제도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인 학생들은 학병으로 출병하여 일제가 일으킨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었고, 일반 남성은 징용으로 끌려가 비행장 노역, 탄광광부, 부두 잡부 등으로 일하였다. 또한 조선의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가 공장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위안부가 되어 일본군의 성(性)노리개로 전락하였다.
  
  진방남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를 작사하여 많은 인기를 얻은 작사가 김영일은 1941년 양력 6월경 함경북도를 통과하는 간도선을 타고 북간도(北間島)에 사는 친지를 만나러 갔었다. 마침 친지 집으로 가는 길목의 산야에는 초여름의 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찔레꽃이 만발하여 계절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가 북간도의 친지 집에 도착하여 정담을 나누던 중 방 안을 둘러보니 정순이가 보통학교 졸업할 때 친구 두 명과 함께 꽃송이처럼 탐스럽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보였다. 김 작사가의 친지는 그 사진을 가리키며 유난히 자신을 따르던 친지의 여동생 정순이가 어린 나이인데도 시국이 어수선해서 시집을 보냈다는 말을 하였다. 또한 사진 속에 있는 정순이 친구 중 한 처녀는 정신대로 끌려갔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하였다. 그는 일제가 저지른 전쟁 때문에 저렇게 순진무구한 조선의 처녀들이 그 전쟁의 소도구가 되거나 아니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북간도 친지집 방문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작사가 김영일은 그곳에서 들은 이런 슬픈 소식 때문에 계속 가슴이 먹먹하였다. 그는 북간도에서 봤던 만개한 찔레꽃과 사진 속의 정순이와 그녀의 두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노래 가사를 만들었다. 이런 사연을 안고 탄생한 이 노래의 가사는 우리나라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찔레꽃을 소재로 고향과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특히 ‘남쪽 나라 내 고향’과 ‘못 잊을 동무’를 연계시켜 그리움의 상징으로 승화하는 가요시가 아름답고 애절하다.
  
  김교성 작곡가가 이 가사를 한껏 살리는 곡을 만들고, 풍부한 성량과 푸근한 창법을 가진 백난아의 목소리에 실어 1942년 3월 태평레코드에서 발매하였다. 가수 백난아의 이 <찔레꽃>은 망향의 슬픔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는 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발매 초기 이 노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였지만 해방과 6·25 전쟁 등 민족적 시련을 겪으면서 계속 인기를 끄는 국민가요가 되었다. 2005년 KBS 가요무대 방송 20돌을 맞아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의 순위조사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 이 노래는 이북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특히 죽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애창곡이라고 한다. <찔레꽃>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자 2007년 가수 백난아의 고향인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찔레꽃> 노래 공원과 노래비가 세워졌다.
  
  제주에서 탄생한 가수 백난아는 본명이 오금숙이다. 그녀는 온 가족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어릴 때 함경북도 청진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녀는 16세 나이로 태평레코드사가 주최한 전국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였다. 이 대회의 심사위원은 유명한 작사가 박영호와 천야토, 작곡가 김교성과 이재호, 가수로는 백년설이었다고 한다. 이 대회가 끝난 후 그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 백년설은 가수 지망생 오금숙에게 ‘난초처럼 곧고 순결한 품위를 지니라며’ 백난아라고 지어주었다고 한다. 백난아는 그후 <찔레꽃>, <아리랑 낭랑>, <직녀성>, <낭랑 18세>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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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1.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2.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3.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 2021-03-22, 01: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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