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 이후 최고(最高)’라 불린 허스키 소녀, “그리움이 변해서 사모친 미움”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34)동숙의 노래(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문주란 노래, 1966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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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사회는 아직 대중적 빈곤이 만연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농촌지역 학생들은 ‘공부가 밥 먹여주느냐’고 말하는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쳐 중학교 진학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여자들은 더더욱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웠다. 그들 대부분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몇 년간 집안의 농사를 거들다가 10대 중후반이 되면 기회를 찾아 도시로 와서 공장의 여공, 버스 차장, 식모 등으로 일하며 집안의 부모나 오빠 혹은 남동생을 위해 희생하곤 했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오동숙은 그 당시의 전형적인 방식대로 초등학교도 다 끝내지 못하고 구로공단 가발공장에서 여공으로 근무를 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을 위해 월급의 대부분을 송금을 하는 착한 여성이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 덧 30세에 가까운 노처녀가 되자 그녀는 배움에 뜻을 두고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게 된다. 대학의 국문과에 가서 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를 하여 중졸(中卒) 자격시험을 합격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그녀는 그 학원의 꽃미남 강사 박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어 몸과 마음, 심지어 여공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까지 다 갖다 바친다. 그러다가 동숙이 다니던 회사가 폐업하게 되어 시골로 가서 부모님에게 “공부를 하겠으니 돈을 좀 보태달라”고 하였으나 “공부는 무슨 공부냐. 시집이나 가라”고 하면서 야박하게 거절한다. 실망한 상태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온 그녀에게 친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던 박 선생이 약혼자와 결혼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해 준다. 사정을 좀더 알아보기 위해 박 선생을 만났으나, “네가 좋아서 나를 따라다녔지” 하는 식으로 그의 대답은 싸늘하다. 복수를 결심한 그녀는 그 다음 날 동대문 시장에서 산 칼로 선생의 가슴을 찔렀으나 죽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녀는 살인미수죄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런 동숙의 사연이 어느 여성지의 ‘사랑의 생활수기’에 실렸고, 신문과 방송에도 소개되었다. 이 수기를 읽은 작사가 한산도가 노랫말을 만들고, 작곡가 백영호가 작곡을 하여 10대를 벗어나지 않았던 가수 문주란이 노래를 불러 엄청나게 히트하였다. 그녀는 이 노래로 TBC 신인상과 공보부 제정 제 1회 무궁화상 장려상을 수상하게 된다.
  
  2005년 MBC '타임머신', 2008년 ‘스펀지’, 2011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동숙의 노래>가 이처럼 오동숙이라는 실제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2012년 12월 15일 OBS '나는 전설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문주란은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작사가 한산도에게 물어봐야 진실을 알 것 같다.
  
  어쨌든 가수 문주란이 불러 공전(空前)의 히트를 했던 <동숙의 노래>는 영화 <최후 전선 180리>의 주제가로 사용되었다. 임원직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태현실(동숙 역), 남궁원, 이대엽, 김석훈이 주인공으로 열연하였다. 동숙과 사귀던 남자는 둘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오해로 인해 생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군 특전대에 입대한다. 휴전을 앞두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시점에서 적진 깊숙이 침투한 대원들은 적의 화약고를 폭파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작전 임무를 수행하다 전체 대원이 장렬히 전사한다. 특히 동숙과 사귀던 남자는 그녀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르며 죽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본명이 문필련인 문주란은 부산 출신으로 저음(低音)의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이다. 어릴 때부터 유행가를 많이 부른 그녀는 '톱싱거’라는 부산 MBC 노래경연 프로그램에서 현미의 <보고 싶은 얼굴>로 6주간 1위를 하였다. 또한 부산에서 열린 다른 경연대회도 휩쓸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서울로 스카웃되어 극장쇼에 출연하게 되었다. 어느 날 시공관에서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를 부르는 문주란의 탁월한 기량을 본 백영호 작곡가는 지구레코드 사장에게 그녀가 이미자 이후 최고의 가수가 될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이 작곡한 <동숙의 노래>를 그녀에게 주었다.
  
  작사가 전우가 문주란처럼 활짝 피라며 문주란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그녀는 <타인들>, <돌지 않는 풍차>, <낙조>,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공항의 이별>, <내 몫까지 살아주> 등 히트곡을 양산하여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였다. 이런 인기곡들 때문에 그녀는 1966년, 1967년, 1968년, 1972년, 1973년, 1974년 MBC 10대 가수로 선정되었다.
  
  이 노래를 작사한 한산도와 작곡한 백영호는 <동백아가씨>, <동숙의 노래>, <여자의 일생>, <잊을 수 없는 연인>, <빙점>, <홍콩의 왼손잡이> 등 많은 인기곡을 내놓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까지 한국 가요계를 주도했던 명콤비였다.
  
  <동숙의 노래>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모친 미움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해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흐느끼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음~~때는 늦으리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그대 따라 못가는 서러운 미움
  저주받은 운명이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음~~뜨거운 눈물
  
  
[ 2021-04-11, 05: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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