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력과 생동감, 간드러진 창법’의 1950년대 대표 新민요곡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25)오동동 타령(야인초 작사,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 1955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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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개월 동안 조갑제 TV에 ‘동초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마산에 거주하고 계신 무학산 선생님이 그곳과 관련 있는 <오동동 타령>을 불러달라는 신청을 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최초의 신청곡이라 매우 의미가 있었기에 저는 이 노래를 부르고, 해설하였다.
  
  황정자가 불러 히트했던 <오동동 타령>의 무대는 지금의 창원시 일원이 된 과거 마산시 오동동이다. 마산은 옛날부터 물이 좋았다고 한다. 수질, 토양, 기후 등이 좋은 술을 만드는데 필요한 요건들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청주, 막걸리, 소주 등 다양한 술을 그곳에서 생산하고, 또한 이 술은 그 인근 지역민들은 물론 경남 전역과 부산에서 인기리에 소비되고 있다.
  
  특히, 이렇게 마산에서 생산한 술은 가장 가까운 오동동의 ‘통술집’에서 1차적으로 많이 소비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안주가 통째로 한상에 나온다고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통술집’으로 유명한 이곳에는 원래 일제시절부터 기생조합인 권번이 자리잡아 일본식 요정이 성업했다. 그러다 시절이 변해가면서 요정업이 시들해지자, 이곳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작은 밑천으로 시작한 술집이 바로 ‘통술집’이다. 가격이 싼 데다가 여러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어 술을 마시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많이 쇠락했지만 아직도 마산 오동동에는 과거 그런 식으로 술을 팔던 ‘통술거리’가 남아 있다.
  
  <오동동 타령>이 나오던 1950년대 중반은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던 6·25 전쟁이 끝 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다. 사람의 생사가 엇갈리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먹을 것도 없고, 취직할 자리도 없는 등 살기가 힘들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체로 이 시기를 전후하여 나온 노래들은 이런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여 <가는 봄 오는 봄>, <생일 없는 소년>, <비 내리는 호남선> 등 슬픈 노래들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의 삶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신민요 풍의 <오동동 타령>은 밝고 빠르며 경쾌하기조차 하다. 오동동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술꾼들의 행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노래가 나온 1955년을 전후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미국을 통해 들어온 퇴폐적 향락문화에 빠져들었던 시기이다. 특히, 그중에서 춤바람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해방 후 유행하기 시작한 부기우기 춤은 1950년대 중반이 되면 맘보춤으로 그 유행이 바뀌고, 1950년대 말에는 차차차 춤이, 1960년대 초에는 트위스트가 인기를 얻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춤을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음식점에서는 물론 집에까지 춤을 가르치는 선생을 모셔놓고 춤을 배웠다고 한다. 그 당시 한국 사회 전반에 형성된 이런 춤의 열풍 속에서 타락한 대학교수 부인의 춤바람을 그린 정비석 소설가의 <자유부인>이 큰 논란을 일으키며 히트를 하였고, 카바레를 돌면서 수많은 처자를 유린한 ‘박인수 사건’이 터져 크나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한 <오동동 타령>은 크게 히트했다. 이 노래를 부른 황정자는 1929년 생으로 본명은 황창순이다.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그녀가 여덟 살 때 황금좌의 막간 무대에서 동갑인 김용대와 함께 꽹과리를 두들기고, 장구를 치면서 깜찍하게 신민요를 부르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다고 한다. 1944년 그녀는 중국 천진에 가서 신태양악극단에 가입하여 작곡가 손목인 등과 함께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활력이 느껴지는 ‘박력과 생동감, 간드러진 창법’으로 신민요를 불러 인기를 얻은 이 분야의 독보적 존재였다.
  
  1969년에 사망한 그녀는 <처녀 뱃사공>, <노랫가락 차차차>, <오동동 타령>, <봄바람 님바람> 등을 히트시켜 1950년대 중후반 인기 정상에 올라갔다.
  
  <오동동 타령>을 작곡한 한복남은 1919년 평남 안주 출신으로 본명은 한영순이다. 노래를 잘하는 양복쟁이로 소문이 난 그는 김해송이 주도하는 KPK 악극단이 주최하는 무대에 섰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백운암 작사, 양원배 작곡의 <빈대떡 신사>를 불러 크게 히트시켰다. 또한 6·25 전쟁기간 중에는 부산에서 도미도레코드사를 창립하였는데, 이 즈음 그는 작곡을 시작하였다. 음악이론 공부가 제대로 안된 그는 기본 멜로디만 짓고 편곡은 이재호, 나화랑 등 기성 유명 작곡가가 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가 작곡한 <처녀 뱃사공>, <오동동 타령>, <나의 탱고>, <앵두나무 처녀>, <한많은 대동강>, <님>, <엽전 열닷냥> 등이 히트했다.
  
  본명이 김봉철인 작사가 야인초는 황해도 박연 출신이다. 부산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면서 코로나레코드를 창립한 그는 <한 많은 대동강>, <여인우정> 등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 2021-03-28, 05: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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