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한국 가요계 최고의 작곡가 박춘석의 대표곡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32)삼팔선의 봄(김석민 작사, 박춘석 작곡, 최갑석 노래, 1958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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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침공으로 발발한 6·25 전쟁은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3년 만에 일단 끝이 났다.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하지 못하고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분단을 더욱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휴전이 된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이렇게 분단이 된 점을 몹시 아쉬워하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우리 대중가요계는 환도(還都) 후부터 1950년대 말까지 휴전선이나 전선(前線)을 소재로 한 노래들을 계속 만들어 인기를 얻었다. <향기 품은 군사우편>(박금호 작사, 나화랑 작곡, 유춘산 노래), 휴전선 나그네(월견초 작사, 김성근 작곡, 남백송 노래), <삼팔선의 봄>(김석민 작사, 박춘석 작곡, 최갑석 노래) 등이 바로 그런 유형을 대표하는 노래들이다. 이런 노래들은 남북 분단으로 인한 이산(離散), 실향 등을 비탄적 정조(情調)로 반공적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1950년대 중후반 희곡작가 김석민이 대본을 쓴 <삼팔선의 봄>이라는 연극이 막을 올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연극의 주제가 <삼팔선의 봄>은 동명(同名)의 연극 대본을 쓴 김석민이 작사한 것을 박춘석 작곡가가 멜로디를 붙여 배우 황해가 불렀다. 그러나 그 후 1958년 가수 최갑석이 레코드로 취입하여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이 노래를 보면 전반적으로 휴전 이후 한국사회의 강한 반공적 분위기가 가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삼팔선의 봄> 1절은 자유대한민국의 승리와 북녘에 있는 고향의 수복을 위해 6·25 전쟁 중에 목숨을 바쳤지만, 그 보람도 없이 분단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한탄하고 있다. 그리고 2절은 북녘 동포들의 굶주림과 노예 같은 삶으로 인한 고통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우리의 통치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통일을 하여 그들을 구제하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다.
  
  이처럼 수십 년 전 우리 대중가요계가 예측한 대로 지금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삶은 정말 비참하다. 전체주의적 억압상태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배를 굶주리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하루 빨리 구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책무이다. 사리(事理)가 이러한데도 작년 북녘 동포에게 외부정보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문(文)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을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조치이다.
  
  이 노래를 작곡한 박춘석은 해방 이후 한국 가요계가 배출한 최고의 작곡가이다. 그는 이미자, 패티김, 남진, 문주란 등 당대의 인기가수와 함께 지구레코드에서 주로 활동하며 <비 내리는 호남선>, <초우>, <마포종점>,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가슴 아프게>, <기러기 아빠>, <공항의 이별>, <물레방아 도는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가시나무새> 등 주옥같은 노래 2700여 곡을 만들었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전쟁과 대중적 빈곤, 급속한 근대화 등 격동의 세월을 살아가면서 받은 수많은 상처와 한(恨)을 지녀온 한국인의 마음을 포근히 어루만지며 달래주었다. 이처럼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수많은 히트곡을 가진 그였지만 생전 KBS 김동건 아나운서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앞으로 자신의 노래비를 세운다면 <삼팔선의 봄>의 노래비를 판문점에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노래에 대한 애착이 강하였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희곡작가인 김석민 작사가는 1922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삼팔선의 봄>을 작사한 그는 ‘애정산맥’, ‘애정 파도’, ‘사랑하는 까닭에’, ‘손오공’, ‘반역자’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7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최갑석은 고교 2학년 때 콩쿨대회에 나가 1등을 하였다. 그 대회의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박춘석과의 인연으로 오아시스 레코드사에 입사하여 <불국사의 길손>으로 데뷔하였다. 그는 <삼팔선의 봄>, <마도로스 순정>, <고향에 찾아와도> 등의 노래를 불러 인기를 얻었다. 가수를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실패한 후 197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아파트경비원 생활을 하다 2004년에 돌아갔다. 그의 고향인 전북 임실군 관촌면 사선대에 그의 최대 히트곡인 <고향에 찾아와도>의 노래비가 있다.
  
  <삼팔선의 봄>
  
  눈녹인 산골짝에 꽃이 피누나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나
  세월을 한탄하랴 삼팔선의 봄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소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으리
  
  눈녹인 산골짝엔 꽃은 피는데
  설안에 젖은 마음 풀릴 길 없고
  꽃피면 더욱 슬퍼 삼팔선의 봄
  죽음에 시달리는 북녘 내 고향
  그 동포 웃는 얼굴 보고 싶구나
  
  
[ 2021-04-07, 04: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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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21-04-09 오전 5:46
나의 애창곡
   도솔383     2021-04-07 오후 4:35
우리친구가 즐겨부르던 박춘석이 아끼는 삼팔선의 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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