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방관할 자유는 없다
반공자유-교양영어(38): Worlds of their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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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악을 방관할 자유는 없다

난세에는, 지식이 많고 생각하고 절제하는 사람들 가운데 삶의 무대에서 떠나 명상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진다. 이들은 퇴각과 명상이 건전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시민들도 현실참여를 꺼리게 된다. 많은 시민은 최소한의 투표 참여도 기피한다. 현존 정치질서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고 도덕적 질서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변화와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기 보다는 현실에서 손을 떼려고 한다. 국가가 망하고 있어도 江 건너 불 보듯 하면서 淸風明月(청풍명월)이나 읊조리며 달관한 듯이 살아간다. 이것은 삶의 투기장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이런 도피는 그 투기장을 기회주의자와 냉소주의자와 사악한 위선자들에게 넘기는 것이며 정치가 퇴락의 나선형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관심이 권위주의의 사악한 막간극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준다. 빛이 없으면 암흑이 세상을 지배한다. 소금이 없으면 산해진미도 악취를 풍기게 된다. 악에 저항할 자유는 있지만 악을 방관할 자유는 없다. 국가 공동체의 시민은 악과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는 망하거나 악인의 잔치판이 되고 국민은 죽도록 고난을 당하게 된다. 


목숨이 달린 재판 중에도 Socrates는 악에 대항하였다. 그는 선동정치가들에 의해 타락해가는 시민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시민의 양심을 자극하였다. 그는 귀찮게 구는 날 파리처럼 지속적으로 진리의 채찍으로 동포시민들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그는 특히 젊은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데 열중하였었다. Socrates는 죽음을 당할 때까지도 삶의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명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악과의 싸움에 적극적이었다는 말이다. 


Socrates가 원조가 되는 서양의 철학적 思潮(사조)에서는 공개 토론에 참여할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주장하는 흐름이 강하다. 영국 보수주의의 원조인 Edmund Burke는 선한 사람들이 비켜 서 있으면 악이 압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는 악의 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수용소 군도”의 Alexander Solzhenitsyn은 그의 동포들에게 소련(공산당)의 통치에 반대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통치와 결탁하지는 말라고 하였다. 극악의 독재체제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대 놓고 저항은 못 할지라도 그 앞잡이는 되지 말라는 것이다. “동물농장”의 George Orwell은 “부패한 정치인과 사기꾼과 도적과 반역자를 선출하는 국민은 희생자가 아니고 공범”이라고 하였다. 히틀러를 선출한 독일이나 자의든 타의든 스탈린에 열광한 소련인들도 악의 공범자였다는 것이다. 


선이 악을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문명을 오래전에 멸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이 국가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악을 방관하거나 악과 싸워야 의무를 포기하면 악이 선을 이긴다. 그러면 국가는 패망하거나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생지옥에서 국민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북한을 보라!


 


38. Worlds of their own

-Giving up on politics is often tempting. It is also risky

-In a polarised age, some on both left and right are choosing internal exile


38-1-310

WORLDLY SUCCESS has not made Rod Dreher fonder of the world as he finds it. In “The Benedict Option”, published three years ago, the veteran commentator on religious affairs lamented that conservatives like him had been utterly vanquished in America’s culture wars. The moral gap between liberals and traditionalists had become unbridgeable, he argued; the only hope for the godly lay in abandoning the fight for power and withdrawing from the social mainstream into self-contained families and communities.


“The Benedict Option” was a bestseller. So warm and widespread was the acclaim that its Manichean pessimism seemed to have been disproved. But Mr Dreher has not mellowed. In his new book he compares the situation of observant Christians in America to dissidents, especially religious ones, in the Soviet Union. The title, “Live Not By Lies”, invokes Alexander Solzhenitsyn, who told his compatriots that even if they could not oppose Soviet rule, they should avoid colluding with it.


Plenty of believers, in America and elsewhere, share Mr Dreher’s sense of alienation. But his work resonates for another reason. Many others who disavow the rest of his worldview have confronted the basic choice that he lays out: participation or flight. That fraught dilemma seems especially acute in an age of sharply polarised politics, but it is ancient.


38. 그들 자신만의 세계

-정치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는 것은 유혹적이다. 그것은 또한 위험하다.

-分極化(분극화)된 시대에, 좌파이든 우파이든 일부 사람들은 內的(내적) 망명을 선택하고 있다. 


세속적인 성공이 Rod Dreher를 그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계를 더 좋아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3년 전에 출간된 “Benedict 선택”에서 종교문제에 관해 노련한 註釋者(주석자)인 그는 그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문화전쟁에서 완전히 정복당했다고 슬퍼하였다. 그는 자유주의자와 전통주의자 사이의 간격은 연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the godly)을 위한 유일한 희망은 권력을 위한 싸움은 포기하고 사회의 主流(주류)로부터 독립적인(self-contained) 가족과 공동체 안으로 철수하는 것에 있다.


“The Benedict Option”은 베스트셀러였다. 그 환호는 너무나 따뜻하고 광범위해서 그 책의 마니교적인(Manichaeism: 3세기 페르시아의 비관주의 종교) 비관주의는 反證(반증)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Mr Dreher(그의 비관주의)는 부드러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新刊(신간)에서 그는 미국의 교리 엄수 기독교 신자들의 상황을 蘇聯(소련)의 반체제 인물들, 특히 소련 기독교 신자들에 비유하고 있다. 책 제목 “Live Not By Lies”(거짓에 의해서 살지 마라)는 그의 동포들에게 소련(공산당)의 통치에 반대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통치와 결탁하지는 말라고 했던 Alexander Solzhenitsyn을 연상시킨다.


미국과 그 밖의 많은 신앙인들은 Mr Dreher의 소외감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또 다른 이유로 공감을 일으킨다. 그의 세계관의 나머지 부분을 부인하는 다른 많은 사람은 참여하느냐 아니면 도피하느냐라는 기본적 선택과 직면하게 되었다. 그 난처한(distraught: 난처한, 충만한) 딜레마는 심하게 갈라진 정치에서 특별히 날카로운 것 같지만 이것은 오래된 것이다.

 


38-2-311

Visiting Russia, Mr Dreher learns how honest Soviet citizens tried to avoid having much to do with the system. Geology was a popular discipline among scientists, as it let researchers spend a good portion of their lives in far-flung and unsullied places. (Humbler jobs as furnace-stokers or nightwatchmen were another refuge for free spirits.) Mr Dreher also speaks to people who lived through communism and know modern America. These battle-hardened folk say they find something horribly familiar about the emergence of intolerant thought police who can ruin careers, in academia or the professions, as punishment for dissent from the new orthodoxies on gender, race or sexuality.


Whatever you make of that analogy, there are some fundamental parallels between the two places. Like Russia, America is vast, meaning retreat has always seemed physically possible, even enticing, whether in the mountains of Idaho or the Arizona desert. Motives for withdrawal have included ideological dissent, Utopian experiments, eschatological hopes, the avoidance of social or technological change or the acceleration of such change. America has its Amish communities; the taiga and steppe of tsarist Russia accommodated schismatic groups such as the Old Believers, who were theologically conservative but economically progressive.


Today the kind of flight proposed by Mr Dreher need not be physical. You can live on a remote island and engage furiously in political battles (Mr Dreher wages his own from Baton Rouge, Louisiana).


러시아를 방문하였을 때 Mr Dreher는 정직한 Soviet 시민들이 체제와 관계하는 것을 피하려고 어떻게 노력하였는가를 배웠다. 지질학은 그것이 연구자들이 멀리 떨어진 淸淨(청정)한 지역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도록 해주기(let) 때문에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학문(discipline)이었다. [용광로 火夫(화부)나 야간경비원 같은 보다 단순한 직종은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피난처가 되었다.] Mr Dreher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았었고 현대 미국을 아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하였다. 이들 전투에서 단단해진 사람들(러시아 사람들)은 性(gender: 남녀성별)과 인종과 성(sexuality)에 관해서 새로운 정통성(권위)에 반대하는 것에 대한 벌로서 학계에서나 직업에서의 경력자들을 파멸시킬 수 있는 편협한 사상경찰의 출현에 관해서 무섭도록 비슷한 것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類推(유추)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든 그 두 나라(two places: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몇 개의 근본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 러시아처럼 미국도 광대하다. 이것은 Idaho의 산악지대이든 Arizona의 사막이든 퇴각은 신체적으로 항상 가능했고 심지어 유혹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퇴각의 동기는 이념적 異議(이의), 유토피아 실험, 종말론적 소망, 사회적 또는 기술적 변화에 대한 도피 혹은 그런 변화의 촉진을 포함하였다. 미국은 Amish(기독교 종파) 공동체가 있다. 帝政(제정) 러시아의 taiga(침엽수림지대)와 steppe(대초원)은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진보적인 Old Believers 같은 종파분리 집단들을 수용했었다.


오늘날에는 Mr Dreher에 의해 제안된 그런 종류의 도피는 신체적일 필요는 없다. 외딴(remote) 섬에 살면서 정치적 전투에 맹렬하게 참여할 수 있다. [Mr Drehe는 Louisiana의 Baton Rouge에서 자신의 전투를 수행(wage)하고 있다]


 

38-3-312

Conversely, a city-centre flat can be a place of isolation, embraced for intellectual reasons as well as pandemic-related ones. And in many modern democracies lots of liberal-minded people, too, have been tempted to desert the political and social mainstream, with or without a change of place. That has been most starkly true in cantankerous America and Brexit-era Britain.


Anthony Barnett, an English writer on democracy, observes a mood of retreat among older, left-leaning people in England and America: some over 50 are, he says, withdrawing from active politics into un-ideological passions such as gardening. The impulse, he thinks, derives less from fatalism than from an awareness that the job of fixing a broken system properly belongs to a younger, untarnished generation. The older cohort “know they were part of the problem”.


Retreat and reflection are a healthy response for liberal-minded activists chastened by populism, reckons Hugo Dixon, a co-leader of the failed campaign for a second popular vote on Brexit. They must ponder why the old managerial style of politics was rejected in favour of abstract values like meaning and community. Nor are they the only ones to feel desolate or, for the time being, politically homeless. Linda Bilmes, a professor of public policy at Harvard who served in Bill Clinton’s administration, points to the cadre of moderate Republicans who have been driven to abandon the fray. Whatever its outcome, the impending presidential election may push some Americans into a sort of internal exile.


거꾸로, 都心(도심)에 있는 아파트는 유행병 관련 이유뿐 아니라 지적인 이유로 채택되는 (embraced) 고립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의 많은 민주국가(democracies)에서는 많은 자유주의 정신의 사람들도 장소를 바꾸든 바꾸지 아니하든 정치적 또는 사회적 주류로부터 脫走(탈주)하려는 유혹을 받아 왔다. 이것은(That) 싸움질이 많은 미국과 Brexit(유로화 통화지역 탈퇴) 시대의 영국에서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영국의 민주주의 관련 작가인 Anthony Barnett는 영국과 미국의 나이가 많고 좌경적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는 퇴각의 무드를 관찰하고 있다: 50 이상의 일부 사람들이 정치적 활동으로부터 園藝(원예)와 같은 비정치적 열정으로 퇴각하고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런 충동은 체념(fatalism)보다는 고장 난 제도를 적절하게 고치는 일은 보다 젊고 때가 묻지 않은 젊은 세대에 속한다는 각성에서 더 많이 나온다고 그는 생각한다. 나이 많은 집단(cohort)은 “그들이 문제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중민주주의(populism)에 의해 벌을 받고 있는 자유주의 정신의 활동가들에게는 퇴각과 명상(reflection)이 건전한 반응이라고 제2차 Brexit 투표를 위한 캠페인에서 실패한 공동대표인 Hugo Dixon은 평가한다. 그들은 구식의 경영적 스타일의 정치가 의미와 공동체 같은 추상적인 가치의 선호에 의해서 왜 거부당했는지를 숙고해보아야 한다. 또한 그들이 처량함을 느끼거나 혹은 당분간 정치적으로 집이 없다고 느끼는 유일한 사람들은 아니다. Bill Clinton 행정부에서 근무하였고 Harvard 대학의 공공정책 교수인 Linda Bilmes은 싸움을 포기하도록 몰리게 된 공화당 간부들을 가리키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임박한 대통령 선거는 일부 미국인들을 일종의 내부 망명으로 밀어낼 것이다.



38-4-313

The case of Socrates

Conservatives longing for a safe space to marry and bring up children as they see fit; liberals in search of a quiet spot to lick their wounds: another category of people may harbour a different worry—about the impact on social cohesion when the disillusioned withdraw. One risk is that their flight from the arena will leave it free for opportunists and cynics, and that politics enters a degenerate spiral. Alongside that concern is a long-standing question of personal morality. If you are deeply convinced that the present order is wrong, do you have the right to opt out rather than remaining engaged and working for change?


Among the philosophical currents that shaped the West, a powerful one insists not merely on the right to engage in public debates, but on the duty. The great Anglo-Irish theorist Edmund Burke reputedly warned that evil would prevail if good people stood aside. You need not be a totalitarian to find merit in Karl Marx’s adage that philosophers must change the world as well as understand it.


More recently some of the Frankfurt School of German thinkers, such as Theodor Adorno, took refuge from Nazism in the United States; but their critique of modern society and populist culture, for all its cerebral opacity, was meant for active use, not just idle observation. Their ideas probably helped shape post-war German culture and immunise it against fresh totalitarian temptation.


Socrates의 경우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그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양육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동경하는 보수주의자들: 그들의 상처를 핥아줄 조용한 장소를 찾고 있는 자유주의자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물러날 때 사회적 응집력에 미치는 충격에 관해서― 다른 종류의 걱정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위험은 투기장으로부터 그들의 도피는 그 투기장을 기회주의자와 냉소주의자들에게 넘긴다는 것과 정치가 퇴락의 螺旋(나선)형 추락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걱정과 함께 장기간 지속되는 개인적 도덕성의 문제가 있다. 현존 체제(order)가 잘못되었다고 당신이 깊이 확신한다면 당신은 계속 참여하면서 변화를 위해 활동하기보다는 손을 뗄 권리가 있는가? 서양을 형성하였던 철학적 思潮(사조: currents) 중에서 어떤 강력한 사조는 공개 토론에 참여할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주장한다. 위대한 영국계 아일랜드人 이론가 Edmund Burke는 소문에 의하면 선한 사람들이 비켜 서 있으면 악이 압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고 한다. 철학자는 세계를 이해할 뿐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Karl Marx의 격언의 장점을 발견하기 위하여 전체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최근에 Theodor Adorno 같은 독일 Frankfurt 學派(학파: school) 사상가들 일부는 Nazism으로부터 도피하여 미국에 피난처를 구했었다; 그러나 그들 비판의 지적인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와 대중문화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단지 한가한 관찰만이 아니고 적극적인 활용을 의미하였다. 그들의 사상은 戰後(전후) 독일문화를 형성하고 새로운 전체주의(공산주의) 유혹에 대항해서 그것(문화)을 면역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38-5-314

In some circumstances, the calculus changes. Former dissidents of the kind Mr Dreher meets might insist that the Soviet regime offered no leeway for improvement. Preserving their own integrity was as much as they could do—and that in itself could amount to a profound moral statement, incurring harsh retribution. Rancorous as they can be, though, have America and other democracies really reached a similar point now? After all, for those who abhor national politics, there is a glorious array of alternative forms of engagement—from voluntary groups and local civic initiatives to conservation movements, not to mention the free exercise of speech online and elsewhere.


As it happens, the world’s first democracy, in ancient Athens, also fretted over degrees of participation and the price of withdrawal. Many Athenians resented the apparent indifference to politics of the city’s wisest person, Socrates; some alleged, not absurdly, that his seeming apathy had opened the way for vicious interludes of authoritarianism.


On trial for his life, Socrates insisted he was anything but indifferent to the city’s welfare. He simply chose to stand a few paces back, challenging his fellow-citizens by asking basic, awkward questions and hence prodding them, like a gadfly, to act more wisely. “Socrates was not a quietist,” says Paul Cartledge, a British expert on ancient democracy. The trouble was that some of his compatriots “saw politics, like religion, as something to be done in public if it was done at all”.


Today’s representative democracy finds it easier to accommodate a division of labour between thinkers and doers, actors and observers, participants and abstainers. Many citizens eschew even the minimal commitment of voting. But those who abstain will always face hard questions about whether leaving the stage was the only way to enact their principles.


어떤 환경에서는 계산법이 변하게 된다. Mr Dreher가 만난 前반체제 인물들 같은 종류의 사람들은, 소련정권은 개선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 자신의 순수성(integrity: 완전, 고결, 보전)을 보존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이었다―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서 가혹한 응징을 초래하면서 심오한 도덕적 내용(진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원한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미국과 다른 민주주의국가들도 실제로 비슷한 지점까지 도달한 것일까? 결국, 국내 정치를 소름끼칠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 늘어 서 있는 영광스러운 참여를 위한 대체 형태가 있다―온라인과 그 밖의 장소에서 자유로운 말하기 실행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원 그룹과 시민 선도단체로부터 보존운동단체까지(대체 형태가 있다).


우연하게도, 고대 아테네에서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도 참여의 정도와 퇴각의 대가에 대해서 고민하였다(fret). 많은 아테네 사람들은 그 도시의 최고의 賢者(현자)인 Socrates의 정치에 대한 명백한 무관심을 괘씸하게 생각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표면상의 무관심이 권위주의의 사악한 막간극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합리적으로(not absurdly: 부조리하지 않게) 주장하였다.


그의 목숨이 달린 재판 중에 Socrates는 나라(city)의 복지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본적이고 어색한 질문을 하고 그래서 그들이 더 현명하게 행동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등에(gadfly)처럼 자극함에 의해서 동포시민들에게 도전하면서 단순히 몇 걸음 떨어져서 서 있는 것을 선택하였다. “Socrates는 靜寂主義者(정적주의자: quietist: 무저항주의자)가 아니었다”라고 영국의 고대민주주의 전문가인 Paul Cartledge이 말하였다. 문제는 Socrates의 동포 중 일부는 “정치는 그것이 조금이라도 실행된다면, 종교처럼 공공연히(대중 앞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는 생각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 행위자와 관찰자, 참여자와 절제가 사이의 분업(division of labour)을 조절하는 것을 더 쉽게 해준다. 많은 시민은 최소한의 투표참여도 기피한다. 절제하는 사람들은 무대를 떠나는 것이 그들의 원칙을 실행하는 유일한 방법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에 항상 단단히 직면하게 될 것이다.

 

출처 : The Economist, Oct. 24th, 2020
[ 2021-03-24, 11: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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